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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살릴 수 있는 기업까지 죽이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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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정부, 살릴 수 있는 기업까지 죽이려는가"

'프리 워크아웃' 확대 방침, 관치금융 논란

한나라당과 정부가 최근 대기업에 대해 '실물 경기 위축 사전예방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강력한 시장원리와 민영화 정책을 내세워 집권한 이명박 정부로서는 민망한 모양새다.

당정 "'프리 워크아웃' 확대 적용…대기업 흑자 도산 막겠다"

정부·여당이 검토하고 있는 방침은 현재 중소기업에 대해 적용되고 있는 '프리 워크아웃'(Pre-Workout) 제도를 대기업에도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채권단이 부실 중소기업에 대해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구조조정을 함께 실시하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세계적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로 번지는 상황에서, 채권단이 기업 부실을 미리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멀쩡한 대기업이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져 흑자 도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라는 것.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흑자 도산하는 기업이 줄을 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정부 차원에서 대비책을 마련한다는 소식이 반갑게 들린다.

하지만 다른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정부·여당의 이런 움직임은 1997년 '부도방지협약', 2003년 '4.3 카드사 지원 대책' 등을 닮았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카드대란 등이 불거졌을 때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당시 대책들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목소리가 종종 나온다. 오히려 관치금융을 강화하고, 정부의 정책 실패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려는 대책에 불과했다는 것.

당정 "대기업 부실 '징후' 아니라 부실 '가능성'만 있어도 선제 조치하겠다"
▲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원장. ⓒ뉴시스

대기업에 대한 '프리 워크아웃' 제도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9일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이 "우리는 기업들의 부실 징후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률구조"라며 "미리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부터다.

지금도 "미리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지난달부터 운영하고 있는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에 따르면, 채권 금융회사는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A, B, C, D등급으로 구분해 부실 징후가 없는 A, B등급 업체에는 만기연장, 이자감면, 신규자금 지원 등의 조치를 1개월 이내에 완료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부실징후가 있으나 회생 가능성이 있는 C등급은 채권단이 기업 재무개선작업(워크아웃) 개시를 결정하며 회생 가능성이 없는 D등급은 퇴출하도록 돼 있다.

중소기업에 대해서만 이런 제도가 있는 게 아니다. 채권단이 대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제도 역시 마련돼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따르면, 금융권의 신용공여 금액이 500억 원 이상인 기업은 워크아웃에 들어가야 한다. 또 500억 원 미만인 기업은 채권단 협약에 따라 기업회생 여부가 정해진다. 이 법은 이미 지급불능(insolvency) 상태에 이르렀거나 그 위험이 뚜렷한 대기업 중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하도록 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대기업의 흑자 도산을 막기 위한 '사전예방 시스템' 마련을 주장한 것은 신용공여 금액이 500억 원 이하인 기업,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illiquidity) 상황에 처한 기업에 대해서도 채권단이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요컨대 부실 '징후'가 아니라 부실 '가능성'만 엿보여도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정부가 대기업 생사여탈권 틀어쥔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촉법을 개정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이 포착되면, 바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는 부실 징후가 뚜렷한 기업을 시장에서 일찍 퇴출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퇴출될 기업 주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 때문이다. 게다가 현행 기촉법 자체에도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주주권과 기업 경영활동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행 기촉법을 더 완화하는 개정이 이뤄지기란 쉽지 않다. 신자유주의 정부가 주주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비아냥을 사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가 채권단이 자율적 협약 등을 통해 대기업에 대한 '프리 워크아웃'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이다.

현재 채권금융기관 자율협정 형식으로 건설회사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대주단협의회 운용협약'(대주단 협약)을 법제화하여 모든 업종의 모든 기업, 특히 대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이렇게 될 경우, 일종의 대기업 채권단 회의체가 생겨날 수 있다. 이 회의체는 대기업의 여신 상황 등을 감시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선제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대기업 채권단 회의체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 게다가 정부 여당 일각에서는 은행,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프리 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정부가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된다. 시장원리를 강력하게 외치며 집권한 정부가 기업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모순이 생기는 셈.

