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랜만에 종일 비가 내렸다. 순례단은 "오랜만에 비가 내리니 조금은 당혹스러웠다"며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려 그에 대해 준비를 했지만 비닐장갑과 온수, 우비는 여전히 부족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순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참가자들은 모두 빗물을 머금은 옷과 장갑을 짜기 바빴지만, 이내 이마저도 포기하고 도로 바닥에 흐르는 빗물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순례단은 "이날 내린 비가 타들어 가는 대지와 농민의 마음에는 여전히 부족하겠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단비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가을 가뭄에 예전 임금들은 기우제를 지냈지만, 요즘 정부는 농심을 위로하기는커녕 직불금으로 농민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대지에는 투기를 조장하니 시절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순례단은 "다른 날보다 힘들었는지 마지막 구간을 알리는 소리에 참여자들의 고통으로 굳어졌던 얼굴이 환하게 풀렸다"며 "비가 와서 기쁘고, 비가 와서 힘들었던 하루였다"고 밝혔다.
비 오는 도로 위 풍경…'속도'와 '생명'에 대해 생각하다
순례단은 "비가 오는지라 차량 소리는 더 위협적으로 들리고 차가워진 도로에 몸은 떨렸지만, 그 속에서 작은 생명을 바라봤다"며 "그곳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차들이 속도 경쟁을 벌이는 4차선 혹은 6차선의 국도에서 몸을 낮춰야만 볼 수 있는 생명을 만났다"며 "이 생명체들은 '오체투지도 너무 빠르다'며 더 느리게 더 몸을 낮추라고 가르치려는 듯 했다"고 빗길에서 만난 달팽이를 언급했다.
또 순례단은 순례 50일 동안 대부분을 도로 위에서 오체투지를 했다. 이들은 이런 도로에 대해 "사람들은 차량 하나 다니지 않는 곳까지 도로를 만들었고, 이 도로로 마을과 마을이 이어졌지만, 오히려 도로가 공동체를 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옆 마을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갈 수 있었던 길은 이제 거대한 중앙분리대가 있고, 빠른 속도의 차들이 지나는 도로로 변했다"며 "도로가 오히려 공동체와 공동체를 단절시키고 소외시키고 있는데, 사람조차 소외시키는 도로가 작은 미물에게는 오죽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건설 산업과 자동차 산업만을 위한 도로가 아닌 사람과 작은 생명까지 고려한 정책을 추진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며 "비가 오는 날 도로 위의 풍경, 그곳에서 몸을 낮춰 나와 마주하는 거대한 생명을 바라봤다"고 설명했다.
85세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
이날 오후 김양순(85) 할머니는 전북 익산의 '나위위 성지 성당' 신자들과 함께 참여했다. 그는 지금까지 순례에 참여한 사람 중 가장 고령자였다. 그는 굽은 허리를 연방 조아리며 정성스럽게 기도를 했다.
"(왜 오체투지를 하는지) 나는 잘 몰라유. 그래도 세 성직자가 우리 모두를 위해 저렇게 고행을 하시니 마음이 아프지유. 우리나라 대통령이 잘해서 나라가 잘 돌아가면 좋겠어유. 그리고 사람답게 살려면 남의 것 빼앗지 않고 양심껏 살아야 해유. 저도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테니 순례하시는 신부님과 스님도 고통스럽지만, 세상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순례 도중, 한 보건소를 지날 때 어떤 이가 두 손을 흔들었다. 의아해하는 순례단을 보며 그는 징소리에 맞춰 정성스럽게 반배를 했다. 순례단은 그 길, 보건소 앞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오체투지를 했다.
순례단은 "이분들의 간절한 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닐 것"이라며 "너무나 아프기만 한 국민의 마음이 평온해 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과정 한 과정 진행되는 반배와 오체투지는 간절하기만 하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순례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백승헌 회장과 진보신당 이덕우 공동대표가 함께했다. 또 서울 강남 봉은사 신도들이 30여 명이 다녀갔다.
오체투지 순례 50일째인 23일, 순례단은 23번 국도를 따라 충남 논산 노송면 도리 근처에서 순례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오체투지 순례 카페 공지사항을 참고하면 된다.
* 오체투지 순례 마무리 행사 및 천고제는 오는 26일 오후 3시, 충남 공주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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