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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바쁘다. 그러나 머리는…"

['불온 필자'가 말한다] <핵과 한반도> 쓴 최한욱

지난 8월 국방부는 23권의 '불온 도서'를 선정했다. <우리들의 하느님>, <대한민국史>, <나쁜 사마리아인들>, <지상에 숟가락 하나>,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등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은 책들, 심지어 <조선일보>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책도 포함된 이 '불온 도서' 목록은 곧바로 조롱거리가 됐다.

일부 서점은 이 국방부의 불온 도서 선정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고, 불온 도서로 선정된 일부 책의 매출이 증가해 해당 출판사는 불황 속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방부는 이 불온 도서 목록을 철회하지 않고 있고, 저자·출판사의 사과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다.

<프레시안>은 이번에 국방부로부터 '찍힌' 저자·출판사와 공동으로 릴레이 기고를 마련했다. 우선 세계적인 석학 놈 촘스키와 함께 국방부 불온 도서 목록에 두 권의 책을 올린 최한욱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집행위원장이 선정 소감을 밝혔다. 그는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빛의 속도로 뒷걸음질하는" 국방부를 마음껏 비웃는다. <편집자>


필자는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 도서' 23선에 당당히 두 권의 책을 올려놓았다(<북한의 미사일 전략>·<핵과 한반도>). 태어나서 쓴 책이라 봐야 두 권이 전부인데 모두 '불온도서'가 되었으니 그렇다면 필자는 '불령선인'이라고 해야 하나?

국방부 불온 도서에 두 권 이상 선정된 불온한 2관왕은 세계적인 석학인 놈 촘스키와 필자뿐이다. 대한민국의 충직한 국방부 덕분에 일약 세계적인 석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으니 한마디로 '가문의 영광'이다. 게다가 덤으로 '워스트셀러' 작가라는 오명까지 벗게 되었으니 국방부가 '돈과 명예'(?)를 동시에 안겨 준 셈이다.

국방부 관계자에게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나?

대한민국 군인은 바쁘다
▲ <핵과 한반도>(최한욱 지음, 도서출판 615 펴냄) ⓒ프레시안

요즘 국방부는 바쁘다. 올해 들어 하루가 멀게 전쟁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3월 '키리졸브' 훈련을 시작으로 4·5월 '쌍매' 훈련, 6월 '맥스선더' 훈련과 한미연합탐색구조 훈련, 7월 한 달간 진행된 '림팩' 훈련, 8월 '레드플래그' 훈련과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까지. 마치 올림픽 출전을 앞둔 대표 선수처럼 훈련과 훈련으로 밤낮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군대일 것이다.

아직도 목이 마른지 11월부터는 한미연합해병대상륙훈련인 '호국' 훈련을 또 진행한단다. '잃어버린 10년'의 한풀이라도 하는 듯 대한민국 군대는 미친 듯이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물론 군대가 훈련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방귀가 잦으면 X가 나온다고 별다른 이유 없이 지나치게 전쟁 연습에 몰두하는 군대를 일 잘한다고 박수만 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방부의 일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모두 일중독에 빠졌는지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도 알아서 척척 이다. '불온 서적'을 판별하고 소위 '좌편향' 역사 교과서 개정에 훈수까지 두고 있다. '불온 서적'이니 '좌편향 교과서'니 하는 말 자체도 우습지만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가 엉뚱한 일에 신이 나서 설치는 꼴을 보면 말 그대로 가관이다. 다시 군정일치시대가 도래한 착각이 든다.

