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 7월 극장상영 영화의 제한상영가 등급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10월에 비디오물의 등급보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후, 영등위는 지난 12일 문화콘텐츠빌딩 콘텐츠홀에서 관련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영화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의 해당 조항을 정비하기 위해 여론 수렴을 한다는 것은 명목상에 불과해 보였다. 제한상영가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을 내야 했던 첫 번째 발제자인 인하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조희문 교수의 결론은 결국 '마땅한 대안이 없음'이었다. 본지 편집장이자 동의대학교 영화과 교수인 오동진 영화전문위원만이 완전등급제를 주장했다. 이후 현 영등위 위원이기도 한 홍익대 법학과 황창근 교수가 '영등위의 공식적 입장이 아닌, 아직 연구중인 안'이라고 전제를 달긴 했지만 결국 '등급 외 등급' 신설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전개했다. 사회자로 나선 서울예술대학 방송영상과 정중헌 교수는 중립을 지키며 토론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사회자의 신분을 망각한 채 시종일관 편파적인 발언을 일삼았다.
2부에서 토론자로 나선 패널들 역시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일부에서는 오히려 검열을 강화하자는 주장을 내세워 객석을 당황스럽게 했다. 학부모 대표로 나선 학부모정보감시단의 김성심 사무국장은 "하도 논란이 되기에 <숏버스>를 온라인으로(불법 다운로드 해서) 봤다"고 밝힌 뒤, "표현의 자유는 이미 충분히 누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 말라는 것은 오히려 더 해보는 청소년들의 특성을 이해해 선정성, 폭력성이 높은 영화는 특정 공간에 한정시켜 선전 및 광고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를 대표해 나온 한국영상산업영회 유남준 부회장은 "등급 외 등급을 받은 영화를 과연 어떤 업자가 유통을 시키려 들겠는가. 업계에서는 이를 반기기보다는 오히려 우려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한편 성인영화네트워크의 정성일 대표는 "등급을 매기기 곤란한 영화를 영등위에서 등급 분류 거부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게 필요하다"고 중요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심의 기관에서 등급분류를 거부한다는 것은 등급보류와 별 다를 바 없는 실질적인 검열이기 때문이다.
▲ ⓒ프레시안 |
개정안에 따르면 과거 제한상영가 영화가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될 수 있고 광고 및 선전에서도 제약을 받았을 뿐 아니라 비디오나 DVD 등 다른 매체로 제작이 금지되었던 것과 달리, 등급 외 등급의 영화는 일반 상영관에서도 상영이 가능하며 타 매체로 제작도 허용된다. 선전, 광고에 있어서도 특별히 더 규제를 받지 않는다. 또한 영등위가 규정하는 방식으로만 등급을 표시하도록 함으로써 등급 외 영화라는 사실이 강조되어 오히려 마케팅과 홍보의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도 줄였다. 한편 등급 외 영화로 분류되려면 영등위 의원의 과반수가 출석한 가운데 2/3 이상이 동의를 해야만 한다. 이는 등급 외 등급이 남발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극장개봉 영화에 등급 외 등급이 신설되는 것에 맞춰 비디오물에도 등급 외 등급이 신설된다. 황창근 교수는 "헌재는 등급분류 자체는 합헌이라 결정한 바 있고, 이번의 헌법불합치도 제한상영가 등급 자체가 아니라 이 등급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사실을 문제삼은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청소년 보호를 비롯해 사전 정보 서비스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연령 외 등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등위에서 내세우고 있는 '등급 외 등급'은 일단 '이론적으로는' 검열의 요소를 없앤 합리적인 안으로 보인다. 등급 외 등급을 받는다 해도 이것이 폭력성과 선정성에 있어 과도하다는 사전 정보만 담을 뿐 일반 극장에서의 상영이나 광고, 홍보 등에 있어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으며 다른 매체로도 제작이 가능한 이상 애초에 유통 자체가 금지하는 효과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굳이 왜 등급 외 등급이 필요한가"라는 원론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선정성과 폭력성의 '과도함'도 기준과 표현이 애매할 뿐 아니라, 영화의 내용에 대한 정보가 온라인과 기타 다른 매체를 통해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데도 굳이 행정기관이 사전에 '과도하다'는 판정을 내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나아가 '등급 외 등급'이 곧 '음란물'로 등식화될 우려가 있고 이는 형사상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며, 이 역시 결국은 검열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애초에 2002년 영화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도입한 것도 당시 위헌 판정을 받은 등급보류 제도에 대한 대안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한 일환으로 제한된 공간에서나마 유통을 보장하려는 제도였지만 오히려 역으로 검열의 효과를 낳았다는 점을 돌이켜 볼 때, 등급 외 등급을 신설할 경우 오히려 부작용과 역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등급 외 등급이 포함된 영비법 개정안은 영화계에서 주장해온 완전등급제의 요구를 일정 부분 반영하기는 하지만, 청소년 관람불가의 영화들 일부에 또다시 사전 제한을 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제한상영가 및 비디오물 등급보류 제도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나머지 영비법에 잔존하는 다른 검열의 요소들이 오히려 묻히고 있다는 사실도 큰 문제다.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이 지금의 영비법의 기본 철학이 심의보다는 처벌과 규제를 중심으로 하는 검열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올해 인권영화제는 비영리 목적의 영화들에 대해서도 등급분류를 거쳐야 하는 영비법의 조항을 거부하며 상영관을 찾지 못해 결국 길거리 상영을 강행한 바 있다. 당시 다수의 시민단체들이 '표현의 자유 확대와 영비법 개정을 위한 공동행동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비영리 목적의 영상물 창작자 및 상영자가 등급분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 '선택등급제'를 주장했던 배경과 맥락 역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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