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이어온 친분으로 두 사람은 이따금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요즘도 여전히 중진부터 소장 인사들까지 왕성하게 만나며 세상 돌아가는 일을 토론하는 일이 잦다. <프레시안>은 오는 24일 창간 7주년에 즈음해 두 원로를 한자리에 모셨다. 이제 7개월을 채운 이명박 정부가 지나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고자 함이다. 앞서 국정운영과 관련된 대담에 이어 경제운용에 대한 두 원로의 평가를 싣는다. <편집자>
'경제대통령'을 내세워 집권한 이명박 정부가 취임하자마자 경제에 적신호가 커졌다.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미국 금융위기로 우리 경제가 타고 넘어야할 어려움은 더 복잡하고 커졌지만, 이명박 정부가 시장에 보내는 메시지는 항상 똑같은 주파수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보니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적극 지지해온 <조선일보>도 "이명박 대통령의 말 가운데 제일 듣기 거북하고 민망스러운 것 중 하나가 '내가 경제는 좀 안다'는 발언"이라는 칼럼을 실을 정도다. 보수세력 내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 운용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방증이다.
과연 어디서부터 꼬여있는 것일까? 노태우 정권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경제 인식을 모든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적했다. 70-80년대 미국에서 공부해 '시장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학자들과 관료들이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 최근 신자유주의의 선두에 있는 것으로 인식됐던 미국 금융시장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규제 완화'를 대안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김 전 의원은 "경제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잘못할 경우 정책이 불안정하게 갈 수 밖에 없다"며 "70-80년대 중반까지 가능했던 경제정책으로는 지금 도저히 안 된다"고 말했다.
시장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시장 참여자들의 평가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환율정책, 증시 등 시장에 맡겨야할 일에 대해 개입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김 전 의원은 "정부정책 운용이 스스로 모순을 노정하면 신뢰를 상실한다"는 점을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현실 인식의 실패, 정책 내부의 상호모순 외에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이 근간하고 있는 철학에도 문제가 있다고 두 원로는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가 야기할 수밖에 없는 빈부 격차 확대, 양극화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남재희 전 장관은 "역대 정부 청와대에 노동담당이 있었는데 이번 정부에는 없다. 노동문제에 비중을 크게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런 무관심은 대통령 말에서도 드러나는데,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대통령과 대화'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밝히면서 동시에 '노동운동을 배제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주장했다.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운동 등 사회적 지원세력 없이 사측과 직접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요구라고 남 전 장관은 비판했다.
김 전 의원도 "대기업들은 자기들이 국제시장 뛰어다니면서 다 알아서 한다. 대통령으로서 관심을 가져야할 사항은 바닥에 처져 허덕이는 사람들"이라며 "가장 밑에 있는 저소득계층에 대한 배려를 분배정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도 그 혜택이 부유층에 집중되고, 저소득층 등을 대상으로한 재정정책에 필요한 세원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경제성장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조화와 균형을 생각하라." 직접 경제와 노동정책을 다룬 경험이 있는 두 원로가 '대공황 이후 최대의 세계경제 위기'를 맞아 어쩌면 집권 기간 내내 험로를 걸어야만 하는 이명박 정부에게 주는 조언이다. 다음은 김종인 전 의원의 개인 사무실에서 3시간가량 진행된 대담의 뒷 부분이다. 진행은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가 맡았다.
"70-80년대 경제정책으로는 도저히 안된다"
프레시안 : 임기 초반이긴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역량이 밑천을 드러냈다는 야박한 평가가 있습니다. 이게 이명박 정부의 리더십이나 자질 문제입니까, 아니면 양극화 등 우리 사회의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파 개혁의 정책 조합이 근본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까?
김종인 : 이명박 정부가 들어와서 초기 우리 경제의 진단을 제대로 해서 우리경제 병명을 분명히 얘기했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어떤 문제를 갖고 있고 그건 이렇게 풀어가야 한다고 제시하고 국민들에게 자발적인 인내를 유도했어야 한다.
