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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속 수많은 '안재환'이 나올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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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경제위기 속 수많은 '안재환'이 나올텐데…"

[인터뷰]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

한동안 뜸했던 고(故) 안재환 씨 부부에 관한 기사가 최근 다시 쏟아졌다. 안 씨의 부인인 정선희 씨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둘러싼 소문에 대해 반박하고 나서면서부터다.

이런 기사들은 대개 그저 흥밋거리 정도로 읽히곤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안 씨가 겪었던 일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몸이 오싹오싹한다. 바로 사채 피해자들이다.

이렇게 하소연하는 이들을 매일 만나는 사람이 있다. 송태경 '경제 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민생연대)' 사무처장이다. 그는 안 씨와 같은 사채 피해자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송 처장과 단체 이름이 썩 낯설지가 않다.

송 처장과 이선근 민생연대 대표, 다른 상근 실무자들 대부분은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일해 왔었다. 2000년 출범한 경제민주화운동본부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 이자제한법 부활 등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과제에 힘을 쏟았다. 올해 초 민노당 분당 사태를 겪으며, 이들도 떨어져 나왔다. 그래서 만든 게 민생연대다.

민생연대는 민노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서 하던 일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 최근에는 특히, 사채 피해자를 돕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토요일인 지난 18일 오전에도, 서울 구로동에 있는 민생연대 사무실은 문이 열려 있었다. 이날 만난 송 처장은 사채 피해자에게서 매일 20통 이상의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직접 사무실을 찾아오는 사람도 늘 한두 명씩은 있다고 했다. 이날 송 처장과 나눈 대화를 간추렸다.

"신용카드 파산에서 사채 파산으로"

<프레시안> :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민생연대를 찾는 사람이 늘었을 듯 하다. 최근에는 어떤 이들이 주로 오나.

송태경 : 2005년 말까지만해도, 대부업체 때문에 파산했다며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당시에는 신용카드 과소비 때문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사채 피해자가 크게 늘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6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사채 이용 인구는 약 189만 명이다. 하지만, 실제 사채 이용자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변수를 고려하면, 약 330만 명으로 추정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여겨진다.

한번 고리대 사채에 발을 들이면, 파산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민생연대를 찾는 이들 가운데 사채 피해자의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성매매 여성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늘었다. 성매매 업소들은 사채업자와 손잡고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하는 게 보통이다. 이른바 '마이낑' 관행이다. '나의'라는 뜻의 영어 단어 '마이'(my)와 일본어로 '돈'을 가리키는 '낑'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속어다.

"성매매 근절하려면, '마이낑' 구조부터 깨야"
▲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 ⓒ프레시안

이 단어를 이해하려면, 먼저 선불금 관행에 대해 알아야 한다. 과거에는 업주들이 성매매 여성들에게 미리 돈을 준 뒤, 여성들이 윤락 행위를 통해 갚아가도록 했다. 그런데 선불금 관행은 이제 통할 수 없게 됐다. 법원이 윤락 여성의 선불금은 '불법 원인 급여'이므로, 갚지 않아도 된다고 판시하면서부터다.

그래서 나온 게 사채업자가 끼어든 '마이낑'이다. 업주와 여성 사이에서 제3자인 사채업자(대부업자)가 일수, 월변 등 단기 상환 조건으로 고금리 사채를 여성에게 제공한다.

당장 돈이 급한 성매매 여성들이 '마이낑'을 쓰게 되면, 벗어나기 힘든 족쇄가 채워진다.

1000만 원을 빌리면, 매일 60만 원씩 두 달 안에 1200만 원을 갚아야 하는 식이다. 이렇게 2년 정도 지내면,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난다. 업소 여성들끼리 맞보증을 선 경우가 많아서, 도망가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들은 성매매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부가 정말 성매매를 근절하고자 한다면, 이런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연체율 높아서 서민에게 장기 저리 대출 못한다?…"사회복지 비용보다는 싸다"

<프레시안> : 사채의 덫으로 내모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구조적 문제를 풀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송태경 : 대부업체라고 하면, 흔히 일본을 떠올린다. 일본계 대부업체가 국내에 많이 진출해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보다 대부업체 수가 훨씬 적다. 그리고 규제도 더 까다롭다. 일본에서 약탈적 대부 행위를 일삼는 미등록 대부업체 수는 약 1000개로 추산된다. 등록대부 업체는 10000개쯤 된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 통계다. 따라서 이보다 더 많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반면, 한국에선 서울에만 등록 대부업체가 18000개가 넘는다. 미등록 업체는 2만8000개 이상으로 추정된다. 약탈적 대부업(사채업)으로 인한 피해는 한국이 훨씬 심각하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정부가 나서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이 장기 저리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당장 병원비가 필요한 사람이 기댈 곳이라곤 사채 밖에 없다면, 결과는 뻔한 것 아닌가.

