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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死=일제히 고통스럽게 죽이는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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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제고死=일제히 고통스럽게 죽이는 시험"

[인터뷰] '1인 시위' 범국민교육연대 이태기 집행위원장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여주인공 '은수'(이미연)는 늘 1등만 하다가 어느 날 7등을 하게 되고, 이 현실을 받아 들일 수 없어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은수'가 떠난 빈 자리에 놓인 꽃 한 송이는 당시 10대들의 눈물샘을 두고두고 자극했던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이처럼 한국 영화 속에는 입시 지옥을 겪으며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학생들이 등장하는 게 새삼스럽지 않다. 그만큼 10대의 성적 비관 자살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이어져 왔다. 특히 전국적으로 시행되던 일제고사를 통해 주입되는 전국 석차, 전교 석차와 같은 말들은 학생들을 오로지 성적 외에는 관심을 둘 수 없도록 강요했다. 또 교사, 부모 모두에게 성적에 대한 압박을 받았던 학생들은 야간 자율 학습, 0교시 수업을 감내해야 했다.

이런 교육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고교 평준화가 확대되고, '야자'와 0교시, 일제고사가 폐지됐다. 그러나 최근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역주행 정책을 펴고 있다.

일제고사는 그중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에 이어 오는 10월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치른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5개 과목을 대상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시행하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노총 등 34개 단체가 참여한 '범국민교육연대'는 지난 26일부터 오는 10월 14일 일제고사를 보는 날까지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일제고사 반대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그 첫번째 릴레이 1인 시위 주자로 나선 범국민교육연대 이태기 집행위원장을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만났다. 그의 피켓에는 "전국의 학생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시험계의 핵폭탄, 일제고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적혀 있었다.
▲범국민교육연대 이태기 집행위원장. ⓒ프레시안

"왜 개발 독재 시절로 돌아가려 하는가"

올해 치러지는 일제고사는 1998년부터 전국에서 3% 정도의 학생들을 표본 추출해 학업 성취도를 알아보던 시험이 확대된 것. 이 시험 성적은 2010년부터 시행될 고교 선택제에 따라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될 전망이다. 2010년부터 일제고사의 3년 간 학교 성적이 '학교정보공개법'에 따라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될 예정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일선 학교에서는 이 시험 성적을 높이려고 학생들의 학습량을 늘리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이태기 위원장의 아이는 "왜 대통령이 내 성적을 보려고 하느냐"며 화를 내면서도 성적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고 했다. 아이의 불안감은 이 위원장이 일제고사 반대 1인 시위에 나서게 한 이유가 됐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정부에서 가장 잘한 정책은 '중학교 입시 폐지와 고교 평준화'라고 생각한다. 중학교 입시의 마지막 세대였던 내가 학교 다닐 때, 그 당시 학부모들의 치맛바람과 과외 열풍이 말도 못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성적 하나에 울고 웃고, 다른 관심은 갖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 정부의 교육 정책은 고교 평준화와 중학 입시제도 폐지가 시행되기 이전으로, 즉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는 것 같다. 완전히 개발독재 시절로 돌아갈 셈인가. 교육을 도대체 몇십 년이나 후퇴시키려 하는가."

"교육은 성적의 문제가 아니다…성적≠국가경쟁력"

현 정부와 교육당국이 일제고사를 옹호하는 논리는 바로 '경쟁'이다. 즉 학생들이 경쟁을 통해 학력을 신장할 수 있다는 것. 일제고사=학력 신장=글로벌 스탠다드=국력의 검증. 이 공식은 곧 일제고사 추진의 명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교육은 성적의 문제가 아니다. 초·중·고 시절부터 경쟁에 내던져진 아이가 사회에 나가면 어떤 역할을 할지 생각해 보라. 아이는 사회 정의에 대해서 고민해 보지도 않고, 오로지 적자생존과 정글의 법칙만 배워 사회는 더욱 삭막해질 것이다.

일제고사처럼 경쟁을 통한 교육이 아니면 성적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겁주는 사람들이 있다. 묻고 싶다. 시험 성적이 높다고 국가 경쟁력이 높은가? 그렇다면 왜 해외의 수학·과학 경시대회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우리나라에 세계적 리더가 없는가.

세계를 이끄는 사람들은 풍부한 철학이 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사회를 관찰하고 그 철학이 기초가 돼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오직 시험 성적만으로 교육의 가치를 두지 않는가. 천박하다. 이처럼 단순히 시험 성적으로만 국력이 검증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일제고사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누는 시금석"

그런데 왜 정부는 일제고사를 보려고 하는 것일까.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구별짓기'란 개념을 통해 산업혁명 당시 부르주아들이 어떻게 교육을 통해 노동자들과 자신들을 구분했는지 설명했다. 학벌을 형성해 그것을 향유하는 부르주아들은 문화 자본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사회적 헤게모니를 장악해 사회 상층부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는 것이다.

일제고사 역시 '강부자' 정권의 '강부자'를 위한 정책은 아닐까. 이 위원장 역시 지난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강남 지역이 결집해 공정택 교육감이 당선된 것을 예로 들며 이 같은 말에 호응했다.

"일제고사의 효용성을 언급하는 이들은 주로 돈 있는 집 사람들이다. 강남 엄마들은 국제중에 진학해 성적 서열의 윗부분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 일제고사를 통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은 서열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를 충족하고자 일제고사를 원하는 것이다. 이런 바람은 사교육비 증가를 가져올 것이고, 일제고사는 서열을 매겨 계층을 나누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뇌가 없는 이명박 정부 교육 정책"

이태기 위원장은 일제고사뿐만 아니라 4·15 학교 자율화 조치, 국제중 설립, 대학 자율화 2단계 추진 계획 등을 꼬집으며 "일제고사와 다 같은 맥락"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이 모든 것은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으로 볼 수 있다"며 "교육이 상품이 되고, 대학이 산업이 된 현실의 반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을 두고 "뇌가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현 정부는 지난 참여정부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며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정부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는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참여정부에서 세워 놓은 계획을 현 정부는 실행만 할 뿐이다. 즉 이명박 정부는 뇌가 없는 정부다. 자기들이 기획한 게 하나도 없지 않은가. 또 사회 공공성을 파괴하며 민영화를 강행하고, 국토를 삽으로 파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지 않나."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 교육 정책을 펼쳐야 할까. 이 위원장은 요즘 어린 시절 초등학교 건물 중앙 계단에 붙어 있던 글귀가 생각이 난다고 했다.

"사랑은 교사의 생명이요, 연구는 교사의 역량이다."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면 "한 학급의 학생 수는 15명이어야 한다"며 "그래야 학생들이 교사의 사랑도 담뿍 받을 수 있고, 교사의 연구 역량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초등학교 한 학급의 학생 수는 35명. 하지만, 정작 정부는 이런 실질적인 환경 개선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정부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 정작 얘기돼야 할 것들은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경쟁만 강조해서 교육 현장을 바꿔가기 보다는 진정으로 학생과 교사를 위해서 한국 교육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학생들 자살률 높아질까 두렵다"

무엇보다도 일제고사를 강요하는 교육 풍토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희생이 되는 이들은 학생이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이 위원장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뭐라 해도 가장 끔찍한 건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죽는 것이다. 아이들의 자살률이 오를까 걱정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세월 일제고사 성적으로 인한 압박에 수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선진화를 외치면서 정작 20년 전으로 교육 현장을 후진시키는 이 정부의 선진화는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위원장이 들고 있는 피켓엔 이렇게 써 있었다.

"일제고死=[명사] 일제히 고통스럽게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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