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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자동차 잘못 만들어서 이렇게 된 겁니까?"

[美行] '강제 휴업' '희망 퇴직' 쌍용차 비정규직

이 기사는 "미행(美行) :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미디어 행동 네트워크"의 첫 번째 프로젝트인 지역 순회 사업, '미디어 게릴라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나다'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미행'은 블로거, 만화가, 노동자, 작가 등 다양한 미디어 생산자들이 함께 모여 비정규 노동의 현실을 고민하는 프로젝트 팀이다. 미행의 지역 순회 사업은 진보신당과 함께 진행된다. <편집자>

나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걸고 자본과 싸우고 있는 사업장들을 지금이라도 당장 십여 군데는 주워섬길 수 있다. 그 중에는 뉴스를 통해 들었을 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현장들도 있다.

사업장들을 기웃거리다 보면 "어디어디에서는 또 누가 싸우고 있던데요?" "그쪽이랑 연대해서 투쟁하려는 사업장이 또 생겼어요" 이런 말들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국에 널린 투쟁 사업장들은 십여 군데는커녕 내가 두 손 두 발로 다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투쟁 사업장들의 이름은 내 머릿속에 낱말 하나씩으로 입력되지 않는다. 기륭전자, 코스콤, KTX, 강남성모병원, 신용보증기금, 재능교육, 콜트/콜텍, 하이텍, GM대우, 대우자판, 동희오토, 이젠텍….

투쟁 사업장 한 곳 한 곳의 이름들은 내겐 단순한 낱말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용역 깡패들에게 얻어맞아 생긴 피멍이기도 하고, 추운 날씨에 천막농성장에서 자야 하는 살 떨리는 추위이기도 하고, 관리자들이 손전화 문자로 보내는 강제 휴직 협박이기도 하고, 잔뜩 밀린 공과금 고지서이기도 하고, 파업이고 뭐고 그냥 콱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어느 날 저녁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살아 봐야지 않겠느냐며 따듯이 손잡아 주는 동지이기도 하다.

기륭전자를 기억한다는 것은 기륭전자라는 네 글자를 기억한다는 것이 아니라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겪어 왔을,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을 모든 것들을 기억한다는 뜻이다. 기륭전자뿐만 아니라 어디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는 투쟁 사업장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보는 것이 쉽지 않다. 노동자들이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기간제 고용에서 파견직으로, 파견직에서 무단 해고로 자꾸만 벼랑 끝에 몰리는 과정은 비슷비슷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노동자들의 상처와 슬픔도 저마다 다 다르다. 다른 이들의 슬픔을 기억하는 것에도 용량 한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슬픔이란 것이 원래 암모니아처럼 독한 것인지 내 마음은 잘 견디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는 슬픈 일들이 너무나 많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이 요새 다루어 주고 있는 몇 안 되는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들 중 하나인 평택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노조를 만들고 조합원을 받기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된 사업장이다.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매일 아침 7시마다 벌어지는 출근투쟁에 '미디어 행동 네트워크(미행)' 사람들과 함께 도착한 것은 지난 14일 아침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 허연 입김이 공중으로 마구 흩어졌다. 밖에서 대충 발돋움을 해 들여다보기만 해도 안쪽은 자동차 공장답게 엄청나게 넓어 보였다. 조합원들은 정문 앞에 한 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고 몇 명은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미행 팀은 저마다 비디오 카메라나 수첩을 꺼내 들고 취재를 시작했다. 정문 입구 앞에서 뭔가 이상한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있던 덩치 큰 사람이 갑자기 비디오 카메라를 향해 뭐라 거칠게 투덜거렸다. 찍지 말라고 했다. 나는 얼른 가서 그 사람에게 유인물 한 부를 받아 보았다. 유인물 맨 앞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 그래도 우리가 파이팅 합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측 관리자라고 했다. 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이 나누어 주는 유인물을 받아 보니 맨 앞에 '비정규직 구조조정은 재매각과 정규직 정리해고를 위한 예행연습?'이라고 쓰여 있었다. 사측이 관리자들까지 이른 아침부터 내보내 자기네 입장만을 대변하는 유인물을 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인물은 둘째 문제고, 눈엣가시인 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이 아침마다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감시하기 위함이 아닐까?

