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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생태 (上)

"'만약 어떤 산적이 단 일 주일만 마을을 다스린다 하자. 그놈들은 아마 하루도 안 돼 마을을 거덜 내고 말 것이여. 그러나 일 년을 다스린다면 추수 때까지는 기다리겠고 사람들도 살려두겠지. 만약 십 년을 다스린다면 계획도 세울 거여. 다 굶어 죽으면 안 되니까 밥과 옷도 주면서 다스리겠지. 삼십 년을 다스린다면 애를 낳느냐 안 낳느냐까지 신경을 쓸 거다. 삼십 년을 다스리는 산적, 고것이 바로 국가란 것이다.'

'이왕 산적 밑에서 살 거면 오래 다스리는 산적이 좋겠네요?'

마리가 물으면 장익덕은 씩 웃으며 '아, 말이 그렇다는 거여. 어디 가서 애비가 그러더라고 떠들지는 마라'라고 알쏭달쏭한 대답을 했다."

"기왕이면 오래 다스리는 산적"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에 나오는 대화다. 소설 속 주인공의 장인인 장익덕의 말에는, 국가에 대한 탁월한 비유가 담겨 있다. 비유를 좀 더 연장해보자. 산적이 다스리는 마을에는 주민들이 물을 긷는 작은 우물이 있다. 갑자기 이 우물이 썩기 시작했다. 산적은 어떻게 할까?

십 년 동안 다스리는 산적은 별 신경 안 쓸 게다. 썩은 물 좀 마신다고 주민들이 당장 죽는 것은 아니니까. 삼십 년 동안 다스리는 산적은 혹시 몸에 이상이 있는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을까하고 걱정할 게다. 백 년 동안 다스리는 산적이라면, 당장 새 우물을 팔게다.

만약 내일쯤 마을을 팔아넘기려는 산적이 있다면, 그는 우물 뚜껑을 덮어둘지도 모르겠다. 팔아넘기는 순간만 모면하면 되니까.

소설 속 인물이 "기왕이면 오래 다스리는 산적"을 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런 산적이 더 착해서가 아니다. 마을을 오랫동안 다스리려는 산적은 마을이 당장 거덜 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대대로 오랫동안 살아남기를 원한다. 마을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셈이다.

"오직 하나뿐인 지구"…박정희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로 하늘이 뒤덮이도록 하자"

비유 속 마을에서처럼 우물이 썩어간 나라들이 있었다. 1960년대 북유럽, 특히 스웨덴과 노르웨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 경제가 성장을 거듭하고 있을 무렵이다. 정장 차림을 한 부유층 신사들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가 중산층의 상징이 됐다. 유럽과 미국에서 자동차가 흔해지면서, 거리는 매연에 뒤덮였다. 자동차 배기관과 공장 굴뚝이 뿜어낸 연기가 비와 섞이면서 산성비가 됐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호수 위로 산성비가 쏟아졌다. 이대로 가면, 북유럽의 푸른 숲마저도 산성비에 시들어 가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깨끗한 숲과 호수를 자랑해 왔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난리가 났다. 스웨덴, 노르웨이 정부가 특히 발끈했다. 1968년 5월, 스웨덴 사민당 정부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간 협력을 도모하는 국제회의를 제안했다. 1972년 6월 "오직 하나뿐인 지구"라는 주제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다. 113개국에서 1200여 명의 대표가 참가한 이 회의에서 결의문을 채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환경 문제'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 대표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역시 이런 쪽에 가까웠다. 스웨덴 정부가 이 회의를 제안하기 한 달 전인 1968년 4월, 박정희 전(前) 대통령은 포항제철 기공식장에서 "완공된 공장의 하늘을 굴뚝에서 솟구치는 검은 연기로 뒤덮이도록 하자"고 격려했다.

박 전(前) 대통령은 '삼십 년, 혹은 백 년 동안 다스리는 산적'보다 '십 년 동안 다스리는 산적'에 가까웠던 셈이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으로 달러를 벌어들이는 게 급했을 뿐, "굴뚝에서 솟구치는 검은 연기"로 하늘이 뒤덮인 뒤 벌어질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한데"…"미래 세대도 살아야지"
▲ 브룬틀란트 전(前) 노르웨이 수상. 의사이기도 한 그는 수상에서 물러난 뒤 국제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냈다.ⓒWHO

십 년 동안 다스리려는 산적들과 삼십 년 동안 다스리려는 산적들이 모인 회의에서 거대한 타협이 이뤄졌다. 당장 먹고사는 게 급한 상황에서 환경에 대한 고려는 '사치'일 뿐이라는 개발도상국과 환경 재앙을 염려한 일부 선진국 사이에서 이뤄진 타협이다.

생태계가 버틸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나왔다. 또, 당시 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은 '환경과 개발에 관한 유엔 세계위원회(World Commission Environment Development)' 구성을 결의했다. 노르웨이 노동당 소속 여성 정치인인 하를렘 브룬틀란트(Gro Harlem Brundtland)가 이 기구의 위원장을 았다. 브룬틀란트는 1986년 선거에서 노르웨이 수상이 됐다.

