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시선도 다소 과거 정권 때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촉발돼 100일 넘도록 이어진 촛불 정국에서 쇠고기 수입 협상 다음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이 바로 '민영화'였다. 정부는 '괴담'으로 치부했지만, 국민들은 자신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공기업의 민영화의 위험성을 피부로 느끼는 듯 했다.
이런 가운데 각종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관리기관의 노동조합 8개가 모여 최근 전국안전기관노동조합협의회를 만들었다. 엘리베이터 안전을 책임지는 승강기안전관리원, 가스 안전을 담당하는 가스안전공사, 산업안전공단, 전기안전공사, 에너지관리공단, 교통안전공단, 선박안전기술공단, 한국시설안전공단의 노동조합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일상에서는 무시되기 쉽지만, 한 번 터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안전 관리 영역이라는 점에서 이들 기관의 공공성 유지는 중요하다. 효율성과 경쟁력을 명분으로 이뤄지는 현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기조가 위험천만하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은 안전노조협의회와 함께 연속 기획 '안전은 생명이다'를 5회에 걸쳐 진행한다. 이 기획을 계기로 공기업 선진화가 되려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정책 입안자들에게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정부는 공공기관의 민영화(사유화)의 논리로 방만 경영과 비효율성을 제기한다. 김영삼 정부 이후 급격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 속에서 민영화(사유화), 구조조정, 작은 정부라는 주류적 경쟁 패러다임에 결박돼 안전관리 담당 기관을 해체하기 위해 이 같은 논리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 포장지는 또 '선진화'다.
그러나 안전 분야를 시장의 논리로 접근한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안전 상태를 점검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이윤을 위해 피검사자의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될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는 곧 부실한 검사·검증으로 이어지고, 다시 사고의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이용하는 전기, 가스, 승강기, 교통수단, 시설물, 혹은 산업현장에서 사전에 안전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것은 시장의 이윤 추구로 접근할 문제가 아닌 까닭이다.
영체 업체 노동자 안전을 팔아넘기는 산업안전공단
안전 분야 공기업의 예산 삭감과 구조조정이 어떤 폐해를 가져올 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007년 현재 산재 사망자는 2406명, 산재 피해자는 무려 9만147명이고 피해 액수도 15조8000억 원에 달한다. 산재 예방 교육 및 자료 배포, 안전 기술 지원 등을 담당하는 산업안전공단의 경우 1300여 명의 한정된 인원으로 전국의 사업장, 약 140만 개를 관리하고 있다. 혹 정부가 예산 삭감을 하면 중소 규모의 영세한 사업장에 대한 산업안전공단의 무상 지원도 따라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현장의 근로자가 지게 된다. 우리나라 재해의 80% 이상이 100인 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영세 업체 노동자가 가장 먼저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 이들 중소 규모 사업장에게 돈을 내고 안전을 확보하라는 것은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다시 대구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를 보고 싶은가?
그 특성상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오는 가스 사고도 위험성이 높아질 것이다. 1995년 대구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 사고는 사망 102명, 부상 205명이었으며, 1994년 아현동 가스공급기지 폭발 사고는 사망 12명, 부상 170명이었다. 1998년 부천 대성에너지 충전소 폭발 사고에서도 74명이 다쳤다. 문제는 이들 사고의 피해자가 모두 시민들이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최근 4~5년 간 대형 가스 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가스안전공사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지난 1995년에 약 500건에서 2007년 100여 건으로 가스 사고의 절대 건수는 상당히 줄었지만, 100만 톤 당 가스 사고는 35건으로 선진국의 18건에 비하면 여전히 2배나 높다. 더구나 가스 산업은 매년 7~8%정도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가스안전공사의 영업 이익은 1998년 220억 원에서 2007년 660억 원으로 무려 3배 증가했지만, 인력은 같은 시기 1240명에서 1198명으로 오히려 줄어, 노동 강도가 매우 세졌다.
자연 재해 발생 시설물 예방 안전 관리 대책이 우선이다
한국시설안전공단의 민영화는 또 어떨까? 한국시설안전공단은 1994년 발생한 성수대교붕괴를 계기로 준 정부기관으로 설립된 국가 유일의 시설물 안전관리 전문 기관이다. 주요 교량이나 발전용 대형 댐과 주요하천의 제방과 수문, 터널이 시설안전공단이 관리하는 시설물들이다.
공단이 설립된 이후 공단이 전담하는 시설물 관련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공단은 설립 이후 13년 간 국가 주요 대형 시설물 235개의 안전 진단,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 분야의 기술연구와 관련 전문기술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시설물의 무사고를 달성했다.
물론 이상 기후에 의해 매년 반복되는 자연재해는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피해 규모는 줄일 수 있다. 매년 평균 약 2조 원 정도의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데, 저수지, 하천, 비탈면, 소규모 안전취약 시설물 등 자연재해발생 시설물에 대한 예방안전관리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기관의 설치나 기존 안전관리기관 중에서 이런 업무를 추가해 수행하도록 하는 방안의 검토가 병행돼야 한다.
하루 몇 차례나 타는 승강기에 달린 내 안전은?
승강기는 또 어떤가? 최근 아파트 및 업무용 건물의 고층화 추세에 따라 승강기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국내의 승강기 설치대수는 매년 약 3만 여 대 정도가 신규로 설치되고 있으며, 2005년 6월 말 현재 약 30만 대 이상이 설치됐다.
승강기는 건물 내 필수적인 설비로 기능하고 있지만, 자동차, 비행기 등과 같은 다른 여타의 기계 설비와 마찬가지로 부품의 고장이 바로 인명 피해로 연결될 수 있는 재해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설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강기는 자동차와 달리 개인 소유물이라는 개념이 부족하고, 현실적으로 승강기 안전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 극히 미흡한 실정이다.
승강기 사고 및 피해와 관련된 통계를 살펴보더라도 승강기 사고 및 피해가 양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119 구조대의 승강기 안전사고 발생 통계에 따르면 승강기 안전사고 발생율은 전체 승강기 대수의 약 2%에 이르고 있으며, 전체 구조 사고건수 중 상위 5위권 내에 랭크되어 있는 상황이다.
안전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전기·가스·산업·시설·승강기·보일러·선박·교통 등 사회 각 분야의 안전을 담당하는 공기업은 환경·치안·국방 등과 같이 공공성이 매우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일반국민이 피해를 입는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군대를 줄일 수 없고, 범죄가 줄면 경찰을 줄일 수 없듯이, 안전관리도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국가의 의무에 해당한다. 그 의무를 이들 안전 분야 공기업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선진국에 비해서는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국민소득과 의식수준에 걸 맞는 안전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전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현 정부도 만약 대형사고가 발생한다면 부랴부랴 안전대책 강화를 외칠 것이다. 그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후가 될 것이다.
공기업 선진화의 실체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것이라면, 이는 국가의 기본적 임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오히려 안전 분야의 공공성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공기업 선진화의 핵심 내용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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