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누가 서울 영화는 안만드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누가 서울 영화는 안만드나?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최근호에 실린 글임.) 몸이 퍼지기 시작한 건 북악산을 내려오면서부터였다. 아득해졌다. 앞으로 길은 족히 6시간은 남은 터였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한 산행. 서울시립박물관에서 출발해 청운동에서 인왕산을 오른 후 다시 북악산으로 간 다음, 혜화동에서 낙산을 올랐다가 다음에 다시 동대문과 장충동을 거쳐 남산을 올라 남대문 쪽으로 내려와서 다시 첫 출발지로 돌아 오려는 길이었다. 이른바 서울성곽기행의 하루 코스. 바짝 걸어가면 총 10시간이 걸리는 길이다. 이 하드코어 산행은 지난 해부터 해왔다. 건축가 황두진과 사진을 찍는 이응진(그의 직업은 유명 로펌의 변호사지만 우리는 종종 그의 주업은 사진이고 취미가 변호사 일이라고 부른다.)이 이 산행의 친구들이다. 우리는 서울 성곽이 다시 복원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처음에 서울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성곽과 그 흔적을 찾아 낸 사람은 황두진이고 나는 언젠부턴가 성곽복원 프로젝트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그와 함께 산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 산행은 네개의 소문(小門)과 네개의 대문(大門)을 경유하게 된다. 처음에 얘기한 대로 서울시립박물관에서 시작하게 되면 돈의문(서대문, 멸실)에서부터 출발하는 셈이 된다. 순서를 얘기하면 이렇게 된다. 돈의문창의문(북소문)숙정문(북대문)혜화문(동소문)흥인지문(동대문)광희문(남소문)숭례문(남대문,복원중)소의문(서소문, 멸실)이다. 원래는 이 사소문과 사대문을 잇는 성곽이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일제 시대를 경유하면서,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성곽은 파괴되거나 유기됐다. 만약에 성곽이 어떠한 형태로든 올바르게 보존돼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서울은 기막힌 문화재 유적을 지닌 고도(古都)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성곽을 다니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지닌 도시가 됐을 것이다. 성곽의 길을 따라 서울을 10시간 넘게 걸어다니며 얻게 되는 것은 극기의 자신감만이 아니다. 서울이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는지 새삼 놀라게 되며 그 골목골목, 사람의 숨결이 얼마나 강하게 배어있는 곳인 가를 깨닫게 된다. 성곽을 재발견하게 되고, 도심을 다시 알게 되며, 그곳에 속해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반추하고 반성하게 된다. 겸허해지고 숙연해진다. 육체는 힘들지만 정신은 맑아진다.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세종로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남산을 숲을 따라 올라가며 헉헉대다가 발견하게 되는 성곽이 얼마나 스스럼없이 수백년 역사를 속삭여 주는지, 그건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성곽 여행을 한번 떠나 보시길 진심으로 강추하는 바이다.
도쿄!
봉준호 감독이 미셸 공드리, 그리고 레오 카락스와 영화를 한편 찍었다고 한다. 이름하여 <도쿄!>가 그것이다. 세계 유명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봉준호 감독이 물론 자랑스럽다. 하지만 내가 진짜 부러운 것은 다름 아닌 도쿄다. 도쿄를 소재로 했거나 배경으로 한 영화는 왜 이리 많은지 살짝 질투가 날 지경이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보고 난 빔 벤더스는 <도쿄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쿄가 나오고 <패스트 앤 퓨어리어스:도쿄 드리프트>는 아예 도쿄가 주인공인양 군다. 모두들 도쿄,도쿄한다. 하여 난 언젠가 외국의 감독과 제작자들이 서울,서울하는 날이 있었으면 싶다. 한 나라의 영화산업이 잘되는 길은 그 콘텐츠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로케이션 사업을 잘 꾸리는 것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자동차가 질주하는 거리가 서울 테헤란로가 되면 얼마나 멋지게 보일 것인가.(얼마 전 그곳에서는 국군의 날 행사를 치렀을 정도로 길이 넓다.) 연인이 사랑에 빠지는 길이 성곽 답사 길 가운데 하나인 북악산 기슭 오솔길 같은 곳이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우리는 서울을 너무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산업을 너무 좁은 테두리에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영화만 생각하면 영화가 아니다. 그건 진짜 만고의 진리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