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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금융,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이종태 위원 "신자유주의 금융화 모델, 한물 갔다"

"70년대 공장 여공, 80년대 무역상사맨…" 한 벤처기업가가 시대별로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주역들을 꼽으며 한 말이다.

MB 시대 산업역군은 백골단?

'그렇다면 지금은?'하는 의문이 든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재미있는 대답을 내놨다. 답은 '백골단'이다. 앞뒤 맥락을 설명하면, 이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19일 "법과 질서만 제대로 지켜주면 GDP 성장률이 1% 올라간다"고 말했다. 모든 문제를 경제성장과 연결해 생각하는 이 대통령의 버릇이 드러난 발언이다. 이 발언은 법무부가 "떼법 문화를 청산하겠다"며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에 대해 설명하자 이 대통령이 대답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법무부가 이날 제시한 정책 과제는 '불법 집단행동 근절', '불법·폭력집회, 정치파업의 주도자와 배후조종자 엄단', '불법파업에 대해 형사재판 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도 함께 판결', '체포 전담조(백골단) 부활' 등이다.

이런 설명에 이어 이종태 위원이 농담으로 덧붙인 표현이 "이로써 백골단은 '잃어버린 성장률 1%를 되찾을' 산업 역군이 됐다"는 것. 14일 국민대에서 열린 '제5회 사회경제학계 공동학술대회'에 참가한 이 위원의 발제문에 담긴 내용이다.

▲ 제5회 사회경제학계 공동학술대회. ⓒ프레시안
'백골단 부활' 약속은 실제로 지켜졌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올 여름께다. 그래서 GDP 성장률이 1% 올라갔을까. 굳이 답을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이 대통령의 말과 달리, '법과 질서'는 GDP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지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말이 언론에 공개된 지난 3월, 온라인 공간에는 이 대통령을 조롱하는 글이 종종 올라오곤 했다. 대선을 치르는 동안, 온갖 불법 행위에 관한 의혹이 집중됐던 이 대통령이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게 영 어색하다는 내용이다.

시드니 경치에 들뜬 YS의 '세계화' 선언, '신자유주의 대세론' 계기

그런데, 이종태 위원이 보기에 백골단 부활을 지지하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한번 웃고 넘길만한 해프닝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경제정책의 굵은 흐름이 반영돼 있는 발언이라는 것.

'이건 또 무슨 이야기지' 싶다. 이 위원의 설명을 이해하려면, 14년 뒤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조금 길지만, 차근차근 되짚어 보자.

1994년 11월 17일 호주 시드니에 머물고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갑자기 기자들을 찾았다. '세계화' 선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어리둥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외국 언론이 특히 그랬다. 이 구호를 적절하게 번역할 말을 찾지 못했던 외국 언론은 결국 "Segyehwa"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세계화' 선언의 배경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당사자인 김 전 대통령은 2007년 <시대정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정말 세계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날 기자 간담회를 마친 뒤 보트를 타고 시드니 항만을 돌아보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으니 이제 세계로 눈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대통령이 경치 구경하며 들뜬 기분으로 추진한 '세계화' 선언은, 그러나 한국 경제의 틀 자체를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대세로 떠오른 것은 이때부터다.

정권 교체 거듭해도, 금융중심지 노선은 계속 이어져

이런 흐름 속에서 김영삼 정부는 한국경제의 산업구조를 '제조업 중심'에서 '비즈니스(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이행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런 주장은 다시 '동북아 비즈니스 거점'이라는 용어로 모아졌다.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김대중 정부 역시 같은 노선을 이어받았다. 아니, 오히려 강화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재정경제부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화 전략"을 제출했다. 한국을 '세계 유수기업 거점+물류 거점+금융 거점'으로 발전시키자는 내용이다.

이런 전략은 노무현 정부로 이어졌다. 노 정부는 '동북아 경제 중심' 전략을 선언했다. 보수 언론이 문제를 삼자, 노 정부는 이런 전략을 공공연히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전략에서 다른 내용이 빠지고 금융 거점 역할이 강조된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여전히 정부 주위를 떠돌았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밀어붙인 것도 금융허브 노선과 연결해서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노무현 정부를 전적으로 부정하면서 들어선 이명박 정부도 '금융허브론' 만큼은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동북아 금융 중심지'는 '동북아 금융허브'에서 허브(Hub)를 '중심지'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내용 역시 노무현 정부의 그것을 그대로 베꼈다.

