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두달 새 주식 5조 투자…연기금을 어찌할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두달 새 주식 5조 투자…연기금을 어찌할까

"정부 압력 배제할 수 있도록 조직 개편해야"

연기금이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위기설이 처음 불거진 지난 달 이후 부쩍 공격적인 매수행보를 보이며 매물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추세다.

시장 참여자 상당수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연기금이 주가를 떠받쳐줘 한국 증시의 급락을 막았다는 얘기다. 우량주를 쌀 때 사들인 만큼 향후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연기금이 안정성은 외면한 채 불확실성에 투자해 손실이 계속될 경우, 국민들 입장에서는 노후자금이 증발할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안정성이 무엇보다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볼때 최근 연기금의 공격적 투자는 정부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소리마저 나온다. 다음 달 중순으로 예정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에서 연기금의 운용 방향과 독립성 강화 요구가 드세질 전망이다.

두 달 새 연기금 순매수 규모 5조1900억 원

28일 코스피지수는 오랜만에 큰 폭으로 반등, 999.16으로 장을 마감했다. 일본 니케이지수가 6.41% 폭등하는 등 아시아 주요 증시 동반 상승의 영향을 등에 업었다.

그런데 이날 시장의 상당수 투자주체는 매도 기조를 유지했다. 개인과 외국인은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다. 프로그램도 4000억 원이 넘게 매도우위를 보였다. 기관만이 3000억 원이 넘는 주식을 사들였다. 이 중 연기금의 순매수 규모는 1642억 원이었다.

위기설이 처음 불거진 지난 달 이후 연기금은 하마처럼 주식을 집어삼키고 있다. 지난 달 1일부터 이날까지 연기금의 순매수 규모는 무려 5조1900억 원에 달한다. 10월 한 달 새 시장에 쏟아 부은 돈만 2조296억 원이다. 연기금 매수자금 중 국민연금의 규모는 절대적으로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연기금에는 국민연금기금 외에도 사학연금기금, 공무원연금기금 등이 포함된다. 국민연금 납부자가 1800만 명으로 가장 많다.

연기금은 투자자금 대부분을 시가총액 1조 원이 넘는 우량주를 사들이는 데 쓰고 있다. 이는 코스피가 '이해할 수 없는 반등'을 한 지난 27일 시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9포인트 가량 상승했다.

그런데 상승장임에도 하한가 207개를 포함해 710종목이 하락했다. 상승한 종목은 164개에 불과했다. 연기금이 집중 매집한 삼성전자, POSCO, 한국전력 등이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단순히 지수 움직임만을 좇아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는 연기금의 투입에 따른 '착시현상' 때문에 손해를 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연기금의 이와 같은 주식 집중 매수가 장기적으로 봐서는 현명한 투자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주가가 많이 하락한 지금이 오히려 수익률을 높일 기회인 것 아니냐는 말이다.

김중현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위원은 "지금이 투자할 상황이라고 연기금이 판단한 것 아니겠나. 어차피 주식투자라는 게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니만큼 투자 타이밍을 두고 뭐라 하긴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고강석 대구대 보험금융학과 교수는 "연기금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서 지금이 매수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본다. 이른바 '바닥론'이 확산되면서 연기금 투자액의 평가손실을 두고 말이 많지만 길게 봐서는 어느 정도 저점에 이른 지금 상황에 주식을 매집하는 게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라고 했다.

연금운용의 책임을 지고 있는 보건복지가족부와 국민연금공단에서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설명이다. 당초 계획대로 투자가 진행된다는 뜻이다.

복지부 연금재정과 관계자는 "올해 연기금의 주식투자 목표비중이 국내주식의 경우 17±5% 수준이다. 워낙 시장이 안 좋아 목표비중을 12% 정도에 맞췄다. 이번 달 투자를 포함하면 11~12%정도 된다"고 말했다. 무리한 투자가 아니었고 당초 계획대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 23일 발표한 '2008년 국민연금기금 자산별 목표 비중 변경'안. 해외주식과 해외채권 투자는 앞으로 줄어들지만 국내주식 비주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프레시안

