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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부發 긴급 사이렌, 효과 있을까

국제금융시장 불안 극복방안…시장 불안 해소가 관건

우왕좌왕하는 시장에 정부가 사이렌을 울렸다.

정부는 19일 금융 시장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국고를 털어서라도, 시장을 진정시키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이날 나온 '국제금융시장 불안 극복방안'은 △외환시장 안정 대책 △원화 유동성 확대 대책 △증시 안정대책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핵심은 외환시장 안정 대책이다.

"아시아 국가는 지급보증 필요 없다"던 강만수, 닷새 뒤 입장 바꿔

정부는 19일부터 내년 6월말까지 국내 은행들이 차입하는 대외 채무를 10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3년 간 지급보증하기로 했다. 잇따라 같은 조치를 내놓고 있는 유럽, 미국, 호주 등과 발을 맞추는 대응이다.

이들 정부들이 은행 차입금 지급보증 대책을 내놓고 있을 때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속 망설이는 입장이었다. 홍콩 정부가 같은 대책을 내놓은 지난 14일, 강 장관은 지급보증 대책에 대한 질문에 "유럽과 호주 등 일부 국가는 이미 하고 있지만 아시아 국가는 아직 그럴 필요까지 없다는 상황"이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정부도 태도를 바꿨다. 이미 금융시장 안정책을 내놓은 유럽, 미국 등으로 외국인 자금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더 안전한 선진국 시장이 있는데, 굳이 한국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6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은행 예금 지급보증안을 발표했다. 결국, 계속 뜸을 들이던 한국 정부 역시 19일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이렇게 되면, 일단 은행들의 '달러 가뭄'을 해소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유럽 등이 지급보증안을 내놓은 이후, 국내 은행들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웠다. 이번 조치로 국내 은행들은 자체 신용도가 아닌 국가 신뢰도를 내걸고 해외 자금 조달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또, 한국은행·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풀리게 될 300억 달러도 은행권 달러 가뭄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돈이 마른 시장에 긴급 수혈

이번 대책의 두 번째 강조점은 원화 유동성 지원이다. 정부는 이날 기업은행에 1조 원 수준의 현물출자를 결정했다. "지난 8월 이후 은행권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이 50% 이상 감소하고 중기대출증가액 중 시중은행 비중이 올해 상반기 82.9%에서 9월 들어 62.1%로 크게 떨어지는 등, 중소기업 자금난이 심화됐다"는 게 이런 조치의 배경이다.

현재 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 비율은 6월 기준 10.49%로 국내은행 평균 11.36%를 밑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 출자를 통해 기업은행의 자본금이 확충되면 BIS 비율에 여유가 생겨 더 많은 대출이 가능하게 된다. 정부는 이번 출자로 기업은행을 통해 12조 원 규모의 추가 대출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은행이 국채나 통안증권을 매입하고, 회사채 펀드에 세금 혜택을 부여하겠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면, 금융기관에 현금이 풀리게 된다. 회사채 펀드에 세금 혜택이 생기면, 위험 자산으로 분류돼 돈이 쏠리지 않고 있는 회사채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인도 생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금융기관이 대출 폭을 늘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번 조치로,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열쇠는 은행들이 쥐고 있다. 경기가 불안한 상황에서 대출 문턱이 실제로 낮아질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펀드 환매 심리 잡겠다"

세 번째 강조점은 증시 안정대책이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장기주식형 펀드에 가입한 경우 3년간 배당소득 비과세와 함께 불입금액의 일정비율에 대해 소득공제 등 세제혜택을 주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3년간 같은 돈을 갖고 은행 예금을 할 경우와 펀드에 가입할 경우 펀드에 가입하는 쪽이 더 많은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매월 100만 원씩 3년간 은행 예금(이율 5.8%)에 가입할 경우 저축불입액은 3600만 원, 이자는 322만 원이며, 세율 15.4%를 적용받을 경우 손에 쥐는 이자는 272만 원이다.

그러나 펀드에 가입할 경우 소득공제만으로 3년간 92만 원(연간소득공제액 단순합계, 투자자의 소득세 한계세율을 20%로 가정)의 혜택이 주어지며, 펀드수익율이 연간 3.2%만 되도 은행예금과 동일한 수익률을 얻게 된다.

