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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 비상거국내각만이 살 길이다"

[좌담]"루스벨트 흉내내려면 제대로 하라"

미국발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한국의 실물경제에까지 드리워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가진 경제학자 3인의 긴급 좌담은 정치학자들의 좌담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현 경제위기는 정치위기와 맞닿아 있다는 게 이들의 진단이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그의 신작 <미래를 말하다>에서 "경제적 변화가 정치적 변화를 이끈다는 명제는 사실이 아니다"고 술회하면서 경제가 결국 정치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다. 크루그먼 역시 부시 행정부 이전까지는 순수(?) 경제 문제에 집중하던 학자였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10일 <프레시안>이 기획한 좌담에서 미국 금융위기에 대해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제학자들도 판단하기 힘든 한 세기에 한번 있을 사건"이라는 이들의 판단은 현 금융위기를 유발한 주범으로 지목되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지적과 일치한다. 이런 미국발 위기는 세계화된 금융시스템을 타고 유럽, 일본을 거쳐 이머징마켓(신흥시장)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98년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며 위기는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미 지난 3월 베어스턴스가 무너지는 등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집권한 현 정부는 '성장'을 얘기하면서 고환율정책, 종부세 인하 등 감세정책, 각종 규제완화 등 정신이 팔려 있었다. 촛불집회와 관련해서는 검찰, 경찰을 동원해 고등학생, 유모차 부대까지 잡아들이는 정부가 고환율정책의 최대 피해자인 중소기업들에 5조 가까운 손실을 입은 키코(KIKO) 문제에는 뒷짐 지고 있다. 또 환율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주가가 대폭락하는 등 금융 불안이 현실로 나타난 상황에서도 '좌파 교과서' 문제를 끄집어 내는 등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이 "좌파세력이 이념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며 사실상 '좌파 척결'을 진두 지휘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의 이같은 안이한 인식이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돼야 하며, "감세, 부동산 부양책 등 상황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전국민이 아니라 '2% 강부자'만을 위한 정책노선을 접어야 한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정치적 갈등 뿐 아니라 계층 갈등까지 야기하는 이런 정책은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힘을 모아야 하는 위기 상황에 걸맞지 않다. 한나라당의 '달러 모으기 운동' 제안에 냉소적 반응이 되돌아오는 것은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하다.
▲ ⓒ프레시안

이들은 이명박 정부가 진짜 위기를 헤쳐 나가기를 원한다면 정파적 이해 관계를 떠나 과감하게 비상거국내각을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지금은 초당적 협력을 해야할 위기 상황이라는 인식이다.

정치권이 초당적 협력을 통해 집중해야할 문제는 서민들을 위한 대책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규정한 연봉 1억2000만 원 이상이며, 강남에 30평형대 아파트 한채 정도는 갖고 있는 '중산서민층'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때 중산층이었다가 IMF의 직격탄을 맞고 서민층으로 떨어졌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서민도 아닌 '불가촉 천민'으로 전락했다고 스스로 자조하는 계층을 말한다.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이들 한계계층은 이미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진정으로 이들의 문제를 얘기할 때, 국민들은 기꺼이 장롱 속의 달러, 달러가 없는 대다수 서민들은 금붙이라도 기꺼이 내놓을 것이라고 이들은 조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공황을 극복한 루스벨트 대통령을 벤치마킹해 라디오 주례연설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부자들에게 엄청난 세금을 거둬 서민을 지원했던 뉴딜정책의 핵심을 벤치마킹하지 않는다면 빈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다음은 10일 진행된 좌담 전문이다.

규모조차 파악 안된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

권영준 : 우선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진전 과정과 특징을 중심으로 이번 위기를 나눠보면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1차 파고는 지난 3월 베어스턴스가 무너지기 전까지다. 2007년 3사분기부터 4사분기까지 연결되면서 헤지펀드 중심으로 대형 손실이 났다. 2차 파고는 이런 손실이 CDO(부채담보부증권) 등에 전가되면서 손실의 승수효과가 터져 나가 리먼 브라더스 등 대형 투자은행(IB)들까지 파산한 기간이다. 3차 파고는 7000억 달러 구제금융안이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어제(9일) 뉴욕 다우지수가 8500선까지 밀려나는 등 여파가 실물경제로 번져나가는 것이다.

유종일 : 이번 위기는 규모면에서 대공황 이후 최대 금융위기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그 규모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부실의 규모에 대해 3000억불, 5000억불 정도라고 얘기가 되다가 금방 3조, 5조 얘기가 나오는 등 규모가 파악되지 않는 엄청난 불확실성이 있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이런 리스크를 키웠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금융시스템이 이를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전이, 증폭시키고 있다. 이게 생각보다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물경제에 대한 충격도 여타 금융위기에 비해 심각할 것 같다.

