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 꼴"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오바마 당선인의 등장은 미국의 변화의 신호탄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불확실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던 부시 대통령에 맞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연 오바마의 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건강과대안'과 공동으로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보건의료, 여성, 환경 등 사회정책을 중심으로 오바마 개혁의 비전과 한계를 짚어본다. 더 나아가 이런 오바마 개혁이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사회정책과 얼마나 다른지 살펴볼 것이다. '건강과대안'(대표 조홍준 울산의대 교수)은 시민과 함께 건강과 관련된 온갖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지난 10월 18일 출범한 싱크탱크이다. 이들은 보건의료를 넘어 환경, 노동 안전, 사회적 약자의 건강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관련 기사 : "건강하고 싶다"…'촛불' 열망 모은 '건강과대안' 출범) |
오바마 의료 개혁, 과연 성공할까?
▲ 미국 의료제도의 끔찍한 현실을 고발한 영화 <식코>. 오바마는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프레시안 |
간단히만 살펴보자. 미국 의료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전 국민을 포괄하는 공공보험이 없어, 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2007년에 65세 미만 인구의 17%인 4500만 명)과 의료비 지출이 엄청나다는 것(GDP의 약 16%, OECD 평균은 9%, 한국은 6% 수준)이다. 이것이 많은 국민이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산업의 경쟁력까지 떨어뜨리는 중요한 원인이다.
미국 의료보장의 근간은 민영 의료보험이 담당하는데 국민의 약 60%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 민영보험 대부분은 기업주가 피고용자를 위해 가입해주며 개인이 가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은 공공보험인 노인의료보험(메디케어)과 저소득층 및 장애인 의료보험(메디케이드)에 가입되어 있다. 어린이를 위한 별도의 보험(SCHIP)을 주정부가 운영하고 있다.
오바마가 약속한 미국 의료 개혁의 핵심은 현재의 미국 의료보장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적용 인구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첫째, 메디케이드와 SCHIP의 대상자를 점차 확대해서 빈곤선 이상의 계층도 이 제도가 포괄하도록 하고, 둘째, 대기업은 모든 피고용인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거나 보험 구매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며(play or pay), 셋째, 보험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나 개인이 보험을 구매할 수 있도록 세금공제나 보조금을 지불한다. 특히 모든 어린이는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한다. 아울러 새로운 공공보험을 만들어 민간보험과 경쟁하도록 하고, 민간보험이 질병을 가진 가입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민간보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오바마가 제시한 의료비 절감 방안 중 눈에 띄는 것은 약제비에 관한 것으로, 약제를 외국에서 싼값에 수입하는 것을 허용하고(미국에서는 동일한 약품에 대해 캐나다보다 약값이 67% 비싸다), 공공보험에서 일반약의 사용을 장려하며, 메디케어가 제약회사와 직접 약제비를 협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부시 정부는 직접 협상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등이다. 아울러 의료기관 전산화, 질병예방의 강조, 의료서비스의 질 평과와 이에 기반을 둔 진료비 지불 등을 통해 의료비를 약 8% 정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오바마의 의료 개혁 플랜이 성공할 수 있을까? 먼저 오바마의 의료 개혁에 대한 미국 내 내부 비판을 살펴보자.
미국 내 비판은 크게 오바마 의료 개혁 내용과 개혁의 실현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그간 한국과 같은 단일보험자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전국민의료보험을 위한 의사들'(Physicians for National Health Program)은 오바마 개혁이 결국 전 국민 의료보장을 달성하지 못하는 계획이라고 주장한다. 오바마 의료개혁은 민간의료보험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규제'로 현재의 의료보장 제도의 근간으로 유지하는 것이며, 따라서 전체 의료비의 14.3%에 달하는 관리 운영비를 절감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오바마의 개혁안 속에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의료비를 절감할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고 지적한다.