하지만 막연하게 7·4·7 등 기대수준만 높였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병명을 제대로 대지 못하면 병이 더 깊어지지 나을 수 없다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과거 대통령들이 다 그랬다. 대통령 되면 초기 1년은 구름 위에서 살기 때문에 땅바닥이 잘 안 보인다. 현상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2005년에 2007년 대선은 경제가 주요 잣대가 될 것이라고 얘기한 적 있다. 이 대통령이 경제대통령 캐치프레이즈를 잘 내건 것이다. 그리고 747, 대운하 등이 나왔는데, 선거구호로서는 몰라도 현실적으로 747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우리 정책의 행동반경이 굉장히 줄었다. 70년대, 80년대 중반까지 가능했던 경제정책으로는 도저히 안 된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도 가능한 것처럼 생각한다.
경제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잘못할 경우 정책이 불안정하게 갈 수밖에 없다. 현재 개방경제체제에서 정부는 국내 경제상황에만 집착해 가지고는 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없다. 작년 7~8월부터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원유, 원자재 값이 계속 상승 추세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면 경제정책을 하는 사람들이 이를 면밀히 생각하고 이 속에서 대한민국 경제가 어떻게 처신할 것이냐를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과거 방식으로 수출을 늘리려고 환율을 인위적으로 평가절하 했다. 환율을 평가절하하면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것 뿐 아니라 수입 가격도 높인다. 가뜩이나 원유 값이 오르는데 환율까지 올라 더 비싼 값으로 원유를 사와야 하는 등 물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물가가 올라가면 서민들 생활은 더 어려워지고, 소비 폭이 줄고, 국내투자를 할 수 없다.
그런 양면을 생각 안하고 정책을 운용해 보다가 한두달 만에 갑자기 또 바꿔서 환율 안정시키겠다고 나섰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방어하다 보니까 환율이 투기의 대상이 됐다. 그런 과정에서 촛불시위를 만나게 됐다. 일반 국민들은 삶이 향상될 것이라고 잔뜩 기대하다가 물가로 오히려 어려워지니까 계기가 있으면 불만 표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촛불이 기폭제가 돼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그 많은 사람이 운집한 것이다.
"89년 3만9000이던 니케이지수가 지금은 1만2000"
프레시안 : 정책의 일관성이 안 보이는 게 정책기조를 더욱 의심스럽게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정책만 해도 환율과 물가 사이에서 오락가락했고, 그런 것들이 누적되면서 시장과 국민들로부터 신뢰의 위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김종인 : 정부정책 운용이 스스로의 모순을 노정하면 신뢰를 상실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많은 경제학자들은 70년대 말, 80년대에 공부한 사람들이다.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 공부를 주로 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시장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대단히 많다.
시장의 기능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기능이 있다. 정부가 해야 할 기능을 해야 한다. 역사의 종말을 얘기한 후쿠야마도 한 나라가 긍정적 발전을 하려면 모든 걸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로 시장만능주의라면서 정책 운용을 하는 걸 보면 시장의 본질과는 다르다. 정부가 간섭을 하는 것에서 모순이 노정되고 있다. 정부 역할에 한계를 두고 시장에서 할 일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대표적인 게 증시, 환율정책 등이다. 이걸 개입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증시는 시장원리가 가장 잘 작동하는 곳이다. 이런 곳마저도 개입해서 가격을 받쳐준다든지 하면 자원배분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최근 우려스러운 게 증시가 내려앉으려고 하면 연기금 동원해서 막아준다는 것이다. 연기금은 65세 이상 노인들의 생활안정자금이다. 한편으로는 2060년 되면 연기금 바닥날 것이라고 연금의 재정 안정을 걱정하는 소리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금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장에 자꾸 집어넣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 학자나 금융종사자들은 장기적으로는 증권투자가 수익이 높다고 하는데, 이는 무책임한 얘기다. 1989년 일본의 니케이지수 3만9800이었고, 당시 노무라 증권은 1995년 되면 배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90년 들어와서 증권시장이 붕괴돼서 지금 1만2000선에서 오락가락한다. 그런 상황이 우리 증시에 나타날 수도 있다.