홍종학 :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미국에서 우리 외환위기와 비슷한 금융위기가 조금 생겼는데, 미국이 워낙 큰 나라니까 우리도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다.

2001년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 과잉이 되면서 레버리지가 계속 심화됐다. 지금은 디레버리지(투자은행들이 자신의 자산을 매각하고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 상황이다. 이전에는 레버리지의 신용 단계가 한 단계로 끝나고 말았는데, 금융이 발달하면서 채권이나 부채를 갖고 새로운 증권을 만들고, 또 만들고, 7-8개를 거쳤는데, 지금 그 중간중간이 다 끊어져 나가는 상황이다. 그래서 거꾸로 회수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는 미국 뿐 아니라 선진국이 전부 똑같다. 유럽이 더 위험하다고 얘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유럽에서는 예금을 전액 보장하겠다고 하지 않냐. 독일이 그런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부채 비율이 유럽의 몇 개 국가가 더 높다고 한다.

권영준 : 금융시스템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왜 유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냐. 결국 수퍼 파워 미국이 영국을 거쳐 유럽시장 전역을 걸쳐 파생상품을 이미 침투시킨 것이다.

홍종학 : 또 하나는 유럽도 모기지 문제가 있다. 더군다나 미국보다 악화될 수 있는 게 그쪽은 변동금리 모기지가 미국보다 더 많다. 그러니까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고,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당연히 우리나라 IMF를 겪은 것보다 엄청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 '9월 위기설' 때 보면 위기를 조장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처벌하겠다고 하면서 이 사태에 대해 입을 다 막아버렸다. 사실을 얘기하는 게 자칫 위기를 조장하는 게 되면서 학자들의 입을 막아버린 상황이다. 얼마 전 한 언론이 '경제학자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던데, 그 이전에 정부에 왜 입을 막았냐고 물어야 한다.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98년 외환위기보다 괜찮다, 지금 경제는 굉장히 좋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경제학자들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세기에 한번 올까 말까한 상황인데, 다양한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로부터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물어도 시원찮을 판에 정부가 모든 논란을 없애 버렸다.

▲ 유종일 교수. ⓒ프레시안

유종일 : 올해 초 인수위 시절에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연구기관장들10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때 기관장들이 모두 7% 경제성장 달성이 문제없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정부가 입을 막기 이전에 일부 전문가들은 알아서 정부가 듣고 싶은 말만 한다.

미 모기지 계좌의 1/6이 '깡통계좌'

홍종학 : 지난 여름에 미국에 가서 보니까 이미 '12단계 경제붕괴설'을 주장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2월에 국회가 나가 지금 12단계 중 3, 4단계를 가고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을 메이저 언론에서 다 실어주더라. 물론 월스트리트에서는 괜찮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양쪽 주장을 다 실어주더라. 실제로 가을 들어오면서 위험하다고 하는 사람들 얘기가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얘기는 모두 묵살하고 정부 얘기만 한다. 상황을 일반인들은 전혀 파악할 수가 없다. 지금 몰아치는 것은 잔파도니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해서 나갔는데 큰 파도가 덮치면 배가 쏠리게 되고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일이니까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미리 대비를 했으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투자가들 중에 정부가 아무리 해도 안 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망하면 들어가겠다고 벌처펀드로 투자하겠다고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쏠림현상이 훨씬 더 심해질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세계적인 레버리지가 디레버리지 되는 상황, 이것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든 6개월 내에 종식이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에서 모기지론 받은 사람들의 1/6이 이미 모기지 대출액이 주택가격보다 높다고 한다. 1/6이 깡통계좌라는 말이다. 어마어마한 것인데 금융위기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더 내려갈 것이니까 이 수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두 가지가 겹친 상황이다. 바닥을 알려주는 모기지는 개선이 안 되고 있고, 디레버리지는 계속 되니까 금융경색은 엄청나게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대공황의 가능성도 조금의 가능성은 있다. 지금은 가능성은 낮지만. 그런 정도로 대비해줘야 하는데 IMF보다 위험이 낮다고 보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얘기다.

유종일 : 그동안 우리 경제를 그나마 수출이 끌고 왔는데, 이걸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권영준 : 일본이 지난 8월에 3240억엔의 무역수지 적자가 났다. 26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봤다. 이게 우리한테 오는 시그널이 큰 것이다.

