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고는 가계 부채다"
27일 오후,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부소장을 맡고 있는 선대인 씨를 만났다. 그는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이다?>,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 등 저서를 냈다.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 근처 연구소에서 녹차 한 잔을 사이에 놓고 마주앉은 그는 '전문성'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시장에 찬바람이 몰아치는 결정적 이유는 정책 당국자의 실력 부족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특정 개인을 가리킨 표현은 아니었다. 질문을 건 기자에게 그는 "한번 이야기해보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갈아치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나"라고 되물었다. 경제 수장 개인의 무능을 넘어, 지난 정권부터 쌓여온 구조적 문제를 봐야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정권의 성향과 관계없이 계속 곪아왔다. 그가 쓴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가 이야기하는 '구조적 문제'는 다름 아닌 부동산 거품이다. (☞관련 기사 : "외상 갚을 날이 다가왔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은행 대출 창구를 찾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금리는 기어가는데 부동산 가격은 날아가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은행 돈을 빌릴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빌려서 부동산을 사야한다는 게 '재태크 상식'으로 통했다. 이런 흐름에 은행들 역시 호응했다. 은행들은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의 비율)을 140%(올해 8월 기준)까지 늘리면서, 대출을 늘렸다. 물론, 은행에 들어온 돈보다 빌려준 돈이 더 많은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이렇게 가계 부채는 늘어났고,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660조 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는 거대한 '화약고'가 됐다.
이런 불안한 상황이 주가를 떨어뜨리고, 외국인들로 하여금 원화를 팔게 한다는 것. 그런데 하필, 정부는 이날 기준 금리를 0.75%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나직하게 말을 이어가던 선대인 부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엄청난 헛발질"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다. 선 부소장과의 대화를 간추려 옮겼다.
"금리 인하…아껴둬야 할 정책 수단을 미리 다 써버리면 어쩌나"
선대인 :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조치를 외국인들이 보면, '얼마나 다급했으면' 싶을 게다. '한국 경제가 정말 위험 하구나'하는 생각도 들 게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이런 신호를 보냈으니, 국내에서 외화 자금이 빠져나가는 게 당연하다. 환율이 더 안 뛰면, 오히려 이상하다. 물론 물가도 오른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문제는 부동산 거품이다. 거품이 주식 시장과 외환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거품을 빼기보다,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서 거품을 유지하려고 한다. 물가 인상으로 서민들이 겪는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자산 디플레이션(가치 하락)이 가져올 위험을 두려워한다.
선대인 : 답답한 소리다. 디플레이션이 본격화됐을 때, 디플레이션 대책을 써야 한다. 거품 붕괴는 이제 시작인데, 정책 수단을 미리 다 써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정부는 벌써 금리를 인하하고, 세금을 줄이고 재정 지출을 늘렸다. 곧 본격적인 침체 국면이 올텐데, 그때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재정 지출이 필요할 때는 국고에 돈이 없게 된다. 금리를 이미 낮췄으니, 금리 인하도 효과가 없다. 아껴둬야 할 정책 수단을 모조리 낭비해버린 형국이다.
"정부가 붙잡아도, 거품은 꺼진다"
부동산 거품 붕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가 붙잡는다고 해서, 거품이 꺼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자산 시장의 결정에 따라 거품이 자연스럽게 꺼지도록 하는 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가 생기면, 일정한 원칙을 정해서 정부가 도와야 한다. 복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 때를 대비해서 재정을 비축해야 하는데,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건설업체나 다주택·고가주택 보유자를 위해 돈을 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위태로운 부동산 시장이 지탱 가능하다고 보나. 천만에, 잠시 동안의 눈속임일 뿐이다. 부실한 건설업체의 도산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눈속임이 끝나고 나면, 서민은 빈손으로 겨울을 나야한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화약고에 불이 붙는다. 화약고는 가계 부채다. 언론에서는 흔히 건설업체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Project Finacing)을 문제 삼는다. 물론, PF도 큰 문제다. 하지만 전체 66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그 중 330조 원의 부동산 담보대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다.
빚내서 부동산 담보 대출 늘린 국내 은행…미국발 금융 위기로 잇따른 상환 요구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구조를 봐야 한다. 지금 문제가 되는 환율과 금리가 다 부동산 담보 대출과 얽혀 있다. 금리가 뛰는 이유는 예대율(예금에서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총대출이 총예금을 넘어섰다. 부동산 담보대출이 지나치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 추세가 계속 이어져서 올해 8월에는 예대율이 140%까지 치솟았다. 예금을 모두 대출해주고, 나머지 40%를 CD와 은행채, 심지어 단기외화까지 끌어와서 채웠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금리가 조금씩 올랐다. 은행에 돈이 부족하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터졌다. 국내 은행들에 돈을 빌려줬던 외국 금융기관이 더 이상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 외국 금융기관의 본사에서는 계속 환매, 상환 요청이 들어온다. 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까.
