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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사태 근원, 통제 안받는 기업별 노조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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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아차 사태 근원, 통제 안받는 기업별 노조체제"

[인터뷰]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사정 복귀해야"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에 서있는 민주노총이 새해 벽두부터 '위기'라는 표현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안팎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터진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은 민주노총 내부에 결정적 결함을 드러냈다. 이밖에도 민주노총 앞에는 하나같이 무겁고 중요한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2월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 처리 강행방침에 대한 '총파업' 감행 여부, 사회적 교섭으로 표현되는 노사정 위원회 복귀 여부,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대응, 2007년부터 시작되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축소, 자유무역협정 확대까지.

이에 <프레시안>은 28일 한국노동운동이 직면한 총체적 난맥상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49)에게 의견을 들었다. 배 위원은 70년대 서울대 재학시절부터 일찌감치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택시 노조 조직 등 오랜 현장경험을 했으며, 그후 영국 유학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노동운동사를 연구한 실천과 이론을 겸비한 노동활동가로 노동계의 신뢰가 크다.

***"기아차 사태의 근원은 통제 안받는 기업별 노조체제"**

배 위원은 기아차 인사비리 사태의 근원을 "총연맹이나 산별연맹의 통제와 관리를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활동하는 기업별 노조 시스템"에서 찾았다. 그는 한 예로 "단위 노조는 임단협 때가 가장 바쁘고 임단협이 끝나면 시간이 남는다. 남는 시간에 대부분의 건강한 활동가나 간부는 일반 조합원들을 만나 교육활동을 하고 각종 대외 연대활동에 주력하지만, 일부 활동가들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남으니까 당구장을 출입하고, 고스톱을 치는 등 시간을 소비한다. 이런 모습 역시 노조 간부들이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반 조직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일이다"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배 위원은 또 기아차 노조에 대해 "기아차는 과거 김선홍 회장이 있을 때부터 노조와 사측간 담합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본다. 민주노총 산하이긴 했지만, 회사가 아주 싫어하는 것은 싸우지 않고 사측 역시 노조를 지나치게 자극하는 일은 삼가해왔다. 서로 봐주는 게 있었다는 말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나 기아차외 다른 노조들도 부패한 게 아니냐는 사회의 의혹어린 시선과 관련,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에서 노조가 부패할 정도로 타락한 곳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는 일단 사측과 상당한 긴장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청탁을 하려고 해도 사측이 들어주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는 그러나 기아차 사태에 대한 국민적 비난에 대한 노동계 일각의 억울함 토로와 관련해선, "상징과 대표라는 게 있다. 기아차 노조는 민주노총의 상징적 사업장이고 그 노조 간부가 비리에 연루된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사죄는 당연하다. 노동계는 언제든지 부패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재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로 이번 사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배 위원은 유사사태의 재발 방지 차원으로 "총연맹 수준에서 만들어진 윤리강령을 반드시 지키도록 강제하고, 부정이 발견됐을 경우 강력한 징계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제각각 행동하는 기업별 노조를 감독할 기구를 만들고, 노동운동 내부를 모니터하고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노동계가 자체적으로 부패방지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현상, 즉 노조에 국가가 개입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예컨대 미국의 대형노조인 '팀스터'의 위원장 '지미 호퍼'가 마피아와 관계돼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난 이후, 정부는 합법적으로 팀스터 재정을 감시하게 됐다. 노조가 자정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정부가 나서는 데 명분을 주고 만다"고 경고했다.

***"노사정 복귀해야, 잦은 총파업 전술 자제해야"**

배 위원은 또 노동계의 현안중 하나인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와 관련, "고용·노동 부문에는 노동계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 물론 노동계 뜻대로 되지는 않더라도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현재 정부와 사용자들 분위기는 노동계가 고용정책과 관련해 책임있는 참여를 해주길 바라는 분위기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보다 한 걸음 이상 나갔다"며 노사정 복귀를 주장했다.

그는 "변화된 상황에서는 그에 걸맞는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무조건 과거 정권과 똑같다고 매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과거에는 단위노사관계가 치열했지만, 이제는 일자리 창출, 제조업 공동화, 노동시장 양극화 같은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단위노조가 싸워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노사정이 같이 노력해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노사정 복귀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그는 "또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노동계의 파업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 때까지만 해도 총파업은 파괴력이 있었지만, 총파업이 연례 행사가 되다보니 파괴력을 상실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공산당계 노조, 사회당계 노조처럼 뚜렷한 정치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노조도 우리처럼 총파업을 자주 하지 않는다"며 총파업 전술을 남발하지 말 것을 조언하기도 했다.