시장 반응을 제대로 인식 못한다는 비난 여론이 많은데 정책일관성이 없고 상호모순성을 자꾸 노정하면 시장 불신만 키우게 된다. 우리나라 금융주택시장은 개인들의 부채가 많아서 가계부채가 660조다. 아파트는 지어봐야 미분양 적체만 심화시킨다. 그런데도 주택 공급이 계속 늘어나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니 시장이 갈피를 못 잡는 것이다. 경제주체가 미래에 대한 정확성을 알지 못하니 혼돈과 정부 불신이 올 수밖에 없다.
남재희 : 나는 지난 9일 '국민과의 대화'를 경청했다. 김종인 박사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거기서 감세 얘기가 나왔는데, 내 생각엔 세부담자들의 형평성을 조정한다는 건 몰라도 증세 방향이 맞는 거 아닌가? 선진국과 조세부담률을 비교해보면 우리는 아직도 낮다.
예를 들어 대학생들 등록금 문제를 얘기하면서 학자금융자 확대, 이자보전 확대한다고 했다. 좋은 애기지만 이런 것을 하려면 정부가 돈이 더 있어야 한다. 증세를 해야 맞지 않나?
그리고 그린벨트를 일부 조정해서 공공주택을 싸게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그린벨트 근본을 흔드는 건 어려워도 일부 조정해서 공공주택을 싸게 공급하는 건 긍정적이라고 보는데 김 박사 견해는 어떤가?
김종인 :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22%다. 조세부담률만 놓고 보면 우리가 미국, 일본보다 높다. 독일도 조세부담률만 계산하면 우리하고 비슷하다. 문제는 같은 정도의 조세를 부담하고도 국민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독일은 조세부담이 21%인데, 이걸 가지고 대학교까지 공짜다. 북유럽 국가들을 보면 사회보장에 대한 부담까지 다하면 조세부담률이 40%가 넘는다.
물론 감세는 이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다. 지금 국회도 한나라당이 다수의석이니까 공약 실천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세의 명분으로 경기활성화를 내세운다. 법인세율이 현 25%인데 20% 선으로 내리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법인세 실효세율은 19% 수준으로 높은 수준이 아니다. 법인세율이 높아서 투자가 안 되는 게 아니다. 과거부터 계속해서 정부가 그런 얘기를 하는데 규제가 많아서 투자가 안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기업은 돈을 벌 수 있으면 규제를 요리저리 피하는 데에는 도사다. 투자 대상이 없어서 투자를 안 하는 것이다. 이걸 자꾸 그런 식으로 설명하니까 역작용이 발생한다.
세제와 관련해 1973년 국회에서 소득세 면세점을 1만6000원에서 1만8000원으로 올리려고 심각하게 싸움이 붙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1차 오일쇼크가 터지고 74년 '114 조치', 재정에 대한 긴급명령이 있었다. 소득세 면세점을 5만 원으로 올려 버렸다. 85%가 소득세 면제를 받았다. 그런 식으로 세제를 바꾼 적도 있다. 지금 상황에 와서 중산 서민층을 위해 소득세를 낮춰준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의 50%가 소득세를 안 낸다. 결국 낮춰주면 상위계층이 가장 혜택을 많이 본다.
기본적으로 보면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려면 세원확보가 중요하다. 세출을 통해 영세계층에 혜택 가는 방법을 쓰는 게 정상적이다. 지금은 레이거노믹스 형태로 세금이 줄어들면 세수가 더 들어온다고 하는데, 이건 말짱 헛소리다.
