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뉴먼을 잃은 미국 사회가 슬픔에 잠겨있다. 지난 50여년동안 뉴먼과 함께 세월을 보내온 영화팬들은 물론 영화계 동료, 후배, 정계인사들의 아쉬운 작별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뉴먼과 함께 <내일을 향해 쏴라>(1967) <스팅>(1973)을 함께 찍었던 로버트 레드포드는 "진정한 친구를 잃은 슬픔을 말로는 표현할 수없다"면서 " 내 인생과 미국은 그가 있었기에 보다 나아질 수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먼에게 생애 유일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컬러 오브 머니>(1986)의 감독 마틴 스코세지는 " 뉴먼없는 미국 영화역사는 생각조차 할 수없다.그는 수많은 영화에서 복잡미묘한 감성을 불러일으켰다"고 격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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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향해 쏴라 |
뉴먼의 까마득한 후배배우들도 앞다퉈 슬픔을 나타내고 있다고 AP통신은 29일 전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개인적으로 뉴먼은 내가 영화배우로서 따라하고픈 삶의 모델이었다. 그의 고상함과 재능뿐만 아니라 평범한 삶까지도 내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자선사업자로서 그는 많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줬다. 뉴먼은 진정한 나의 롤 모델이다"라고 말했다. 뉴먼처럼 자선사업 및 정치,사회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는 조지 클루니는 " 뉴먼은 영화배우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높은 기준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존 쿠색도 " 수많은 배우들이 그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했으며, 러셀 크로 역시 "내 삶에 영감을 줬던 인물 중 한명이 바로 뉴먼이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빌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부부는 "폴은 미국의 아이콘이자 자선사업가였고 어린이들의 영웅이자 나의 친구였다"고 조사를 발표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주지사는 "폴 뉴먼은 남자들이 닮고 싶어하고 여자들이 사랑했던 진정한 쿨가이였다"라고 밝혔다. 26일 암투병끝에 83세로 눈을 감은 폴 뉴먼은 지난 50여년동안 70여편의 작품을 통해 극과 극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명석한 지성과 예리한 유머감각을 펼쳐보여온 '할리우드의 전설'이었다. 할리우드에 자선봉사와 사회활동이 유행처럼 확산되기 훨씬 이전부터 그는 자선사업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닉슨이 나를 싫어하는게 영광스럽다"라고 말할 정도로 정치적 발언도 적극적으로 했다. 탐욕과 스캔들로 바람잘날없는 할리우드에서 아내 조안 우드워드와 50년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깨끗하고 조용한 사생활을 영위해온 점도 영화계 안팎으로부터 존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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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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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뉴먼은 1925년 1월 26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아서는 스포츠용구사업자였고, 어머니 테레사는 연극과 영화광이었다. 뉴먼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연기자의 꿈을 키웠으며, 아버지의 사업체를 잠시 물려받았다가 예일대에 진학해 연기와 연출을 공부하면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된다. 데뷔작은 54년 <은배>. 뉴먼은 예수가 마지막 만찬에서 사용했던 은배를 만든 그리스 노예 역할을 맡았다. 훗날 그가 "내영화 중 최악"이라고 했던 작품이다. 배우로서 그의 기회는 56년작 <상처뿐인 영광(Somebody Up There Likes Me)>통해 왔다. 액터스 스튜디오 동창인 제임스 딘이 갑작스럽게 자동차사고로 사망하면서 그에게 돌아온 영화로, 뉴먼은 이 영화에서 권투선수 록키 그랜지아노로 등장해 열연했다. 이 영화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된 그는 이후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958) <영광의 탈출>(1960) <허슬러>(1961) <찢겨진 커튼>(1066) 등 명작들을 거쳐 <내일을 향해 쏴라><스팅><타워링>(1974) <심판>(1984) 등 수많은 문제작들을 만들어냈다. 뉴먼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였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술주정뱅이(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심판)부터 도박꾼(허슬러, 스팅,컬러 오브 머니)까지, 매력적인 갱스터(내일을 향해 쏴라)부터 잔혹한 갱단 두목(로드 투 퍼디션)까지 다양하다. 그는 노년까지도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톰 행크스와 함께 출연한 <로드 투 퍼디션>(2002)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푸른 눈동자로 조직의 배신자를 잔혹하게 응징하는 보스를 연기했고, 애니메이션 <카>(2006)에서 경주용자동차로 목소리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어 워크 인 더 우즈(A walk in the Woods)>에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지난해부터 건강이 악화되면서 결국 레드포드와의 세번째 영화작업은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됐다. 뉴먼이 자선사업에 뛰어들게 된데에는 78년 아들 스콧이 28세에 알코올과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57년 이혼한 첫아내 재클린 비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스콧은 6자녀의 맏이이자, 유일한 아들이었다. 뉴먼은 스콧 뉴먼센터를 지어 알코올과 약물중독에 신음하는 청소년들에게 치료기회를 제공했고, 82년 스파게티 소스 및 팝콘 등을 생산하는 '뉴먼스 오운 브랜드'를 만들어 수익금으로 소아암 환자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식품회사를 통해 기부한 액수는 약 2억5000만달러. 뉴먼은 워런 버핏, 테드 터너 등과 함께 '책임지는 부자'단체를 만들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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