한국 상황 IMF때보다 좋지 않다

유종일: 1998년 외환위기와 비교해보면 유사한 점도 많고 다른 점도 많다. 다른 점이 그때 당시 심각한 위기를 맞았지만 비교적 빨리 회복이 가능했던 게 세계 경제가 좋았다. 미국 경제가 소위 닷컴버블이라고 IT쪽에 투자가 많이 이뤄져서 한국 경제가 수출을 통해 빨리 회복될 수 있었다. 지금은 반대다. 주요 수출 시장이 다 가라앉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그때는 가계가 지금처럼 막대한 부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구조조정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지만 그래도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가계 금융이 심각하다. 가계 가처분 소득의 1.5배가 부채다. 이 상태로 계속 고용이 안 되고, 소득이 악화되고, 이자율이 올라가면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다만 외환위기 당시에 구조조정을 어느 정도 했기 때문에 대기업과 은행부실 문제는 그때에 비해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홍종학 : 책임을 명확하게 하자면 부동산 거품과 가계부채 문제는 이전 정부 책임이다. 그런데 외환시장 박살낸 것은 현 정부 책임이다. 전정부에서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쌓아놓았고 현 정부 들어설 때 환율이 900원대였다. 하지만 현 정부가 세계금융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고환율 정책을 쓴 것이다.

이분들이 지난 10개월 동안 무엇을 했냐. 이런 상황에 대해 전혀 신경 안 쓰고 감세, 종부세 인하 등을 추진했다. 이런 일을 하려면 기획재정부 상층부는 다 거기에 매달려야 한다. 그러다가 맥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국제금융시장은 최틀러(최중경 전 차관)에게 맡겨놓았는데, 그분이 국제금융시장의 흐름은 무시하고 자기 신념대로 했다.

환율, 시장참여자들의 불신부터 해소시켜줘야
▲ 권영준 교수. ⓒ프레시안

권영준
: 지금 당장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환율이 올라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정상적인 상황에서 우리나라 외환시장에서는 100억 달러가 매일 거래가 된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벌어지고 난 다음 외환 공급이 50억 달러로 줄은 반면 사겠다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고, 그러니까 환율이 천정부지로 오른다.

정부에서 해결책이라고 얘기하는 게, 재정부에서는 외환보유고를 풀어서라도 막겠다고 하고 있고,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는 지켜야 한다고, 좀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제 상황을 보면 이 양쪽이 다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대기업들이 수출해서 받은 외환은 그대로 사내에 갖고 있고 외환이 싸기만 하면 다 거둬들이려고 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98년도 경험이 있으니까 위축돼 있다. 강만수 장관과 이명박 대통령이 '달러 사재기'에 대해 대기업에 경고하기도 했지만, 정부 말을 기업들이 안 믿는 것이다. 기업들이 달러를 갖고 있다가 폭락하면 손해니까 스스로 풀어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안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반성하고 시장을 워치해야 한다.

또 현 정부가 참 문제인 게 지난 10년 동안 경제부처에서 소리 없이 일을 잘해왔던 사람들조차도 다 '좌파정부에서 잘 나갔던 사람들'이라고 내쳐 버려서, 현 정부 내에 지난 10년 동안 외환보유고가 늘어나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은 조선업 쪽에서 외화가 무지하게 들어왔다. 근데 조선시장의 활황이 다 끝났다. 앞으로 3년 동안 수주 받은 것까지 다 끝났다. 오히려 일부 해약까지 일어나고 있다. 장관이 떠들면서 환율이 높아야 한다는 소리를 안해도 환율은 저절로 오르게 돼 있었다.

유종일 : 정부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신뢰를 주려면 지금처럼 펀더멘털은 괜찮다, 외환보유고 충분하고, 언제든지 풀어서 막을 수 있다, 지금 미친듯이 오른 것처럼 조만간 빠른 속도로 내려갈 것이다, 이렇게 얘기해 가지고는 전혀 안 먹힐 것이다.

지금 침략군이 쳐들어 왔다. 아직은 민간인을 대량학살하고 이런 상태는 아니고 몇명 죽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태를 방치하면 대략학살이 벌어질 상황이다. 정부는 우리는 강력한 군대도 있고 무기도 있으니까 괜찮다, 이게 지나가고 나면 괜찮다고 하고 있는 형국이다. 나는 정부가 무기를 꺼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써보지도 못하고 당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정부가 시장개입으로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다 사려고 하는데 찔끔찔끔 푸는 것은 오르는 속도만 좀 떨어뜨릴 뿐 그 다음에 다시 오르고, 다시 오르고 한다. 이건 곤란하고 앞으로 경상수지도 개선될 전망이니까 은행들과 중소기업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

홍종학 : 정부가 최근 금융기관들에는 스와프시장과 무역금융 재할인을 통해 150억 달러 규모를 공급키로 했다. 은행들이 지금 시장에 안 들어가서 시장이 붕괴된 측면도 있다. 정부가 뒷돈을 대줘서 장외 시장을 만들었다. 지금 은행간 달러 이자율은 높지 않다.

정부가 자기 입장에서 봐서 그런데 시장 참여자 입장에서 봐줘야 한다. 환율이 1150원 할 때는 외환보유고에서 200억 불이나 쓰던 정부가 지금 1400원 선을 왔다갔다 하는데 뒷돈을 주면서 가만히 있다. 이게 시장에 어떤 시그널을 주겠냐. 정부가 돈은 많다고 하는데 왜 저렇게 할까에 대해 시장이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지 않냐.

