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교적 근본주의와 정치적 근본주의의 만남
"종교적 보수주의자와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서로 합세하여 종교와 정치가 서로 결탁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까지 높이 평가받던 종교와 정치의 분리는 실종되고 말았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말입니다.(지미 카터, <예수님이 대통령이라면>, 두란노.)
불교의 전래로 신라 때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전래로 조선시대 때에는 수많은 분들의 순교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다종교사회입니다. 그것도 절묘한 비율로 조화를 이룹니다. 그럼에도 종교간의 갈등이 없는 사실상 세계 유일의 나라입니다. 물론 최근의 흐름은 이런 안심을 동요케 만듭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강조하고 있는 헌법상의 원칙입니다. 근대국가의 출발도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늘 미국을 모델로 삼습니다. 미국은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정교분리의 원칙, 국교분리의 원칙을 헌법상 원칙으로 삼습니다. 우리 헌법도 정교분리의 원칙을 강력하게 규정합니다. 헌법적 차원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은 어떻게 이해되고, 구체적 사건에서는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한 번 묵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2. 미국 헌법에 있어서의 정교분리의 원칙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이렇습니다.
"연방의회는 국교설립에 관한 것이거나 자유로운 종교행사를 금지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해서는 아니된다.(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미국이 처음으로 헌법을 만들 당시 헌법제정자들 사이에서는 세 가지 입장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Laurence Tribe 교수가 <American Constitutional Law>에서 잘 분류해 놓았습니다.
첫째는 거친 세상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방벽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속세의 타락은 교회를 삼켜버리려(consume) 할 것이라는 복음주의자들의 견해입니다. 미국에 처음으로 침례교회를 세운 Roger Williams가 주도했습니다.
둘째는 '교회의 해악과 침입으로부터'(against ecclesiastical depredations and incursions) 세속적인 이익(공익과 사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와 단절되어야 한다는 Jefferson주의자들의 견해입니다.
셋째는 종교적 및 세속적 이익과 같은 것들은 어떤 하나에 의해 지배되는 것보다는 (각 분파들 사이의 경쟁을 보장하기 위하여) 세력을 분산하고 분권화함으로써 가장 잘 촉진될 수 있다는 Madison주의자들의 견해입니다.
요약하자면 윌리암스는 정부의 종교에 대한 개입은 종교를 타락시킬 것이다 염려합니다. 제퍼슨은 정반대입니다. 종교가 정부를 타락시킬 것이다입니다. 매디슨은 종교는 존치시키고 보호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여러 부분집단들 중 하나이다. 굳이 따지면 중도적이고 온건론이지요.
3. 미국 헌법상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세 가지의 대립된 이론
제헌 당시 비롯됐던 세 가지 입장의 차이는 지금도 여전히 헌법해석의 기초가 됩니다. 미 헌법학계에는 국교금지조항(The Establishment Clause)과 관련된 세 가지의 대립되는 이론(Competiong Theories)이 자리합니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인 Erwin Chemerinsky의 저서 <Constitutional Law-principles and policies third edition>를 그대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엄격분리이론(Strict Separation)이라고 이름지을 수 있습니다. 정부와 종교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종교가 정부의 한 부분이 되고나면 정부는 결국 그 종교에 대한 참여가 강제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입니다. 종교는 전적으로 사회의 사적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중립이론(Neutrality Theory)입니다. 정부는 세속적인 것(secularism)에 비해 종교를, 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어떤 특정의 종교를 우대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철저한 가치중립, 행위중립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좀 더 나아가자면 국교금지조항의 주요한 목적은 정부가 우대하는 종교의 신도가 아닌 사람들로 하여금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수용 혹은 동등취급이론(Accommodation/Equality)입니다. 정부는 오직 문자 그대로 교회를 설립하거나 종교에 대한 참가를 강제하는 경우에만 국교금지조항을 위반한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폭넓게 해석하는 입장이 되겠지요.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입장이야말로 미국 사회에서 종교의 중요성과 대중성(the importance and prevalence of religion)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어떤 입장이 가장 타당할 것 같습니까? 구체적 사례를 통해서 미국의 현실을 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 구체적 사례를 통해 본 미국에서의 정교분리의 원칙
