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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스트 지지', 그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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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스트 지지', 그 차이는?"

[오바마 시대 vs 이명박 시대]〈2〉 여성정책, 닮은 게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 꼴"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오바마 당선인의 등장은 미국의 변화의 신호탄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불확실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던 부시 대통령에 맞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연 오바마의 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건강과대안'과 공동으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보건의료, 여성, 환경 등 사회정책을 중심으로 오바마 개혁의 비전과 한계를 짚어본다. 더 나아가 이런 오바마 개혁이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사회정책과 얼마나 다른지 살펴볼 것이다.

'건강과대안'(대표 조홍준 울산의대 교수)은 시민과 함께 건강과 관련된 온갖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지난 10월 18일 출범한 싱크탱크이다. 이들은 보건의료를 넘어 환경, 노동 안전, 사회적 약자의 건강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관련 기사 : "건강하고 싶다"…'촛불' 열망 모은 '건강과대안' 출범)

'오바마와 나는 닮은 꼴'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 혹시나 싶어 여성 정책에 대한 두 사람의 정책 비교에 앞서 검색창에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넣어 보았다.

이 대통령은 "나는 페미니스트, 그러나…" 라는 인터뷰 기사가 떴고 오바마는 "페미니스트 100명 오바마 지지 선언"이라는 내용이 떴다. 이런 맥락이었을까? 한국의 어느 페미니스트는 오바마 당선 소식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그 눈물이 당혹스러웠다. 내겐 오바마가 '인종'의 장벽을 넘었다는 사실보다 미국이 여전히 '제국'이라는 현실이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내는 여성정책의 변화의 목소리는 과연 '다른 세상'으로의 변화와 맞물릴 수 있을까? 그런 저런 생각을 할 때 한반도의 대통령이 '닮은 꼴'을 내세웠다. 그래서 비교해 보기로 했다. 정말 그럴까 싶은 생각에.

'자칭 페미니스트' VS '페미니스트' 가 지지하는 인물의 차이

우선 '페미니스트' 이명박 대통령의 면모를 과시한 2007년 5월 후보 시절 인터뷰 기사를 한번 보자 (이 기사는 이제 웬만해서는 원문을 찾기 어렵다. 왜 그럴까?) 이명박 후보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동성애는 기본적으로 반대하고, 근본적으로 낙태도 반대한다". 동성애가 최소한 인구의 4~6%라는 것이 이미 정설이고 낙태가 태어나는 아이보다 많은 사회에서 참 '근본주의자'다운 입장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낙태를 반대하는 근본주의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불가피한 예외조항으로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하는 경우"를 언급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자신의 '신념'까지 드러내는 용기마저 보여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명박이 말하는 '닮은 꼴 오바마'는 이에 대한 입장이 어떨까? 뉴욕의 100명이 넘는 여성운동 리더들이 지지 선언을 한 오바마는 동성 간 결혼은 반대하지만, 동성 커플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을 지지하고 이를 막는 법안을 반대한다. 낙태권과 관련해서도 오바마는 우선적으로 여성의 재생산권과 선택권을 지지한다. 오바마는 LGBT(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 그룹에서도 지지 선언을 받았다. 2007년 당시 이명박 후보에 대해 성소수자, 장애인 단체 등이 사과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것과는 정말이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광경이다.

여성과 건강 불평등의 쟁점화

▲ 2008년 미국 대선 때, 100이 넘는 미국의 여성운동 리더들이 오바마를 지지했다. ⓒ프레시안
여성과 건강불평등 문제에 있어서의 이명박과 오바마의 입장은 어떨까?

이대통령은 여성가족부에서 예산의 90% 이상과 인력의 절반 이상을 보건복지가족부로 이관하고 여성부를 1실 2국으로 축소 개편해 여성부를 무력화시켰다. 반면 오바마는 보건후생부 내 '최상의 여성 건강권 센터'를 유지하기 위한 기금 지원을 역설하면서 "젠더와 건강 불평등" 연구에 관한 지속적 지원을 표명하고 이를 유지 및 지지하겠다고 했다. 일단 오바마는 젠더와 건강 불평등이 중요 사안이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오바마는 의원 시절부터 구체적으로 난소암 발병률을 억제하기 위한 법안 제정에서부터 유방암 조기 발견을 위한 방사선 검사의 보험 적용 확대에 이르기까지 제법 세세한 사안에 대한 입안정책을 지지해왔다.

