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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을 포기한 학교에서, 더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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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을 포기한 학교에서, 더 많이 배웠다"

[화제의 책]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스웨덴 수학 교과서에는 숫자가 많지 않다. 기초학교(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친 과정) 교과서가 특히 그렇다. 기계적인 문제 풀이보다 함수, 방정식 등 수학의 기본 개념을 깊이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 숙제도 글로 써야하는 경우가 많다. 수학 개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 서술하거나, 생활 속 사례와 엮어서 에세이를 쓰라는 식이다.

"외국인 한 명을 위해 통역교사가 있다"…첫 번째 키워드, '배려'

이렇게 수업을 하면, 외국인 학생들이 곤란해지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구하려면, 스웨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에게 물어야 한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스웨덴 학교로 전학한 이하영 학생의 대답을 들어보자.

"정규 과정의 수업이 시작되면 스웨덴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스웨덴 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데, 외국인인 나에게는 상당히 힘든 일일 것 같다. 스웨덴어의 경우 '제2외국어로서의 스웨덴어'라는 외국인을 위한 과목이 따로 있다. (…) 스웨덴의 수학 교과서는 숫자보다 글자로 채워져 있을 만큼 서술형과 에세이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문제는 늘 엘리자베스와 짚고 넘어가야 한다. 1+1이 2인 이유를 서술형으로 설명하라고 하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한 시간의 수업이 끝나면 엘리자베스는 급하게 다음 수업을 위해 움직인다."

인용문 안에 있는 '엘리자베스'는 스웨덴어가 서툰 하영을 위해 학교 측이 배치한 통역 교사다. 하영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외국인 학생이 한 명만 있어도, 전담 통역교사를 붙여준다. 다만, 한국어처럼 전공자를 찾기 힘든 언어에 대해서는 영어 교사를 붙여준다. 외국인 학생들이 언어 때문에 겪는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배려다.

이 같은 '배려'는 스웨덴 교육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학교에 외국인이 한 명뿐이어도 배려하고, 장애인이 한 명뿐이어도 배려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낭비 아닐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스웨덴 사회의 강력한 평등주의가 자칫 획일화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남과 다른 개인의 특징이 무시당하지 않도록 어린 시절부터 잘 배려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등'을 포기하니 모든 게 쉬워졌다"…두 번째 키워드, '협동'

스웨덴 교육을 이해하는 두 번째 키워드는 '협동'이다. 하영이가 전한 이야기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옮겼다. '경쟁'을 경계하고 '협동'을 장려하는 태도가 잘 드러난 대목이다.

"스웨덴 학교에서는 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과제를 내주곤 한다. 똑같은 도형 위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점자판에 선을 이어 여러 가지 특이한 모양을 만드는 것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우리는 자주 모둠을 만들어서 함께 과제를 해결한다. 스웨덴어나 수학 같은 과목도 마찬가지다.

문화와 언어가 각각 다른 나라에서 오다 보니 처음에는 자주 다툼이 생겼다.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할 수 없는 친구들은 답답해하며 난리를 치다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기도 했다. 스웨덴어를 그럭저럭 하는 나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나는 세련되고 신속한 방법으로 모둠을 이끌어나가려 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아예 관심이 없거나 아주 느리고 비효율적인 방법을 택했다. 결국 내가 모든 일을 단숨에 해치우면 다른 아이들이 답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래도 나는 상관없었다. 그것이 내가 시도한 수많은 방법들 중에서 가장 빨랐기 때문이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내 행동에 의문이 생겼다. 어째서 나는 모든 친구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려고 했을까? 나는 경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일등이 되어야 하고, 가장 훌륭한 학생이 되어야 하고, 모둠 활동에서도 다른 아이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었다. 모든 것에서 일등을 해야 하는 '일등 병'이 도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다른 아이들은 나와 경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일등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들을 포기하고 나니 일이 훨씬 쉽게 풀렸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리고, 스웨덴어 때문에 여의치 않다면 다른 친구를 불러와 통역을 부탁했다. 그리고 서로 의논해서 어떻게 하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개성 있는 의견을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그 결과 우리 모두 승자가 됐다.

'우리 모두 똑같이 잘하자'는 스웨덴 학교의 교육 방침은 한국 학생들이나 부모님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발상일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일등이 될 생각이 없으니 나는 쉽게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협동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시도 때도 없이 그와 관련된 과제를 해결해야 했던 것은 일등을 하는 것보다 훨씬 불편하고 어려웠다.

자유로운 공부 환경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스웨덴에 온 것인데, 정작 나는 한국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도록 책상 배치를 한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토론이나 협동 시간이 되면 내가 해야 할 몫을 후다닥 끝내고 구석에서 책을 읽거나 단어를 외우곤 했던 공부 방식이 잘못이었음을 느끼면서 나도 조금씩 스웨덴 학교에 적응해갔다."

