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지역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왜냐하면 한국 경제의 진정한 대안은 지역으로부터 나오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 2008년 가을, 상황을 점검해보자. 지금 한국의 정치인 중에서 지역 얘기를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딱 두 명이 있는데, 이회창 선진당 총재와 김문수 경기도지사다. 이회창은 강소국연합이라는, 다소 쌩뚱맞은 주제로 얘기를 끌어가고 있지만, 사실상 '토목경제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명박식 경제가 아닌 지역 경제 얘기를 하고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다.
김문수는 이와는 정 반대의 위치에 서서 지역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명박이 '삽질 경제'라고 한다면 김문수는 '울트라 삽질 경제' 정도 해당할 것 같다. 뭐든지 "이명박보다 더 세게"가 김문수가 상상하는 경제라면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외에 지역에 대한 얘기를 하는 정치인이 있나?
자, 그렇다면 학자나 문인 중에서 찾아볼까? 학자 중에서 지역을 얘기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은 강준만 전북대 교수일 것 같다. 그에게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새만금 논의 한 가운데 "지방토호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말로 기억된다. 나는 그가 조금만 더 생태적 상상력이 있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지만, 어쨌든 지금 학자 중에서 지역을 얘기하는 사람은 강준만이 유일한 것 같다. 그의 <노무현 죽이기>에는 한국 사회가 격렬하게 반응했지만,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은, 아무래도 지방방송 정도로 치부되지 않을까 싶다.
문인 중에서는 어떨까? 싫든 좋든, <토지>의 박경리가 토지면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얘기를 했던 전통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문인들이나 예술가들은 기이하고 신기하게도 지역의 얘기에 대해서 침묵하는 중이다. 어쨌든 한국인의 절반은 수도권에 살고, 나머지 절반은 비수도권에 살고 있는데, 이 절반의 국민들은 유령이란 말인가? 아니면 2등 국민이란 말인가? 현재 가장 잘 팔리는 작가들 중심으로 본다면, 지방에 거주지를 가지고 있는 이외수가 어쨌든 시선을 지역으로 돌리게 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단어만 놓고 따지자면, 지방 보다는 지역이 훨씬 좋은 말이기는 하다. 서울과 지방, 수도권과 비수도권이라는 의미 보다는, 개별 지역 그리고 개별 지역경제의 복원과 같은 말이 훨씬 좋을 것 같다.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얘기를 한다고 해서 '지방방송'이라고 하는 현재 우리의 모습이, 사실 문제가 심각하기는 심각하다. 전 세계 선진국 어디를 보아도, 국민 절반이 수도권에 사는 그런 나라는 없다.
어쨌든 이 경제 위기 한 가운데에서 명박 경제는 신나게 토건형 경제로 액셀을 밟았는데, 다들 죽겠다고 하는 이 마당에 지역경제는 곡소리 나다 못해서, 이제 신음도 흐르지 않을 지경인 것 같다. 중앙의 방송국들이 죄다 여의도에 몰려 있으니, 9시 '땡박 뉴스'에서 간간히 보여주는 시민들의 모습도 여의도에서 강남역 사이의 주민들이니,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아파도 아프다는 신음 한 번 못하는 게 현재의 상황 아닐까 싶다.
어쨌든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토건 정치인 이명박 대통령께서 이 상황에서 수도권 규제를 몽땅 풀겠다고 했으니, 생태 문제와 환경 문제는 차지하고라도 당분간 지방에서는 곡소리나게 생겼다.
프랑스에서 TGV 처음 놓았을 때의 얘기를 해보자. 원래 프랑스는 파리와 리옹의 두 개의 축이 중심이었는데, 금융의 중심지였던 리옹이 계속해서 약해지자 이를 강화하자는 의도로 파리-리옹 구간에 대한 고속철 논의가 시작되었다.
세계 최초의 고속철 구간이 바로 이 파리-리옹 구간이었는데, 결론적으로 고속철이 생기자마자 리옹에 계시던 사장님들께서 대거 파리로 상경하셨다. 1시간 반이면 출퇴근이 가능한데, 굳이 리옹에 살 필요가 있는가? 사모님과 자제분들을 데리고 대거 상경하시면서 리옹은 더 어려워졌다. 이를 좀 점잖게 표현하면, 블랙 홀 효과라고 부른다. 두 개의 도시가 연결되면, 더 큰 쪽이 작은 쪽을 사정없이 빨아먹는 일이 벌어진다.
대구의 몰락은 바로 이 고속철 효과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SOC 사업이라고 전국에 격자형 도로를 계속해서 신설하면, 결국 서울만 승자가 되는 게임으로 진행된다. 여기에서 유일하게 발판 역할을 해주던 것이 수도권 공장 총량제 등 수도권에 대한 규제였는데, 이것도 치우겠다니, 그냥 내버려두면 지방대가 '지잡대'라는 슬픔 이름으로 불리듯이, 지역경제도 언제 '지잡' 시리즈로 몰락할지, 바야흐로 시간 문제일 뿐이다.
