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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차비 아껴 시다에게 풀빵 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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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차비 아껴 시다에게 풀빵 사줬다"

[전문] 이광택 전태일기념사업회장, "비정규직 자살, 노동운동도 책임"

지난해말 <프레시안>이 연재돼 노동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노동운동 위기' 논쟁에서 제시된 화두 중 하나는 '전태일 정신'이었다. 1970년 권위주의 정권의 폭압적인 상황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의 깃발을 내 걸며 온 몸을 불태우며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진 전태일 열사는 오늘날에도 그 권위와 정신은 존중되고 있다.

최근 기아차 채용비리에 노조간부가 연루된 사건은 다시 한 번 '전태일 정신'을 곱씹어 보게 하고 있다. 기아차 사태를 계기로 노동진영이 안팎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일선 노동운동가들과 선배 운동가들은 위기의 돌파구를 '전태일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광택 국민대 법학과 교수도 최근 <한국노동혁신연구소>에 기고한 글을 통해 기아차 사태에서 전태일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길 것을 촉구했다.

***"어린 여성노동자에게 제 도시락 주던 전태일 정신을 잊지말자"**

이 교수는 우선 전태일 열사와 관련, "그는 임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버젓한 미싱사가 될 수 있었음에도 단지 어린 시다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재단보조로 일했다. 그는 자신의 점심 도시락을 굶고 일하는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 주고, 또 청계천에서 도봉산까지 밤 새워 걸어 다니며 아낀 차비를 털어 그들에게 풀빵을 사주었다. 전태일은 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자 했다. 삼동친목회를 조직하여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온갖 실천을 다 해보았고, 마침내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현실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이 교수는 이같은 '전태일 정신'에 기초할 때 "회사측과 노조지도부가 공모하여 구직자를 상대로 '취업장사'를 자행한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행위"라고 질타한 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비난에 앞서 우리 자신과 한국 노동운동이 진심으로 뼈를 깎는 깊은 성찰을 통해 전태일 정신으로, 노동운동의 초발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어 "오늘날 비정규직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연소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의 참상은 말로만 연대와 단결을 외친다고 해결되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라며 "절망적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아파트 창문으로 집어던지고 자신도 투신자살하는 빈곤자살자들을 한국 노동운동은 이제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용석, 박일수, 김춘봉, 최남선 등등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신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한국 노동운동은 여기에 분명한 책임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모든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진심으로 호소한다"며 "전태일 동지가 그렇게 실천했듯 우리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과 아픔을 함께 해야 한다.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남성노동자는 여성노동자와, 대기업노조는 노조도 없는 중소영세하청 노동자들과 그리고 내국인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과 앞날의 희망을 함께 해야 한다"고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의 대오각성을 촉구했다.

그는 한편 정부-기업에 대해서도 "이같은 모든 사태의 근본 원인은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고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경도되는 정부와 기업에 그 일차적 책임이 있다"며 "오로지 이윤만 극대화된다면 사람, 자연환경, 인간관계를 가리지 않고 착취하고 파괴하고 이용하는 반인간적, 반환경적, 반공동체적 경제사회 정책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광택 이사장은 31일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지난 27일 총회에서 기아차 노조에 수여한 전태일노동상 수상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기념사업회 역시 잘못이 있다고 판단해 유보했다"며 "기아차 사태는 노조와, 노동 관련 단체 모두 그간의 활동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광택 이사장이 <한국노동혁신연구소>에 기고한 글 전문이다.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을 자성(自省)과 자정(自淨)의 계기로 삼자'**

오늘의 한국 노동운동은 전태일 정신을 자신의 삶의 지표로 삼았던 1970, 80년대 민주노동운동가들이 군사독재 정권의 가혹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고문과 투옥도 불사하며 목숨까지 걸고 투쟁했기에 그 명맥이 유지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청년 전태일은 닭장보다도 못한 먼지구덩이 청계천 다락방에서 결핵과 각종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열서너 살의 여성노동자들의 참상을 양심상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임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버젓한 미싱사가 될 수 있었음에도 단지 어린 시다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재단보조로 일했다. 그는 자신의 점심 도시락을 굶고 일하는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 주고, 또 청계천에서 도봉산까지 밤 새워 걸어 다니며 아낀 차비를 털어 그들에게 풀빵을 사주었다. 전태일은 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자 했다. 삼동친목회를 조직하여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온갖 실천을 다 해보았고, 마침내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한 현실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이 이와 같은 인간 사랑과 헌신을 바탕으로 하는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사회를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국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고귀한 인간임을 스스로 자각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는 운동이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잘살아 보자는 공동체운동이었으며, 나아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는 나눔과 베풂의 사회운동이기도 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전태일 정신 통한 사랑실천의 계기로 삼아야**

그런데 우리는 최근 기아차노조의 채용비리에 대해 안타까움과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회사측과 노조지도부가 공모하여 구직자를 상대로 '취업장사'를 자행한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행위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비난에 앞서 우리 자신과 한국 노동운동이 진심으로 뼈를 깎는 깊은 성찰을 통해 전태일 정신으로, 노동운동의 초발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전태일기념사업회는 1996년 11월 10일 개최된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기아자동차노조에 대해 제5회 전태일노동상을 시상한 바 있어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전태일 노동상이 제정된 지 올해로 14회를 맞이하며 기념사업회는 이 상의 권위와 명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수상자들에 대한 사후 점검 등이 절실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기념사업회로서도 뼈아픈 반성의 계기로 삼고 있다.

오늘날 비정규직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연소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의 참상은 말로만 연대와 단결을 외친다고 해결되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절망적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아파트 창문으로 집어던지고 자신도 투신자살하는 빈곤자살자들을 한국 노동운동은 이제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용석, 박일수, 김춘봉, 최남선 등등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신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한국 노동운동은 여기에 분명한 책임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진심으로 호소한다. 전태일 동지가 그렇게 실천했듯 우리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과 아픔을 함께 해야 한다.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남성노동자는 여성노동자와, 대기업노조는 노조도 없는 중소영세하청 노동자들과 그리고 내국인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과 앞날의 희망을 함께 해야 한다.

그것이 청년 전태일이 그렇게도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못다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인 오늘날의 한국 노동운동이 마땅히 해야 할 사랑의 실천이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씁쓸한 드라마'**

오늘의 이 같은 불행한 사태의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고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경도되는 정부와 기업에 그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이윤만 극대화된다면 사람이든 자연환경이든 인간관계든 그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착취하고 파괴하고 이용하는 반인간적, 반환경적, 반공동체적 경제사회 정책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채용비리라는 미끼로 노동조합을 회유 또는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근대적 노무관리 방식 또한 이제는 중단되어야 한다.

수많은 서민의 열망으로 출범한 참여정부가 과감하게 중소기업과 노동자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거꾸로 대재벌 위주의 각종 정책을 양산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렇다 할 사회적 안전망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비정규직을 양산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것 또한 중단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이용해 노동운동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어떠한 음모도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기아자동차 노조뿐만 아니라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 사건을 자기성찰과 자기정화의 계기로 삼아 새로운 각오로 노동운동의 비전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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