권영준 : 노무현 정부는 아마추어이고 자기네들은 프로라고 하면서 외화문제와 관련해 현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행태를 보인 게 한·중·일 공동 펀드 800억 달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런 문제는 수면 밑에서 다 합의한 다음에 발표해야 되는데, 마치 우리가 주도해서 중국, 일본이 따라오는 것처럼 발표했다. 이런 거 한다고 했다가 안 되면 신뢰가 어마어마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중국, 일본 입장에서 보면 헤게모니 측면에서 같이 하겠냐. 차라리 중국, 일본과 1:1로, 지금 엔화가 말도 못하게 올라서 난리인데 일본과 물밑에서 원화 대 엔화를 1:1로 하기로 하고 중국과는 위안화하고 1:1로 하기로 하고, 이렇게 하면 결과가 같아진다. 실효성도 없는 것을 발표해 놓고 못하니까, 대기업들이 정부를 못 믿고 달러를 안 내놓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것 때문이다.

금융경색에 금리인하 효과 없다

홍종학 : 이제는 정책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지금도 7%를 고집하면, 그러면서 성장우선주의로 가면 곤란하지 않겠냐. 한국은행이 어제 금리를 내린 것의 배경도 여기에 있다고 보여진다. 이건 상충되는 목표다.

권영준 : 금리 내린 것은 다른 나라들도 다 금리를 내렸고, 우리도 CP(기업어음)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교수 핸드폰에 까지 'H모 건설이 8%짜리 발행했으니 사라'고 문자가 들어오는 형편이다. 미국도 ABCP 시장이 붕괴하면서 완전히 신용경색으로 갔다.

유종일 : 한은의 금리결정을 앞두고 이에 대해 정부가 외환시장에 대해 얼마만큼 자신 있는지, 자금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니까 자신 있으면 금리를 내려도 된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런데 말로는 있다고 하는데 나오는 게 없으니까 굉장히 불안한 것이다. 자신이 있어서 내리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백파이어할 수도 있다.

▲ 홍종학 교수. ⓒ프레시안

홍종학 : 이자율 내리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는 금융경색 상황에서는 정책금리가 의미가 없다. 미국에서도 FED와 리보(런던은행간 금리)가 벌어지고 있다. 투자 경로(conduit)가 다 잘라져 있는데, 지금 급한 것은 금감원과 한국은행에 가서 하나하나 가서 연결시키는 게 필요하다. 미국도 하다하다 안 되니까 CP를 FED가 사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도 8월까지만 하더라도 금리를 낮추면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라는 게 지금 드러났지 않나.

유종일 : 그렇다. 미국은 유동성 공급해도 안 되니까 공적자금 투입하겠다고 했고, 그래도 안 되니까 은행 국유화 애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걸 다 봤는데 한국이 금리를 낮춰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게 너무 상황과 안 맞는 것 같다.

유모차부대 조사하는 정부가 키코엔 왜 뒷짐지나

권영준 : 고환율로 최대 피해를 본 이들이 중소기업이다. 키코(KIKO)로 인한 손실이 5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홍종학 : 서브프라임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불완전 판매의 문제가 있다는 게 밝혀지니까 뉴욕주 경찰청장이 당장 조사에 들어가 금년도에 합의를 봤다. 씨티를 비롯해 많은 은행이 엄청난 합의금을 내고 배상을 했다. 당연히 키코도 조사를 들어가야 한다. 이건 환헤지 상품이 아니라 투기 상품이다. 검찰과 공정위가 당장 들어가 줘야 한다.

권영준 : 고등학생과 유모차부대 조사하는 검찰이 이런 심각한 문제에는 왜 가만히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홍종학 : 국감에서 공정위가 조사할 수 있다고 얘기하던데, 국회의원이 얘기하면 들어가고, 스스로는 안 들어간다. 이러면 우리가 권한을 위임한 정부라고 할 수 없이 않나. 키코는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먼저 들어가서 조사했어야 한다.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는 금감원 책임이다. 검찰, 공정위, 재정부, 금융위 전부 중차대한 시기에 딴일을 하고 있다.

권영준 : 금융위와 금감원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금산분리 완화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걸 고민하고 있다. 지금 전세계가 금융규제 완화를 얘기하고 있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 또 금융업종 사이의 벽을 허물고, 파생상품 거래를 활성화하는 차원을 넘어 결제기능을 증권사에 부여하는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통합법이 내년 2월부터 발효되는데, 이것도 문제다.

유종일 : 금융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금산분리 완화하는 것은 심각한 위험을 키우는 것인데, 지금 이 상황에서 아직도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정말 정신 나간 수준이다.