***"2007년 복수노조-전임자 대책 서둘러야"**

배 위원은 또 2007년 시행되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축소와 관련, "노동계가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민주노총은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복수노조와 관련, "일본을 보면, 1950년대 제2노조가 허용되면서 사용자가 친사적인 노조를 만들면서 강성 노조를 무력화시켰다. 결국 일본에는 친회사 노동조합이 뿌리를 내리게 됐다. 우리도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노동계는 너무 안이한 모습"라고 질타했다.

그는 또 전임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전임자 문제도 그렇다. 노조 전임자를 줄이는 정책은 대기업 노조를 조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전임자가 1백명 남짓 되는데, 만약 여기서 5명으로 줄인다고 해봐라. 노조의 힘이 순식간에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노동계는 적극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적극적 대응을 주문했다.

다음은 배규식 위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기아차 사태, 기업별 노조 체제가 근본 원인**

프레시안 : 기아차 채용비리로 노동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 사태를 접했을 때 든 생각은?

배규식 : 어느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노동운동 역시 나이가 들어가고 제도화되면서 도덕적 해이에 빠져들 위험이 많은데, 이번 기아차 사태는 그런 도덕적 해이가 노골적 부패로까지 나아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또 상대적으로 건강성을 지니고 있다는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마저도 도덕적 해이가 드러났다는 점도 주목됐다.

프레시안 : 이같은 노조의 도덕적 해이나 부패가 발생한 원인은.

배규식 : 노동조합의 활동과 발전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기업별로 파편화되면서 진행돼 왔다. 그동안의 경험도 축적되거나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집행부가 바뀔 때마다 단절돼 왔다. 산별연맹이나 총연맹에 역량이 집중되지 않고, 기업별 노조 단위에서 사실상 중요한 결정이 끝나버리고, 자원도 기업별 노조에 집중돼 있다.

이런 구조는 심하게 말하면, 단위노조가 통제와 관리를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게 맞들었다. 총연맹이나 산별연맹에서 단위노조의 활동을 관리하고 견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기아차 채용비리에 노조 간부가 연루된 사건에는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기업별 노조체계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잡고 있다.

프레시안 : 현장에서 본 단위기업 노조 활동가들의 모습은?

배규식 : 단위 노조는 임단협 때가 가장 바쁘고 임단협이 끝나면 시간이 남는다. 남는 시간에 대부분의 건강한 활동가나 간부는 일반 조합원들을 만나 교육활동을 하고 각종 대외 연대활동에 주력하지만, 일부 활동가들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남으니까 당구장을 출입하고, 고스톱을 치는 등 시간을 소비한다. 이런 행동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런 모습 역시 노조 간부들이 전혀 관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반 조직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일이다.

***협조와 유착은 다르다**

프레시안 : 기업별 노조체계가 전반적으로 단위노조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는 것인데, 특히 기아차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뭔가?

배규식 : 기아차는 과거 김선홍 회장이 있을 때부터 노조와 사측간 담합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본다. 민주노총 산하이긴 했지만, 회사가 아주 싫어하는 것은 싸우지 않고 사측 역시 노조를 지나치게 자극하는 일은 삼가해왔다. 서로 봐주는 게 있었다는 말이다.

프레시안 : 노사간 협조라고 볼 수 없나?

배규식 : 협조와 담합·유착은 다르다. 유착은 일단 제3자에게 피해를 주고 불투명하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협조는 특정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그 과정도 매우 투명하다. 이런 점에서 기아차 노사는 협조적 관계라고 보기에는 힘들 것 같다.

프레시안 : 노사가 담합했다고 하면, 흔히 쓰는 말로 노조가 '어용화'됐다는 말 아닌가. 기아차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 중 대표적 강성 노조로 분류됐는데.

배규식 : 과거 권위주의정권 시절 한국노총이 보여줬던 부패 양상과 좀 다르다. 기아차의 경우 노조의 강력한 파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노조 힘이 없다면 이번 채용비리에 노조 간부가 연루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사측의 오랜 연고채용 관행에 노조간부가 지분을 요구했고, 사측은 이것을 들어주는 대신 어렵거나 힘들 때 노조에게 협력을 요청하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 설령 이런 관계라고 하더라도 부패까지 안 갈 수 있었는데, 문제의 노조간부가 개인 욕심이 너무 컸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노조의 부패가 좀더 광범위하지 않느냐라는 의혹도 제기되는데.

