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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한 시기, 비상한 사건, 비상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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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한 시기, 비상한 사건, 비상한 사람

[완군의 워드프로세서] '비상한'

비상한 시기, 주화입마에 빠진 미국 그리고 세계는?

비상한 시기이다. 미국이 사회주의화되고 있(단)다. 놀랍게도 그 깃발을 올린 곳은 월가이다. 그 빨간 깃발(red flag)의 전위에 서 있는 이는 그 이름도 유명한 <파이낸셜타임스>라고 한다. <파이낸셜타임스>가 "큰 나라들(아마도 G8쯤)의 정부들은 그들의 뱅킹 시스템(덩치 큰 은행들)을 인수하여야 한다"고 선동하고 있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경제에 관해 거의 모른다. 게다가 영어까지 할 줄 모르니 이 비상한 금융 위기에 대해선 거의 까막눈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낫 놓고 기역자를 연상해야한다는 법칙 자체를 모르니 솔직히 창피할 것도 없(는 수준이)다.

그래서 막 떠들었다. 월가의 황소 주인이 엎어지던 날, 여기저기에 문자를 날렸더랬다. '거봐, 미국 망한다고 했지ㅋㅋ' 모든 지구인의 꿈이라 할 만한 메릴린치의 황소가 도륙된 상황에서 미국 헤게모니의 종말이 다음 정거장이라는 호들갑스런 예견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밑질게 하나 없었고, 몹시 그럴싸했고, 매우 정당했더랬다. (사실, 무식한데다 신념까지 강한 나는, 속으로 이러다 말겠지 했었다.)

그런데, 미국은 역사적으로 망하게 되어 있다는 유사 노스트라다무스 수준의 '세계체제' 분석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미국 망한다, 확실히, 더 빨리' 대열에 쐐기를 박으시더니, 명백한 '좌빨'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하수상한 시기에 노벨 경제학상을 거머쥐더니, 국내 대중 지성계의 '빅뱅' 박노자 교수마저 딱 찍어 '20년 후 미국이 망한다'는 예언의 행렬에 동참하셨다.

물론, 굴지의 은행들이 '아이고, 죽겠다'며 학익진을 펴고,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에 가깝던 (신자유주의자로 변신한 왕년의 좌파) 영국의 브라운 총리가 전후 국제 통화·금융 제도의 규범이었다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폐지하고 이른바 '신브레턴우즈 체제'인가로 가자고 섹시한 나팔을 불어대며 신세계 영웅으로 부상하는 분위기에 편승한 소용돌이일 수도 있다. (이 와중에 주가 폭락으로 848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영국 여왕은 뭥미?)

그러나 우연도 세 번이면 필연임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고사에서 보자면, 적군의 장수가 스스로 상대의 권위에 감복해 그 수하로 귀화해 간다면, 그것은 망국이 시작된다는 의미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부시의 장수였던 파월이 오바마의 수하로 자진 귀화했다. 양당제의 역사가 곧 국가의 역사이기도 한 미국이다. 그 경계가 이토록 적나라하게 빨리 허물어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곧 미국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져들고 있음이다. 참으로 비상한 시기가 아니라 할 수 없다.

비상한 사건, 언론인 463명, 강만수 그리고 최시중은 탔을까, 안 탔을까?
▲ 쌀 소득보전 직불금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총연합 회원들이 한승수 국무총리와 면담을 위해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은 이를 막았다. ⓒ뉴시스

쌀 직불금 파문이 끝내 최홍만 수준의 맷집을 뽐내던 한나라당의 아킬레스건을 후벼 파고 있다. 세상만사 모두 별일 아니라며, "내게 그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들 대지 말라"며 이러쿵저러쿵 말을 돌리던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 대표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쌀 직불금 국정 조사'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단)다.

이로써 지금도 중요한 '쌀 직불금 파문'은 앞으로 더욱 중차대해져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았다. 극히 일부 언론에서만 공개한 <직불금 수령자 중 비경작자 직업 확인 현황>(출처 건강보험관리공단)을 보면, 직불금을 허위로 수령해간 이들은 17만3497명이다. 표면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숫자를 구성하고 있는 직업의 분포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원내대표의 법적 견해로 보자면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하는 직불금 부정 수령자는 회사원, 공무원, 금융계, 공기업, 전문직 그리고 언론계 등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서 고른 분포를 보인다.

이 현황표는 직불금 파문에 직접 이름이 거론된 한나라당 국회의원 몇몇과 손으로 꼽을 만한 일부 고위 공직자만 일벌백계하면 될 문제가 아님을 정확히 한다. 그리고 특히 그 모든 분포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것은 단연 언론인이다. 왜냐면 그들 때문에 보도가 안 되기 때문이다. 물 탄다.

쌀 직불금 수령한 언론인 463명이다. 하루하루 기사 마감하랴, 술 마시랴 바쁜 언론인이 손수 농사를 지을 리 만무하다. 특히, 평균 소득이 5696만 원에 이르는 잘 나가시는 언론인이 말이다. 그걸 잡아내고 밝혀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 사건을 언론은 너무 티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언제나 있는 부패의 문제로 치부하며 묻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 사건이 비상한 사건인 중요한 이유는 그 숫자이다. 대한민국 2%가 내는 세금인 종부세를 내는 가구는 총 28만6354가구이다. 정확한 것은 감사원이 표본을 까면 대조해봐야겠지만, 이번에 직불금을 부정 수령해간 17만3497명 대부분은 아마도 종부세를 내던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유리지갑 같은 월급 봉투에서 모인 나랏돈(세금)을 사기친 것들이 그동안 자기들이 내야 할 세금은 '폭탄'이라고, 생사람 잡는다고, 못 내겠다고 생쑈를 벌여 왔던 것이다.