반면 후보 시절 이 대통령의 유일한 여성 관련 공약은 이른바 "맘 앤드 베이비(Mom & Baby) 프로젝트" 즉 모자 지원 정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불임부부의 불임 치료를 2회까지 전액 지원, 임신 산전 관리 비용 전액 지원, 소득 50% 이하 제왕절개 비용 100% 지원, 5세 이하 아동 의료비 지원, 의무 보육 실시 등을 약속했다. 공약의 현실성 여부는 제쳐두고라도, 유일한 여성 관련 공약이 마치 1970년대에 여성을 '부녀'로 국한하여 아이를 낳는 존재로만 환원시켜 대상화한 것은, 오바마와 닮았다기보다는 박정희와 오히려 닮은꼴이다. 당시, 인구 억제 정책이라는 이름하에 국가가 강제로 여성들에게 피임과 낙태를 강요했던 사실은 지금도 전 세계 여성학계에 야만적인 역사적 기억으로 남아있다.

게다가 국내 제왕절개 비율은 OECD 평균이 22.4%인데 비해 한국은 36.6%이고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수준이 5~15%라는 점을 보면 제왕절개 비용 100% 지원 정책은 여성의 건강을 지키려는 정책이라기보다는 출산율 제고 정책에 가깝다.

노동의 여성화와 규제 완화의 모순

여성의 노동 조건에 대해 두 정부의 입장을 한번 비교해 보자.

한국 여성의 임금 수준은 남성 임금 대비 66%에 불과하다. 물론 미국도 이런 임금 차별 상황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미국 여성의 임금 수준은 남성 임금 대비 77%에 불과한 상황이니 말이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여성 저임금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겠다며, 시간당 최저임금도 2011년까지 최저 9.50달러로 인상하여 전일제 노동자들의 생계 수준이 확보되도록 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동일가치노동 동일 임금' 지급에 대한 벌칙 규정 중 3년 이하의 징역 규정을 '삭제'하는 조처와 더불어 각종 여성 고용 평등과 관련된 부분의 규제 완화를 강조하고 있다.

덧붙여 오바마는 저소득 노동자 계층을 위해 직장 전환과 직업 경로 이동에서의 프로그램 지원을 위한 10억 달러를 약속하고 있다. 노동의 여성화로 인한 빈곤의 여성화와 맞물리는 '저임금화 경향'을 분명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 대통령은 대졸여성을 위한 맞춤형 직업 훈련 및 경력 개발에 집중하는 식으로 '비즈니스 프랜들리'형 여성 구색 맞추기의 플랜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일과 가정 양립 정책, 이주여성 정책

개인적으로는 일과 가정의 '양립'보다는 재구조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두 대통령 모두 그 수준은 안 되는 것 같으니 '정책'의 차원에서 '양립'을 위해 기울이는 두 정부의 플랜을 마지막으로 비교해 보자.

먼저 아동 보육과 출산·육아 지원 등에 관련되는 지출 규모는 GDP대비 한국 0.1%, 미국 0.4%로 두 나라 모두 OECD 평균 2.1%의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오마바 역시 방과 후 지원 정책에 100억 달러를 투자해 0~5세(zero to five)계획을 실행하겠다는 공약을 내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개혁 조처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경우는 이 부분에 대한 예산 편성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두 나라 모두 조세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과 GDP 지출 규모를 바꾸어내지 못하는 한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덧붙여 한국의 여성 이주 노동자나 국제 결혼 여성들은 일차적으로 국내법 적용을 통한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주제 자체로부터 소외받고 있다. 오바마 진영은 일차적으로 합법 이주민들이 가족과 일을 양립하는 방안은 모색하겠다고는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미등록 이주민을 고용하는 고용주에 대한 단속 강화나 국경 강화 정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주여성이나 상당수의 이주 가사 노동자들에게 이런 정책이 현실화될지는 의심스럽다.

페미니스트인 나는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지금 오바마의 여성정책 플랜과 그 실현에 별로 감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지금 눈물을 흘리기보다 앞으로 5년간 계속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는 열망으로 오마바의 정책 실현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닮은꼴'이라 외치는 이명박 정부가 조금이라도 뒷꽁무니를 쫒아가면서 제발이지 여성 정책으로는 바닥을 기고 있는 이 나라에서 '또 다른 세상의 가능성' 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길 바란다.

그러나 동성애에 혐오증을 가지고 있고 불법 낙태로 인한 여성 건강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낙태를 계속 불법으로 낙인찍으며 "인종"에 대한 차별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그런 길로 나아갈 희망이 보이는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기대를 갖기가 어렵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내가 바라는 '또 다른 세상'은 대통령이 중심이 되어 바꾸는 세상은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다른 세상을 향한 변화는 대통령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나 변화는 아래로부터 즉 착취 받는 대중, 억압받는 여성들의 저항으로부터 만들어져 왔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 시대에서도 진정한 변화는 풀뿌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심지어 이명박 시대에도 우리에게 희망은 여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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