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무가지 M25에 실린 글임.) 부산을 13년을 다녔다. 이제 웬만한 길은 다 아는 것은 물론 반은 부산 사람이 돼있어야 할 터이다. 하지만 여전히 부산에 와서 운전대를 잡으면 여기가 저기같고 저기가 여기같다. 범일동 사거리가 어딘지, 부산역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시청이나 연산동이 어디 붙어 있는지, 차라리 지하철을 타고 갈 걸 하는 후회가 늘 막급이다. 부산을 13년을 다녔지만 사실 부산을 다닌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이 아니라 부산영화제만을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줄창 영화제만을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실상 아는 곳은 부산 해운대와 남포동, 자갈치 시장밖에 없다. 해운대는 영화제가 주로 열리는 곳이고 남포동은 스타들의 무대인사가 열리는 곳, 자갈치 시장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곳이다. 내가 아는 부산은 실상 그 세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13년전 부산영화제가 처음 개막될 당시의 VTR(방송용 테이프)을 보면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그러니까 1996년의 일인데, 당시 YTN을 다니던 내가 촬영기자와 같이 찍은 화면들을 보면 사람들 대부분이 북한사람들 같다. 영화제를 하겠다고 파라다이스 호텔 미팅 룸에서 기자간담회 비슷한 걸 하는데, 당시의 문정수 시장이나 김동호 위원장, 이용관 한국영화 프로그래머, 김지석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 오석근 사무국장 등등의 모습이 그렇게 촌스러울 수가 없다. 외모만 그런 것이 아니다. 표정들도 어리벙벙하기 그지없다. 그도 그럴 것이다. 국내에서 국제영화제를 한다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국제영화제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그 실체를 머릿속에 떠오르지조차 못할 때였다. 신문이나 방송 표기로 칸이 맞는지 깐느가 맞는지 가지고 얘기할 때였다. 무엇보다 한국영화가 <쉬리>에 이어 <공동경비구역 JSA>나 <친구>들로 이어지며 빵빵 터지기 전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 영화가 뭐 밥멕여 준대?,하는 소리를 할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국제영화제를 하겠다던 김동호 위원장 휘하 일군의 사람들의 의지와 용기는 정말 가상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엔 정말, 이 영화제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1회 행사를 앞두고 현판식이 있었던 날, 김동호 위원장이 엄청난 '술꾼'이라는 사실이 미처 알려지기 전이었던 그날, 광안리에서 무지하게들 술을 마셨다. 다음 날 첫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던 기자들은 김해공항발 셔틀버스에 올라 부대끼는 속을 부여안고 끙끙거렸다. 웩웩, 욕지기를 억지로 참고 있는 기자들에게 영화제 준비위의 누군가가 말했다. J일보의 모 기자가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누군가 뒤에서 시트에 몸을 누이고 눈도 뜨지 못한 채 이렇게 말했다. "걔, 아직 해변가에서 문성근 씨하고 있어." 다른 누군가가 말을 받았다. "그 사람들, 거기서 아직 뭐하는데?" 처음 그 사람이 말했다. "새벽 4시쯤부터 둘이서 같은 말 반복하고 있어. 대종상이 이러면 안된다나 어쩐다나, 둘다 완전 꼴았어." 부산영화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완전히 그렇게 '꼴아서',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 미친 듯이 지금까지 달려왔다.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한국영화산업에 불을 질렀고, 아시아권 영화권에 불을 질렀다. 10월이 다가오면 언제부턴가 부산에 갈 거냐, 갈거면 언제 갈 거냐가 사람들 사이의 인사말이 돼버렸다. 그동안 강산이 한번 변한 만큼 영화제도 많이 변했다. 사람들도 많이 변했다. 김동호 위원장도 주름이 많이 늘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용관 프로그래머는 부위원장 자리를 거쳐 지금은 공동위원장으로 영화제를 상당 부분 이끌고 있다. 조직과 예산이 커졌고, 사람들의 기대도 그만큼 더 커졌으며 반대로 실망과 비판, 심지어 비난까지 생겨났다. 여전히 부산영화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이제 부산영화제조차 바뀌어야 한다는 변화론자들도 없진 않다. 분명한 것 한가지는 부산영화제는 여전히 들끓고 있다는 것, 아직도 한국영화계의 용광로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아 그래도 이제 부산을 13년이나 다녔다. 해운대 말고, 남포동 말고, 자갈치시장 말고 다른 데도 좀 알아야 할 때다. 올해는 영화제 기간에 살짝살짝 빠져나가서 태종대도 갔다오고 심지어 통영 같은 데도 좀 다녀와야 했다. 칸에 가면 모로코에 놀다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미워했지만 꼭 그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제는 축제니까. 릴랙스하고 쉬는 거니까. 부산이 여러 군데의 관광산업 수지를 맞춰져야 하는 것이니까. 아, 올해 부산영화제 때는 맘먹고 한번 제대로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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