사실 오바마가 제시하고 있는 전산화, 질병예방의 강화,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 등은 중장기적으로 의료비를 줄일 '가능성'은 있지만 이를 단기간에 달성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 의료비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이 없으면 피고용자에게 보험을 제공해야 하는(또는 보험 구매를 지원해야 하는) 기업주는 물론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게 보조금을 지불해야 하는 연방정부, 메디케이드나 SCHIP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주정부 모두 엄청난 재정 부담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보험적용 확대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조세정책센터(Tax Policy Center)는 오바마의 계획대로 하면 보험 미적용자는 2009년에 3400만 명(현재 추세대로 한다면 5200만 명)으로 줄어들지만 2018년이 되더라도 3300만 명(65세 미만 인구의 6%)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미보험자를 줄일 수는 있어도 전국민 의료보장을 달성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1988년 이후 오레곤, 미네소타 주등 여러 주정부에서 주 단위로 의료보험을 확대하려는 시도도 결국 의료비 증가를 해결하지 못해서 무산되었다.
오바마의 이 정도나마의 의료개혁의 실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개혁에 긍정적인 점은 첫째, 의료제도에 대한 미국 국민의 불만이 1994년 클린턴의 의료개혁이 실패한 이후 가장 높다는 점이다. 미국 국민의 70%가 미국 의료제도의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 에너지(휘발유값)에 이어 보건의료가 세 번째로 중요한 이슈였다. 둘째,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의 하나인 의사 집단 내에서 전국민의료보험에 대한 찬성이 증가하고 있다. 2007년 시행된 조사에서는 의사의 59%가 전국민의료보험 도입에 찬성했다. 셋째, 의료비 증가가 생산비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5년 지엠자동차는 종업원 1인당 1385달러를 의료비로 지불했는데, 일본의 도요타는 97달러를 지불했다. 최근 경기 악화는 생산비 절감의 절박성을 더 크게 드러낼 것이다. 이로 인해 전국민 의료보험에 찬성하는 기업가가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정부와 상하원 모두를 민주당이 차지한 정치 지형의 변화일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활성화된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의 활동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에 대한 걸림돌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개혁에 필요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이다. 오바마는 자신의 계획대로 재정 절감 방안이 성공하면 8%의 재정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가능성'일 뿐이다. 개혁의 청사진이 상세하게 제시되지 않아 재정을 정확하게 추계할 수는 없지만 향후 10년 동안 약 1.3조 달러(약 1800조 원)의 추가 재정 투여가 필요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는 정부 재정 확보와 기업가의 보험료 부담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개혁을 반대하는 이익집단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미 민간의료보험기업과 병원, 의료인단체 등은 공화당보다 민주당에 더 많은 정치 자금을 제공했다. 이들 이익집단들은 1994년 대통령 선거에 지출되는 비용을 능가하는 자금을 동원하여 결국 클린턴의 의료개혁 시도를 저지한 바 있다. 따라서 의료보험 개혁안의 국회 논의과정에서 엄청난 로비 자금과 로비력을 동원할 것이 틀림없다.
현재 상황에서 오바마 의료개혁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경제위기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아 대공황과 같은 위기에 빠진다면 현재 공약을 넘어서는 근본적 개혁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이런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현실 가능한 개혁은 아마도 의료보험에 대한 정부의 규제의 강화, 단기적으로 보험미적용자의 수 감소, 그리고 약값 절감을 위한 제약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정도가 될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전국민 의료보장을 달성하거나 의료보험과 의료산업의 영리성을 제거하는데 등의 근본적 개혁을 실현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오바마의 의료개혁 플랜은 그 한계가 뚜렷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기존 정책의 '변화'를 이유로 오바마 개혁을 자신의 개혁과 비유하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의료부문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오바마는 과도하게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정부 규제를 강화하여 민간보험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려 한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영리법인 병원과 의료채권 제도를 통한 의료산업의 영리화와 보험업법개정안을 통한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모든 규제 완화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 '실패한' 시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 정부가 그토록 닮고 싶어 하는 미국이 의료에서의 시장실패를 인정하고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려 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볼 것을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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