그렇다면 이런 이론들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을까요? 미국 교과서가 대표적으로 드는 사례가 있습니다. 다분히 절충적이면서도 개별적 사건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89년의 Allegheny County v. Greater Pittsburgh ACLU 사건이 모델 케이스로 늘 제시되곤 합니다. 사실관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군 법원 계단에 예수탄생을 그린 예수탄생화를 걸어 전시한 일입니다. 둘째 정부청사 앞에 세워진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와 대형 촛대장식, 그리고 그 축제기간 동안에 시가 자유에 경의를 표하는 표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9명의 대법관 중 3명의 대법관은 '엄격분리이론'을 근거로 들어 두 사건 모두 위헌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 세 명 중 한 명인 Stevens 대법관은 "공공재산 위에 종교적 상징물을 전시하는 것이 국교금지조항에 위반된다는 강한 추정(presunption)이 성립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며 위헌이라고 했습니다. Blackmun 대법관과 O'Connor 대법관은 '중립이론적 접근방법'을 선택합니다. 촛대장식 사건은 합헌이지만, 예수탄생화는 위헌이라고 판단합니다. 다른 4명의 대법관은 '수용이론'을 선택합니다. 두 개의 상징사건은 모두 합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결론은 예수 탄생화 부분은 5대 4로 위헌을, 촛대 장식사건은 6대 3으로 합헌을 결정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5. 미국의 'Lemon 심사기준'
정교분리의 원칙과 관련하여 최근 들어 종교차별금지법이 논란이 되고 있죠? 여전히 불교계는 입법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문제에 대해서 미국은 어떠한 입법기준을 가지고 있을까요? 미 연방대법원은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상황변화는 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종교단체자금지원법(faith based initiatives)'을 통해 사회보장프로그램에 정부가 자금을 지원합니다. 이로써 종교와 정부 사이에 존재해 온 벽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있는가하면(지미 카터), 연방대법원은 합헌이라는 결정도 있었습니다.
'Lemon 심사기준'이 있습니다. 미 연방대법원은 국교금지조항의 적용에 있어서 어떤 법이 차별적이지 않다면 Lemon v. Kurtzman사건에서 유래된 'Lemon 심사기준'이라 일컬어지는 세 가지 요건이 적용돼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첫째는 '법률이 비종교적인 목적을 가졌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는 '법률의 원리 또는 중요한 효과가 종교를 장려하거나 금지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셋째는 '그 법률은 종교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을 장려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기준은 우리의 종교관련 입법이나 정책활동에 있어 나름대로 참고할만한 기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6. 우리 헌법상 정교분리의 원칙
그렇다면 이제 정교분리와 관련된 우리 헌법조항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헌법 제20조 제2항)"
미국보다 더 솔직한 표현 아닌가요? 우리 헌법 역시 국교(Staatsreligion)를 인정할 수 없는 점과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이 국교분리에 대한 입법의무를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특정 종교를 우대 또는 차별하기 위한 정책수립이나 정치활동이나 입법활동은 전면적으로 금지됩니다. 이 부분은 헌법학계의 일치된 견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들어 보수적인 헌법이론가로 활동하고 계신 허영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종교평등의 원칙을 명백히 하고, '정치의 종교화'와 '종교의 정치화'를 금지함으로써 종교의 자유가 수행해야 하는 객관적 가치질서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데 그 참된 헌법적 의미가 있다(허영, '한국헌법론', 박영사)"고 설명합니다. 참 제대로 된 명백한 해석입니다.
