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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 반쪽'에서 '미국의 흑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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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 반쪽'에서 '미국의 흑진주'로

[오바마시대]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은 누구?

미셸 오바마(44). 버락 오바마의 당선과 함께 그 또한 미국의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라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미셸, 그는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 왔나.

그는 왕성한 사회 활동을 벌여와 일찍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다. 재클린 케네디와 비교될 만큼 세련된 외모와 빼어난 패션 감각도 화제가 되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그는 힐러리 클린턴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는 퍼스트레이디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벌써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의 참모는 미셸이 퍼스트레이디가 되더라도 백악관 서관에 별도 사무실을 내지 않을뿐더러 중요한 정책 결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두 딸에 가장 신경을 쓰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평소 관심을 가져온 여성 문제 정도를 챙길 것이라는 설명이다.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의 '안방 정치' 역시 앞으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대목이다.

오바마의 고통스러운 반쪽에서 없어서는 안 될 흑진주로
▲미셸 오바마(44). 버락 오바마의 당선과 함께 그 또한 미국의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라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로이터=뉴시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는 미셸의 공이 컸다. 그러나 그의 선거운동 감각은 초반만 해도 외모와 패션 감각만큼 빼어나진 않았다.

그는 올해 초만 해도 직선적이고 자신감이 넘쳐 정제되지 않은 언행으로 '불만에 찬 흑인 여성'이라고 불렸다. 그래서 보수 세력의 집중 공략 대상이기도 했다.

특히, 지난 2월 버락 오바마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승장구할 때,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미국에 자부심을 느꼈다"라고 말해 애국심 논란에 휩싸였었다. 보수 논객 미셸 멀킨은 미셸을 '오바마의 고통스러운 반쪽'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난 6월 오바마가 민주당 경선 승리를 선언하던 무대에서 주먹을 마주치는 '피스트 범프(fist bump)'를 하자, <폭스뉴스>는 이를 '테러리스트의 주먹질'이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셸은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갔다. 혼자서 군인 가정, 여성 노동자들을 방문하는 등 '틈새'를 공략하고, 곳곳에서 청중 동원 능력을 과시하는 등 갈수록 빛을 발하는 '흑진주'라는 평가를 받은 것.

자수성가한 흑인 여성

이런 미셸의 삶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 자수성가한 흑인 여성. 흑인 빈민가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이 되었고, 이제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까지 된 것이다.

그는 1964년 1월 17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미셸 로빈슨. 부모 모두 흑인 노예 후손이었고, 그의 가정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줄곧 시카고의 흑인 거주 지역에서 살았다. 백인 어머니와 케냐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남편 오바마와 달리 그는 '순수 흑인'인 셈이다. 오빠는 오리건 주립대학의 농구팀 수석코치인 크레이그 로빈슨이다.

그는 1981년 명문 프린스턴대에 들어가 사회학을 전공했고, 1988년엔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였다. 그의 프린스턴대 학사 논문 제목은 '프린스턴대의 흑인 졸업생과 흑인 공동체'일 정도로 흑인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이후 로펌과 시카고 시장 자문관으로 일하면서 비영리단체 등에서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다. 1993년엔 '퍼블릭 앨라이스'라는 비영리단체의 시카고 지부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2005년 시카고대 병원의 부원장을 맡았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흑인 여성이다.

그는 2006년에는 <에센스> 잡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감 있는 여성 25명'에 포함됐고, <배너티 패어>는 이듬해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여성 10명'에 올려놓았다. 또 가장 영향력 있는 하버드 동문 100인 가운데 58위에 랭크되기도 했다(오바마는 4위에 올랐다).

오바마와 만나다

그는 오바마와는 시카고의 시들리 오스틴이라는 로펌에서 만났다. 오바마가 1989년 여름 인턴으로 로펌에 왔을 때 그의 멘토를 맡아 친분을 쌓았고 이내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본 영화는 스파이크 리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1992년 10월 결혼에 골인했고, 말리아(10)와 사샤(7)라는 두 딸을 두고 있다. 미셸은 이번 선거 운동 기간에 두 딸을 위해 일주일에 이틀만 선거 운동을 하고 둘째 날 밤은 반드시 집에서 딸들과 지내겠다는 약속을 지킬 정도로 자녀에게 헌신적인 어머니로 알려졌다.

미셸은 담배를 제대로 끊지 못하는 오바마에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금연 요구를 관철했다는 일화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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