정부가 이처럼 펀드 가입을 독려하고 나선 것은, 물론 펀드 대량 환매 사태를 막고 증시로 자금을 유입하기 위한 조치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조치가 '심리적 안정'을 겨냥했다고 보고 있다. 증시 폭락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신호로 여기는 것이다.

남은 카드는 '예금보호 범위 확대'

△외환시장 안정 대책 △원화 유동성 확대 대책 △증시 안정대책 등으로 구성된 이날 대책은 정부가 최근 상황을 사실상 비상 국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거나 국경을 넘는 자본흐름을 강제로 중단하는 세이프가드 조치 등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조치다.

만약 이날 조치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정부는 어떤 카드를 쓸 수 있을까.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외국과 발을 맞추면서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 꼽히는 게 '예금보호 범위 확대'다. 현재 한국의 예금보호 한도는 5000만 원이다. 미국은 최근 예금보호 범위를 기존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로 늘렸고, 영국은 3만5000파운드에서 5만파운드로 넓혔다. 독일은 아예 무제한 예금보호를 선언했다.

정부는 이 방안을 아껴두고 있다. 아직 '뱅크런'(예금 대량인출사태)의 조짐이 없는데다, 괜한 조치를 발표해 자칫 불안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날 마지막 카드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뒀다. 강만수 장관은 "예금보호 범위 확대 등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그러나 필요할 경우 적기에 충분한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19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전광우(오른쪽) 금융위원장, 이성태(왼쪽) 한국은행 총재와 고위 당정회의를 거쳐 확정한 '국제금융시장 불안 극복방안'을 공식 발표한 후 기자들 앞에 섰다. ⓒ연합

강만수 경질 없이 '불신' 해소 가능할까한국 떠난 외국인들, 복귀 여부도 변수

정부의 비장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날 나온 대책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이 금융 위기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님에도, 국내 금융 시장이 극도의 불안에 빠진 결정적인 계기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바로 '불신'이다. 세계적 경제 위기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대응할 능력이 없다는 '불신'이 시장 주체들을 '불안' 속으로 떠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대책에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한 중장기 대책이 빠진 점은 한계로 꼽힌다. 또 야당이 강만수 장관 경질을 조건으로 내건 점도 핵심 변수다.

또 회사채 및 주식형 펀드에 대한 세제 혜택이 국내 유동성 위기 해소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불분명하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10조 원의 자금이 시중에 풀릴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가 국내 증시 부양의 열쇠를 쥐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큰 매력이 없을 수 있다. 펀드 별로 최대 50% 이상 원금 손실이 난 상황이다.

단기간 신규 펀드 가입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적은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에 들어설 가능성 역시 높지 않다. 은행 예금에 국내 자금이 쏠리고 있는 상황 역시 한 변수다.

외환보유고, 무한정 풀 수 있을까

만약 이날 발표에도 불구하고 펀드 대량 인출 사태가 불거진다면, 주가가 급락하면서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원/달러 환율이 다시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외환보유고 현황 역시 중요 변수다. 이날 발표는 정부가 '작심하고' 외환보유고를 풀기로 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하지만 외환보유고 역시 한계가 있다.

9월 말 기준으로 외환보유액은 2396억 7000만 달러다. 그런데 정부가 시중에 공급하기로 한 외환은 최대 1450억 달러로 전체 외환보유고의 60%에 달한다. 지급 보증액 1000억 달러와 직접 풀기로 한 300억 달러, 이미 외환 스와프 시장에 공급한 100억 달러를 합친 금액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달러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최악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급보증한 1000억 달러가 한꺼번에 빠져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또 정부는 수·출입 은행을 통해 공급한 달러와 한은의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은행으로 들어가는 달러 역시 만기가 1개월~3개월로 해당 기간만 달러가 나갔다 되돌아오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완전히 소진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1997년처럼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보는 셈이다.

월요일, 시장은 어떻게 반응할까

결국, 문제는 다시 '신뢰'다. 일요일에 나온 대책에 대해 월요일 열리는 시장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이번 조치는 금융 시장이 안정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이 여전히 "정부 대책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펀드 대량 인출 사태가 벌어지면서 위기가 가속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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