7. 객관적 가치질서로서의 정교분리의 원칙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종교'를 "신성하거나 거룩하거나 영적(靈的)이며 신적(神的)인 것과 인간의 관계"라고 정의합니다. 이같은 종교의 정의만을 놓고 보면 영적인 영역의 종교와 세속의 영역인 정치는 무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헌법학계는 종교의 자유는 단순한 개인의 기본권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의 객관적인 가치질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보수적인 입장에서 헌법을 해석하고 계시는 허영 교수의 글을 요약합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의 헌법적 의도는, 첫째 '정치의 종교화', 즉 정치인의 신격화 내지 정치권력의 우상(paganism)화 현상을 막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종교의 정치화', 즉 신앙실행의 자유가 정치활동화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정치의 세계와 종교의 세계가 이원적으로, 독자적으로 각각의 생활질서를 형성해 나가게 하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로 국가권력은 특정종교를 특별히 보호 내지 우대하거나 탄압 내지 적대시하는 행위, 국가권력이 종교선전 또는 종교교육 등의 종교활동을 하는 행위, 국가권력이 종교에 간섭하거나 종교단체가 정치에 개입하는 행위 등을 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권리 침해라는 차원을 넘어 객관적인 우리 사회의 가치질서를 침해하는 반헌법적 행위가 되어 지탄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8. 우리나라에서의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구체적 사례
종교간의 갈등이 크게 없어서였을까요? 미국 헌법 교과서는 국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헌법이론과 판례가 엄청난 분량을 차지합니다만,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사실 헌법 판례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논쟁이나 분쟁이 없었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첫째는 특별부가세를 내야 하는 어느 종교법인이 이를 면제받은 다른 종교법인에 비해 차별받은 것은 아니다라는 조세기준 관련 결정이 있습니다. 둘째는 종교 교육의 자유가 종교의 자유의 한 내용이라는 2000년 판례가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일반적으로 신앙의 자유, 종교적 행위의 자유, 종교적 집회 결사의 자유 등 3요소를 내용으로 한다는 2001년 헌재 결정도 있습니다. 셋째는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학교 또는 학원 형태의 교육기관도 예외없이 학교설립인가나 학원설립등록을 받는 것이 평등의 원칙에 합당하다는 결정도 있고, 나아가 설사 학교나 학원설립에 인가나 등록주의를 취했다고 해서 국가가 성직자를 양성하는 데 관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교분리의 원칙 위반이 아니다라는 결정도 있습니다. 넷째 간혹 언론에서 논란이 되곤 하지요? 일요일에 사법시험을 보는 것이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다. 이런 사건이 있었지요? 여기에 대해 헌재는 '공공복리를 위한 부득이한 제한이라 비례의 원칙에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종교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종교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해석은 미국의 사례나 이론에 비추어볼 때 아직은 미분화된 단계의 수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9. '정교분리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정교 분리의 원칙의 반대는 '정교유착'이 아니라 허영 교수의 표현대로 '정치의 종교화 , 종교의 정치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치 '정치의 지역화', '지역의 정치화'가 자칫 지역감정을 악화시키고 우리 사회를 또다른 분단으로 몰고 가는 이치와 유사한 위험성을 가지게 되겠지요.
미국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탐 들레이(Tom Delay)의 말입니다. "기독교만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실체들에 응답하는 삶을 사는 길을 제시한다. 오직 기독교만이 그러하다"며 자신은 "성경적 세계관을 전파히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주장합니다.(샘 해리스, 종교의 종말, 187쪽)
이명박 행정부의 첫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인 김성이 교수의 말입니다.
"사회적 양극화를 이념의 수준에서만 보고 있을 뿐 신이 우리를 돌볼 것이라는 확고한 신앙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적극적 실천력을 찾아볼 수 없다"(국민일보, 2007년 5월 31일자.)
'종교의 정치화', '정치의 종교화'를 꾀하는 발언들입니다. 헌법 위반의 소지가 분명한 정치적 위헌 발언들이겠지요.
미국 공화당 출신 미주리 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되기 전에 성공회 신부를 지냈던 존 댄포스(John Danforth)는 뉴욕타임즈 2005년 4월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화당원들은 우리 당을 보수적인 기독교인의 정치적 무기로 변모시켜 놓았다. (중략) 당파성 있는 의제를 채택해 종교 운동을 정치 운동으로 변모시켜버린 정당에 문제가 있다"(지미 카터, 예수님이 대통령이라면, 65쪽 재인용)
우리 사회가 갖는 보편적 가치와 이념인 '정교분리의 원칙'은 시민들의 동의 하에 헌법으로 체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정교분리의 원칙이 이제 헌법전에서 내려와 세속의 영역에서 하나의 논쟁이 되고, 대립축이 형성되는 상황에 이른 것 같습니다. 문명의 충돌이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의 문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대외적, 문화적 관점에서만 문명의 충돌이 일어난다고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나친 기우라는 건 분명합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에 대한 결론은 종교의 차이에 따라, 종교적 입장의 강도의 차이에 따라 각기 묵상의 결과는 다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속의 분리가 근대국가의 한 조건임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정교분리의 원칙은 여전히 우리 헌법이 성문법적으로 존중을 요구하는 대원칙이 아닐까요? 이 글이 묵상의 한 근거가 되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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