지난 14년 동안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뀌고 외환위기도 한 번 겪었지만, '금융 세계화' 노선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추진돼 왔다는 이야기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 사회 주류에게 '금융 세계화' 노선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여겨졌으니까.

1980년대 금융공학 혁명

그런데 이런 노선을 가장 노골적으로 이어받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 세계 경제의 흐름이 변했다. '금융 세계화' 노선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일어난 변화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려면 시간을 조금 더 뒤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0년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금융공학 혁명'이 일어났다. 예전에는 한 덩어리로 취급됐던 자산들이 잘게 쪼개져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금융 거래량은 폭증했고, 금융 상품의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90년대 초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세계는 하나의 시장으로 묶였다. 이윤을 찾아 세계를 떠도는 뭉칫돈이 늘었다. 비약적으로 발달한 정보통신 기술이 달라붙었다. 돈과 정보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게 됐다. 냉전이 끝나면서, 일자리를 잃어버린 군사과학자들도 이런 흐름에 뛰어들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던 과학자들이 월스트리트로 몰려왔다. 이들은 고도의 수학 실력을 바탕으로 보통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파생금융상품들을 쏟아냈다.

세계 각국 경제 정책 담당자들은 이런 상품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 쯤으로 여겼다. 파생금융상품의 구조도 모르면서, 금융 산업을 예찬하는 이들이 정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언론은 한술 더 떴다.

<조선> "조선소에서 기술자들이 땀 흘려 봤자 소용없다"

송희영 <조선일보> 논설실장은 지난해 6월 30일자 칼럼에서 "글로벌 '쩐의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길"에서 "과거에는 실물경제가 머리이고 금융은 실물의 흐름을 따라가는 꼬리 역할을 해왔다면, 지금은 금융이 머리이자 몸통이고 실물은 꼬리로 바뀌었다"고 적었다.

이어 송 실장은 "최고 호황을 누리는 국내의 어느 조선회사 임원"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밝혔다.

"1억 달러짜리 대형 선박을 수주해 3년 간 수천 명의 기술자들이 땀 흘려 수출하면 500만 달러나 600만 달러 정도 남는다. 하지만 영국의 금융기관은 선박 건조 자금을 1억 달러 정도 빌려주고 단번에 엇비슷한 금액을 벌어간다."

조선회사 노동자들이 읽으면 모멸감을 느낄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송 실장은 이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독자의 모멸감을 고려하지 않는 이런 태도는 '신념'에 가까웠다.

이 무렵, 송 실장이 쏟아낸 칼럼 제목만 살펴도 드러나는 사실이다. "헤지펀드는 저승사자가 아니다.", "한나라당엔 舊型 이코노미스트들밖에 없는가." "이공계 살리기에 언제까지 매달려야 하나." 모두 경제의 축이 제조업에서 금융으로 바뀌고 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외국계 펀드에 대한 감정적인 거부감"을 없애고, 제조업 및 과학기술에 쏟는 노력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는 것.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은 송 실장과 <조선일보>만이 아니었다. 주류 언론 보도를 가로지르는 일반적인 입장이다.

▲ 2007년 6월 30일자 송희영 칼럼. "초등학생의 주식 투자까지 걱정해줄 필요가 없다. 미국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주식 모의 투자를 하고, 지역 학교끼리 벌이는 투자 수익률 경쟁 순위가 매주 워싱턴 포스트에 보도되기도 한다"는 문장이 눈에 띈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촌티를 벗어야 한다"라고도 했다.ⓒ조선일보

서비스 산업 중심 경제 구조 개편, '금융화' 노선과 한묶음

이런 입장을 취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을 꼽으면, 대략 이렇다.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위한 시장(상품-서비스-경영권-자본-외환) 개방, 개방된 금융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강력한 국내 종합금융그룹 육성, 자본시장 육성, 기업 경영권 인수합병 시장의 활성화 및 이를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공기업 민영화 (민영화된 공기업은 거래 가능한 주식 물량을 대폭 늘리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등이다.