집회 중간에는 쌍용자동차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평택 송탄 공단에 있는 이젠텍 노조 조합원들도 나와 발언을 했다. 지난 8월, 3년을 싸워 온 끝에 파업 투쟁을 승리로 마무리한 사업장인 이젠텍은 냉장고와 자동차, 에어컨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부품 전문 업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이젠텍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싸울 때마다 몸을 아끼지 않고 함께 해 주었다고 한다. 이제는 이젠텍 노동자들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싸움에 와서 연대 발언을 하고 있었다.

▲ 이번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단체로 가입하면서까지 뭉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쌍용자동차의 일방적인 무더기 혹은 싹쓸이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아무 이유 없이 자르겠다는 것이었다. ⓒ미행

집회가 끝나고 조합원들과 미행 취재진은 함께 아침을 먹으러 갔다. 밥을 다 먹으니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 나가 식당이 조용해졌다. 나와 취재진은 노동자들 몇 분과 함께 식당 한 구석에서 차분히 인터뷰를 진행했다.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10월 22일 비정규직 노조를 설립하고 다음날 23일 중식(점심식사) 때 설립보고대회를 열었다. 지난 2006년 노동자들 천여 명이 해고된 이후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은 계속 있어 왔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실제로 비정규지회가 만들어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번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단체로 가입하면서까지 뭉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쌍용자동차의 일방적인 무더기 혹은 싹쓸이 구조조정 때문이었다.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아무 이유 없이 자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곁에서 조합원들의 말을 듣다가 쌍용자동차가 온전히 중국 상하이 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지난 2004년에 상하이 자본은 1조 2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조건으로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다고 했다. 자동차 판매도 활성화시키고 공장 부지도 확장할 것이며 공장들도 신설하겠다는 장밋빛 약속뿐이었다. 그러나 2005년에서 2007년에 이르는 동안 그 약속은 하나도 지켜진 것이 없다고 했다. 최신 자동차 제조 기술만 중국으로 유출되기만 했을 뿐 상하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강제 휴업과 희망 퇴직, 무더기 구조조정이었다. 1조 2000억 원이든 1200원이든 투자는 없었다. 상하이 자본에 팔아 넘기기 전 쌍용자동차는 일 년에 자동차 20만 대 정도를 팔았지만 지금은 고작 8만 대에서 9만 대 정도밖에 팔지 못한다고 했다.

상하이 자본에 쌍용자동차를 매각할 때 반대가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우격다짐으로 꼬드긴 논리가 참 우스웠다.

"상하이는 중국 자본이고 중국 자본은 다 나라 소유니까 중국이라는 나라 전체에 차를 팔아먹을 수 있다고, 그 많은 시장에 다 우리 소유라고 꼬신 거에요. 물론 제대로 판로만 열었다면 30만~40만대는 팔았겠죠. 하지만 실제로 판 건 몇 백 대밖에 안 돼요."

한 조합원은 중국 자본에 매각된 후 점점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자 사측이 그 모든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잘못 만들어서 이렇게 된 겁니까? 아니잖아요."

우리는 자리를 옮겨 다른 곳에서 계속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평택 비정규 노동자 센터 사무실로 갔다. 나는 복기성 쌍용자동차 비정규지회 사무장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들었다.

매각 이후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쌍용자동차는 마침내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잘라 위기를 극복하기로 작정하고 지난 10월 27일 정규직 노조와 협상 끝에 '전환 배치'라는 것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전환 배치(혹은 순환 배치)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자동차 공장에는 생산 라인이라는 것이 있고 정규직이 일하는 생산 라인과 비정규직이 일하는 생산 라인이 따로 있다. 비정규직을 해고해서 생기는 빈자리에 정규직 노동자들을 뚝 떼어 와 투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규직 생산 라인은 원래 일하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생산 라인으로 가 버린 그대로, 그 인원으로 돌아간다.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러면 노동 강도가 더 세지는 거 아닌가요?"