홍종학 : 올스톱 시켜야 한다. 미국도 사태가 안정이 되면 왜 이런 사태가 터졌는 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을 것이고, 투자은행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됐냐는 것에 대한 얘기들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는 그걸 보고 나서 안전하게 가면 되는데, 지금 그 시스템 때문에 엄청난 사태가 터졌다는 것이 만천하에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마이동풍이다.

'9월 위기설', 이미 경고등이 커졌었다

유종일 : 정치적 불신과 갈등, 시장 상황에 대한 오판 등도 큰 문제이지만 그걸 떠나서 현 정부가 시장경제에 대한 기본은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9월 위기설'의 시점은 추석 언저리였다. 당연히 그때 우리가 부도사태로 갈 것도 아니었고, 결국은 외화유동성 문제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심각한 외화유동성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는 것에 대한 경고였다.

권영준 : '9월 위기설'이 났을때 9월 위기 자체에 대해 IMF와 같이 외환보유고가 허물어지고 그런 사태가 난다고 한 사람은 1%도 없었다. 다만 문제는 69억 달러 채권 만기 연장이 안 되는 것같은 분위기가 어디서 나온 것이냐,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9월 금융위기는 단언코 없다고 했다. 그리고 9월 12일 신제윤 차관보가 외평채 발행하러 갔다. 그런데 그때 이미 금리가 너무 높아진 상황이어서 발행을 연기했다. 그러면 돌아와 국제금융시장의 흐름과 관련해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대비했어야 한다. 근데 그때 정부는 뭘했나. 당정이 매일 같이 종부세를 어떻게 하면 허물까 골몰하기만 했다.

그 당시에도 A기업, B기업 등 몇몇 대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건 두 가지 원인이 있는데, 하나는 자기들이 인수합병(M&A)를 했는데 소위 말하는 승자의 저주로 생긴 부담이 있다. 또 하나는 자금을 구하려고 국제금융시장에 나가봤더니 이미 쉽지가 않았다. 시그널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이 간파해서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 같다.

유종일 : 그때부터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서 컨틴전시플랜(contingency plan)을 세워야 하고, 외환보유고를 점검해야 하고, 함부로 시장개입하지 말라, 외환보유고 상황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시장이 완전히 나가 떨어지는 상황에 가서는 정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여러 사람이 얘기를 했다.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한 것을 보면 완전히 반대로 했다. 대비를 하기는커녕 시장을 무시하고 협박하고, 아니면 달콤한 애기로 괜찮다고 하거나.

현 정부가 실용주의를 이념으로 내세우는 게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초기에 실용을 내세우면서 적어도 이념 대결을 만들어 가는 것은 하지 않고 필요한 것은 다 갖다 쓰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데, 촛불사태를 경험한 다음에 멘털리티가 바뀐 것 같다. 밀리면 안 된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돼서 <PD수첩>, 유모차까지 다 수사해라.

올해 초 경제성장 7%하겠다고 했는데 대공황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말도 안된다는 것 명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밀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종부세 폐지, 감세정책, 금산분리, 투자은행, 다 그냥 가라, 밀어라. 모든 걸 밀리지 않겠다는 멘털리티로 가고 있다.

권영준 : 그런 면에서 다시 복기해보면 지난 외환위기 사태 때 96년, 97년 초에 이미 위기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가 한 일이 뭐냐. 96년 말에 노동법, 안기부법 파동이 있으면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냥 밀어붙이라고 했다가 한 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홍종학 : 그 상황에서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외환위기 상황이 대통령한데 제대로 보고가 안 되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를 받고 있을까. 아닐 것 같다. 연세 드신 분들을 모아 얘기를 들어봐도 금융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니까.

권영준 : 청와대에 금융비서관이 없다. 정부 전체에 국제금융 전문가가 없지 않나.

▲ ⓒ프레시안

금융경색을 심화시키는 언론경색

유종일 :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어 내는데 기여한 사람들, 세력들 사이에서 실망을 하고 비판 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 문제는 비판을 하면 뭐하냐.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은 '좌파'라고 무시하고, 보수 언론은 정작 이런 얘기는 보도하지 않고, 언로가 막힌 상태다. 정권의 기반은 점차 협소해 가고 있다.

홍종학 : 언론들도 분열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경제만 보고 현 위기가 어떤 상황인지 간파를 해야 한다. 그런데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나 현 상황을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또 이같은 중요한 시기에 뉴스전문방송을 비롯해 방송이 기능을 상실했다.

저처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10%라면 언론에서 10% 정도를 다뤄주어야 한다. 하지만 전혀 다뤄주지 않으니까 정치권도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경제관료들도 만나는 사람들이 뻔하니까 자꾸 상황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그러니까 시장에 있는 사람들과 정부와 인식의 괴리가 자꾸 커지는 것이다.