물론, 저소득층에게 대출하면 연체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비용은 사회 복지에 필요한 자금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아픈 사람에게 정부가 의료 복지는 제공하지 못할망정, 고금리 사채를 쓰도록 내몰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채권자 이름은 '봉식이', '장동건'?"
▲ 인기 연예인의 이름을 도용한 불법 대부업체 광고 전단. ⓒ뉴시스

또 합법적인 대부업에 대해서도 이자율을 낮춰야 한다. 그래서 사채업으로 진출하려는 이윤 동기를 줄여야 한다. 연 49%라는 이자 상한은 너무 높다.

일본의 경우, 10만 엔 이하 대출에서만 연 20% 이자를 허용한다. 10만 엔부터 100만 엔 사이의 대출에 대해서는 연 18% 이자를 허용한다. 이를 초과하는 대출에 대해서는 연 15% 이하의 이자만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불법적인 대출 계약서를 폐기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사채 피해자들은 채권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돈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 계약서에 채권자 이름이 없다. 아예 공란으로 비어 있거나 '장동건', '봉식이', '몽이' 같은 별명이 적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백지에 채무자가 사인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계약서를 모두 무효화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세 가지 차원에서 대책이 필요하다. 대부업체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와 중앙 정부의 관리감독, 불법 대부업체에 대한 경찰의 단속, 실효성 있는 처벌 등이다.

이 중에서 미미하게나마 작동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경찰이 가끔 단속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관리감독과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불법 대부업자가 어쩌다 걸려들어도 소액 벌금만 물리는 게 고작이다.

"멀쩡한 사람들이 사채 '쩐주' 노릇한다"

<프레시안> : 대부 계약을 맺으면서 채권자 이름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송태경 : '쩐주'(錢主·전주, 대부자금의 실제 주인)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사채 시장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쩐주'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대부업체는 중계 역할만하면서 수수료를 챙긴다는 뜻이다.

부동산 담보 대출의 경우, 한 건당 5000만 원 이상 대출하는 게 보통이다. 이런 건을 수십 개 운용한다고 하면, 5~50억 원 가량을 사채 시장에서 굴리는 셈이다. 어떤 이들이 이 정도 돈을 갖고 있을까. 상당수는 아주 멀쩡한 사람들이라고 본다. 사채업이 돈이 된다니까, 이런 것도 사업이라고 뛰어든다. 많은 부와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이들이 약자를 등치는 일로 돈을 벌려 한다. 지독한 도덕적 타락이다.

이처럼 '쩐주'가 잘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대출 계약을 맺은 채권자와 부동산 담보권을 설정한 사람이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담보권을 설정한 사람이 '쩐주'일 가능성이 높다.

"안재환 자살, '쩐주'부터 잡아들여야"
▲ 도심 속 광고물 게시대에 규정을 위반한 대부업체 광고 현수막이 버젓이 내걸려 있다. ⓒ뉴시스

<프레시안> : '쩐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이재현 CJ그룹 회장 자금을 둘러싼 최근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CJ그룹 자금팀장은 전직 조직폭력배에게 이 회장의 자금을 맡겼다고 했다. 미국 유명 대학 MBA 출신인 자금팀장에게 전직 조폭은 "사채와 경마 등으로 돈을 불려주겠다"며 다가갔다. 자금팀장은 이런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멀쩡한 경력과 직업을 가진 사람이 "사채에 투자해서 돈을 불리자"는 생각을 한 게 놀라웠다.

송태경 : '쩐주'들이 문제의 핵심이다. 막대한 수익을 쉽게 거둘 수 있다는 이유로, 이들이 사채 시장에 계속 들어오고 있다. 이들을 추적해서 잡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불법 대부업체를 단속해도, '쩐주'들은 잡히지 않는다. 처벌도 받지 않는다.

탤런트 안재환 씨가 자살하니까, 불법 대부업체를 단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쩐주'를 잡아들이는 게 우선이다.

"부동산 담보 대출자에게서 사채 피해 급증할 듯"

<프레시안> : 경기가 나빠지면서, 신용 불량자의 수는 늘었다. 은행들은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복지 안전망을 강화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갑자기 큰 병에 걸린 서민은 고금리 사채 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 고금리 사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가는 형국이다.

그런데 주식과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쩐주'들이 사채 시장으로 몰려들 가능성은 더 커졌다. 사채 시장에서 공급자 역시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사채 피해자의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떤 사람들이 사채 피해 위험에 더 취약할까.

송태경 :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은 이들 가운데 피해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거품이 꺼져서 부동산 값이 떨어지는데, 대출 원리금은 계속 갚아가야 하는 경우다.

이 경우, 부동산을 팔지 않고 움켜쥔 채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서 대출 원리금을 갚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돈을 빌리다 결국 사채를 쓰는 순간, 파국을 맞게 된다. 그래서 걱정이 크다.

이렇게 뻔히 보이는 시나리오에 대해 정부가 준비한 대책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자꾸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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