"정부, 정책 실패 감추려 무모한 시장 개입 시도한다"

물론, 경제적 비상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을 지휘하는 게 꼭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사에서 정부가 개입한 사례는 흔하다.

그럼에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스스로의 정책 실패를 감추는 방편으로 무모한 개입을 시도한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대는 11일 성명에서 정부 여당의 이런 시도를 '관치금융으로의 회귀'로 못박았다.

"정부여당의 '대기업 Pre-Workout 법제화'방침은 '합법화' 외피 걸친 관치금융 시도에 불과"라는 제목의 이 성명에서 경제개혁연대는 건설사 대주단 협약, 혹은 프리 워크아웃 제도 등을 확대, 법제화하여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성명 전문 보기)

"과잉 유동성이 낳은 위기, 유동성 공급으로 풀 수 없다"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는 정부의 주장과 달리, 단지 유동성이 부족해서 생겨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 위기의 충격과 한국경제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맞물려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기관을 통한 '신속하고, 충분하며, 단호한' 유동성 지원으로 흑자도산 위기에 처한 대기업들을 살릴 수 있다는 정부의 기본 입장은 현실의 어려움을 은폐하는 것일 뿐"이라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판단이다.

오히려 한국 경제가 처한 문제의 핵심은 정부 정책과 반대편에 있다. 경제개혁연대의 설명은 이렇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에도 과잉 유동성을 기반으로 금융기관이 무모한 규모 확장 전략을 추구하는 경영상의 오류가 지속되었고, 그 결과 건설업과 가계 부문, 상당수 중소기업과 일부 대기업의 부실 위험이 크게 높아졌으며, 최근 이것이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을 위협하고 자금 중개 기능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유동성이 너무 많이 공급돼서 생긴 문제를 '신속하고, 충분하며, 단호한' 유동성 지원으로 풀겠다는 정부·여당의 입장은, 경제개혁연대가 보기에 어불성설이다.

"'역 선택의 문제'…아무리 돈 풀어봤자, '나쁜 기업'으로만 흐른다"

경제개혁연대의 대안은 뭘까. 이런 내용이다.

"이제 정부 정책의 핵심은 단순한 유동성 지원이 아니라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살 수 있는 기업(good company)'과 '살 수 없는 기업(bad company)'을 구분해주어야 한다.

이런 구분이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은 모든 기업을 '살 수 없는 기업(bad company)'으로 취급하는 전형적인 역 선택의 문제(adverse selection)가 발생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유동성을 공급해봐야 자금이 '살 수 있는 기업(good company)'에게로 흘러가지 않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의 문제가 심화될 뿐이다."

경제개혁연대가 언급한 '역 선택의 문제'를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좋은 기업(유동성 지원으로 살아날 수 있는 기업)과 나쁜 기업(유동성을 지원해봐야 살아날 수 없는 기업)을 구별하지 않으면, 좋은 기업이 손해를 보고 나쁜 기업이 이익을 누리는 현상이 생겨난다. 좋은 기업에게는 적정 금리보다 높은 금리가 적용되고, 나쁜 기업에게는 적정 금리보다 낮은 금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좋은 기업은 자금을 구하지 못하고 모든 자금이 나쁜 기업으로 쏠리게 된다. 그 결과, 좋은 기업도 나쁜 기업이 되고 결국 모든 기업이 망하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사례가 생겨나는 셈이다.

"기업 구제 금융은 사회적 감시 속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이런 주장이 정부의 시장 개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금융기관과 기업의 재무건전성 및 생존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시장에 제공하여야 하며, 그러한 정보에 기초하여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지원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망가진 시장 기능을 복원하는 게 우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에게 이런 주장이 먹혀들 수 있을까. 적어도 관치금융은 안 된다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입장이다. 내용은 이렇다

"만약 생존 가능성은 높지만 지금 당장은 지급불능의 상황에 빠진 금융기관과 기업이 많이 존재한다면, 이들에 대한 구제금융은 사회적 감시와 통제가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국회 동의를 거쳐 공식적인 공적자금을 조성하여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하여야지, 국책은행을 동원하는 유사 공적자금이나 민간은행의 팔을 비트는 관치금융을 남발하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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