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멀리 봐야 희망을 찾는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멀리 봐야 희망을 찾는다"

[핀란드 교육 탐방ㆍ④] 핀란드 미래위원회에서 배울 점

얼핏 복잡해 보이는 문제도, 긴 시야로 보면 명료해지는 경우가 많다. 사교육 문제도 그렇다. 아이에게 지나친 사교육을 강요하면, 당장 점수를 올리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어른이 된 뒤"에 대해 생각하면 판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평생 과외선생을 붙여줄 수는 없다.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우지 못한 아이가 어른이 됐을 때,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허약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렇게 자란 이들이 단지 시험을 좀 잘 쳤다는 이유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아지면, 사회 전체가 부실해진다. 정부가 강조하는 '지식 기반 사회'와는 영영 멀어지게 된다. (☞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경쟁을 너무 강조하는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끼리 경쟁시키면, 당장 치르는 시험에서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역시 "아이가 어른이 된 뒤"에 대해 생각하면, 판단이 달라진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한 사회도,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상대로 경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시험 점수를 높이기 위한 경쟁과 사회에서 이뤄지는 경쟁은 다르다는 뜻이다.

학교 밖 사회에서는 회사끼리 경쟁하고, 정부끼리 경쟁한다. 대신, 같은 조직에 속한 사람끼리는 서로 협력한다. 그래야 조직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점수를 높이는 데만 골몰하느라 남과 협동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이들로 조직이 채워지면, 조직은 경쟁력을 잃는다. (☞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실제로 하는 이야기다. 유명 대학 졸업장, 높은 영어 점수 등 '스펙'만 뛰어난 신입사원을 뽑았더니, 조직에 별 도움이 안 되더라는 것이다. 이런 사원들은 외국어 등 몇가지 기능은 뛰어날 수 있어도, '팀워크'에는 미숙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핀란드 정치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실용과 시장 원리를 강조하는 우파조차 '경쟁 대신 협동을 장려하는 교육'을 지지하는 이유다. (☞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하지만, 말끝마다 '실용'을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는 아이들 사이에서 경쟁을 부추기지 못해 안달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멀리 내다보는 시야'가 없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이런 교육을 받고 어른이 되면, 한국 사회는 유지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외면한다는 것.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신경 쓸 뿐, 먼 훗날의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치, 포항제철 기공식에 참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완공된 공장의 하늘을 굴뚝에서 솟구치는 검은 연기로 뒤덮이도록 하자"며 '격려'한 것과 닮았다. 박 전 대통령은 공장의 하늘이 검은 연기로 뒤덮인 뒤 일어날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죽고 난 뒤에나 벌어질 일이라고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 "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이런 점을 생각하면, 한국은 아직 핀란드에서 배워야 할 게 있다. 핀란드 의회에는 '미래위원회'가 있다. 30년 뒤에도 핀란드 사회가 '지속가능'하려면, 지금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연구하는 기구다. 핀란드 사회가 '미래위원회' 보고서에 쏟는 관심은 각별하다. 교육과 환경 보존, 과학기술 연구 등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진 배경이기도 하다.

"핀란드 교육 탐방" 연재 네 번째 글에서 다루는 게 '미래위원회'다. 필자인 안승문 스웨덴 웁살라대학 객원연구원은 이번 글에서 한국 사회 역시 긴 안목으로 교육에 관한 합의를 끌어내는 '희망의 미래를 위한 대화'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편집자>

핀란드 교육을 살피다 보면, 핀란드가 지금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을 상대로 하나의 거대한 교육학적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니 반(反)신자유주의니 하는 기존 패러다임을 훌쩍 뛰어넘어선 교육제도, 인간교육의 철학과 공동체적 상생의 원리,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의에 충실하면서 개인의 학습 선택권을 충실히 보장하고 기업의 요구나 국가 경쟁력의 향상에도 기여하는 교육 패러다임은 어떤 것인지를 실천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실험 말이다.

