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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를 강요하는 세상…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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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여자'를 강요하는 세상…당신은?"

[철학자의 서재] <김신명숙의 선택>

<프레시안>은 창간 7주년을 맞아 특별한 연재를 선보인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공동으로 진행할 이 연재는 바로 '철학자의 서재'이다.

매주 금요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한다. 이 연재를 통해 독자들의 책 고르는 안목이 더욱 깊고 넓어지리라 기대한다. <편집자>


왜 '선택'인가

뒤늦은 호들갑인양 며칠 전 '알파걸'(<SBS 스페셜>, 2008년 10월 21일)이 방영되었다. 이미 김신명숙이 <김신명숙의 선택> 책머리에서 언급한 바대로, 알파걸이란 "학업과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자를 앞서는 것"을 의미한다.

방송에서 언급했듯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여학생들이 남학생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이거나 전교회장이나 반장이 여학생인 경우는 이제 더 이상 화젯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여자아이들 등쌀에 남자 아이들이 기를 못 편다는 부모들의 하소연까지 나올 정도라니, 정말 이렇게 '여풍'이 거세지다가는 세상 뒤집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김신명숙은 알파 걸들이 알파 우먼으로 향하는 행로에는 가부장제라는 오래된 미로가 놓여있다고 강조한다. <선택>이 줄곧 겨냥하는 핵심이자 극복해야 할 근본적 장애가 바로 가부장제다. 말하자면 "한국 여자들의 삶을 규정짓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김신명숙은 이 책에서 여성들이 이 땅에서 겪어왔고, 겪고 있는 가부장적 질곡의 외화된 형태들을 아주 구체적인 예화를 시작으로 친절하게 풀어 나가고 있다. 저자의 방법은 제목에서부터 격렬함을 보여 주었던 <미스코리아 대회를 폭파하라>식이 아니라, 거의 모든 페미니즘의 시각을 동원해서 문제를 진단하고, 절절히 가슴에 와 닿게 하는 사랑의 메시지를 통해 '여성적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연대적 실천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 책은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들은 익히 우리가 접하고 있거나 고민해본 경험들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현재에도 우리들에게 유효한 만큼 저자가 예시한 문제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실존적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선택'은 가부장제에 의해 길들여지길 거부하고 주체적인 당당한 여성인 "나쁜 여자"가 되는 길이다.

아직도 '가부장제'인가
▲ <김신명숙의 선택>(김신명숙 지음, 이프 펴냄) ⓒ프레시안

왜 나쁜 여자이어야 하는가? 가까이는 우리가 접하는 언어로부터 자본주의적 기제까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여자의 일생'이 나쁜 여자이게끔 한다. 저자가 잘못된 언어 이데올로기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의식을 담는 그릇이다. 잘못된 언어는 선입견이나 편견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예쁘지도 않은 게' 자기주장만 하는 "드센 여자"라는 말에는 이미 한국 사회의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나 관념이 담겨 있다. 방송도 얼짱, 몸짱, S라인 등의 유행어를 서슴지 않고 만들어 냄으로써 "외모가 권력이자 재능"이라는 '미의 신화'를 재생산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가장, 주부(주인의 아내), 집사람, 내조, 친가, 외가, 미망인, 윤락녀 등."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적 대중 매체가 생산한 가부장제의 신화 속에 살고 있다. 신화는 편견의 사회가 만들어 낸 '동굴'이자 '우상'이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에서 보듯이, 우리가 사는 일상은 대중 매체에 의해 여론이 조작되기도 하며, 현자와 어리석은 자가 뒤바뀌는 곳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주객이 전도되고 허위와 가식이 진리를 지배한다는 비유이다. 동굴이란 다름 아닌 한국 사회의 전통적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이자 성차별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갈등은 다중적이고 다양하게 얽혀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여성의 갈등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가족'을 둘러싼 가부장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가부장제 가족은 전통윤리에서 시민사회로의 이행과 더불어 서양근대초기의 핵가족의 성격을 보이면서도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부계 중심 대가족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따로 핵가족을 꾸리더라도 며느리로서 '시가'와 맺는 관계는 엄연하게 끊임없이 차별적이고 종속적인 관계로 지속된다. 한국사회의 명절 풍습은 이러한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남자는 제사를 모실 몸이므로 깨끗한 양복에 멋진 넥타이핀까지 꽂았다. 아기도 꼬까옷을 입고 예쁜 모자까지 썼다. 그러나 여자는 낡은 티셔츠와 물 빠진 청바지를 꺼내 입는다. 여자는 시댁에 '오직 일하러'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시집에 도착해 현관을 들어서면 여자는 시어머니 얼굴에서 '왜 이제 오냐'는 뚱한 표정을 읽는다. 시어머니는 손주를 덥석 안아 간다. 여자가 아이를 업고 오는 동안 이마에 흐른 땀을 닦기도 전에 '올케, 튀김 해야지'하고 친정에서 사는 손위 시누이가 인사를 대신해 부엌으로 호출한다." (주부 이연경 씨의 '명절 일기', <우리 시대의 결혼 이야기> 중)

