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석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은 최근 한나라당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민영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 도입에 대해 "한나라당과 정부가 추진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은 '군사독재정권의 산물'이라는 것과 '경쟁과 효율'이라는 딱 두 가지 이야기 뿐"이라며 이와 같이 말했다.
"근거도 없이 경쟁과 효율만 주장"
민주당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22일 국회도서관에서 실시한'민영 미디어렙, 무엇이 문제인가' 긴급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선 양 소장은 "프로야구도 시민단체들로부터 3S정책(Sports, Screen, Sex)이라는 강력한 비판을 받으면서 출범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국민들의 막혔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리는 국민 스포츠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코바코) 중심으로 독점 체제로 운영되는 방송 광고 제도도 군사독재정권이 방송장악을 위해 도입했을지언정,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 미디어의 공공성을 지키는데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 소장은 '경쟁과 효율성' 측면에 대해서도 "현재의 제도를 통해 저널리즘의 기능을 보호하고 방송광고 요금을 코바코가 조절하며, 종교·지역 방송, EBS 등 취약매체를 지원하는 등 미디어의 상생 조건은 코바코 제도가 이뤄낸 것"이라며 "반면 경쟁과 효율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경쟁과 효율을 도입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 자료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도 "30여년의 장기적 시간과 지원,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자본을 쏟아서 비로소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해도 될만한 우리나라식의 방송 공공시스템을 만들었다"며 "알토란 같은 제도를 5공 때 만든 것이라고 단절하는 것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방송 광고도 공공재'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방송 전파가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방송광고는 제한된 주파수라를 매개로 방송 광고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경제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모순과 문제를 갖고 있다"며 "민영 방송이든 공공 방송이든 공공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공공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코바코 체제'에 대한 불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미디어 전문 기자인 이희용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은 "코바코에 대한 불만도 많다"며 "방송을 포함한 언론인들이 왜 코바코가 필요한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도록 불만을 해소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광고홍보학)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연계판매 방식은 법과 제도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방송광고위원회 같은 제도를 통해 방송광고 판매의 투명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방송 광고 경쟁 도입은 방송 민영화 필수 조건"
하지만 이와 같은 모든 논의는 정부와 여당이 민영 미디어렙 도입 추진을 백지화한 상태에서 논의돼야 한다는데 토론자들은 모두 입을 모았다.
이와 같이 민영 미디어렙 도입 논의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정부의 도입 논의 의도 자체가 불순하다고 판단해서다.
양문석 소장은 "MBC를 장악하기 위해서"라고 다소 거칠게 표현했다. 양 소장의 해석에 따르면 KBS는 이미 장악했고, SBS는 민영방송으로 손만 뻗으면 잡히며, MBC만 남았다. 그런데 MBC는 공영방송으로 남겠다는 의지가 분명한 상태에서 주변 조건을 민영으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방송광고 시장을 경쟁체제로 만들면 치열한 방송광고 판매 경쟁이 벌어지고, MBC 내부에서도 민영화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양 소장은 "MBC가 민영으로 가게 되면 보도·시사교양국이 극단적으로 허물어질 수 있고, 현재의 SBS 보도국도 같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SBS가 현재의 시사·보도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MBC와 KBS의 공영성에 수준을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으로 정권은 이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연우 교수는 코바코를 '약한 고리'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MBC와 KBS 2TV 민영화와 관련한 여론 싸움이 유리하지 않은데, 코바코는 공략하기 좋은 약한 고리"라고 말했다. '시장 경제는 좋은 것'이라는 우리 사회의 믿음에 비춰 '코바코는 독점 체제'이라고 몰아세우면 여론이 쉽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방송광고 독점 공급 구조의 코바코 체제를 두고서 방송 민영화 구조 개편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도 큰 이유다. 방송 시장 민영화를 위해서는 광고 시장의 민영화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영 미디어렙 도입은 방송 민영화의 토대를 닦는 단계라는 주장이다.
"새로운 촛불집회를 요구하는 것인가"
민영 미디어렙 도입의 가장 큰 피해자로 예상되는 지역·종교방송의 반발도 상당하다. 김석창 한국지역방송협회 사무총장은 "하동 버스터미널에 가면 청학동 가는 버스 등 시골 구석구석 다니는 버스들이 모여 있다"며 "MBC가 공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지역 네트워크가 기반돼 있기 때문인데, 돈 안 된다고 버스 노선 다 끊듯이 지역 방송도 다 죽여야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원식 불교방송 경영기획실장의 말은 한 층 더 비장했다. 박 실장은 "종교방송 설립 이후 정권퇴진을 경고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고 상황의 심각성을 전하며 "정부가 새로운 촛불집회를 요구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라며 "정부가 종교와의 전쟁을 선포하지 않으려면 즉각 이 방침을 철회하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김승수 교수는 현재 논의의 대안으로 민영 미디어렙 논의 철회를 전제로 △방송 재원 다양화 △SBS의 민영 미디어렙 요구 철회 △방송 광고가 현실화 합리적 방안 마련 등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유럽의 경우 방송사 재원 중 수신료:상업광고:유료컨텐츠 비율이 3:3:4로 이뤄져 있다"며 "장기적으로 수신료 재원을 높여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단 SBS가 민영 미디어렙 요구 철회해야"
김 교수는 특히 "민영 미디어렙 요구의 중심에는 SBS가 있는데, 모기업인 태영은 재벌기업 반열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몇 백억 원 더 얻기 위해 방송분야까지 상업성을 강화시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며 "민영 미디어렙 요구를 거둬달라"고 읍소했다.
김 교수는 또 "방송사들이 광고 제 값을 못 받으니 직접 영업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며 "방송사와 광고주와 정책당국, 국회가 모여 광고 수입을 늘릴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2007년 기준으로 일간지 광고비가 1000명당 9800원인데 비해, 방송은 1000명당 4500원으로 OECD 평균(9600원)에도 한 참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었다. 중앙일간지 마지막면 전면 광고비 1억 원인데, 방송3사 황금 시간 광고비가 15초에 1000만 원밖에 안 되기 때문에 방송계의 불만이 누적돼 왔다는 지적이 있다.
김 교수는 다만 "국민들에게 광고비 부담을 10원이라도 더 깎아 줄 생각을 해야 한다"며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되면 가계 부담뿐 아니라 기업 부담도 커질 것"이라고 방송광고 경쟁체제 도입의 부작용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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