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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닉슨 쇼크', 대비책은 있는가"

[우석훈 칼럼]'달러 맹신주의'로는 곤란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을 여러 가지 의미에서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 독특한 프랑스의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민에게 생방송으로 중계된 연설에서 "시장에 그냥 모든 것을 맡겨두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의 금융 위기를 놓고, 우파 정부에서 나왔던 말 중에서는 가장 수위가 높은 말이다. 요약하면, 20세기의 국제 금융 체계로 21세기를 버텨나갈 수 없으므로, 무엇인가 바꾸어야 한다는 것.

이 말이 지금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사르코지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의장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가 미국, 한국 등의 정상과 마찬가지로 '작은 정부와 불간섭주의'를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상황 앞에 이념적으로 생각하는 정부는, 프랑스마저 '생존'을 선택한 지금, 별로 없어 보인다.

지금 세계 경제가 100년만의 위기라는 미국 고위층의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1971년의 '닉슨 쇼크'에 버금갈 만한 상황이다. 전후 복구 체계에서 금본위와 파운드화 위주의 무역 체계를 달러 위주의 태환 화폐 체계로 형성시킨 것을 브레튼우즈 체계라고 부른다. 금 1온스당 35달러로 결정된 이 체계는 IMF와 세계은행이라는 보조 장치를 통해서 작동하는 태환 시스템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가 더 이상 이 태환을 버틸 수 없게 되자, 1971년 닉슨은 불태환, 즉 이제 더 이상은 달러를 가지고 오더라도 금을 바꾸어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다. 몇 년간의 국제 협상 이후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국제 무역의 통화 체계가 정착을 하게 되는데, 이를 킹스턴 체계라고 부른다.

대체적으로 세계경제는 30년 정도를 주기로 큰 변화를 가지고 왔었는데, 지금 우리는 미국식 표현대로라면 100년짜리 실물 위기에, 30년짜리 금융 위기를 동시에 겪는 셈이다.

변화의 시나리오를 예상한다면, 가장 약식의 변화는 국제적 감독 기구를 출범시켜, 국제 금융에 적절한 규제 방식을 집어넣어, 관리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EU 국가들은 이 정도는 각오한 것 같고, 그게 사르코지가 했던 얘기의 본뜻인 것 같다. 이것보다 조금 더 큰 근본적 변화는, 달러 위주의 불태환 방식에 유로나 엔화 등을 포함시켜 외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방식 혹은 유사한 몇 가지의 변형 체계를 예상할 수 있다.

물론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실제 달러의 구매력은 미국 경제의 실물에서의 건전성과 연동되어 있다. 미국의 실물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상태에서 재정 정자로, 즉 미국 정부가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하는 얘기와는 달리 많은 정부들이 이미 현실적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의 수입 없이는 죽을 것 같이 얘기하는 중국 언론에서도 '달러 이후의 체계'에 대한 언급이 시작된 것은 좀 된다.
▲ 지난 9월 15일 뉴욕 증시가 폭락하면서 패닉에 빠진 뉴욕증권거래소(NYSE). ⓒ로이터=뉴시스

이런 변화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지만, 우리가 1971년 '닉슨 쇼크'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은, 그 중요한 전환점에 해당하는 '그 날'이, 미리 예고를 하고 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발표를 할 수도 있고, 사르코지가 "유럽에서는 수입 대금으로 유로화와 엔화 혹은 금의 비율을 일정하게 섞어서 받겠다"는 일방적인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IMF 총재가 어느 날, 새로운 라운드를 열겠다고 각국 정상들을 초청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투기 세력에 미리 먹잇감을 던져줄 수는 없는 것이므로, 그날은, 갑자기 온다.

그렇다면 한국은? 달러가 전면적으로 물러나지는 않는 포트폴리오 방식이 되었든, 아니면 국경세의 형태처럼 국가 간 자본 이동에 제약을 가하는 정책을 국제적으로 관리하는 기관 설립이 되었든, 일단은 다가올 변화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은 당연하다.

EU 화폐 통합 과정에서 독일의 분데스방크와 프랑스의 중앙은행 사이에도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그 속에서 영국의 파운드는 이 체계에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야말로 불꽃 튀는 머리 싸움이 있었다. 안정적인 것 같아 보이기만 하는 킹스턴 체제 내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들은 계속해서 있어왔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 큰 변화 속에서, 안 그래도 불안한 한국의 외환당국이 "그냥 달러를 지킨다"고, 장기적 정책 기조 없이 휩쓸리듯이 쓸려 들어가는 일이다. 이 큰 국제 통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자신의 속도와 실익을 제대로 추구하지 못하면, 급변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제2의 닉슨 쇼크', 이것은 다양한 시나리오로 이미 검토되고 있다. 그야말로 자국의 화폐의 구매력을 지키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각 나라의 중앙은행들이 자신이 가진 솜씨를 보여야 할 때이고, 국민경제를 지키기 위해서 경제 관료들이 솜씨를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1929년 대공황 때 손을 놓고 있다가 대륙 내에서 미국 위기를 그대로 전가받아 여러 나라가 파시즘으로 전환되고, 급기야는 큰 전쟁까지 치르게 된 아픈 위기를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미국의 위기를 받아줄 것이지만, 국민 경제에 대한 심각한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그렇게 할 마음은 없고, 이미 그런 의향에 대해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국가의 원수들이 국민들에게 발표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혹은 그렇다면 일본은? 정부와 기업들 그리고 은행 등 금융기관까지, 모두 자신들의 주판을 튀기고, 각자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은?

눈에 보이게 뭘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실물과 금융을 총괄해야 할 경제 당국이,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 급변기에 몇 가지 경우의 수와 이에 따른 시나리오 검토를 하고, 또 여기에 대비책을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런 어려운 얘기를, 국민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거나, "우리 이렇게 잘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지는 않아도 좋다. 그러나 국회에서 이와 관련된 간단한 소위라도 하나 만들고, 이 소위에서 정부가 하는 국제 통화와 관련된 대책에 대해서 꼼꼼히 점검해주면 좋겠다. 그러면 최소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원화의 대책 없는 고전 정도는 좀 줄어들 것 같다. 외국인 투자자들이나 국민들이, 한국은 뭔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대비책이 있는가보다라고 생각해야, 우리의 원화를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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