핀란드의 교육개혁 사례는 무엇보다도, 교육자들의 올바른 관점과 철학이 합리적인 정치와 만날 때 교육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교육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방향과 원칙에 대해 교육계와 정치인과 시민사회 단체가 함께하는 범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성공적인 교육개혁의 필요조건이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핀란드 교육개혁 모델의 성공 요인을 살피면서 한국의 정치인과 교육행정가와 교육자들이 꼭 되새겨 봐야 할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촛불집회에서 "미친 소 반대, 미친 교육 반대"를 외치는 청소년들. 이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프레시안

1) 미래 사회에서 살아갈 아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능력은 '창조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역량'이다. 이런 능력을 키우려면, 교육당국이 먼저 변해야 한다. 탐욕과 이기심에 바탕을 둔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시장 논리를 넘어서는 게 시급하다. 대신, 소통과 협력의 논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육에 관한 철학과 원칙을 회복하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2) 모두에게 차별 없이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도록 돼 있는 게 대한민국 헌법정신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관료들은 이런 정신을 외면하고 있다. 헌법 정신을 구현하려면, 우선 인프라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적절하게 유지하고 학생,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게 필수적이다.

3) 정부는 교사들의 기를 꺾고, 오히려 교사들에게 적대적이었던 교원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대신, 교사들이 교육자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교육적인 권위와 사명감을 가지고 창조적인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방향을 취해야 한다.

4) 황금만능주의를 조장하는 사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직업, 직장, 학력, 정규직 여부 등에 따른 임금 격차의 해소, 비정규직의 축소, 전근대적 학벌주의 철폐, 점수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풍토의 개선 등이 이뤄지지 않는 한, 교육 개혁은 요원한 일이다.

5) 우수한 학생들만 모아 교육시키는 것은 인격 형성에도, 실질적인 학력 증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양한 특성과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질 때 자발적이고 자연스런 학습이 활발해질 수 있다. 학생들 스스로 공부할 과제와 속도를 선택하여 자발적으로 학습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

6)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교육학적 이론과 교수법을 요구한다. 현장 교사들은 이런 이론을 배우고 실천할 의무가 있다. 물론, 정부와 시도 교육청은 교사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지원할 책임이 있다.

7) 창의적인 교육활동이 이뤄지려면, 자율화와 다양화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교육 부문에서 진정한 자율화와 다양화가 이뤄지려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는 게 우선이다. 교육 영역의 민주화는 획일적인 교과서 제도의 유연화, 국가 교육과정의 간소화, 일제고사 등 획일적인 평가의 폐지, 객관식 선다형 평가의 폐지, 교사별 평가의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

8) 교육은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교사 및 교원단체의 힘만으로 문제를 풀려 해서도 안된다. 교육을 바로잡으려면 학생, 학부모,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계층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서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9) 교육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려면 교사, 교육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사, 교육학자들은 사회 각 부문과 여야 정치권에게 설득력 있는 교육 개혁정책과 실행 프로그램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정책과 프로그램이 단순한 경제 논리나 정치 논리에 갇히지 않고, 인간 존중과 교육적 배려에서 출발하면서도 시대적 사회적인 요구와 필요를 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10) 우리 교육은 몇 가지 정책 수단을 통해 2~3년 만에 정상화될 수 없다. 10년, 20년을 내다보는 긴 시야가 필요하다. 미래지향적 안목을 가지고 한국 교육을 어떻게 발전시켜 가야 할지에 대한 비전을 함께 만들고 그것을 실현시킬 일련의 정책 프로그램이 개발될 때 성공적인 교육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

"희망의 미래를 위한 대화를 꿈꾸며…"
▲ 마르야 요한나 티우라(Marja Johanna Tiura) 핀란드 미래위원장. 1993년 핀란드 의회 안에 설치된 미래위원회(The Committee for the Future)는 다른 나라에 없는 핀란드 고유의 기구다. 핀란드 사회가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의제를 발굴하는 역할을 한다. 교육, 과학기술, 환경 등을 주로 다룬다.