브룬틀란트가 1982년부터 5년 동안 준비한 끝에 1987년 내놓은 보고서가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rture)>다. '브룬틀란트 보고서'라고도 불리는 이 보고서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라는 개념을 널리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속 가능성'이란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제약하지 않고, 현 세대의 필요와 미래 세대의 필요가 만나는 것"이다.

이런 설명대로라면, 십 년 동안 다스리는 산적보다는 삼십 년 동안 다스리는 산적이 '지속 가능성' 개념에 더 충실한 셈이다. 현 세대가 굶지 않는 것만 생각하지 않고, 미래 세대의 필요를 위한 여분까지 남겨두니까.

스웨덴 "2020년까지 석유 없이 에너지 자급하겠다"

'지속 가능성' 개념의 원산지라서인지, 스웨덴과 노르웨이 정부 관료들을 만나면 "지속 가능한(Sustainable)"이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스웨덴에는 아예 지속가능개발부라는 정부 부처가 있다. 현 스웨덴 사민당 당수인 모나 살린이 요란 페르손 내각에서 지속가능개발부 장관을 지냈었다. 모나 살린 당수는 지속가능개발부 장관을 맡고 있던 2006년 2월, "2020년까지 세계 최초로 석유 없이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그는 이런 목적을 위해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 건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자력 발전소를 대거 건설해서 '녹색 성장'을 이루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과 대조적이다.

지난 2006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패배하고 우파 연정이 들어섰지만, "2020년까지 석유 없이 에너지를 자급 하겠다"는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 프레드릭 라인펠트 현 수상은 부유세를 폐지하는 등 적극적인 감세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탄소세 등 에너지 관련 세율은 오히려 높였다. 스웨덴 정부는 1991년 탄소세를 도입했다. 연료의 탄소 함유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규제하기 위한 장치다. 스웨덴 외에도, 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탄소세를 적용하고 있다.

실제로 스웨덴은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석유 의존도를 꾸준히 줄여왔다. 유럽 연합 통계에 따르면, 스웨덴의 석유 의존도는 1970년의 77%에서 2003년 32%로 크게 줄었다. 석유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운 게 풍력, 태양열 등 '재생 가능한 에너지'다. 스웨덴 전체 에너지 소비량 가운데 26%를 차지하는 게 '재생 가능한 에너지'다. EU 평균치인 6%보다 네 배 이상 높다.

덴마크, 원자력 발전소 없애고 '재생 가능 에너지'에 투자

물론, 스웨덴 역시 '지속 가능성' 부문에서 완벽한 모범생은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 건설하지 않겠다고 했을 뿐, 없애겠다고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원자력은 '지속 가능성'과 거리가 멀다. 우라늄에 의존하는 까닭에, 석유처럼 언젠가는 고갈될 에너지다.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생태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당연히, 폐기물 처리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원자력 발전이 경제적"이라는 계산은 폐기물 처리 비용을 현 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떠넘긴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나온다.

이런 점에서 가까운 덴마크와 대조를 이룬다. 덴마크 정부는 1979년 원자력 발전소 폐기를 못박았다. 대신, 덴마크 리소(Risoe) 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 연구에 힘을 쏟았다. 이런 선택은 덴마크 경제에도 큰 보탬이 됐다. 전체 발전량의 20%를 풍력발전으로 해결하는 덴마크는 해마다 75억 달러 어치의 풍력발전기를 수출한다. 1970년대까지 농기구를 만드는 중소기업이었지만, 이제는 세계 최고의 풍력발전기 업체가 된 덴마크 기업 베스타스의 성공 사례 역시 원전 폐기 결정 때문에 가능했다.
▲ 코펜하겐 시내에서 바다 쪽을 보면, 풍력발전시설들이 눈에 들어온다. ⓒ프레시안

원전 폐기 시기 논란…결정 뒤집은 우파 정부

스웨덴 역시 1980년 국민투표를 통해 원자력 발전소 폐기를 결정한 역사가 있다. 당시 결정에 따르면, 오는 2010년까지 모든 원자력 발전소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2006년 선거로 집권한 우파 정권이 결정을 뒤집었다. 현 정부는 원전 폐기 약속은 지켜야 한다면서도, 지금 당장 원자로를 폐기하기는 아깝다는 입장이다. 과거와 달리, 각종 여론 조사에서 원전 존치 의견이 높아진 것도 한 배경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는 2010년 선거 결과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현 집권 세력인 우파 연정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연재 세 번째 키워드는 '생태'입니다. '생태'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에는 노르웨이, 덴마크의 환경 및 에너지 정책 담당자에게 들은 내용이 담길 예정입니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연재를 시작하며 :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 첫 번째 키워드 :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 두 번째 키워드 : 코뮌

"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上)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中)

"'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下)

- 세 번째 키워드 : 생태

"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上)

'MB식 녹색성장'이 불안한 이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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