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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얘기에 침묵하는 당신…이 책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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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얘기에 침묵하는 당신…이 책이라면!"

[화제의 책] 〈과학이 나를 부른다〉

플라톤의 <향연>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 모여 사랑을 놓고 나누는 대화의 '향연'을 담은 책이다. 만약 영역을 막론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30인이 모여서 '과학'을 놓고 대화를 나눈다면 어떤 향연이 펼쳐질까? <과학이 나를 부른다>(강신주 외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바로 이런 상상을 현실로 바꾼 책이다.

책의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 책에 글을 실은 저자 30인의 명단이 책 표지를 각기 다른 글씨체로 빼곡히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강 이름을 살펴보자. 한 가운데 위아래로 원로 문학평론가 '김병익'과 개각 때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1순위로 꼽히는 '오세정'이 보인다. 눈을 좀 위로 돌려보면 최근 주목 받는 소설가 '김연수'가 있다.

눈을 책 아래로 돌려보면 한국 종교학의 토대를 닦은 원로 종교학자 '정진홍'이 보이고, 그 밑으로는 대중이 사랑하는 과학자 '정재승'이 보인다. 그 옆으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번역가 '정영목'이 보이고, 눈을 조금 밑으로 돌려보면 최신의 과학 담론을 대중에게 소개해온 '김동광', '이한음'이 보인다.

다른 저자 22명도 따로 언급하지 못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쟁쟁한 이들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과학을 놓고 이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이다. 온갖 영역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의 과학 이야기는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과학을 놓고 앞으로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그 밑그림까지 제시한다.

소설가와 과학자, '과학'을 말하다

▲ <과학이 나를 부른다>(강신주 외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혹하는 이야기 몇 개를 훔쳐보자. 10대 때 천문학자가 되는 삶의 목표였던 소설가 김연수는 지금 "한국 문학에 가장 필요한 것이 과학적인 사고"라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글쓰기란 "가장 구체적인 것들을 상정하고 그것들이 합리적으로 서로 간섭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보편적 인식을 끌어내는 과정", 즉 "과학적인 것"이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늘 양쪽 주머니에 20킬로그램짜리 추를 넣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어떨까?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때가 많을 텐데, 이 사람들의 성격은 어떨까? (…) 그 소설에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없고, 다만 공상에서 시작했으니 계속 공상적인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뿐이었다."

(…)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적으로 묘사해야만 한다는 점, 디테일에서 출발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디테일 없는 상상력은 결국 공상에 그치고 만다. (…) 왜 사람들은 소설을 쓰는 일이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일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 과학이 아니라면 온갖 억측과 강변을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소설가가 이렇게 과학을 요청할 때, 과학자는 어떨까? 과학자 정재승은 과학기술의 시대에 '낭만'을 말한다. 정재승은 2004년 <테크놀로지리뷰>에 실렸던 '기술의 진보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10가지 기술'을 소개하면서 자신만의 리스트를 소개한다. 자전거, 빨래줄, 피아노·바이올린과 같은 악기 등….

"내 리스트에 들어 있는 기술들은 모두가 기술적 우위와 전혀 상관없이 이제는 우리의 '문화'가 된 것들이다. (…) 수많은 기술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는 21세기, 우리 삶을 더욱 인간적이고 풍요롭게 해주는 기술들만은 꾸준히 우리 곁에 남아서 과학의 시대에도 낭만이 있음을 보여 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런 정재승의 바람은, 디지털카메라와의 만났다 결별한 얘기를 통해서 과학기술시대의 삶의 변화를 성찰한 김병익의 글과 공명한다. 인문학, 과학의 두 영역에서 활동해온 한 세대 이상 차이가 나는 두 지식인이 말하는 '과학기술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비교하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즐거움이다.

왜 과학 비평은 없을까?

과학과 인문학 양쪽의 지식인이 경청해야 할 묵직한 주장도 눈에 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김동광은 "문학 비평은 있는데 왜 '과학 비평(science criticism)'은 없을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명백히 '과학 비평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진 김동광은 철학자 돈 아이디, 랭던 위너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문학이나 미술에 대한 비평이 아무리 혹독해도 사람들은 그 비평가를 반문학적, 반미술적이라고 비난하지 않으며 이러한 비평이 문학이나 미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한 표현이라고 이해하지만, 유독 과학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사고방식이 적용된다. (…) 황우석 사태는 (…) 우리 사회에서 과학 비평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여실히 보여 주었다.

(…50% 설명, 40% 칭찬, 10% 문제 제기 식의) 황금 비율을 어기는 과학 비평에는 대개 '남의 뒷다리 잡기 좋아하는 공론', '무한 경쟁 시대에 무슨 한가한 소리'라는 볼멘 불평이 나오다가 그래도 멈추지 않으면 드디어 '반과학', '매국노'라는 무시무시한 낙인찍기가 시작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낙인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김동광은 과학자 사회 내부와 외부 두 방향에서 과학 비평이 활발하게 이뤄질수록 "우리의 존재 조건이자 삶의 기반인 과학기술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관점의 다양성은 오늘날 과학 기술에 들어 있는 온갖 편향들을 바로잡고,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마련할 수 있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의 과학은 스스로 비평의 대상으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비평가들도 적극적으로 과학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장의 소리를 듣지 않고, 현장을 찾지 않은 한 설득력 있는 비평이 나오지 못할 것임은 당연하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과학자 사회 내부의 비평가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 과학자들이 스스로를 비평하지 못하면 외부 비평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다."

이런 김동광의 주장 역시 이 책에 실린 철학자 김용석의 글과 공명한다. 김용석은 최초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탈레스가 정기적으로 우물에 내려가서 하늘을 관찰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과학이 왜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사회 밖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불편을 무릅쓰고 우물 밑바닥에 내려가는 일은 열렬한 탐구 정신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우물에서 다시 나오려면 하인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일화는, 우물 안으로 내려가고 또 그곳에서 나오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탐구에 몰두하는 학자의 작업은 사회의 이해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은유한다."

두 문화 간 소통의 현주소

30편 한 편, 한 편이 읽는 즐거움을 듬뿍 주는 이 책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데는 국제 과학 연구소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지원과 도서평론가 이권우의 수고가 큰 역할을 했다. APCTP는 웹진 <크로스로드>에 이들의 글이 정기적으로 실릴 수 있는 장을 마련했고, 이권우는 필자를 선정하고 결코 청탁이 쉽지 않았을 이들의 글을 다 모았다.

한국에서 두 문화 간의 소통이 어떻게 진행 중인지 그 현주소를 확인하려는 이들에게 이 책은 최고의 선물이다. 이 책이 던진 화두를 확장하는 일, 또 이 책의 공백을 메우는 일은 이 책의 저자 30인과 이런 기획의 다음 필자가 될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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