핀란드 의회에는 독특한 상임위원회가 있다. 미래위원회(위원장 마르야 요한나 티우라, Marja Johanna Tiura)다. 4년 임기의 핀란드 정부는 임기 중 적어도 1회 이상, 15년 후의 국가발전 방향과 트렌드를 예측한 국가미래보고서에 중장기 국정과제와 해결 방안을 담아 국회와 국민에게 보고해야 한다. 의회는 이를 검토하고 평가하여 더 다듬어진 최종 보고서를 완성한다. 이 과정을 책임지는 게 미래위원회다.

핀란드가 도입한 미래위원회와 국가 미래보고서 제도는 이 나라가 얼마나 긴 시야를 갖고 국가를 운영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교육은 핀란드 미래위원회가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얽히고설킨 우리 교육문제도 눈앞의 현안에 대한 찬반 논란이나 온갖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10년이나 15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좀 더 '큰 논의'를 해 볼 수는 없을까.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 허심탄회하게 둘러 앉아 각자의 요구와 저마다의 처방전을 털어놓고 조건 없이 얘기를 시작해볼 수는 없을까.

교사들과 교육전문가들이 교육개혁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초안을 잡고,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은 교육단체나 시민사회 단체들과 조율하고 의견을 반영하여 1차로 보완하고, 교과부 등 정부 당국자들이나 시도 교육감과 교육위원들, 시장 도지사와 시도의원들과 협의하여 가다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여야 정치인들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조율하여 마침내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교육에 대한 큰 협약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대립'과 '비난'과 '갈등'의 소모적인 역사를 청산하고 '대화'와 '소통'과 '협력'의 미학이 우리 교육의 미래를 여는 데 힘을 발휘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핀란드 교육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관건은 바로 핀란드 교육이 가야 할 큰 개혁의 방향과 원칙에 대해 핀란드 교육자들과 핀란드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크게 합의할 수 있었던 것이라던 에르끼 아호(前 핀란드 국가 교육청장. 전직 교사이며 대학에서 교육심리학을 연구하기도 했던 그는 1972년부터 1991년까지 핀란드 국가 교육청장을 지내면서, 핀란드 교육 개혁을 주도했다.)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핀란드에도 교육개혁에 대한 견해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이 있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커다란 공감과 합의를 만들어낸 것이 성공적인 개혁의 열쇠였다고 강조하던 에르끼 아호의 체험담처럼,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들도, 갖가지 이해관계와 입장 차이를 뛰어넘는 허심탄회한 대화와 통 큰 합의를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은 월간 <우리교육> 2008년 10월호에 실린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 북유럽 교육 관련 기사 모음

<프레시안>은 북유럽 교육에 관한 기사를 여러 차례 소개했다. 이번 기고와 함께 읽으면 좋을만한 기사를 한데 모았다. <편집자>
○ 핀란드 교육 탐방

"세금 많아서 자랑스럽다"…"튼튼한 복지는 좋은 교육의 조건"
"협동·배려·여유 vs 경쟁·욕심·긴장"
"부모 잘 만나야 우등생 되는 사회…벗어나려면"
"멀리 봐야 희망을 찾는다"

○ 핀란드 교육 관련 인터뷰

국제학력평가 1위, 핀란드의 비결은?
"경쟁? 100m 달리기 할 때만 들어본 단어입니다"

○ 스웨덴 학교 이야기

"일등을 포기한 학교에서, 더 많이 배웠다"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 "덴마크에서 살아보니"

- 직업과 학벌에 따른 차별이 없다

"명문대? 우리 애가 대학에 갈까봐 걱정"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덴마크도 40년 전에는 '서열 의식'이 견고했다"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 '암기가 아닌 창의, 통제가 아닌 자율'을 장려하는 교육

"아이들은 숲 속에서 뛰노는 게 원칙"
"노는 게 공부다"
"충분히 놀아야 다부진 어른으로 자란다"
1등도, 꼴찌도 없는 교실
"왜?"라는 물음에 익숙한 사회
"19살 넘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다"

- "아기 돌보기, 사회가 책임진다"

"출산율? 왜 떨어집니까"
"직장인의 육아? 걱정 없어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