▲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

이처럼 '협동'을 강조하는 까닭에, 스웨덴 학교에서는 모둠(팀) 단위로 과제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에게서 두루 나타나는 특징이다. 하영이가 한 이야기다.

"내 그림 고집한 게 '바보짓'이더라"

"사흘가량 쉬는 시간과 협동수업 시간마다 그리고 쓰는 일을 반복했더니 꽤 그럴듯한 작품이 나왔다. 멋진 그림도 있고 간신히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미숙한 그림도 있었다. 그래도 다들 뿌듯한 얼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우리들의 '작품'이니 당연한 일이다.

의외였던 것은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다툼이나 언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너나 구분 없이 공동 작업을 하다 보면 늘 벌어지는 영역 다툼(?)도 생각 외로 적었다. 내 것 네 것 갈라놓고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스케치는 내가 하는데 색칠은 다른 친구가 한다거나, 글자는 내가 쓰고 그림은 다른 친구가 그리는 경우도 있었다.

글도 그림도 다른 사람이 건드리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는 조금 떨떠름했지만 몇 시간 뒤에는 그림의 소유권을 따지는 것이 바보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그림이라고 눈을 부라리지 않아도 이 작품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다른 친구들의 것이기도 했다. 끝까지 그림 하나하나에 깨알 같은 글자로 이름을 써 넣던 내 행동이 부끄러웠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힘을 합쳐 완성한 공동 작품을 복도 벽에 걸었다."


사적 영역에서 누리는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하면서도, 공적 영역에서는 연대를 강조하는 게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특징이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개인들이 심한 충돌을 겪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꾸려갈 수 있는 배경에는, 누구나 학교에서 협동이 몸에 배도록 하는 교육이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냥 재미있으니까"…세 번째 키워드, 몰입

스웨덴 교육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키워드는 '몰입'이다. 환각제를 투입하지 않는 한, 억지로 '몰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푹 젖어드는 '몰입'은 자율적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 이렇게 유도하는 힘은 '즐거움'이다. 공부가 즐거우면, 남이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몰입하게 돼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 내걸었던 '영어 몰입 교육'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하고 지루한 반복 작업으로 이뤄진 외국어 학습에는 자발적으로 몰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것을 정부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몰입'시키겠다고 하는 순간, 교육은 망가진다. 물론,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정상적인 감수성과 사고력을 지닌 어른이 되기 어렵다.

아이들이 즐거워서 스스로 몰입하게 하는 게 정답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교육은 이런 정답에 꽤 다가갔다. 하영이가 전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영어 시간에 내준 숙제는 자기만의 추리소설을 써오라는 것이었다. (…) 영어 선생님인 엘리자베스(하영이를 위해 학교 측이 배치한 통역교사)가 교정을 해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엘리자베스는 매주 월요일에 오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순전히 내 힘으로 이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야 했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떠오른 생각은 이 세상의 모든 추리소설 작가들이 정말 존경스럽다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창작하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더 까다로웠다.

(…) 하지만 3일 동안 추리소설 한 편을 다 쓰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나는 3일 밤낮을 글쓰기에만 매달려야 했다. 마지막 날은 한밤중에 쓰기 시작했는데 다음 날 아침까지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 고통의 결과는 A4용지 27장을 빽빽하게 채운 글이었다. 반쯤 졸면서 첫 수업을 마치고 학교 도서관에서 프린트를 했다. 도서관의 컴퓨터와 복사기는 학교 공부와 관련한 내용이라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드디어 영어 시간이 되었다. 가장 먼저 숙제를 제출한 나에 대한 선생님의 반응은 '참 잘했어요!'였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 나를 빼고는 숙제를 제시간에 제출한 아이가 단 네 명뿐이어서 의아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별로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왠지 열성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린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숙제홀릭'…"나만의 내용, 무엇을 하든 자유롭다"

나의 '숙제홀릭'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 학기의 SO(사회, 역사, 종교 등) 과목은 종교였는데, 시험이 끝나자마자 굉장한 숙제가 주어졌다. 현재 배우고 있는 성경과 유대교에 관해 직접 '나만의 예수의 일생에 관한 책'을 만들라는 것이다. (…) 무엇을 하라는 제한은 없었다.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만 들어가면 두루마리 화장지에다가 숙제를 하건, 100장짜리 논문을 쓰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 나는 스웨덴에 온 이후로 또래 친구들보다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즐거웠다. 선생님들이 스승이라기보다는 친구라는 느낌이 강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학생이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하는 점에서 보면 그것은 확실하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몰두해서 성취감을 느끼도록 배려하는 스웨덴 교육의 특징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생각하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은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교사들의 중요한 목표다. 수업 시간을 너무 길게 잡지 않는 것도 이런 목표에서 나온 배려다. 공부가 지루하다고 느끼면, 큰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지식이 담기느냐보다, 아이들이 지식을 찾아가는 일에 얼마나 재미를 느끼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인 셈이다. "공부는 평생 하는 일이므로, 어릴 때 재미를 잃어버리면 평생 손해"라는 공감대가 견고하다.

