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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게 쌀직불금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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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게 쌀직불금 뿐일까

[김종배의 it] 양심불량 부재지주도 꼴사납지만…

1.

제 고향은 반농반어촌이었습니다. 여름엔 쌀농사 짓고 겨울엔 김 양식하는 마을이었습니다.

한 때는 그럭저럭 살 수 있었습니다. 여름에 농사지어 진 빚을 겨울에 김 양식해서 갚을 수 있었습니다. 김 값이 꽤 셌었거든요. 어른들 말씀에 따르면 우리 마을에서 나는 김이 너무 좋아 전량 일본으로 수출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값을 후하게 받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한 때였습니다. 관이 나서서 서울에서 내려온 매집상에 김을 파는 것을 금지하더군요. 공판장을 통하지 않고 팔면 김 양식장을 내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더군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후부터 김 값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한 집 두 집 마을을 등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처로 나가 날품팔이를 하더라도 이것보다는 낫겠다며 옆집 윗집이 짐을 쌌습니다. 70년대에 여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탈농행렬, 빈농에서 도시빈민으로 수평이동하는 행렬은 우리 마을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마을 가구 수가 절반 가까이 줄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농사 밖에 없는 놈이 가긴 어디로 가냐면서 옆집 아저씨가 짐을 쌀 때 아버지는 지게를 지었습니다.

가진 땅이 많았던 게 아니었습니다. 코딱지만 한 텃밭을 빼고는 모두가 남의 땅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소작농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죽어라 김을 메고 농약을 뿌리고 꼴을 벴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다음에야 발에 묻은 흙을 털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낫을 갈고 여물을 쑤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저로서는, 경제관념이 있을 턱이 없던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죽어라 지어 거둔 쌀의 절반을 뚝 떼어 땅 주인에게 보내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쌀을 갖다바쳐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고, 신문지에 고기 한 점 싸서 보낸 적이 없는 땅주인이 얄미웠습니다.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레오파드' 운동화 하나 사주지 못하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부러진 안경테 하나 바꿔주지 못해 본드로 바르고 하얀 반창고로 친친 감아주던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버티다 못해 서울 성수동의 작은 월세방으로 이사할 때까지 아버지는 농사를 멈추지 않았고 '레오파드' 운동화는 신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십수 년을 소작농으로, 소작농의 아들로 살았습니다.

2.

개인적인 경험 때문일까요? 곱게 보이지 않습니다.

4만명이 넘는 부재지주가 쌀직불금을 타갔습니다. 소작농이 받았어야 할 1600억원이 넘는 돈을 도회지에 사는 땅주인들이 받아 챙겼습니다.
▲ ⓒ뉴시스

그런데도 정치권은 싸움판을 거두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은 쌀직불금제를 만든 쪽도 노무현 정부고, 쌀직불금이 줄줄 샌 때도 노무현 정부 때고, 쌀직불금이 샜는데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쪽도 노무현 정부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고위공직자들을 캡니다. 1000제곱미터 이상의 농지를 소유한 고위공직자들이 쌀직불금을 받아갔는지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셈법은 뻔합니다. 한나라당은 성난 농심과 민심이 자신들에게 향하는 것을 차단하려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를 끌어들여 물타기를 하려고 합니다. 민주당은 '한 방'을 기대합니다.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에 비견할 만한 또 다른 사례를 움켜쥐면 이명박 정부에 유효타를 날릴 수 있다고 희망합니다.

싸잡아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가릴 건 가려야겠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정권의 도덕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리는 건 긴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곱게 보이지 않습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꼴사나워 보입니다. 일의 선후관계를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급한 건 공세가 아니라 대책입니다. '쌀직불금 안 타면 바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만연된 시스템을 바로 잡는 게 급선무입니다.

원론에 기대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이 너무 절박합니다. 농자재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비료값과 면세유가 두 배로 뛰었습니다. 복합비료의 경우 20kg 한 포대 가격이 1만2000원에서 2만4000원으로 뛰었고, 면세유는 리터당 1300원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가량 올랐습니다.

쌀값은 하락하고 있습니다.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었고 일조량이 좋아 쌀 생산량이 최대 10% 늘 것으로 전망되면서 쌀값이 8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두 배 이상 뛰어오른 농자재값은 고스란히 소작농이 부담합니다. 하락세에 반비례해 증가할 쌀직불금은 부재지주 주머니로 들어가기 십상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개선해야 합니다. 쌀직불금이 부재지주 배만 불려주는 현재의 시스템을 촌각을 재가면 개선해야 합니다. 쌀직불금은 일년 사시사철 신청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률에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정하는 날까지'로 돼 있지만 통상 2월말까지 신청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기국회, 아니 당장 이 달 안에 관련 법률을 개정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하지만 느긋합니다. 정치권은 한눈을 팔고 있습니다. 밑 빠진 독을 떼우려 하지 않고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는 걸 막는 데 급급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꼴사나워 보인다고 말하는 겁니다.

불로소득을 챙기는 사람들은 양심불량 부재지주만이 아닙니다. 제 할 일 하지 않는 정치인도 불로소득을 챙기고 있습니다. 한 달에 1000만 원 가까운 세비를 꼬박꼬박 챙겨갑니다.

아, 잘못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불로소득이 아닐지 모릅니다. 열심히 싸우고 받아가는 '파이트머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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