이미 주식투자로 8조 원을 까먹었는데…

그런데 단순히 손실규모는 생각지 않고 목표치를 맞추는 데만 급급한 게 과연 현명한 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국민연금의 국민의 미래 재산인데 이를 잘 관리해야 할 복지부가 당장 발생하는 손실을 외면만 하기에는 그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의 국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국민연금의 주식부문 평가손실액은 8조4812억 원에 달한다. 그나마 주가가 본격적으로 내리막을 걸은 9월과 10월분은 포함되지도 않은 수치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국민연금 전체 자산 228조4000억 원 중 주식부문 운용액은 37조7000억 원이다.이 중 국내주식에 직접 투자한 돈은 13조2000억 원이며 위탁운용사에 맡긴 간접투자금액은 15조5000억 원으로 국내주식 총 투자액은 28조7000억 원이다. 전체 자산의 12.6%가량이다. 해외투자 부문도 9조8000억 원에 달한다.
▲박해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주식투자 비중을 더욱 늘릴 것"이라는 나름의 '소신발언'을 했다. ⓒ뉴시스

손실이 커지자 복지부는 앞으로 해외 주식투자를 줄이고 안전자산인 채권투자를 늘리겠다고 지난 23일 발표했다. 하지만 새 계획안에도 국내주식 투자 비중은 17%로 전과 다름이 없었다.

도리어 박해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앞으로 10조 원 정도를 주식에 투자하겠다고 말하는 등 국내주식 투자를 줄일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보였다. 최근 두 달간 약 5조 원이 증시에 추가로 투입된 점을 감안하면 연금이 아직도 5조 원 정도는 더 증시에 풀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키움증권은 지난 24일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이 매수하는 주식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오는 2012년까지는 국내 주식투자 비중을 40%까지 늘리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정부 압력 작용했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평가손실이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연금 운용 철학을 바꿔야 한다는 주문은 이래서 나온다. 국민의 미래 재산을 함부로 굴려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연기금 운용에 대한 정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기금이 워낙 미묘한 시점에 과감히 움직인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 주가가 급락해 1400선이 위협받던 지난 달 1일 홍영만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은 "직접적 언급은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 맞지만 원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수익률을 높여야 할 국민연금으로서는 저가매수를 해야만 수익을 많이 낼 수 있고, 지금이 저가매수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있은 바로 다음 날 연기금은 시장에 4300억 원을 한꺼번에 쏟아 부었다. 연기금의 주가관리는 이 후로 본격화됐다. 11일에는 약 5500억 원을 풀어 1400선을 다시금 지켜냈고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1400선이 무너진 16일에도 3000억 원이 넘는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7일 국회의사당에서 '희망'에 대해 얘기한 날에도 주가 움직임은 심상찮았다. 장은 오후 들어서도 급락 기조를 이어갔다. 하지만 막판 연기금이 집중적으로 주식을 매집하면서 아시아 주요국 증시 중 한국 증시만 반등했다. ⓒ뉴시스

10월 들어서도 이와 같은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주가 1000선이 무너져 충격이 컸던 지난 24일에도 연기금은 약 3600억 원을 순매수했다. '정치 논란'이 절정에 달한 것은 27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국회 시정연설에서 '신뢰 회복'을 외치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과감히 낮췄음에도 주가는 급락움직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장 마감 한 시간을 남긴 동안에만 연기금은 약 5400억 원을 집중 투입해 주가를 반등시켰다. 충분히 청와대의 압력 의혹이 생길만한 상황이었다. 9월과 10월 두 달 새 연기금이 순매도 기조를 보인 날은 불과 사흘뿐이며 매도금액도 채 1000억 원이 안 된다.

이 문제를 국감에서 집중 제기한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누가 봐도 정부의 압력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기금이 내 돈도 아닌 '국민의 돈'을 주가 1400선을 지키기 위해 9월 한 달 새에만 2조 원을 쏟아부었다"며 "세계 증시가 동반 하락하는 와중에 무슨 생각으로 나 홀로 떠받치려는지 모르겠다. 이런 움직임은 증시에 더 망조를 드리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다가올 예결위 심의에서 연금운용의 독립성이 철저히 지켜지도록 관리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최 의원은 "연금 운용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안정성"이라며 "현재 '독립성'을 표면에 내걸고 7명의 외부 전문가를 구성하자고 하는데 여기에도 연금가입자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 연금가입자의 입장이 당연히 운용에 반영되는 방향으로 기금운용위원회 의사결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지금 거론되는 민간위탁 방안, 가입자 연금주권 확보 방안, 주식투자 규모 등 첨예한 사안을 두고 전 국민적인 토론이 필요하다"며 "제도적으로 정치적 입김을 철저히 배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연금 운용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앞으로 5년 동안 중기자산배분안을 가입자 모두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