배규식 :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에서 노조가 부패할 정도로 타락한 곳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는 일단 사측과 상당한 긴장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청탁을 하려고 해도 사측이 들어주지 않는다. 물론 노조도 그런 요구를 할 이유도 없고.

프레시안 :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에서 지나치게 노조에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는 볼멘 소리가 노동계 내부에서 들린다. 최근 민주노총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죄 기자회견에서도 사죄를 하지만, 자신들만 비난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분위기였다.

배규식 : 노동계 정서를 나타내는 거다. 일단 자기들 문제니깐 사죄는 하지만, 자기들이 다 뒤짚어 쓰는 분위기니까 억울하다는 거다. 현장 정서도 그렇다. 많은 노조 간부들은 실제로 부패와 거리가 멀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데 노조 전체를 '부패'로 매도하고 있으니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나. 하지만 상징과 대표라는 게 있다. 기아차 노조는 민주노총의 상징적 사업장이고 그 노조 간부가 비리에 연루된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사죄는 당연하다. 노동계는 언제든지 부패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재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로 이번 사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노조 자정 못하면 노조에 국가가 개입"**

프레시안 : 실제로 노동현장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도 일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경우 최근 자체적으로 윤리강령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배규식 :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그런 움직임이 단위노조 차원이 아닌 총연맹 수준에서 진행되야 하고, 만들어진 윤리강령은 반드시 지키도록 강제하고, 부정이 발견됐을 경우 강력한 징계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제각각 행동하는 기업별 노조를 감독할 기구를 만들고, 노동운동 내부를 모니터하고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노동계가 자체적으로 부패방지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 노조에 국가가 개입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대형노조인 '팀스터'의 위원장 '지미 호퍼'가 마피아와 관계돼 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난 이후, 정부는 합법적으로 팀스터 재정을 감시하게 됐다. 노조가 자정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정부가 나서는 데 명분을 주고 만다.

***비정규문제 대응, 자원을 중앙에 집중해야**

프레시안 :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계 최대 관심 사항인데, 일각에서는 정규직 중심으로 구성된 민주노총이 과연 제대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궁금해 한다.

배규식 : 사업을 하려면 자원이 있어야 한다. 조합비 상당액을 중앙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과거 이런 움직임이 있었지만, 단위노조에서 저항해 번번히 좌절됐다. 미조직된 사업장에 대한 조직화 사업이 힘있게 진행되야 하지만 자원이 없다. 단위노조를 보면 추석이나 설날 때 조합원들에게 4~5만원 짜리 선물을 나눠주는데, 이런 불필요한 데 돈을 쓰면서 재정이 부족하다고 엄살을 떤다. 위선적이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사업을 위해 50억을 모은다고 하는데,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한 10억은 내고, 기아차에서 2~3억은 내야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기업별 노조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하다.

프레시안 : 이와 관련해 대기업 노조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다는 비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배규식 : 비정규직·미조직 사업장에 대해 노조가 적극 개입해 보호해줘야 하는데, 지금까지 대기업 노조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자원을 모은다거나,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마련해야 되는지에 대해 대기업 노조는 진정성을 갖고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이것에 대한 통렬한 자기 비판이 있어야 한다.

물론 긍정적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단위노조 임단협 상황을 보면 30%의 노조가 비정규직 처우 개선 문제를 단협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노사정위원회 적극 참여해야**

프레시안 : 민주노총 당면 현안 중에 노사정위원회 복귀와 관련한 '사회적 교섭 재개'가 있다. 지난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성원 미달로 안건이 통과되지 못한 사태도 있었다.

배규식 : 올해 민주노총은 중요한 전략적 기로에 설 것이 분명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정부나 사용자들이 의도적으로 노동계를 배제하고, 민주노총은 고사시키려고 했다. 김영삼 정권부터 이런 분위기가 좀 바뀌다가 김대중 정권 때는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노동계를 끌어 안으려는 노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김대중 정권때만 해도 정부와 관료는 노동계를 '들러리'로 치부하긴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좀 다르다. 진정성을 갖고 파트너십을 보이려고 한다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권의 성격이 이전 정권과 다르다는 판단에 대해 일선 노동운동가들은 의구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정기대의원대회에서도 일부 대의원들은 노사정위원회 자체를 부정하는 듯 했다.