문제는 여성의 자기 정체성이 여성 자신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성이 주체로 서기 힘든 것은 우리 사회의 권력 관계 때문이다. 권력 관계의 핵심은 근대적 가부장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고부갈등, 동서갈등, 양가 가족(가문)간의 갈등이 부부 중심인 핵가족과 함께 지속되고 있다. 즉 우리 사회는 근대로의 진행 여부와 무관하게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가족 이데올로기가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전근대와 근대, 탈근/현대가 3중으로 중첩되어 있는 '삼겹살문화'에서는 여전히 가족 내의 여성에 대한 시선이 타자의 입장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삼종지도나 출가외인 등의 규범이 정도는 차이는 있지만 암암리에 가족의 권력 구조에 영향을 준다. 가부장제적 문화의 유산은 그 문화 안에서의 구성원간의 권력의 서열 구조를 유지하게 한다. 시가의 어린 도련님에게는 공대를 요구하고 처남에게는 반말이 허용되듯이 대부분의 고부 관계는 경직된 관계를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서열의 권력관계는 고부관계를 역할 위주의 관계로만 보기 때문에 며느리를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으로 볼 수 있는 관계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즉 시어머니로부터의 며느리에 대한 '소외' 현상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선택>에서 보여 준 구체적인 여성들의 경험들을 통해서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성과 인간성이 양립하기 힘든 구조적 이유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여성은 타자의 시선, 즉 권력 아래 놓여 있고 그로 인해 여성으로만 대접받기 일쑤다. 여성은 가족과 법, 제도 그리고 문화 등에서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저자는 여성이 어떻게 통제 받는 성이 아니라 자유로운 성을 누리는 성적 주체로서 스스로 자신의 성 경험에 대해 당당할 수 있을까, 어떻게 '백마 탄 환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주부의 가사노동은 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가, 차별고용 차별임금을 어떻게 형평하게 바꿀 수 있을까 등을 실제와 더불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필자가 보기에 <선택>에는 다양한 페미니즘의 갈래가 제시되고 있지만, 저자는 특히 한국사회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착종되어 있는 사회로 규정하고 있고 대안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여성들이 숙명적으로 대결해야 하는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성격과 골 깊은 가부장제에 대해 여성들의 실존적 '선택'과 '결단'을 넘어 여성들끼리 여성의 시각으로 재정립하는 '사회적 연대'를 희망한다. <선택>은 말한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조직하세요!(Don't agonize. Organize!)" "서로가 서로의 지지자가 되는 서포트 그룹(support group)을 만드세요."

혹자가 제기하듯이 여성들만의 '선택'인가?

"세상에 여자만의 문제란 없거나 지극히 적다. 여성이란 말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남성이 있어서이고 따라서 여성의 문제란 언제나 남성과 관련된 문제를 뜻한다. 그런데 상대인 남성을 적대 개념으로 다루고 방법을 투쟁만으로 일관한다면 너희 선택의 폭은 너무 좁고 비극적이 된다. (…) 그런데 내게는 그 <여성의 자기 성취>란 말과 거기 따른 논의처럼 애매하고 수상쩍은 것도 없다. 그리고 수상쩍은 것은 그 애매한 논의로 여성을 충동질하는 저의이다" (이문열, <선택> 중)

이문열이 '선택'을 구상한 의도는 "우리의 삶에 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역사 속에서 발굴해 내는 데 있었다." 주인공 장씨(張氏) 부인은 글과 예(藝)에 재주가 있으나 오히려 집안 살림을 선택하고 '가문'을 선택한 400년 전의 실존 인물이다. 물론 장씨 부인의 입을 통해서 비유적으로 현재를 비판하려 했지만,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 이문열 자신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너희 논객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자기의 일을 가져라. 자아를 되찾아라.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벗어나라. 가정에서 해방되라. 그런데 내게는 그런 권유들이 마치 자기 성취를 원하는 여성에게는 가정은 감옥이고 남편은 폭군이며 아이들을 족쇄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현모양처란 무능과 불행의 다른 이름이고 내조와 양육은 허송세월의 동의어인 듯하다." (이문열, <선택> 중)

이문열의 지적처럼 여성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다. 다만 인간 속에 '여성'이 빠져 있는 가부장제가 문제인 것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현재의 여성의 권리는 놀랄 만치 급신장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선택>에서 페미니즘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정치적 상상력'"일 뿐더러, "미래의 성차별 없는 세상에서 온 사람의 눈으로 현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결국 페미니즘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사회의 재편성"이면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두 주체로 만나 진실로 교감하며 사랑할 수 있도록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운동"이기도 하다.

남는 문제

여성 문제는 논의의 정합성 이전에 구체적 현실이다. 아직도 '아들딸을 골라 낳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임신법이 판치고 있고, 자신은 여성이면서도 정작 이 사회를 살아야 할 딸(여성)들의 앞날을 걱정스레 예측해 보고, 여성이 여성(딸)을 낙태하고, 여성이 남성(아들)을 선택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동굴'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느새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지배에 익숙해지고, 타자로서 익숙해진 구조에서 '가족'이라는 명분 아래 집단 이기주의를 노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더욱 소외되고, 물화되고 주변화 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전략대로 페미니즘이 더 이상 '여성'이라는 단일한 범주에 집착하지 말며 계급, 인종, 민족, 연령 등에 따른 불평등과 다양한 문화적 차이 속에서의 갈등에 주목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봉건성과 불완전한 근대성이 압도적인 한국 상황에서 '여성' 범주의 정치적 의미는 저항의 강력한 토대라고 할 수 있다. 푸코의 지적대로 본질적인 여성의 범주가 없다는 논의가 쟁점이 되겠지만, 여전히 한국 상황은 여성임을 인정하게 하는 사회적·정치적 기제가 깔려 있다. 이제까지 역사에서 여성은 타자로서 주변에 머물러왔다. 여성 문제는 은유나 추상성으로 대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결국 계급, 인종, 민족의 관점을 놓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보편으로서의 여성(인간)을 도출할 것인가가 실천적인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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