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 관련법 처리가 진통 끝에 4월 처리로 가닥을 미뤄졌다. 여야와 노정은 4월 임시국회에 앞서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3월 한 달간 이해당사자들이 폭넓은 대화를 통해 이견을 모아 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관련 전문가들은 구체적 프로그램 없이 '대화와 타협'만 운운하는 것은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우선 노정 혹은 여야간 내용에 대한 이견차가 분명한 만큼 실질적 진전을 위해서는 대화의 출발점부터 정확히 짚을 것을 지적하고 있다.
***김성희 비정규센터 소장, "정부, 비정규 관련법 효과 솔직히 털어놓아야"**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무엇보다 정부가 법안이 미칠 효과에서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비정규 관련법을 두고 비정규직을 대폭 '확산'시킬 것(노동계, 민주노동당) 혹은 비정규직을 '보호'할 것(정부, 열린우리당)으로 크게 이견을 보이고 있다"며 "정부·여당은 무조건 정부법안이 비정규직을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 지표로 증명해 보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비정규 관련법이 도입되면 비정규직이 '보호' 될 것 이라고 '강변'할 것이 아니라 실증적인 지표 제시를 통해 설득을 하라는 주장이다.
그는 보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경우 파견법을 도입한 지 3년 만에 파견노동자가 3배이상 증가했다"며 "노동계는 이를 근거로 정부법안이 원안 통과될 경우 비정규직이 대량 확산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속시원한 답변을 제출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파견법 개정안이 도입되면, 단기적으로는 파견직이 다소 늘지만 차츰 차별시정장치에 의해 큰 폭으로 확대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제출하고 있다.
그는 이어 "비정규직 보호장치라고 주장하는 차별시정장치 역시, 도입이 되면 어느 정도 차별을 완화하는 지에 대한 객관적 지표를 제출해야 한다"며 "구체적·정확한 지표를 제출하는 것이 힘들다면, 대략적인 설명이라도 해야 노동계가 이해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없이 2년 동안 노사정위원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처리를 지연시킬 수 없다며 법안 처리를 강행하는 것은 비정규직 보호라는 당초 목적과는 달리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무책임하다거나 방기한 행위라는 비판을 들을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정부·여당이 노동계를 설득하기 위한 첫 단추로 법안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함께 법안 도입 이후 중·장기적으로 비정규직이 얼마나 증가하고, 어느 수준까지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노동계가 납득할 만한 수준의 객관적 지표 제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정치적 공방 넘어 내용적 접근해야"**
한편 비정규 관련법 처리의 실타래가 복잡한 이유에 대해 노·정이 법안에 대한 내용적 접근보다 정치적 공방으로 변질되는 바람에 더욱 복잡해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안 처리를 위해 정치성을 벗고 내용적인 측면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배 위원은 "비정규법안이 분명히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노동계가 총파업을 할 정도의 사안인지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이기느냐, 노동계가 이기느냐란 정치적 접근에서 벗어나 법안 내용을 중심으로 대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간의 갈등이 법안에 대한 면밀한 검토나 대안의 현실성에 검토에 앞서 감정싸움에 그쳤다는 지적인 셈이다.
그는 "기간제 법안 같은 경우 분명 비정규직을 보호하는데 기여하는 내용이 상당수 들어 있다"며 "그러나 한 쪽면만 부각시켜 법안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비정규직 보호 관련 선진적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유럽국가들의 경우도 우리 노동계가 주장하는 수준의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며 "현실적 대안 제시를 통해 정부 법안을 비판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안 처리에 앞서 공론화 노력 절실"**
한편 갈등이 확대된 것에는 정부-여당이 법안 처리에 골몰한 나머지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즉 충분한 의견 수렴 등 사전절차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것이다.
배 위원은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서 2년동안 충분한 논의 끝에 법안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노사정위에서 결국 합의에 실패해 공익위원안으로 제출된 점, 여기에 노동부가 공익위원안 마저도 비틀어버린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노동계의 반발에 이유 있음을 시인했다.
그는 이어 "더구나 민주노총의 경우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법안 내용 자체가 생경하게 느낄 수 있다"며 "이런 배경 속에서 노동계의 반발이 매우 강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결과적으로 노사정위 이외의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4월 임시국회 때까지 긴 시간이 남아 있지 않자미나 정부-여당이 법안 내용에 대해 공론화하고 사회적 설득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며 "이런 노력 없이 4월 처리를 고집한다면 또다시 노-정 갈등은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노동관련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4월 노-정 충돌을 우려하면서, 3월 한 달간 내용있는 대화와 토론이 진행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상징적 차원에서 '대화와 토론'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법안 내용에 대한 의견접근을 해 나가야 할 것을 강조했다. 노-정, 여-야가 얼마나 지혜롭게 비정규 관련법 처리에 대응할 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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