유종일 : 지난 몇년간 방송을 하면서 한번도 발언 내용에 대해 방송사 측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최근 그런 일이 생겼다. 요즘 하루가 다르게 환율이 오르고 있지만 얼마 전 충격적으로 폭등한 날이 있었다. 그 다음날 중앙일간지 대부분의 1면톱 기사가 환율 1200선 돌파였다. 그런데 2개 신문에서는 환율 얘기가 없었다. <중앙일보>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가 톱이고, 다른 한쪽엔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사진이 크게 실려있었다. <동아일보>는 'IP세대가 뜬다'는 톱기사와 마찬가지로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사진이 실렸다. 나도 그 기사에 처음 본 말인데, IP세대 인디펜던스 프로듀서, 독립적 생산자라고 한다. 20대들에 대해 다들 '88만 원 세대'라고 하는데 이들이 알고 보면 IP세대라는 장밋빛 기사였다. 두 신문을 보면서 우리나라 신문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코멘트했다. 정말 보수언론이 각성해야 한다.

홍종학 : 이 정부가 안 되는게 자꾸 좌파 세력 때문이다, 뿌리를 처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말을 하는데 참 문제다. 이런 피해의식이 있다보니까 종부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도 '좌파들이 위기를 과대 포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참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백약이 무효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권영준 : 이제 현 상황을 타개해 나가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 좀 논의를 해봤으면 한다.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로 양분되어 있는 정부 조직을 개편해서 경제부총리제를 다시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종학 : 일단은 시장에 대한 메시지를 정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평상시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애기하기는 했지만 지금 대단한 위기라는게 인식이 되면 같이 가는 것이다. 미국도 지금 FRB와 재무부가 같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에 위기가 무엇이고, 이에 대해 어떤 순서로 일을 처리해 나갈 것인지 명백히 일관된 시그널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조직개편은 필요한데 그건 장기적인 얘기다. 지금 조직 개편하면 서너달이 지나는데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미국도 구제금융을 하겠다고 해놓았는데도 직접 돈이 아직 안들어가니까 저렇게 무너지고 있다. 일단 상설 비상회의라도 빨리 만들어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지금 이게 왜 중요하냐면 미국이 지금은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있는데 반등은 훨씬 더 빠를 것이라고 본다. 지난번에 리먼브라더스가 넘어간 것도 다들 리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리먼이 자기네 손실이 얼마라고 발표했다. 그 순간에 주가가 폭락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그정도 되면 자기네가 그렇게 나쁘다고 발표를 안한다.

지금 유럽 시장이 경색되는 이유 중 하나가 금융기관들이 부실 발표를 안 한다. 그런데 미국은 다 발표하고 있다. 미국이 그렇게 발표하는 이유는 발표 안했다가는 분식회계로 징역 20년을 사니까. 물론 경영진들은 그러고 나가서 다른데 가면 연봉 엄청 나게 받는 것도 있지만. 미국은 상당한 정도로 시장에 정보가 다 노출된다. 이 위기순간에 GM이 저렇게 스스로 나쁘다는 소리를 왜 하냐.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안 할 것이다.

우리는 리먼이 넘어지고 IB가 저렇게 엉망인데 간간이 들려온다. 국민연금이 얼마 물려 있다, 심지어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가 얼마 물려 있다, 이런 얘기가 들리는데 아무 것도 발표를 안 한다. 나중에 사태가 잘 해결이 되면 넘어갈 수 있는 문제지만, 정말 심각한 상황이 오면 시장을 그대로 경색시킬 수 있는 문제다. 미국은 그 정도로 정보가 공개됐는데도 만인이 만인을 못 믿어서 돈을 안 빌려줘서 중앙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상황 아니냐.

한은 금리 인하도 시장에서 보면 굉장히 혼동된 시그널이다. 한국이 외환보유고가 충분해서 이자를 낮추는지, 아니면 이 상황을 전혀 몰라서 이자를 낮추고 가는 것인지, 이런 것들이 시장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든다. 여기서 사태가 하나 딱 터진다면 외국인 입장에서 빨리 한국을 떠나려고 할 수 밖에 없다.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 상황을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강부자가 풀어야 한다

유종일 : 지금 시장이 실패한 것이니까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재정이 튼튼해야 하고, 정부가 나서서 필요한 일을 한다는 정당성이 확보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현 정부가 지금 그런지 의문이다. 상징적인 게 종부세 인하인데, 이게 과연 국민들한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바람직한 재정정책인가.

또 경제가 이렇게 백척간두, 풍전등화인데,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이념논쟁을 하고 있다. 좌파가 어떻다. 교과서가 어떻게, 지금 우리가 이런 것 가지고 싸울 때인가. 너무 한심하고 안타깝다.

