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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가 무서운 그들은 누구인가"

[홍성태의 '세상 읽기'] 미네르바를 위하여

미네르바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의 로마식 이름이다. 독일 철학의 근대적 집성자인 게오르크 헤겔은 1821년에 <법철학>을 발간했다. 30년쯤 뒤에 마르크스가 통렬하고 신랄하게 비판한 이 보수적인 책의 서문에서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야 날아오른다"고 썼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지혜를 뜻하고 '황혼'은 현실의 사태가 진행되어 결말에 이른 것을 뜻한다. 일이 상당히 진행되어야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서양 철학을 공부한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이 유명한 문구를 접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문구를 통해 미네르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부엉이는 미네르바의 새로서 지혜를 상징한다. 1982년에 개봉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인조인간을 만든 타이렐 회장의 거실에 한 눈이 먼 부엉이가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부엉이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잃고 불완전한 지식으로 인조인간을 만들어서 신의 지위에 오르고자 한 인간을 상징한다.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은 기껏해야 한쪽 눈이 먼 부엉이를 옆에 둘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네르바는 아버지 주피터의 머리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총명해서 지혜의 여신이 되었으며, 그의 부엉이는 두 눈이 온전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밝아서 밤에도 온갖 사물을 환히 볼 수 있다. 이렇듯 미네르바와 그녀의 부엉이는 혼란에 빠진 인간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존재를 상징한다.

이즈음 이 나라에서는 그야말로 '미네르바 신드롬'이 불고 있다. 잘 알다시피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올리는 현재의 경제 위기에 관한 글들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글의 분석과 통찰에 그야말로 전율하고 있다. 나도 그렇다. 그의 글들은 은밀히 감춰진 행간을 드러내 보여주고,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분명히 밝혀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들에서 신화의 미네르바가 인간의 무지를 깨우치고 이 세계의 진실을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미네르바의 글들을 읽으면, 제 아무리 비단으로 덮은들 똥은 결코 숨길 수 없으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 만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미네르바의 글들에 전율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전율한다고 해도 그 이유가 같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글들이 밝히는 진실을 깨닫고 전율하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의 글들이 진실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그들은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해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이다. 헤겔은 그의 <법철학>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또 다른 유명한 문구를 남겼다. 그러나 현실이 과연 이성적인 것인가? 온갖 투기와 부패, 그리고 거짓이 횡행하는 우리의 현실이 과연 이성적인 것인가? 이러한 헤겔의 주장은 실상 나폴레옹 이후 독일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논리로 큰 비판을 받았다. 지금 우리의 미네르바를 색출하고 규제하기 위해 애쓰는 이명박 정권의 행태를 보노라면, 이 정권이 헤겔의 잘못된 주장을 되뇌며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경제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R의 위기', 'D의 위기', 'J의 위기'와 같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공포영화의 제목과 같은 말들이 계속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 말들이 가리키는 현실은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무시무시한 위기를 뜻한다. 이 말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경제 위기에 시달리게 되고, 이 나라가 더욱 더 심각한 난민사회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한미 통화 스왑 협약을 체결하고 이제 경제 위기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때 우리의 미네르바는 경제 위기는 더욱 더 깊어지고 있으며, 한미 통화 스왑 따위로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권은 미네르바와 같은 사람들이 불안 심리를 퍼트려서 경제위기를 더욱 악화한다며 미네르바 색출 작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강부자'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강행했다.

참으로 한심하고 위험하다. 문제는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와 그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잘못된 대응이 아닌가? 누군가 이 문제를 정확히 짚어서 널리 알렸다면, 그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정상적인 정권의 도리가 아닌가? 이명박 정권은 가장 기본적인 도리마저 저버렸다. 이 때문에 문제는 더욱 더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미네르바의 예측이 더욱 더 명확하게 들어맞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한편으로 미국에서 달러를 빌리고, 다른 한편으로 너무나 후진적인 토건국가 정책으로 현재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시 1500원을 넘어 버린 환율은 미국에서 달러를 빌리는 정책이 별 실효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 바로 '강부자'를 위한 정책인 토건국가 정책은 이미 망국적 상태에 이른 개발과 투기와 부패의 문제를 극단화할 것이다.

▲ "1997년의 경제 위기가 잘 보여주었듯이 '강부자'는 경제 위기에서 더 큰 부를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을 비롯한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경제 위기가 심화될수록 '강부자'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프레시안

나는 미네르바가 세 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첫째, 미네르바는 현재의 경제 위기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잘 가르쳐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의 경제 위기는 경기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며, 또한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는 현재의 경제 위기를 크고 긴 관점에서 파악하고 우리의 문제를 바로잡는데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토건국가와 금융 거품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망국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한국 사회의 전면적인 개혁을 촉구한다.

둘째, 미네르바는 이명박 정권을 비롯한 보수 세력의 문제에 대해 잘 가르쳐주었다. 어디를 막론하고 보수 세력은 자기의 사익을 보수라는 말로 치장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식민과 독재의 역사에서 강력한 기득권을 누렸던 한국의 보수 세력은 더욱 더 그렇다.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해 이명박 정권이 계속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그들에게는 국가의 이익보다 '강부자'의 이익이 우선이다. 그들은 종합부동산세가 부자와 서민의 문제가 아니라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그들은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 사람이 분명 보수 세력의 일원이라고 해도, '빨갱이'라는 처벌적 규정을 서슴없이 들이댄다. 그들은 사리와 이치를 제대로 따지지 못하는 만성적 '빨갱이병' 환자들이다.

셋째, 미네르바는 시민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미네르바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큰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시민들에게 시종 배우라고, 그래야 속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실 민주주의는 각성한 시민을 전제로 성립한다. 주권자인 시민이 무지하고 무책임하다면 민주주의는 이른바 '중우정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은 지역도서관이 민주주의의 초석이라고 설파했던 것이다. 이 정권의 문제는 이미 '747 공약'과 '대운하 공약'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기대를 품고 이 공약을 지지했다. 그 막연한 기대의 바탕에는 현실에 대한 무지가 놓여 있었다. 민주주의에서는 주권자인 시민의 각성이 결국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명박 정권은 진실을 인정하고 잘못을 시정하기보다 '강부자'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정책을 강행하는 길을 택한 것 같다. 1997년의 경제 위기가 잘 보여주었듯이 '강부자'는 경제 위기에서 더 큰 부를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을 비롯한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경제 위기가 심화될수록 '강부자'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관변단체들은 또 다시 뭘 모으자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짓은 문제를 더욱 더 악화시킬 뿐이다. 후진적인 토건국가와 금융 거품을 해소하고 한국 사회의 질적 성숙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조직과 재정구조부터 진정한 선진국의 형태로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주권자인 시민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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