복기성 사무장이 설명해 주었다.

"그건 아니에요. 정규직 라인을 인원에 맞게 축소했어요. 그리고 비정규직 라인에는 원래 비정규직이 일하던 인원보다 더 많은 정규직 인원을 투입했어요. 안 하던 일을 갑자기 하게 되는 거니까 아무래도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겠지요."

쌍용자동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략 1만 명. 그 중 정규직 조합원은 5000여 명이고 비정규직은 640여 명이라 했다. 전환 배치를 통해 강제 휴업을 하게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총 347명. 10월 27일자 노사 합의서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금번 전환 배치로 발생하는 휴업 인원에 대해서는 단체협약에 의거한 휴업 급여를 지급한다.'
'사내 협력업체의 경우 계약기간 내 업체 직원들의 신분을 유지하며 휴업기간 내에는 어떠한 경우라도 강제적인 인원정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후인 11월 4일 번복돼 나온 노사 합의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잉여인원에 대해서는 2008년 11월 5일부로 휴업을 실시한다.'
'퇴직을 희망하는 자에 한하여 통상급 120일분(상여포함)을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회장이 10월부터 고용 보장을 수없이 약속했어요. 희망퇴직 절대 없다, 총 고용 보장 지킨다, 정말 수도 없이 약속했는데 노사 합의서가 나오면서 약속이 뒤집어진 거죠."


그러면서 복기성 사무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관리자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정규직과 같이 휴업 기간이 2009년 2월 15일까지이고 아직 희망퇴직의 기회가 있습니다. 심사숙고하셔서 연락바랍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럼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는 아예 교섭 자체를 안 하려는 건가요?"
"아직까지는 비정규직지회와 대화나 교섭이 전혀 없었어요. 한 마디로 '개무시'를 하는 거죠. 종이 한 장(노사 합의서)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말 한 마디 없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어떠한 언급도 없이 사측은 강제 휴업과 전환 배치를 밀어 붙인 것이었고 그것도 모자라 '희망퇴직'까지 시키기 위해 관리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개인 면담까지 한다고 했다. 희 퇴직 '위로금'은 500만 원. 11월 4일 노사 합의서가 수정 발표된 직후에 나온 쌍용자동차 비정규지회 투쟁속보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희망퇴직은 절망 퇴직이다.'

"상하이 자본이 강제 휴업만으로는 비정규직 노조를 없앨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 비정규직 노조를 깨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희망퇴직입니다. 곧 정규직과 사무직 노동자들에게까지 칼날이 갈 것입니다."

▲ "상하이 자본이 강제 휴업만으로는 비정규직 노조를 없앨 수 없다고 판단한 거죠. 비정규직 노조를 깨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희망퇴직입니다. 곧 정규직과 사무직 노동자들에게까지 칼날이 갈 것입니다." ⓒ미행
일방적인 강제 휴업 때문에 회사에 나오지 않게 된 노동자들은 급여의 70%만을 받는다고 했지만 그 액수는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희망퇴직을 강요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200여 명 정도 된다고 했다. 그럼 나머지는 강제 휴업을 받아들인 것일까? 강제 휴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조금 어리석은 질문을 슬쩍 던져 보았다.

"아무래도 서울 지역에서 투쟁하는 사업장들이 언론에 보도가 더 많이 되잖아요. 콜트, 콜텍이랑 하이텍 노동자들도 상경 투쟁을 했구요. 서울로 올라가셔서 투쟁을 해 나가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단호한 답변이 곧바로 돌아왔다.

"투쟁은 현장입니다. 오히려 중앙 중심의 틀을 깨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임원들이 지방으로 내려와서 지방 사업장 동지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저희는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고 있어요. 매일 중식 선전전도 하고 있구요."

조합원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라 했다.