권영준 : 지금 국민들 입장에서 볼 때 외환위기와 차이는 그때는 대선 투표하기 전인 97년 11월 말에 IMF 구제금융을 받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가 책임 문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더욱이 이념과 철학이 다른 정부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금모으기 운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정부는 운이 없기도 하지만, 이미 작년 말에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진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10년 동안 시장이나 행정 경험이 없는 사람이 최측근이 돼서 7.4.7과 대운하를 얘기하고, 대통령 당선자가 내년 연말 되면 주가가 3000간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이런 인식에 기반해 집권하자마자 환율상승이 수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환율이 지금 너무 낮고 높은 것이 당연하다면, 그런 생각과 정책방향을 계속 애기해 결국 환율이 폭등하게 됐다. 그러고 나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달러 모으기'를 얘기하니까 국민들의 반응은 '너희들이 잘못해 놓고 왜 서민들 한테 그런 애기 하냐, 돈많은 2% 강부자들한테 달러 내놓으라고 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다.

홍종학 : 외환위기를 극복하려면 고통분담이 중요하다. 하지만 공동체 의식이 있어야 고통분담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다른 국민은 내팽개치고 2%만을 위해 몰두하던 정부가 고통을 분담하자고 하니 이게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래서 문제는 2% 강남 부자들이 풀어야될 것 같다. 종부세 완화 안 해도 좋으니까 금융시장 불안 문제부터 해결하자. 이들이 볼 때도 굉장히 불안하고 환율이 올라서 타격 입는 사람들이기도 할텐데, 이들이 요구해야 되는 것 아닌가.

지금 감세할 때가 아니다. 앞으로 정도의 문제만 있는 것이지 대공황과 같은 세계적인 불황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기정 사실이다. 세계적 불황이 올 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서민들인데, 서민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들에 대한 대책을 쓰려면 재정이 튼튼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감세를 해서 재정적자가 문제가 되면 이게 경상수지 적자가 문제가 되고 외환위기가 오게 되는 것 아닌가. 정부의 재정이 좀 튼튼하려면 부자들이 양보해야 한다.

▲ ⓒ프레시안

유종일 : 가계는 가계부채에 짓눌러 있어서 소비가 좋을 수 없고, 기업 투자는 사면도 시켜주고 했지만 다 현금 확보하지 지금 이 시기에 투자하면 그 사람이 미친 것이다. 그러면 총수요 중에 다 꺼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정부 밖에 없다. 정부가 재정을 쓰는 것은 국민세금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봤을때 그걸 지지할 수 있어야만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은 정말 -100점짜리 정책을 하는 것이다.

권영준 : 전임 정권이 악역을 자임해서 해놓은 것은 이 정권에서 이용해야 한다. 종부세 때문에 전정부가 얼마나 욕을 먹고 각종 선거에서 손해를 봤나. 그러면 그 덕을 본 정부는 적당히 잘 활용하면 된다. 이번에 없애고 위기가 심화돼 공적자금 투입이 필요한 기업 등 문제 때문에 세금 더 걷으려고 하면 무지 힘들다. 세금은 없애고 다시 걷는 것이 매우 어렵다.

미 아이젠하워 정부 때 소득세 최고 세율이 90%

유종일 : 대공황 이전에는 미국이 부유층에 대해 세금이 매우 낮았었다. 부의 편중이 굉장히 심했다. 그 이후에 뉴딜정책이 나오면서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정부가 은행 구조조정부터 시작해서 실업자 대책, 사회보장제도, 금융개혁 등을 다 하면서 재정이 굉장히 늘어났다. 그때부터 부자들이 세금 좀 많이 내라. 그래서 공화당 정권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가면 소득세율 최고가 90%까지 갔다.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70년대 말까지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이 70%였다. 그러니까 이걸 사회주의라고 했냐. 부자들에 대한 징벌적 세금이라고 했냐. 안 그러고 이를 사회적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레이건 정부 들어 이런 정책이 무너지면서 오늘날 문제의 씨앗이 됐다.

홍종학 : 대공황 당시 루즈벨트 들어와서 부자들 세금 올리니까 갈등이 심했다. 그러나 결국 1950년대 와보니까 그렇게 해서 튼튼한 중산층이 많아지니까 부자들도 오히려 더 좋아졌다. 그 사람들이 소비를 많이 하니까. 서민들을 지원해서 중산층을 만들어 놓으니까 부자들은 그 다음부터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 폴 크루그먼이 말하는 '대압착'이 일어난 것이다.

권영준 : 공기업 문제도 공기업 매각이라는 방향보다 공기업 안의 비효율은 구조조정을 통해서 드러내고 공기업에서 젊은이들을 충원해야 한다. 뉴딜정책을 보면 WPA(work process administration)라고 실직자들을 그 사람들이 갈데가 생길 때까지 먹여주고 거둔 그 부분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뉴딜정책 이후 신세대들이 희망을 갖게 됐다. 그 이전에는 아버지가 부자이면 대대로 부자가 되고, 아버지가 돈 없으면 나도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도금시대(gilded age)에서 아버지가 돈 없어도 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직장 가질 수 있고, 내 세대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지금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경제 철학에 대해서는 전혀 공부한 적이 없는 사람이 그의 '노변정담'만 따오겠다고 한다. 물론 좋은 애기하고 국민들을 안심시키면 좋겠지만,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해온 발언들을 보면 오히려 논쟁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점에서 걱정이 된다.