돈이 없어 대출 받아 종부세를 냈다며 몹시 억울해하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땅이 1460.00㎡더라.(참고로 땅이 가장 많은 이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이다.) <무한도전> 노홍철 수준의 가벼운 입놀림으로 일각에서 '경제수장의 오럴헤저드·오럴리스크'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강만수 장관은 직불금을 탔을까, 안 탔을까? 그렇다면 최시중은? 오호라 배째여, 참으로 비상한 사건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비상한 사람, 조용한 그러나 거대한 새로운 물결 노종면

'좌빨'이라고 하는 대중적(!) 용어와 비슷한 뉘앙스로 훨씬 덜 대중적인 용어 중에 비슷한 말로 '쪼끼'란 말이 있다. 노동조합 이름이 새겨진 낚시용(혹은 등산용) 자켓을 입는 일부 간부를 주로 일컫는 말이다. 맞다. 비아냥이다. 감히 말해보건데, '쪼끼'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쪼끼'는 유사 동아리방 수준의 노조 사무실에 거주하는 원주민이다. '쪼끼'를 입는 것으로 종족적 특성을 확인하고, 유사시 그 '쪼끼'는 과도한 공격성의 보호막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운동권 언어라고 하는 방언을 주로 사용하는데, '주체', '조직', '역분(역할분담)', '완수', '결의' 등과 같은, 듣기만 해도 고루함에 질려 버릴 것 같은 문어를 일상어로 구사한다.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는 체계를 중요시 여겨, 위원장의 '결심'따라 '행동'하는데, 자주 위원장의 '결심'없음 만을 탓하며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쪼끼'는 진심으로 강하다는 걸 알지만 본받고 싶지 않은 무엇, 막강한 열정을 갖고 있지만 100% 존중만을 기대하기엔 스스로 낯선 무엇, 시대의 감수성과 화해하기엔 너무 경직된 무엇, 즉 사회 운동 스스로 자신들의 어떤 한계를 지칭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운동은 언제나 그 '쪼끼'들을 열렬히 환영하고 기대한다. 아, 배반의 장미여, 그 이름 '쪼끼'여~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참 어려운 때에 '쪼끼'를 입었다. 처음 그가 '쪼끼'를 입었을 때, 반신반의했다. 낯설었다. 왜냐면, 그는 '쪼끼'치고는 일단 목소리가 너무 섬세했다. 쇠를 가를 것 같은 우레성이 아닌 또박또박한 그의 음성은 신선하면서도 못 미더웠다. 게다가 그는 공정한 방송, 정직한 저널리즘을 요구하는 시민과 내부 구성원들의 뜻을 따르면 이길 거라 확신한다며 '종이 비행기' 날리기를 제안했었다. 참, 뭐랄까. 순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낭만적이었고, 여유롭다 하기에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한 없이 투명에 가까운 '쪼끼'였다.

그는 노종면이다. YTN 낙하산(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투석', 그냥 짱돌) 사장 저지 투쟁을 이끌고 있는 전직 기자이다. 단언하건데, 촛불이 일으켰던 거대한 스펙터클의 끝자락에서 겨우 시작된 그 싸움이 100여 일을 올 것이라 믿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어쩌면, 그 자신조차도) 그리고 그는 머리띠 질끈 동여 메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분쇄하자고 외치는 것 외엔 별다른 그림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기존의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아침에 또 만나요 본홍씨'를 외치는 출근저지 투쟁, '우리 낙하산사장 왔어요'를 고백하는 제작 투쟁, '서서 사느니 제자리에 앉아서 죽겠다는 복지부동'의 인사거부 투쟁, '스튜디오는 투명 (해야)합니다'를 알린 생방송 피켓 캠페인, 그리고 나와 같은 찌질이들의 가슴을 일순간에 슈트 동경으로 채워버린 '드레스 코드 블랙 투쟁'까지.

그는 조용히 그러나 거대하게 스스로 새로운 물결(누벨바그·nouvelle vague)이 되었다. 사회 운동의 폭풍 간지가 되었다. 그는 담담히 거부할지 모르겠으나, 난 그의 팬이다. YTN 노조원 '징계 무효' 소송을 제기하던 날 그가 입었던 블랙 슈트는 근래 내가 본 가장 매혹적인 한 컷이었다. 진보는 왜 지지부진한가, 스스로 자문해 보자. 옮으리라는 확신과 당위, 선의와 열정의 진심만으론 안 된다. 사회를 바꾸려면 궁극적으로 멋져야 한다. 스타일의 연식이 딸려선 곤란하다. 후진 이미지로는 안 된다. '쪼기'를 벗는 '결심'으로 '행동'을 이끌어낸 최초의 노조위원장 노종면, 참으로 비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미국의 위기라고 하는 신자유주의 전체를 향한 일촉즉발의 풍랑, 그 태풍의 찻잔 속에서 농민을 위해 남겨놓은 최후의 까치밥까지 해쳐 먹고 남 탓하기 바쁜 천하태평 2%의 국내 귀족들, 그리고 노종면 YTN 노조 위원장.

언젠가 광화문 벽에 이명박 서울시장의 불도저 행정을 반대하는 퍼포먼스에서 휘갈긴 벼락같은 문구가 생각난다. 하수상한 시절도 글로벌 스탠다드화 되어가는가 싶은 이번 주의 열쇠말은 '비상한'이다. "비상한 시기엔 비상한 사건이 일어나고 비상한 사람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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