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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환의 죽음, 뒤늦은 少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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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환의 죽음, 뒤늦은 少考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최근 호에 실린 글임.) 다 지나간 얘기이고, 무엇보다 너무나 안된 얘기지만 탤런트 안재환의 죽음은 국내 영화계에도 상징하는 바가 컸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한 연예인의 신병 비관 자살로 치부될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얼마나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인지, 그러면서도 그 욕망을 채우게 하는 데는 얼마나 인색한 사회인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욕망으로 빚어진 문제는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1달러를 쓰는 것과 한국에서 1,100원을 쓰는 것은 느낌상 엄청난 차이가 있다. 미국 슈퍼마켓에서는 100달러를 내면 큰 돈이라 생각하고 이리저리 체크하지만 한국 슈퍼마켓에서는 툭하면 뭐 산 것도 별로 없는데 돈 10만 원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써도 모자라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의 책임인가. 미국 슈퍼와 한국 슈퍼에 서 있으면 자본주의라도 같은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그런 미국에서조차 리먼 브러더스 같은 금융회사가 팍팍 무너지면서 요즘 정신이 없다. 세계 경제가 그런 판국이니 한국에서는 경제 문제가 보다 개인적인 차원으로 쓰나미처럼 덮치고 있는 것이다. 안재환의 자살은 바로 그 점을 상징한다. 안재환의 죽음이 연일 뉴스로 전해지던 날 몇 차례 술자리를 가졌다. 이름을 대기만 해도 알 만한 유명 감독들, 영화 관계자들과 함께였다. 대부분 그의 죽음에 대해 '의도적으로' 냉소적이고 화가 나 있는 표정들이었다. 소주 한잔 입에 털어 넣고, 안주도 먹지 않은 채 이렇게들 얘기했다. "그래도 견뎠어야 해. 모두 다 죽고 싶은 심정들인데 왜 저 혼자만 그런 거야. 어떻게든 살아야지. 뭐가 어찌됐든 지금은 무조건 그냥 살아내야 하는 거잖아." 결국 소맥잔이 돌고 분위기가 왁자해지면서 누군가 안주를 시키는데 귓가에선 꼭 이렇게 들렸다. '아줌마, 여기 번개탄 하나 더요!' 국내 영화계에서 큰 형님으로 통하는 정지영 감독이 그런 점에서 '단합대회論'을 들고 나온 것은 역시 그답게 시의적절한 의견이자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그는 임권택 강우석 감독 등과 모인 자리에서 "영화계가 단합대회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운을 떼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단합대회'는 무엇일까. 정지영 감독은 외모와는 달리 술 한잔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다(약간의 장발에다 곱슬거리는 헤어스타일 탓인지 그는 꽤나 풍류를 즐길 타입으로 보인다). 소줏집에 가면 앉는 순간부터 쓴웃음을 지으며 "나는 딱 반 잔만"이라는 말부터 하는 인물이다. 그런 분이 술 한번 왕창 먹고 모두들 엎어지자는 취지로 단합대회 얘기를 했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엔 지금의 영화계가 정신적 모토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국내 영화계가 다시 한 번 운동적 차원으로 힘을 모으자는 얘기다. 정지영 감독이 그 단합대회의 성사를 위해 임권택 감독이 앞장서 주십사 부탁한 것은 아마도 그런 취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 운동 혹은 영화 운동이란 말에서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적인 것을 통해 물질적인 상황을 바꾸기 위해 사람들이 힘을 합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론 추상이 구체를 규정하는 법이다.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 생산성은 생산의 구조보다 생산의 주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높아진다. 지금은 사람이 힘이고 사람이 생각하는 정신이 힘이다. 그러니 모두들 조금씩 용기를 내고, 마음을 가다듬고, 전열을 재정비해 볼 일이다. 좌절하지 말고 조금은 더 밀어붙여 볼 일이다. 중요한 건 절대로 혼자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통을 함께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 그 사람들과 '단합'을 하면 결코 안 될 것처럼 보이는 일도 결국 해낼 수 있거나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세상이 고통받으면 영화도 고통을 받는다. 영화인들이 고통을 받는다. 영화가 그 고통을 극복해 내면 세상의 고통도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 지금 한국 영화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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