"정규직 평균 나이가 38살이거든요. 근데 비정규직은 20대도 있고 30대 40대 50대도 있긴 한데 평균 나이가 조금 더 많아요. 결혼 안 한 조합원들을 제외하면 아무래도 다들 가장이니까 싸움을 해 가기가 쉽지는 않죠. 주변에서도 투쟁이 1년 2년 이렇게 가다 보면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아이 둘과 아내와 함께 단출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복기성 사무장은 한숨을 쉬었다. 아내가 아이를 낳은 지 보름 만에 강제 휴업을 당한 동료 조합원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저희는 어떻게 보면 편한 투쟁이죠. 다른 사업장 보면 얼마나 힘들어요. 밖에 추운데 천막 치고 농성하고…. 저희는 현장에 들어갈 수도 있어요."

미행 팀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나는 복기성 사무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그곳을 나왔다.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다른 사업장들과 마찬가지로 쌍용자동차 사측도 노동자들을 인간이 아니라 쓰고 버리는 일회용 부품으로 보고 있다.

나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정세에도 밝지 못해 왜 하필이면 자동차 산업 쪽에서 무더기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지 잘 설명할 수가 없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어디에서 일하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일터에서 거리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멀쩡히 온몸에 피가 돌고 있는 인간이기에 부품 취급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돈 많은 이들에게는 부품 몇 개 갈아 끼우는 일이겠지만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자야 하는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더 이상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2년 이상 고용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정규직법 때문에 잘리는 노동자들도 있고 쌍용자동차처럼 단순히 회사 임원들과 해외 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한 희생양으로 잘리는 노동자들도 있다. 그 모든 노동자들은 사실 하나로 엮여야 한다. 나는 원래 인간이란 두부 자르듯 간단히 두 부류로 나누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노동자 아니면 자본가라고 세상 사람들을 분류하기엔 세상에는 너무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회사, 혹은 일터, 혹은 공장, 혹은 생산 수단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있는 돈 많은 이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을 가진 노동자들에게 정말 한결 같은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냥 나가라는 것이다. 법대로 할 테니 나가라는 것이다. 위로금 줄 테니 나가라는 것이다. 구조조정이 이 시대의 추세니 나가라는 것이다. 나가서 막노동을 하든 구걸을 하든 알 바 아니니 일단은 나가라는 것이다.

그 모든 돈 많은 이들도 사실 하나로 엮여야 한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해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굳게 연대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서로가 서로의 충실한 동지가 되어 있다. 노조를 혐오하고 비정규직을 멋대로 부려먹고 싶어 한다는 공감대를 지닌 그들은 똑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불쌍한 환자들이다.

돈 많은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로 엮여야 한다고 위에서 말했지만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뭉쳐 왔다. 비정규직이 천만 명을 넘고, 열심히 토익 책을 공부하든 학점을 따든 성형수술을 하든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면, 그리고 그 모든 원인이 '천민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라고 흔히 부르는 어떤 추상적인 커다란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정부의 정책들, 눈으로 볼 수 있는 권력자들,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고용주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이 싸움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뜨겁게 불이 붙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싸움인 듯 보이지만 머지않아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 싸움에 더 많이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도 4년씩이나 남았기 때문이며, 돈 많은 이들의 최종 목표는 결국 노동자들 전부를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올 때까지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현장 부재 증명을 날마다 하고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현장에 가야 하는데, 암모니아처럼 독한 슬픔들은 내 것인지 다른 이들의 것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채 내 속에 가득 들어차 있다. 삶이 힘들어 슬퍼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투쟁 사업장 이름 하나를 떠올리는 것조차 내겐 쉽지 않다. 인터넷 뉴스를 뒤적이다 보면 이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나의 알리바이는 그 누구보다 확실하다고. 그때 나는 거기에 없었다고.

곧 있으면 노조를 설립한지 한 달째가 되는 쌍용자동차 비정규지회 노동자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그들은 사람이고 사람은 살아있는 한 살아야 한다. 그들은 살기 위해 싸우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당한 해고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실 조건 반사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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