한국에서 지역경제에 대해서 논의할 때 외국과 비교하면 몇 가지 큰 차이점이 있는데, 이 문제점 때문에 어지간한 전문가들도 지역 논의 조금 하다보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도망가게 된다.
1. 토지의 외지인 소유
이 통계는 잘 잡기 어려운데, 제주도 같은 지역들을 비롯해서 상당히 많은 지역의 토지를 외지인들이 50% 심지어는 60%까지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해동 지역에 대한 의사결정권은 사실상 '땅값 올리기'에만 관심 있는 외지인들이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니 지역에 사는 노예라는 말이 아주 근거없는 얘기가 아니다.
2. 지방 토호
지방 토호에 대한 얘기가 간간히 지적되기는 하는데, 그 얘기도 서울에서 하는 얘기이고, 해당 지역에서는 토호 얘기 잘못 꺼냈다가는 그야말로 재미없다. 건설사 소유인 지방언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차지하는 지역의회, 그런 토호들이 '옹립'하거나 아예 토호가 스스로 자리를 차지한 기초 단체장 등이 그들이다.
3. 토건 경제
지역에서 도로 짓고, 공단 짓고, 아파트 짓는 것 외에 다른 경제를 구상하는 일, 이는 사실상 원천봉쇄 되어 있는 상황이다. 경상도 토건은 한나라당이, 전라도 토건은 민주당이, 이 구조에서는 기능과 작동방식이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자, 상황이 이러니 이명박식 경제위기의 대안으로 SOC 사업이 등장하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어쨌든 자기 동네에 고속도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니, 지역에서 토건이 아닌 방식으로의 지역경제의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이 사람들이 결국 여의도에서 국가 운영방식을 결정하니, 결국 "전 국토가 공사중" 상태가 지난 10년 동안 만들어진 셈이고, "앞으로도 공사 중" 시대가 또 몇 년은 더 갈 것 같다. 이러면 경제가 좋아질까? 물론 국민경제는 결정적으로 망하게 될 것인데, 그 과정에서 지방이 먼저 망한다는 것이 이 '공사중 대한민국의 비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의 90년대 공황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을 토건국가라고 부른다면 한국이야말로 '슈퍼 울트라 캡숑 토건국가'라고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 일본과 한국의 서로 다른 '올림픽 담론'이 아주 흥미롭다.
동경도에서 도지사가 올림픽 유치를 제안했는데, 그야말로 기자, 학자, 시민들에게 완전 무시를 당했고, 도지사 인기가 완전히 바닥을 기게 되었다. 반대로 한국은 부산에서 올림픽 제안을 했는데, 여기에 대해 반대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면 매국노, 배신자 심지어는 친일파 소리까지 하면서 잡아먹지 못해서 난리가 나게 된다.
10년 동안 또 경기장 짓고 있으면 부산 경제가 살아날까? 이 차이는, 문화의 차이 혹은 정서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한국 경제 특히 지역 경제가 얼만큼 '토목 중독'이 심각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골프장과 콘도, 그리고 놀이동산으로 버블 공황의 홍역을 10년간 겪은 일본에서 다시 토목으로 경제를 일으키자고 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받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토목이 아닌 방식으로 지역경제를 상상하자고 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받는다. 결국 한국도 일본이 걸었던 10년의 아픔을 겪고, 뿌리까지 흔들려야 되는 것일까? 옆 나라의 사례를 보면서 비극은 좀 피해가면서 발전하면 안될까?
어쨌든 이 끔찍한 서울중심주의 그리고 토목주의의 언저리에서 죽어가고 있는 지역경제, 여기에 새로운 사회적 관심과 상상의 기운이 필요할 것 같다. 솔직히 이명박이나 김문수도 끔찍한 토목주의자들이지만, 지금 민주당의 주류 정치인들은 정세균, 강봉균 같은 사람들도 이들 못지 않은 토목주의자들이다. 사실상 한때는 끔찍한 극우파일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이회창 혼자서 비토목주의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이 시점, 토목이 아닌 방식의 지역경제의 대안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더 많은 관심과 정성을 모을 때, 비로소 이명박 경제에 맞선 다른 흐름이 생겨날 것 같다.
이 질문은 과연 부산에 올림픽 유치가 필요한가에서 시작될 것 같다. 부산쯤 되는 도시에서 모델이 생겨나주고, 부산쯤 되는 곳에서 비토목적인 지역경제를 복원하는 것, 그게 목포나 대구 혹은 울산이나 강릉과 같은 특색있는 도시들의 개성있는 경제에 관한 얘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회창과 강준만의 외로운 외침에 대해서 누군가 답을 하거나, 아니면 비판이라도 하는 상황, 여기에 새로운 시대 정신이 숨어있지 않을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