국내 은행 입장에서는 돈줄은 말랐는데, 상환 요구는 빗발치고 있는 셈이다. 금리가 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가 300억 달러를 은행에 풀었다. 또 은행들이 내년 6월까지 800억 달러를 갚아야 한다고 하니, 1000억 달러까지 지급 보증을 해 줬다. 당장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효과가 있을까. 물론, 아니다. 시장에 자금이 부족한 상황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25% 낮췄을 때 오히려 시중금리가 뛰었던 것도 그래서다. CD와 은행채 금리가 오른 상황에서 시중금리가 오리지 않을 수가 없다. 27일 정부가 기준금리를 다시 0.75% 떨어뜨렸지만, 시장은 별 반응을 하지 않는다.
부동산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금리가 오르는 것은 구조적 현상이다. 이걸 정부가 인위적으로 막으려고 해봤자 얼마나 막을 수 있겠는가.
부동산 거품, 2~3년 전부터 빨간불…외국인, 한국 떠난다
환율 폭등 역시 마찬가지다. 부동산 담보 대출로 예대율이 높아진 은행에서는 달러 유동성이 필요하니까, 환율이 뛴다. 여기에 수출 기업 역시 한몫 거든다. 환율이 불안하니까 수출 기업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외국인이 원화를 계속 매도하고 있다. 2007년부터 진행된 현상이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하지만 지난 2, 3년 전부터 외국 금융기관이 각종 리포트를 통해 한국의 부동산 거품을 경고한 게 결정적인 이유다. 한국 경제에서 건설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 그리고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는 지적은 외국 투자기관 보고서에서 이미 여러 번 나왔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거품이 터지기 전에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외국인들은 지금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한국 자산을 팔아 치우고 있다. 환율이 오를 수밖에 없다.
"시장 원리 강조한 MB정부, 부실 건설업체는 왜 감싸나"
정부는 거품 붕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환율과 금리 문제도 풀 수 있다. 어차피 서로 엮여 있는 문제니까.
1990년대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부동산 거품이 붕괴된 이후, 일본 정부는 각종 재정지출을 통해 부실한 건설업체들이 마치 좀비처럼 살아가게 했다. 그리고 이들은 1990년대 내내 일본 경제에 부담으로 남았다.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망해야 할 건설업체는 빨리 문 닫게 해야 한다. 그게 시장 원리다. 경쟁과 시장 원리를 늘 입에 달고 다니는 현 정부가 왜 건설업체에 대해서는 감싸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일본처럼 건설업 구조조정을 질질 끌기만하면, 경제 전체가 죽는다.
"거품 붕괴, 계속 미룰 수 없다"…"부동산에 미련 버려야"
프레시안 : 고통을 억지로 미루면 안 된다고 말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건설업체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다. 상당수 가계 역시 큰 피해를 입는다.
선대인 : 그렇다. 상당수 가정이 잔뜩 빚을 내서 부동산을 샀다. 하지만, 이런 구조를 오래 지탱할 수는 없다.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정부 역시 탈출 신호를 보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가계가 계속 부동산에 미련을 갖도록 부추긴다. 이렇게 하면, 가정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시기만 연장될 뿐이다. 계속 뛰어 오르는 이자 내면서, 주저앉는 부동산을 붙잡고 버티는 게 언제까지 가능하겠는가.
금융권에 돈이 씨가 말랐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일부 재태크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다시 띄울 수 있다고 떠들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 절반을 비정규직에 몰아놓고, 콘크리트에만 돈 퍼붓다니…"
프레시안 :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억지로 떠받치는 상황에는 좀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특징도 반영돼 있다는 생각이다.
선대인 : 아무래도 대통령이 건설업체 출신이라서, 옛날 경험에 더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과거에는 건설업이 갖는 산업 연관 효과가 매우 컸다. 그래서 경제가 침체되면, 건설 경기 부양이라는 게 경제 관료들 사이에서도 공식으로 통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은 첨단기술과 지식이 경제를 움직인다. 불필요한 공사 일으켜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다. 과거에는 도로를 지으면,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됐다. 물류가 원활해지니까.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지방에 가보라. 차 없이 빈 도로가 얼마나 많은가. 또, 경기 한 번 열리는 적 없는 종합운동장도 수두룩하다. 이런 낭비적 사업에 수천억 원을 들이고 있다.
젊은이들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지내는 판국에, 공사판만 만드는 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이런 상황은 결국 부동산 시장에도 부메랑이 됐다. 젊은이들이 결혼해서 집을 살 돈이 없는데, 아파트만 잔뜩 지은 꼴이다. 아파트 거품을 자초한 셈이다. 부동산 거품 시대에 성장한 기성세대의 투기 욕구가 낳은 비극이다.
지금이라도 빨리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콘크리트에 돈을 쏟아 부어서는 안 된다. 대신,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 세대도 살아남을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부동산 투기 세대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는가. 다음 세대에도 지속 가능한 경제, 이게 정책 목표가 돼야 한다. 그러자면, 시장에서 실패한 건설업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쓰는 돈을 지식과 기술을 위한 투자로 돌리는 게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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