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까닭은 그간 지속된 유동성 공급으로 유동성 위기는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실물부문의 침체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 세계적인 금리인하 기조에 따르지 않을 경우 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정부 판단과도 궤를 같이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에 따라 예상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어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근본원인이 해외에 있는데다 지금의 조치로 실물경제 침체를 막기도 어렵다는 이유다.
"실물부실 확산 막아야"
이번 조치로 한은은 지난 8월 7일 기준금리를 5.25%로 올린 지 불과 석 달이 채 못 돼 다시 1%포인트를 끌어내렸다.
8월만 해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물가불안이 문제였으나 9월을 지나면서 경제상황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의 근본원인이었던 유가 등 원자재가격은 최근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빠르게 안정세를 찾고 있다. 지난 주말을 기준으로 서부텍사스산 중질유 12월 인도분 선물가격은 배럴당 64.15달러까지 떨어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옥수수 12월물 가격은 17.5센트 내려 부셸당 3.7275달러에 장을 마쳤다. 구리 3개월물 가격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톤당 265달러 내린 3775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금융부문의 위기가 점차 실물경제로 번지는 양상은 뚜렷해졌다. 회사채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사실상 발행과 유통이 모두 끊긴 상황이다. 내수 침체가 뚜렷한 데다 수출부문에서도 이상음이 들리는 지경이다. 지식경제부는 내년도 철강 수출 증가율이 올해(28.3%)의 절반도 못 미치는 11.3%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최대 수출품목인 석유화학 부문 역시 올해 19.7%에서 4.3%로 뚝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3분기 경제성장률은 3.9%에 그쳤고 내년 연간 성장률은 2%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최근 들어 바짝 목소리를 올리며 "한은이 내수 진작을 위한 정부 정책에 공조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놨다.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상황점검회의가 끝난 뒤 "유동성 문제는 어느 정도 진정됐고, 이제부터 걱정해야 할 문제는 실물부문에서 문제가 생겨 실물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지는 사이클 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한은도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내수경기 진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시중 금리를 내림과 동시에 은행에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 은행이 실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도록 한다는 게 정책의 의도다. 지난 9일 금리인하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까닭은 시중은행이 실물부문에 풀어줄 돈이 없다며 돈줄을 죄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은행의 외화부채에 지급보증 결정을 내려도 큰 효과가 없었다.
시장 반응 기대 이하
시장 관계자들은 예상 이상의 고강도 대응이었다는 반응이다. 0.5%포인트 인하는 기대했지만 0.75%포인트는 생각지 못했다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 딜러는 "솔직히 놀랍다. 한은이 이 정도로 파격적인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는 예상치 못했다. 한편으로는 0.5%포인트를 내려도 효과가 없을 정도로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기대 이하다. 정책 발표 전 기대심리로 열띤 반응을 보이던 시장은 한은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빠르게 혼조세로 돌아섰다.
27일 오전 11시 현재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4포인트가량 내려 여전히 930선에서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개장과 동시에는 한은 발표에 대한 기대심리로 2%가량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점차 상승폭이 줄더니 보합권에서 여전히 방향성을 찾는 상황이다. 코스닥지수는 외려 다시 사이드카가 발동될 정도로 변동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환율도 여전히 상승추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오전 현재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8원 정도 올라 달러당 1430원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주요 금리 역시 상승과 하락 사이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큰 기대 하지 말아야"
시장이 이처럼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한은의 고강도 대책도 실물경기 침체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당장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실망스러운 실적이 줄줄이 쏟아졌듯 기업 실적이 안 좋아지는 데다 해외 침체 때문에 수출길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은의 정책 결정으로 회사채 발행이 제 가동되고 주가도 상승하리라는 기대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외국의 싸늘한 시선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현지시간) "한국의 증시와 통화부문이 타격을 받는 등 관료들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증거가 나타나지만 (관료들은) 경제가 튼튼하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하루 전 국제통화기금(IMF)이 어려움에 빠진 개발도상국에 자금 지원을 보다 용이하게 해줄 방침이며, 재정 상황이 견조한 한국, 멕시코, 브라질 등을 우선적으로 승인해 주는 나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이번 대책에 큰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의 이번 정책은 "우리가 이 정도로 지금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 외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외려 이번 정책으로 우리 금융불안의 핵심인 환율 부문은 더 크게 요동칠 가능성마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국시장경제연구소는 이날 발표한 자료에서 "경제 불안으로 채권발행 주체의 신용도가 하락하고, 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상황에서 시장금리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산재한 금리상승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는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경기 하강 속도를 재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유동성 공급을 해주는 게 필요하긴 하다"면서도 "외국의 채권투자자금이 차익 실현 후 빠져나가거나, 그에 따른 외환시장 불안 가속화 등 부작용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또 "지금의 위기는 신뢰의 문제다. 시장 구성원 상호간 신뢰의 문제, 정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문제"라며 "이는 금리 인하로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돈이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등 위기 취약 계층에 적재적소에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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