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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더 강력한 차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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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더 강력한 차별이 필요하다"

[핀란드 교육 인터뷰ㆍ①] 요우니 봘리예르비 교수

핀란드 교육에도 경쟁은 있다. 9년제 종합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진학할 수 있다. 이런 선택 과정에서 경쟁이 생긴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가 구분되기 때문이다.

'평등과 협동을 그토록 강조한다는 핀란드도 별 수 없구나' 싶어진다. 반쯤은 맞는 생각이다. 경쟁이 전혀 없는 사회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경쟁이 서열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핀란드 교육의 장점이 드러난다. 아이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데도, 서열화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비결은 '차별'이다. 인기가 떨어지는 학교에 대해 지원을 집중하는 것. 이런 차별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모든 학교에 똑같이 지원하는 기계적 평등은 결국 서열화로 이어져서, 진정한 평등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핀란드 교육자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핀란드만의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초, 프랑스 미테랑 정부는 "가장 덜 가진 자에게 가장 많이 주자(Donner le plus a ceux qui ont le moins)"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런 구호와 함께 교육여건이 열악한 지역을 교육우선지역(Zone d'Education Prioritaire, ZEP)으로 설정하고 대대적인 지원을 쏟아 부었다. (☞ 관련 기사: "'기여입학제'는 찬성한다면서…")

보수 진영은 이런 정책이 부유층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냐며 반발했다. 하지만, 당시 미테랑 정부는 "차별은 필요하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인 차별'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응수했다. '덜 가진 자'보다 '더 많이 가진 자'를 적극적으로 차별하는 정책은 누구에게나 고른 기회를 부여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한 축은 기회의 평등이며, 이미 불평등한 조건이 고착화된 사회에서 평등을 추구하려면 오히려 차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진정한 평등에 다가가려 했던 모든 정부에게서 찾을 수 있는 특징인 셈이다.

안승문 스웨덴 웁살라 대학 객원연구원이 만난 핀란드 교육학자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핀란드 식 교육 체제에서 불평등이 생기기 않도록 하려면 교육 여건이 나쁜 학교에 재정 지원을 집중하는 차별 정책이 필수적이라는 것.

다음은 핀란드 이베스킬레 대학 요우니 봘리예르비(Jouni Valijarvi) 교수와 안 연구원이 진행한 인터뷰 전문이다. 이 대학은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270Km 떨어진 이베스킬레(Jyvaskyla) 시에 있는 교사대학이다. <편집자>

"뛰어난 학생보다 가장 약한 학생을 지원하는 것"

- 핀란드 교육 시스템에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핀란드 교육 모델이 갖는 핵심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통합 교육이다. 핀란드에서는 종합학교(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합친 과정) 전 과정에서 능력별 과정을 개설하는 게 금지돼 있다. 당연히, 능력별 학급 편성도 금지돼 있다.

모든 학생에게 균일한 기초교육을 하는 것, 모든 학생들이 혼합 능력 집단 안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은 질 높은 교육이 이뤄지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학습능력이 유독 떨어지는 아이나,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 역시 다른 아이들과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을 이른 나이에 찾아내서 정규 학습 활동 속에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신체적 복지에 대한 강조를 들 수 있다.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 학교가 세밀하게 챙긴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무료 급식은 필수 조건이다."
▲ 요우니 봘리예르비(Jouni Välijärvi) 이베스킬레(Jyväskylä) 대학 교수. ⓒ안승문

- 핀란드 모델의 교육이 지향하는 핵심 가치와 원리를 꼽는다면.

"'뛰어난 학생보다 가장 약한 학생을 지원하는 것'을 들 수 있다. 핀란드 교육에서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평등과 형평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힌다.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평등'이란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다른 수준의 교육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도시건, 농촌이건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런 평등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차별'이 필수적이다. 외딴 곳에 있는 학교에서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려면, 기계적 평등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외딴 곳에 있는 학교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평등 교육을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인 예산 차별을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게 교사에 대한 투자다. 핀란드에서는 교사에게 석사 이상의 학위를 요구한다. 또 아이들에게도 기본적인 읽기와 수리 능력을 다른 북유럽 국가에 비해 더 강조하는 편이다."

"어느 아이의 재능이건 버릴 게 없다"

- 핀란드 교육이 가진 장점에 주목하는 이들은 협동을 중시하는 핀란드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궁금해한다.