지금 정부는 레이거노믹스 '래퍼 커브'를 제시하면서 감세의 효과를 얘기하는데, 그러면 세출도 줄여야 한다. 레이건 정부는 세출도 줄이지 못하고 국방비 팽창으로 결국 쌍둥이 적자를 야기했다. 이를 해소할 방법이 없어서 1985년 프라자 협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에 와서 부시 대통령이 지난 1월 1500억 불에 해당하는 감세를 했지만 그 자체가 경기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하다. 고전 이론에 입각하면 세금을 낮춰주면 소비가 준다는 주장도 있다. 리카르도는 세금을 낮춰주면 거기서 구멍이 나는 재정을 메우려고 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메우려면 결국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고 따라서 소비가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세금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도 뚜렷하지 않다.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법인세율을 낮춰주는 성향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법인세의 줄어두는 부분을 다른 세금으로 충원하지 않으면 메울 방법이 없다. 독일도 법인세율을 낮췄는데 결국 부가가치세율을 3%나 갑작스럽게 인상했다. 조세부담은 나중에 남게 돼 있다.
그린벨트를 풀어서 공공주택 가격을 내리겠다는 것이 현실적인 효력으로 나타날지 의문이다. 그린벨트 풀면 땅값이 싸니까 주택 가격을 내리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그린벨트 풀면 그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렇게 쉽게 금방 집값을 내리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노동운동 배제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겠다는 건 자가당착"
프레시안 : 이른바 '기업 프렌들리'라는 말을 하는데,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규제 완화를 공약한 이명박 정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사회의 현안인 노동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남재희 : 대통령이 직접 구체적으로 노동 문제를 얘기한 건 국민과 대화가 처음인 것 같다. 이번 회견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할 경우 세금혜택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비정규직과 기업 사이에 제3자 개입만 없으면 길이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는 기업 프렌들리라는 이미지를 줬다. '기업 프렌들리=노동 비프렌들리'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준 건 사실이다.
역대 정부 청와대에 노동담당이 있었는데 이번 정부에는 없다. 노동문제를 담당하는 사회정책수석도 노동전문가가 아니다. 노동 문제에 비중을 크게 두고 있지 않다. 이처럼 노동문제에 대해 경원시하는 인상을 주다가 이번에 사회적 합의를 얘기한 걸 유심히 봤다.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면 사회적 합의가 으레 나오는데, 그 방법 밖에 없기는 하지만 한편 과연 사회적 합의로 해결될지 회의적이기도 하다.
앞서 정치에 있어 이상주의와 꿈 얘기를 했는데 이건 약자를 도와준다는 뜻이 강하다. 약자가 누구냐. 기업보다는 노동자, 노동자 중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비정규직이다. 약자에 대해서 힘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호의를 가지면서 하는 게 정치다. 그럴 때 국민이 꿈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국가가 지향하는 이상적 복지사회 아닌가. 사회적 합의를 단순히 얘기해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노동정책을 보면 별로 열의가 안 느껴졌는데 이걸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궁금하다.
한편으론 비정규직 문제에 제3자 개입이 없으면 회사하고 타협의 길이 있지 않겠냐고 했는데, 이건 모순이다. 비정규직은 엄청난 약자다. 어떻게 회사와 일대일로 타협을 하겠나. 제3자는 노동운동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노동운동을 배제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백년하세월일 것이다. 이는 사회적 합의를 얘기하는 것과는 자가당착이 된다.
김종인 : 이명박 정부 정책의 기본 방향은 경제가 성장하면 고용이 늘고 고용이 늘면 소득이 늘고, 소득 늘면 거기서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시장경제에서 얘기하는 원리를 적용하면 된다는 나이브한 생각이다.
우리사회 현실을 놓고 냉정하게 얘기하면 우리나라 경제는 대기업 위주로 돌아간다. 그 사람들은 국제시장 뛰어다니면서 다 알아서 한다.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으로서 관심을 가져야할 사항은 바닥에 쳐져 허덕이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을 것이냐를 고려한다면 사회정책적 측면을 좀 더 용의주도하게 준비해서 끌고 가야 한다. 의지라도 그렇게 표명하는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 초기에 청와대 인사를 할 때 보니까 사회정책수석에 박미석 교수를 임명하는 걸 보고 이 분야는 자리를 하나 만들긴 했지만 관심이 없구나 생각했다.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우선에 둘 것인지,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 입장에서 국민을 포용한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않는 것 같다. 무슨 사태가 벌어지면 그에 대해 변명하고 적당하게 말로 표현해서 지나가는 식이다.
