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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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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할 수 있을까?

[완군의 워드프로세서] 수능

온통 오바마 얘기뿐이었다. 아직도 그러하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 두말이 필요없는 절대적인 자리라지만, 전에도 이랬나 싶다. 물론, 그가 유난히 남다르긴 하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미국발 경제 위기가 종국엔 패권 국가 미국의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지구적 설레발에 맞서야 할 역사적 책임까지 부여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전임 대통령이 부시였다. 어쩌면, 그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미, '존재' 그 자체로 '해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노무현'과 비교하고 있다. 여러 면에서 유사성이 있어 보이긴 한다. 단적인 것이 그의 당선은 노무현 때와 마찬가지로, '시대정신'이란 것을 대변한다고 여겨지고 있다. 지향의 정치를 통해 내용과 상관없는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 역시 유사하다.
  
  그러나 모든 승리는 드라마틱하고 또 비슷한 문법으로 구성될 뿐이다. 오히려 오바마를 국내 정치사에 이입시키고자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보다는 DJ를 불러내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우선, 지금의 오바마가 안고 있는 사회 경제적 상황이 10여년 전 우리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다. DJ는 IMF 경제위기 상황에서 지역차별을 딛고 당선됐다. 오바마 역시 판박이다.
  
  DJ의 당선을 통해 한국 사회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하나의 꿈을 이뤘던 것처럼, 지금 미국 사회는 오바마의 당선을 통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하나의 꿈을 현실로 맞이했다. 전라도 사투리가 한국 영화에서 하층민의 전형을 재연했던 것처럼,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 역시 헐리우드의 상상력에서나 재연되던 것이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오바마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쉬운 답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이다. 많은 이들의 바람처럼 실제로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까지 갈 것도 없이, 세상살이 모두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오바마는 패권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경제를 살려야 하고, 수정 헌법의 자유주의 정신에 충실하면서 사회적 공공성을 확대해가야 한다. 이라크에서 철군하면서 북한과 대화해야 하고, 차베스와의 만남을 준비하면서 그린스펀 따위가 던지는 충고들과도 맞서야 한다.
  
  이쯤 되면, 오바마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다시 물어야 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가 차라리 정답에 가까운 오답일 것이다. 왜? 전여옥 의원의 말처럼 그는 미국 대통령이다. 미국 대통령이 왼손을 사용할 순 없다.
  
  실증적으로 돌아보자. 학력 차별과 지역 차별이라는 이중의 차별을 '준비된 대통령'이란 슬로건으로 뚫었던 DJ로 돌아 가보자. 차별을 딛고 대통령이 된 그는 오바마처럼 경제를 살려야 했다. 박현채의 민족경제론과 가까웠다는 그였지만, IMF와 연대할 수밖에 없었다. '고용은 유연하게, 시장은 자유롭게, 경쟁은 치열하게'라고 주문할 밖에 없었다.
  
  그 단기적 처방과 금붙이를 모아준 국민적 성원에 힘입어 경제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지만, 한국 경제는 평생 고칠 수 없는 체질의 변화를 겪었다. 노동자 중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 됐다. 경제 시스템 자체가 고용 없는 성장과 굴뚝 없는 생산의 회로에 빠지면서 작은 기침에도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20대의 태반이 백수가 되고, 88만원 세대가 되는 토양이 닦아졌다. 삶의 질 따위를 논하기에 앞서 모든 게 불공평해졌다. 차별 극복의 아이콘이었던 DJ에 이르러 오히려 사회적 차별이 고도화되고 심층화되기 시작한 역설을 우린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 역설은 오바마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가능할 것 같다. DJ 신화의 문법과 오바마 신화의 문법이 근본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흑인 출신이라는 지구적 차별과 소수성을 존재 근거로 오마바가 '해답'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한 때, DJ 역시 전라도 출신이라는 사회적 차별과 평생 야당이라는 소수성을 기반으로 '선생님'이라고 불렸었다.
  
  호남 출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던 DJ 신화의 실체는 대통령의 본적지가 바뀌었다는 것 외엔 이상 이하의 진전도 아니었다. 흑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오바마의 신화 역시 대통령의 피부색이 바뀌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되기 힘들 것이다.
  
  DJ가 정부 관료들의 출신 지역을 바꾸어낸 것을 넘어서 사회의 작동 원리 그 자체에 도전할 꿈을 꿀 수 없었던 것처럼, 오마바 역시 몇몇 어떤 것들을 바꾸어내는데 노력할진 몰라도 세계의 작동 원리 그 자체에 도전하는 일은 않을 것이다.
  
  이유인즉 간단하다. 권력이 아무리 강한다 한들 그들은 개인일 뿐이고, 대통령이란 거대한 상징의 주인공이 된 이상 과거의 것들과 화해하기 바쁘고, 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이미 있는 질서를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와의 화해, 포용 그리고 새로운 시대라는 선언은 곧 어제의 질서가 내일도 유효할 것이라는 사실의 확인이기도 하다. DJ가 끝내 한국 사회의 위계적 질서를 극복해내지 못했던 것처럼, 오바마 역시 세계의 패권적 질서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내일이면, 수능이다. 1년에 한 번씩, 19살이 된 이들을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성적을 기준으로 일렬로 세우는 일에 전 사회가 동참하는 야만적 풍경은 차별로 인식되지 않고 오늘도 성황리에 횡횡하고 있다. 누구도 어쩌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등수적 세계관이 다시 영원한 대관식을 할 준비를 마친 셈이다. DJ 이후 지역을 차별로 호명하는 직접적 언사는 사라졌지만, 그 차별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오히려 공고해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 주의 열쇳말은 수능이다. 시야에서 사라진 그러나 존재하는 이 줄을 우리는 언제쯤 해체할 수 있을까? 우리 안의 차별은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문득, 오바마에게 묻고 싶어진다. 과연, 오바마라면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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