거국내각 해야 한다

홍종학 : 우리가 10년 전에 IMF를 겪었는데 10년 전에 이런 일이 터지고 있다. 10월에 꼭 이런 일이 터진다. 대공황도 10월이고, 87년 블랙먼데이도 10월이었다.

10년을 지새우면서 경제안정을 외쳤는데 결국은 이 모양이 됐다. 지금은 IMF 교훈을 많이 살려야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어떻게 하면 위기를 겪는지 알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 공적자금 투입하는데 한국 케이스를 많이 참조하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대통령에게 올바른 정보를 가야 하고, 전문가들이 공유를 해야 하고, 국민들에게도 올바른 정보가 가서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고 신뢰를 못얻는 상황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자꾸 신뢰를 잃는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 정부가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면 반박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예를 들면 한국의 금융부채 비율은 괜찮다. 왜 괜찮냐면 GDP 대비로 얘기 한다. 금융부채에서 실제로 중요한 것은 가처분 소득이다. 가처분 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우리가 미국보다 높다. 이런 눈속임을 한다.

또 우리는 연체율이 낮아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 연체율은 사건이 터질때까지는 안 올라가는 것이다. 돌려막기 때문에. 근데 이게 못 막겠다고 터지는 순간에 딱 터지는 것이다. 똑같은 애기를 2003년 카드채 때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파생금융상품이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는데, 카드채 때도 파생금융상품 없었다. 그런데도 시장이 마비됐다. 카드채가 23조 밖에 안 됐는데. 말이 안되는 얘기를 정부가 하게 되면 정부의 신뢰성만 잃는다.

유종일 : 지난 외환위기에 그 고통을 당하고 배운 것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뭘 배웠나 싶기도 하다. 그 사이에 신용카드 버블을 키워서 그 문제 터뜨려 놓고 책임 추궁하나 없이 덮고 넘어갔다. 그 다음에 부동산 버블 키웠다.지난 봄에 단기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보고 위험하다고 워닝을 줘도 문제를 이 상태까지 키운 것은 보면 참 바뀐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문가들이 얘기를 해줘도 도대체 정책당국이 반응을 제대로 안 한다. 괜찮다는 얘기만 하고 미온적 대응만 하다가 극한적 사태로 몰고간다. 결국 모피아 얘기인데, 10년 전에 그 고생을 했는데 정책 시스템에서는 개선이 안 됐구나 이런 생각 밖에 안 든다.

어쨌든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면 거국내각도 해야 한다. 거국 내각 해서 이런 정쟁, 유모차 수사 이런 거 싹 없애고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든 대통령이 결단을 해줘야 한다. 지금 나라가 이렇게 위기에 빠져드는데 계속 저렇게 국론을 분열시키고 위기를 심화시키는 한쪽 방향으로만 가면 국민들은 더 시니컬해지기만 한다. 지금 아무리 우리가 거국내각을 해서 경제정책을 잘 하더라도 경제 좋아질리는 만무하다. 앞으로 당분간 악화될 수 밖에 없는데 더 악화되는 것을 좀 막을 수는 있다. 더 많이 고생해야 하는 것을 덜 고생하게 만들 수는 있다.

권영준 : 비상거국내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오늘 대담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홍종학 : 마지막으로 좀 긍정적인 얘기를 하자면, 한국경제는 기적의 경제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저력있고 펀더멘털이 튼튼한 것은 사실이다. 이를 정책 담당자들이 계속 엉망을 만들어 놓아서 하부는 튼튼한데 자꾸 휘청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저력을 갖고 국민들이 제대로 담합해서 조금 허리띠를 졸라매면 헤쳐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이같은 상황에서 서민들을 쳐다봐야 한다. 아무도 서민을 안 쳐다보고 있다. 이미 서민들은 참담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불황이 심해지면 서민을 쳐다봐야 국민이 담합된다.

권영준 : 덧붙이자면 우리 경제가 지금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수출대기업과 내수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 오히려 이 기회를 잘 극복하면 양극화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선진국 경제가 모두 안 좋기 때문에 수출 대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내수에 치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대기업들이 국내시장에 좀더 좋은 제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납품 중소기업과 관계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고, 노사화합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또 광우병 쇠고기, 중국산 식류품의 멜라민 문제 등 먹을거리 문제에 있어서도 국내 기업이 미국이나 중국보다 좀더 친환경적이고 질이 좋으면 조금 비싸도 소비자들이 사줄 것이다. 그러면 농촌문제나 내수문제도 좀 해결될 수 있다. 물론 전제 조건은 정치인과 대기업들이 환골탈태해 자신들의 문제를 먼저 털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위기를 극복해서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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