남재희 : 노총 가서는 노동 프렌들리라고 했지만 하는 걸 보고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노동정책 쪽은 안 움직일 거 같다.
"대처도 이런 식으로 민영화하지는 않았다"
프레시안 : 몇가지 경제 현안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에서 주안점을 두는 게 민영화인데 이를 놓고 논란이 많습니다.
김종인 : 민영화도 기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수도, 전기, 가스 민영화 안 한다고 발표했으니까 안 하리라고 본다. 다른 것은 민영화할 거라고 보는데, 소위 말하는 좌파 정부도 과거 형편없는 짓을 했다. IMF 이후 공적자금을 엄청나게 쏟아부었다. 공기업은 왜 공기업이냐. 그 개념 정립이 잘 안 돼 있는 것 같다.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를 영국경제정책에 도입한 철의 수상 대처도 공기업 민영화할 때 특정기업에 넘기지 않았다. 국민주식으로 해서 공개했다.
우리나라 민영화는 그런 개념이 없다. 특정 공기업을 큰 기업이 가져가는 식으로 민영화한다. 이윤추구를 전제로 하는 기업은 정부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데, 전기, 가스, 수도는 이윤 추구하는 기업이 돼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초기에 민영화 쪽으로 간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사과까지 한 것 아닌가. 의료보험도 민영화한다는 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일반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의료보험을 민영화하면 차상위 계층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다.
남재희 : 의료문제가 심각한 게 그걸 민영화하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 레테르를 붙이게 되기 때문이다. 부자는 부자병원, 가난한 사람은 공공병원 이런 식으로….
프레시안 :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김종인 : 과거 정부에서부터 경기가 어려워지면 건축경기 활성화를 내놓고 이것이 부동산투기로 연결된 게 우리나라 역사다.
프레시안 : 실제로 이것이 경기 부양의 효과로 이어질 여지가 있습니까?
김종인 : 지금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건설경기 좀 일으킨다고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다. 노태우 정권 시절 신도시 만든다고 200만 호 지을 때 건설경기만 갖고 성장률을 3%를 올렸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건 그것 밖에 없다.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는 게 정책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이다.
프레시안 : 정책 담당자들의 자질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우리경제의 가장 큰 문제를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신뢰의 위기에서 찾는 시각도 있습니다.
김종인 : 경제정책의 최고책임자는 대통령이다. 강만수 장관이 하더라도 그건 대통령이 책임지는 것이다. 물론 정책은 사고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해야지. 이론 좀 잘 알고 행정 능력 있고 이런 소양만 가지고는 경제정책 못한다.
"금융허브? 허망한 얘기"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도 금융선진화, 금융허브를 얘기하는데 실현가능한 목표라고 보십니까?
남재희 : 조순 전 부총리가 국제금융허브는 허망한 얘기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노무현 정권이 동북아 허브라는 얘기를 했다. 물류허브를 말하다가 안 되니까 나온 것 아닌가.
김종인 : 금융허브라고 하면 해외자본이 몰려들어야 하는데 그만한 것을 관리할 수 있는 금융 인력도 없다. 금융산업은 발전시켜야 하는데 미국 금융혼란에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덜 들어가서 손해를 덜 봤다. 우리가 몰라서 못 들어간 것이다. 그건 다행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거론했는데,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은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김종인 : 우리나라 경제는 과거에 해놓은 것을 가지고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중화학 공업 투자, 조선업, 자동차, IT산업이 주력이 돼서 돌아가고 있는데 그 수준에서는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고 빠른 속도로 따라오고 있다. 조선업이나 화학 철강, IT 이런 쪽이 언제까지 국제 경쟁력을 갖고 뒷받침할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 개발, 새로운 산업이 등장해서 이어갈 수 있어야 되는데 그건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게 아니다. 8.15 경축사하면서 저탄소, 녹생성장을 동력으로 삼겠다고 했는데, 이를 하기 위해선 우리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해야 밖에 팔아먹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초보단계다.