배규식 :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사관계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전략적인 결정은 결국 사용자들이 하게 돼 있다. 모든 문제를 공동결정하도록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사회민주주의국가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다만 고용·노동 부문에는 노동계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 물론 노동계 뜻대로 되지는 않더라도 의미있는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현재 정부와 사용자들 분위기는 노동계가 고용정책과 관련해 책임있는 참여를 해주길 바라는 분위기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보다 한 걸음 이상 나갔다.

변화된 상황에서는 그에 걸맞는 전술을 구사해야 한다. 무조건 과거 정권과 똑같다고 매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단위노사관계가 치열했지만, 이제는 일자리 창출, 제조업 공동화, 노동시장 양극화 같은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단위노조가 싸워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노사정이 같이 노력해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

또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노동계의 파업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권 때까지만 해도 총파업은 파괴력이 있었지만, 총파업이 연례 행사가 되다보니 파괴력을 상실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공산당계 노조, 사회당계 노조처럼 뚜렷한 정치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노조도 우리처럼 총파업을 자주 하지 않는다.

총파업을 하려면 신중하게 결의해야 하고, 결의를 하면 다 함께 들어가야지 위력이 있다. 그런데 최근 총파업들은 결의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총파업 때는 파업 실명제를 하지 않았나.

프레시안 : 민주노총 집행부의 고민도 거기에 닿아있는 듯하다. 과거 방식대로 하면 올해에도 몇 번은 총파업을 해야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부 일각에서는 총파업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고...

배규식 : 소수의 좌파활동가들이 총파업 등 강경한 목소리를 내더라도 실제 일을 집행하는 민주노총 지도부들은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좌파 활동가들은 책임 질 것도 아니면서 무조건 강경한 목소리만 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책임없이 목소리만 큰 사람들이 많으면 조직이 안에서부터 위기를 맞게 된다.

프레시안 : 총파업이 아닌 사회적 교섭 전술을 적극적으로 꺼내기에는 당면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2월에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마당에 '투쟁'이 아닌 '교섭'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거부하는 정서가 팽배하다.

배규식 : 설령 그렇더라도 사회적 교섭은 적극 추진해야 한다. 올해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정부의 노사정 로드맵은 그대로 강행 결정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에 밖에서 싸우는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방기하는 것밖에 안된다. 민주노총, 지금까지 협상채널이 없어 얼마나 갑갑해 했나. 또 노사정위에 들어가는게 무조건 양보하는 게 아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을 적극 문제제기하면서 노동관련 주요 정책에 노동계 의도를 많이 관철시킬 수도 있다.

***"노동계, 복수노조-전임자 문제 대응 너무 안이"**

프레시안 : 2007년부터는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노조 전임자가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동계에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수도 있는데...

배규식 : 이 문제는 올해 반드시 논의된다. 그런데 노동계가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민주노총은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일본을 보면, 1950년대 제2노조가 허용되면서 사용자가 친사적인 노조를 만들면서 강성 노조를 무력화시켰다. 결국 일본에는 친회사 노동조합이 뿌리를 내리게 됐다. 우리도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노동계는 너무 안이한 모습이다.

전임자 문제도 그렇다. 노조 전임자를 줄이는 정책은 대기업 노조를 조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전임자가 1백명 남짓 되는데, 만약 여기서 5명으로 줄인다고 해봐라. 노조의 힘이 순식간에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노동계는 적극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대안을 만들어 내려면 정책 역량이 있어야 한다.

배규식 : 그렇다. 수없이 나온 이야기지만 민주노총은 정책적 역량을 배가시켜야 한다. 하지만 총연맹에는 자원이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돈은 모두 단위노조에 내려가 있다. 상여금 좀 더 올리는 투쟁에 그 자원이 다 쓰이고 있다. 노동계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에 대한 연구와 대안 마련을 위해 쓰여야 할 돈이 엉뚱한 데 쓰이는 거다. 결국 민주노총이 처한 상황은 스스로 자기 혁신을 통해 극복할 수밖에 없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조직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파헤치면서 정면 대응할 것이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인터뷰에 수고 많았다.

배규식 : 수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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