"북유럽 모델의 성공은 노동자, 농민의 힘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핀란드 노동자와 농민은 20세기 초부터 교육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일종의 문화적 특징이다. 교사를 존중하는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북유럽 모델이 안정화되면서 평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됐다. 이와 함께 노동자, 농민 사이에서 평등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1970년대 들어 통합 교육 원리에 따른 개혁이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당시, 다양한 유형의 학교를 모두를 위한 종합학교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상당한 갈등이 있었다. 여러 집단 사이에서 폭넓은 정치적 의견 교환이 있었다. 학문적 지향을 강조하는 학교 소속 교사들이 포함된 노동조합이 거센 반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핀란드 학교가 '모두를 위한 종합학교'로 거듭나야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이런 합의가 이뤄진 배경에는 핀란드처럼 자원이 부족한 작은 나라가 성공하려면 어느 아이의 재능이건 잃어버릴 여유가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모든 아이의 재능이 다 소중하므로, 모든 재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열화 없는 분권화' 이루려면, '재정 차별 정책'이 필수적"

- 평등 교육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런데 핀란드 사회는 지방 자치가 활발하다고 알려져 있다. 지방 자치를 통해 분권화가 이뤄진 것은 민주주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또 지역 특성에 어울리는 교육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분권화가 자칫 지역마다 교육 재정과 질의 차이를 낳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핀란드 사회는 이런 문제를 겪지 않는가?

"그래서 필요한 게 차별이다. 어려운 지역에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재정 차별 정책'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분권화가 지역간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힘들다."

- 정당마다 교육정책이 다를텐데, 이런 차이가 문제를 낳는 경우는 없나.

"핀란드에서는 정당마다 교육 정책의 차이가 크지 않은 편이다. 핀란드식 교육 제도의 장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내는 의견을 정치인들이 경청하는 편이다. 그래서 교육 정책을 둘러싼 정당 간 갈등은 적은 편이다."

- 핀란드 정부와 의회는 교육과 관련해 최근 어떤 의제를 논의하고 있나.

"최근들어 남부 해안 지방에 있는 도시로 이주하는 인구가 크게 늘었다. 인구가 자꾸 한쪽에 쏠리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질 높은 교육을 하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과제다.

또 사회 일각에서는 세금을 줄이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게다가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사회 보장과 건강 관리를 위해 필요한 예산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교육 예산에 대한 압박을 낳는다. 교육 관련 예산을 합리적으로 마련할 방안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약한 아이 괴롭히는 일 없애는 게 가장 큰 프로젝트"

- 핀란드는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교육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핀란드 정부는 제도 개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몇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996년 LUMA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아이들이 수학, 과학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1990년대 들어 핀란드 정부가 수학, 과학 교육을 강조한 것과 맞물린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정부는 수학, 과학 교사를 위한 연수에 주로 예산을 썼다.

그리고 꼽을 수 있는 게 남학생들이 책 읽기에 흥미를 붙이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교육당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핀란드 남학생과 여학생은 독서 경향에서 심한 차이를 갖고 있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 비해 책 읽기에 대한 흥미가 매우 낮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현재 진행 중인 가장 큰 프로젝트는 약한 아이에 대한 괴롭힘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핀란드 학교에서도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정부가 쓸 수 있는 최대 규모 예산을 동원했다."

"인기의 차이는 있어도, 교육의 질은 차이가 없다"

- 핀란드에서는 종합학교 마지막 학년인 9학년만 국가 단위 시험을 치른다. 이 외에는 국가 단위 시험이 없다. 종합학교 9학년 때 치르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 궁금하다.

"국가교육청에 의한 전국적인 학습결과 평가는 대개 오직 종합학교 마지막 학년인 9학년에 대해서만 국가 수준 평가가 이루어진다. 해당 과목 전문가 집단, 국가 교육청과 종합학교 및 대학에 소속된 이들이 팀을 구성해서 문제를 출제한다. 평가 결과는 주로 교수법 연구를 위해 사용한다."

-핀란드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진학한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더 좋은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의 구분이 있나?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의 구분이 있다. 따라서 경쟁도 있다. 하지만, 인기의 차이일 뿐이다. 교육의 질은 거의 차이가 없다. 교육 여건이 나쁜 학교에 적극적인 지원을 해서 균형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기의 차이 역시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 글은 월간 <우리교육> 2008년 10월호에 실린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 북유럽 교육 관련 기사 모음

<프레시안>은 북유럽 교육에 관한 기사를 여러 차례 소개했다. 이번 기고와 함께 읽으면 좋을만한 기사를 한데 모았다. <편집자>
○ 핀란드 교육 관련 인터뷰

"차별, 더 강력한 차별이 필요하다"
국제학력평가 1위, 핀란드의 비결은?
"경쟁? 100m 달리기 할 때만 들어본 단어입니다"

○ 핀란드 교육 탐방

"세금 많아서 자랑스럽다"…"튼튼한 복지는 좋은 교육의 조건"
"협동·배려·여유 vs 경쟁·욕심·긴장"
"부모 잘 만나야 우등생 되는 사회…벗어나려면"
"멀리 봐야 희망을 찾는다"

○ 스웨덴 학교 이야기

"일등을 포기한 학교에서, 더 많이 배웠다"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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