보통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얘기하면 IT, ET, BT 등이다. 미국이 IT로 90년대를 주름잡았고, BT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잡는다고 하였다. 이건 인간과 관련이 된 문제라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기 좀 힘들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옥수수 GMO 문제가 있는 것처럼 BT 산업도 식량난이 심화돼서 그쪽도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 큰기업들이 바이오 쪽에 애를 쓰고 재생에너지 쪽에 동력을 잡는다고 한다. 기름값이 비싸지고 한계에 봉착할 거라고 보니까 재생에너지 기술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려면 그에 대한 기술이 발전해야 동력산업이 된다. 풍력은 스페인이나 독일에서 기기를 많이 수출해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독일은 풍력을 만드는 설비가 7~8년 내에 독일의 자동차 산업을 대체할 정도라고 한다.
지금 보면 교토의정서도 있고 G8 회의에서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50%를 축소하기로 했다. 그러면 화석에너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태양에너지는 기술을 얼마나 발전시키느냐, 폴리실리콘 소재 등을 누가 빨리 확보해서 상품화해 세계시장에 내놓느냐, 그쪽의 R&D가 발전해서 기술이 빨리 개발돼야 하는데 이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분야들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종래의 산업구조를 바탕으로 현재까지는 국제경쟁력을 갖고 지탱하고 있으니까 그걸 바탕으로 기술을 계속 발전시키면 성장 동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
프레시안 : 역대 정부도 그랬지만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률이라는 숫자에 대한 일종의 강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로 당선된 대통령의 7·4·7에 대한 집착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종인 : 5%의 성장률 자체가 낮은 게 아니다. 과거 70~80년대 같은 경제구조가 아닌데 무리를 가하다보면 다른 데서 부작용이 생긴다. IMF 이후 양극화는 계속 늘어났지만,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경제가 정상궤도로 들어갔다. 2000년 초에는 오히려 IMF를 겪어 산업구조도 변화되고 빠른 IT 산업의 발전 등으로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모습을 보여줬다. 노무현 정권 들어 성장률이 평균 5% 이하를 보이니까 과거 연 7~8% 성장에 적응됐던 사람들이 보기엔 성장률이 떨어지고 고용창출이 어려워지고, 청년실업자가 늘어나 경제가 답답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경제 수준을 놓고 볼 때 잠재성장률은 4.5~5%다. 그 수준에서 경제성장이 이뤄진 것이면 선진국 평가 기준으로 보면 정상적으로 간 셈이다. 환율도 안정세로 돌아갔다. 2004년 이후 세계 경제가 호황을 보이면서 우리 수출이 연 30% 증가했다. 수출은 그 이후에도 계속 두 자릿수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소득분배가 자꾸 부익부, 빈익빈으로 가니까 국민들 사이에 불만 계층이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조화를 이루면서 전체를 끌고 가야 한다. 성장한다고 건설업 등에 돈을 부으면 성장률이 일시적으로 높아질지는 모르지만 나중에는 의미가 없다. 김영삼 정권이 출발하자마자 갑자기 신경제를 한다고 과잉투자, 과잉시설, 과잉부채를 한 게 IMF로 이어졌다. 위기니 뭐니 하는 얘기도 정부가 하면 안 된다. 정책하는 사람들이 위기를 얘기하면 스스로 무능력하다는 얘기다.
노무현은 좌파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썼는데,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 못하겠다. 남북, 대미관계에서 좌파적 성향을 썼지만 경제사회정책은 완전히 신자유주의를 이어받은 것이다. 영국도 신자유주의라고 하지만 영국은 스미스, 리카르도, 페비안니즘, 케인지안, 하이에크까지 짬뽕된 것이다. 어느 한쪽 이데올로기에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각 나라가 자본주의를 하지만 그 나라의 역사적 특성 때문에 다르다. 기든스가 얘기하고 토니블레어가 한 제3의 길도 이것저것 다 끌어다가 통치하는 것이다. 제3의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남재희 : 좌파신자유주의 운운은 제3의 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닌가 한다. 제3의 길은 블레어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미사여구로 썼다는 비판도 있다.