사실 군대는 지난 10년 동안 가장 많은 것을 '잃어버린' 집단 중에 하나이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대한민국은 '별들의 전성기'였다. 육군사관학교는 정치 등용문이었고 권력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무려 30년 동안이나 대한민국 군인은 한국 사회의 당당한 주류 아니 주역으로 다른 모든 것 위에 군림하였다. 그런데 '무인시대'가 막을 내리고 사정은 크게 바뀌었다. 권력의 중심에서 세상을 지배했던 그들은 어느새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군대는 적의 크기만큼 성장하고 공포의 크기만큼 권력에 밀착한다. 적과 적에 대한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군대의 힘은 강해지고 그에 비례해 그들의 권력도 강해진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그들의 적은 끊임없이 약화되었다. 대한민국 군대의 '주적'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와 같이 북한이다. 그들은 북한과 그들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고 지난 수 십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 왔다.

그런데 남북 관계의 극적인 변화와 이에 따른 한반도 냉전 체제의 이완은 북한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현저하게 완화시켰고 적의 약화와 함께 군의 사회적 영향력 즉 군대 권력도 정비례하여 감소하였다. 군대는 권력의 핵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 나고 말았다.

때문에 그들은 '적의 귀환'을 간절히 열망하고 있다. 적의 크기만큼 그들의 권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화해와 협력의 대상으로써의 북한이 아닌 적으로써의 북한이 그들에게 훨씬 더 유용하다. 냉전의 해체보다는 냉전의 지속이 그들에게 더 유익하고 보람 있는 일이다.

1년 내내 군사 훈련이 진행되면 긴장이 일상이 되고 공포가 만연된다. 당연히 적의 크기는 지속적으로 확장된다. 내부에는 적을 찬양하는 불온 세력들이 판을 치고 불온 서적이 난무하면 역시 공포는 증대된다. '마타하리'가 군 내부에 침투하고 좌익 교과서까지 교단을 장악하면 불안은 우리의 생활 속까지 근접한다. 북한 지도자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고 내부에 권력투쟁이 발생하면 불안과 공포는 어느덧 현실이 된다. 물론 이 같은 공포의 확산은 군의 사회,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그들을 다시 권력에 밀착시키는 양질의 토양을 제공한다.

이는 매우 전형적이고 상투적 수법이긴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이 같은 불온한 정보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어떤 식으로건 대중의식에 변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거짓말도 1000명, 1만 명이 하면 진실로 느껴지게 된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수 년 이상 한국 사회를 지배해 왔다. 이것이 그들이 온갖 조롱과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착오적인 행위들에 몰두하는 이유이다.

'2MB' 정부, '2MB' 군부
▲ <북한의 미사일 전략>(최한욱 외 지음, 도서출판 615 펴냄) ⓒ프레시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대한민국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마치 대한민국 전체가 '개그콘서트'의 녹화장이라도 된 것 같다. 웃기는 나리님들 덕분에 대한민국 개그맨들이 모두 밥줄 놓을 지경이다.

누군가 유머는 '착오적 행동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 유명한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의 지구본 시퀀스가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이유는 그의 행동이 착오적이며 그의 야심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세계를 재패하려는 독재자의 망상이 현실이었다면 관객들은 지구본 시퀀스에서 웃음이 아닌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위대한'과 '독재자'라는 부조화의 조합이 웃음을 유발하듯이 '불온'과 '서적'의 착오적인 조합은 조롱으로 귀착된다. '탈북'과 '여간첩'의 조합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진지하게 받아드리기에는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너무도 뻔뻔하고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그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마치 중세의 사제와 같은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몰두하고 있다. 이것이 유머의 포인트이다. 바보는 바보스러운 행동을 진지하게 수행하기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마타하리'와 '백골단'이 부활하고 '물대포'가 춤을 추며 '불온서적'이 지성인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마치 1980년대 추억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진다고 하는데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생각도 함께 짧아지는 모양이다. 경제를 살린다더니 1980년대 3저 호황이 그리워서 그러나 한국 정치는 복고가 대유행이다.

과연 그들의 열망처럼 우리 사회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올시다. 그렇게 되기에는 이미 우리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것은 지구본을 끼고 춤을 추는 어리석은 독재자의 망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망상은 깨지기 마련이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그들의 사고는 빛의 속도로 후퇴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용량 2MB도 과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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