또 이들은 '서비스 산업 중심' 경제를 지향한다며 의료, 교육, 기초 생필품(물, 전기 등), 연금 펀드 등 공공성 강한 부문의 운영에 상업성을 도입하도록 주장했다. 금융투자업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다. 이종태 위원의 설명은 이렇다.

"예를 들어 병원이나 대학을 영리법인화해서 '병원 주식회사' '대학 주식회사' 등을 설립하면, 이 업체들의 IPO(기업공개)-상장-자문에 이르는 투자은행 수요가 생겨난다. 물, 전기 등 기초 생필품에 해당하는 에너지와 자원은 희소성이 높다. 대신 이들을 산업화할 경우, 시장외적 변수로 인해 리스크 역시 높다. 이런 부문에서 안정적으로 이윤을 내려면, 고도의 금융공학이 필요하다. 선진국에는 이런 금융공학이 발달해 있다.

서비스 산업 강화 주장은 공공 서비스 부문을 '고수익 추구가 가능한 장소로 만들어', 국내외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민주화 세력이 반발 없이 신자유주의 금융화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

이렇게 되면, 대중이 누리는 삶의 질은 크게 위협받는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위협의 정도가 거세진다. 따라서 '세계화'를 외치며 경제의 축을 금융·서비스 중심 산업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사회운동 진영의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 앞서 이런 식의 변화를 밀어붙였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사회운동 진영과 큰 충돌을 빚지 않았다. 이들 정부 핵심에 이른바 '민주화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서 빚어진 결과다. 사회운동 진영은 이들 정부가 추진한 정책에 반대해도, 정권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현 정부 핵심에는 사회운동 진영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사회운동 진영 안에서도 개별 정책이 아니라 정권 자체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MB정부, 재벌과 손잡고 신자유주의적 금융화 밀어붙일 가능성

반면, 정부 측은 신자유주의적 금융화를 공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 과거 정부들의 금융화 정책에서 부족했던 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의 중심을 금융으로 옮기려면, 현재의 금융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민간 주체와 자금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 두 가지를 적극적으로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게 이종태 위원의 설명이다. 현 정부가 재벌과 유독 가깝기 때문이다. 재벌이 주도해서, 재벌의 돈으로 금융화를 추진하려는 게 현 정부의 구상이라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운동 진영과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현 정부가 '법과 질서'를 강조하며 백골단을 부활시킨 배경에는 이런 상황이 있다는 게 이종태 위원의 설명이다. 이 위원은 "현 정권이 재벌 혹은 거대 산업집단의 자금과 인적 자원을 마음껏 금융 산업 구조 개편에 활용하는 한편, 이에 반발하는 집단을 무자비하게 탄압할 수 있다"고 적었다.

정부 안에서도 정책 엇박자…MB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 탄압뿐

하지만, 정부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그친다. 이 위원은 "이명박 정부가 가장 자신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정책은 노동·사회운동 탄압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정책 부문은 온통 모순과 비일관성으로 점철돼 있다"고 덧붙였다. "전형적 신자유주의 정책과 국가주도 경제개발 모델 사이에서 엇박자를 노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게 통화 정책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사이의 갈등이다.

이런 갈등은 특히 통화 정책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사이에서 노골화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도록 종용한다. 또 정권 초기에는 급속한 원화 가치 절하를 대기업 수출에 이롭다는 명분으로 수수방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금융중심지'론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게 이 위원의 지적이다. 물가 및 환율 안정은 '금융중심지'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 원화 가치 역시 절상되는 게 이런 목적에 이롭다.

또, 기획재정부가 정권 초기에 내놓은 △초대형 금융지주회사 설립 △한국투자공사(KIC) 자산규모 확장(200억 달러→1,000억 달러) 등 계획 역시 대부분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 주도의 금융 산업 육성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는 뜻이다.

"'신자유주의 대세론'은 끝났다"

여기에 국제 경제 환경도 금융화 노선을 거스르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 세계적 금융 위기가 번지면서, 1980년대 이후 진행된 '금융공학 혁명'은 파국으로 끝나는 분위기다. 금융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도 정권 교체 이후,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해 반성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신자유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국제적 흐름"이라는 '대세론'이 성립하기 힘들다는 뜻. 이종태 위원이 이날 발제문 제목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고 붙인 것도 그래서다. 신자유주의 금융화 모델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미련을 벗어던지는 게 시급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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