"몸과 마음, 머리 쓰는 일이 모두 귀하다"…네 번째 키워드, '균형'

스웨덴 교육에서 키워드를 하나 더 꼽으라면, '균형'이다. 머리뿐 아니라 마음과 몸을 쓰는 일을 두루 중시한다는 뜻이다. 다시 하영이가 전한 이야기.

"한국 학교에서는 예체능 수업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하고 리코더도 곧잘 연주했지만 하모니카, 멜로디언, 리듬악기처럼 몇 번 쓰고 처박아둘 것을 계속 사야 했다. 크레파스와 물감, 붓 같은 것을 들고 다녀야 하고(스웨덴은 학교에서 모든 학용품과 준비물을 챙겨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수깡이며 지점토, 색종이를 계속 사들여야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미술 수업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내 침대 밑에는 언제나 쓰다 남은 미술 재료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선생님들은 툭하면 '과학 상상화'를 그리게 했다. 공상을 하거나 책 읽기는 좋아했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몇 년 동안 똑같은 그림을 색깔과 구성을 조금씩 바꿔서 그려 냈다. (…) 체육 수업 역시 즐겁지만은 않았다. 땡볕에 운동장에 나가서 하는 달리기는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게다가 체육이 다른 수업 중간에 끼어 있어서 모두가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나머지 수업을 듣는 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 스웨덴 학교는 성적을 평가하는 방식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 학교를 졸업하려면 스웨덴어, 영어, 수학은 반드시 기본 점수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어 점수가 미술 점수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점수도 MVG(매우 훌륭함), VG(훌륭함), G(보통 수준), IG(부족함) 네 가지밖에 없다. 즉, 수학을 MVG를 맞건 체육을 MVG를 맞건 계산되는 점수는 똑같다. (…) 다른 과목 성적을 유지하기도 바쁘니 예체능은 그냥 살살 넘기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 처음 엘레인과 미술실을 방문했을 때 나는 조금 황당했다. 상당히 넓은 교실 곳곳에 물감이며 지점토, 심지어 도자기 물레까지 구비되어 있었지만 정작 학생들은 교실이 아니라 복도 한쪽 구석에 종이를 깔아놓고 그림에 색을 입히고 있었다. 확대 출력한 명화를 옆에 두고 눈금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모작을 하나 했는데 웬걸? 완성된 작품을 보니 모작이 아니라 창작이었다.

(…) 우습게도 창작 모나리자들은 눈썹 없는 미녀가 아니라 눈썹 없는 호머 심슨이 되어 있었고, 그 외에도 펑크족 모나리자나 불타오르는 모나리자 등 하나같이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그림들이 미술실 주변 복도에 빼곡히 걸려 있었다.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한 모나리자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보면 기겁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과학 상상화'라고 그린 열댓 장의 똑같은 그림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어 보였다.


어지간한 집수리는 직접 하는 사회…망치질을 배우는 수업

(…) 안쪽을 흘깃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목공실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그 모든 연장들이 대충 시간만 때우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망치로 못을 박고 톱질을 하면서 다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는 나에게는 손가락이 생명이기 때문에 목공 수업을 받아야 할지 정말 고민스러웠다.


(…) 스웨덴에서 목공이나 기술 같은 과목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곳은 인건비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만큼 비싸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변기가 막히거나 하수도 파이프가 막혀 사람을 부르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나 개인 주택에 사는 사람이나 어지간한 집수리를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

(…) 이처럼 자기가 모든 것을 고쳐야 하는 나라에서 목공과 재봉 수업은 실질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그런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인지 옷 수선 같은 것을 해주는 가게는 좀처럼 찾을 수가 없다. 아빠는 처음 스웨덴 출장을 왔을 때, 양복 단추가 떨어져서 스톡홀름 시내를 다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스웨덴은 전등 하나부터 심지어는 변기나 욕조까지 자신이 직접 설치하고 꾸미는 집이 정말 많다."


"땀 흘리는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는 학교에서부터"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같은 대접을 받는 사회는 학교에서부터 싹이 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이라면, '하영이는 어쩌면 이렇게 이야기를 잘 할까' 싶을 게다. 하지만 이 글에 소개된 내용은 하영이가 전한 이야기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나머지 이야기를 들으려면,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를 펼치면 된다.
스웨덴 등 북유럽 사회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한국 교육과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지나친 경쟁과 줄 세우기를 낳는 한국 교육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북유럽 교육에 대한 관심은 달아오를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에 실린 북유럽 교육 관련 기사 가운데,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과 함께 읽으면 좋을만한 것을 한데 모았다. <편집자>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 핀란드 교육 관련 인터뷰

국제학력평가 1위, 핀란드의 비결은?
"경쟁? 100m 달리기 할 때만 들어본 단어입니다"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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