김종인 : 대처 때 영국의 내셔널 헬스케어가 없어졌나. 아니다. 미국도 테오도어 루즈벨트 때부터 개혁이 시작되어 프랭클린 루즈벨트까지 이어졌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에 의하여 미국에 복지제도가 처음 도입되었다. 그 후 공화당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돼서도 이 제도는 없어지지 않고 더욱 강화되었다. 민주주의가 표를 먹고 사니까 어쩔 수 없다. 닉슨까지만 해도 그걸 그대로 본받아 오다가 레이건 때 변화된 것이다. 계기가 70년대의 1차 오일쇼크였다. 케인지안 이론이 안 먹혔다.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그 논리가 먹히지 않으니 레이건 때 반작용으로 나온 게 레이거노믹스다. 그것도 30년 됐다. 그래서 지난번 다보스 회의 결론이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다'는 것 아닌가.
요즘 미국에 금융위기가 생기고 있는데, 시장주의 원리로 하면 다 망하게 둬야지 정부가 공적자금 넣는 게 자본주의인가? 미국에서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해나 위험은 사회주의화한다는 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순수한 모형의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국가가 전체를 끌고 가기 위해선 아무리 자본주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해도 정부가 뛰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가 망한 것이나 자본주의 체제의 위험은 모두 인간의 본성을 이해 못하는 시스템은 성공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능인 상승 욕구를 억누르다가 실패했다. 자본주의체제는 시장주의 원리대로 하면 승자 독식 시스템이 돼서 패자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생존이 어려워지면 본능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그런 것을 사전적으로 파악해서 사회복지를 확장해 안정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조화를 갖추지 못하면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기 힘들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좀더 필요"
남재희 : 경제가 그렇게 비관적 상태는 아니다. 다만 나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좀 더 해야 한다고 본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좌파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김종인 : 가장 밑에 있는 저소득계층에 대해 배려를 분배정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게 중요하다. 생존을 보전하는 건데 그건 분배와는 다르다. 분배 정책은 정부가 하는 게 아니다.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이뤄지는 것이다. 정부는 재정을 통해 재분배를 하는 것이다. 세금 깎아주는 것 보다 재정지출을 통해 하는 게 효과가 가장 크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크게 관심을 안 갖는 것 같다.
남재희 : 이명박 정권이 스스로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하겠나. 나는 그걸 거꾸로 본다. 약자 측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약자측이 요구해서 향상이 되는 것이다. 그건 현 정권도 어쩔 수가 없다. 들어줘야한다.
김종인 : 정치적 필요성 때문이라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77년에 의료보험을 도입할 때 내가 그걸 발의했는데 신현확 보사부 장관도 반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기가 통치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인식하더라. 보사부는 복지연금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그것부터 하려고 했지만, 대통령이 하라고 해서 결국 받아들인 것이다.
남재희 : 우리 국민이 상당히 깨었다. 정권이 무리하게 약자의 복지를 무시하지 못한다.
김종인 : 제대로 된 참모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도록 하면 이명박 대통령도 이에 따를 것이다. 자기도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 하지 않겠나.
남재희 : 이명박 대통령이 유연한 데가 있다는 건 그런 의미다. 완고한 우파가 아닌 것 같다.
김종인 :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초기에 흔들리다가 정상을 되찾는 날이 올 것이다.
프레시안 : 비교적 낙관적인 미래에 대한 바람을 곁들여 자연스럽게 이명박 정부의 경제와 노동, 복지 정책 등이 제자리를 찾기 위한 조언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귀한 말씀 감사하고, 모쪼록 이명박 대통령과 정책 담당자들이 새겨듣기를 기대해 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