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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단식투쟁의 의의, 31일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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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보법 단식투쟁의 의의, 31일 종료

"단식은 중단하지만, 보안법 폐지의 불길은 꺼지지 않는다"

연말 국회 앞에 즐비하게 늘어섰던 천막농성장이 하나둘 지난해 뜨거운 기억들을 뒤로 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이 중 사상 초유의 1천여명 집단 노상 단식을 감행하며,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위해 의지를 불태웠던 '국가보안법끝장단식단'도 12월31일 밤 12시를 기해 천막농성장을 철수했다. 비록 목표했던 보안법 연내폐지는 이루지 못했지만, 보안법 폐지 투쟁의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다.

***2004년, 보안법 폐지 최대 호기**

지난 11월2일 여의도 국회 앞 천막농성장이 들어서면서 보안법 연내완전폐지 운동의 닻이 올랐다. 시민·민중진영은 올해 야 말로 보안법 56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 어느 해보다 강력한 보안법 폐지 투쟁을 결의했다.

시민단체들은 지난 8월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를 재출범하면서 보안법 폐지 운동의 가속폐달을 밟았다. 이들은 보안법의 운명을 최종 결정할 여야 정당과 긴밀한 접촉을 가지며 보안법 폐지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한편, 국민연대 소속 단체인 민변을 중심으로 보안법의 역사적 폐단과 피해 사례등을 집중 연구·부각시키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전개했다.

뿐만 아니라 대국민 선전·홍보전도 어느때 보다 광범위하고 대중적으로 전개됐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 뜨거운 햇볕을 온 몸으로 받으며 '보안법폐지 도보행진단'은 전국을 순회하며 보안법폐지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다했고, 이후 각 단체별로 지하철 선전전·거리 선전전을 병행하며 미온적인 국민적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이런 와중에 국가인권위의 보안법 폐지 권고안 발표(8월24일), 국제 엠네스티의 보안법 폐지 지지 서한 전달(10월13일) 등이 이어지며 보안법 연내 폐지의 기운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1천명, 보안법 폐지 집단단식돌입**

12월6일 국회 앞에서 3백인이 단식농성을 결의하면서 보안법 폐지 운동은 분기점을 맞이하게 됐다. 단일 사안을 두고 3백인이 단식을 벌이는 사태가 초유의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표가 '연내폐지'로 시한을 분명히 못박았던 만큼,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극한 전술이 전개됐다.

단식단 대표자들은 삭발을 하며 결의를 다지며(12월1일) 사태의 엄중함을 강조했고, 전국에서 상경한 단식단원들은 이들과 함께 어깨걸고 연내폐지를 위해 목숨을 걸 것을 결의했다. 단식단은 12월13일 5백60여명으로 확대됐고, 디시 20일에는 1천여명으로 대폭 확대됐다. 단식단은 여의도 문화마당에 숙소로 마련된 농성텐트장에서 하루를 시작해 지하철 선전전, 거리 선전전을 진행하고, 대표자들은 연일 정치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기자회견을 통해 시시각각 단식단의 입장을 발표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당초 당론인 보안법 폐지 및 형법보완이 한나라당과의 타협으로 혼란에 빠질 때에도 단식단은 '보안법 연내폐지'라는 당초 입장을 굳건히 고수했다. 지난 22일 우리당-한나라당 지도부가 4자회담을 통해 보안법 등 4대법안 처리를 결정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를 '야합'으로 규정한 국민연대와 단식단은 비상시국회의를 통해 "야합 중단 및 김원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단식단은 이후 우리당·한나라당 당사에 몰려가 규탄대회를 진행하는 한편, 네티즌들과 함께 우리당·한나라당 홈페이지와 직권상정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김원기 국회의장의 홈페이지에 수백건의 항의글을 올리기도 했다.

***"목숨까지 걸었건만, 정치권은 기대를 저버리고..."**

보안법 폐지- 폐지 후 형법보완- 대체입법론 부상 등 열리우리당이 보안법 처리에 대해 갈지자 행보가 임시국회 종반부에 다달으면서 극한에 이르자 단식단의 투쟁 역시 극한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임시국회 폐회일인 사흘 앞둔 29일 단식단 2백여명은 물과 소금마저 거부한다고 선언, 자칫 불상사마저 예견되는 긴장국면이 조성됐다. 한달여의 노상 단식, 단식 중 생명유지의 관건인 물과 소금마저 거부한 단식단은 하루하루 지날 수록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는 등 목숨을 건 보안법 폐지 투쟁은 최고조에 달했다.

30일에는 하루 아침에 20여명의 단식단이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등 집단 실신 사태가 속출했고, 이 과정에도 정치권에서는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는 못한채, 타협과 협상의 미명 아래 보안법 연내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국면이 다달았다.

30일 의료인들은 성명을 발표해 단식단에게 단식을 중단할 것을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보안법 폐지의 역사적 정당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생명을 죽이면서 까지, 몸을 심각하게 훼손하면서 까지 단식을 진행하는 것은 의료인들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가슴시린 호소였다. 하지만 단식단은 당초 목표인 31일까지 단식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히며 31일 자정까지 단식을 사수했다.

결국 이들의 목표인 '보안법 연내 완전 폐지'는 무위로 끝났다. 정치권은 이들의 목숨을 걸고 외치는 '연내 폐지'요구를 묵살했고, 보안법 폐지 논의는 또다시 해를 넘겼다. 정치권 역시 보안법 폐지를 두고 내부 극심한 갈등양상을 표출, 집권 당 천정배 원내대표가 사퇴를 선언하는 등 보안법 폐지 후폭풍 역시 일기도 했다.

***단식단 31일 해단, "오늘을 기억한다. 그리고 배신자들을 기억하자"**

국민연대는 31일까지 저녁 촛불문화제를 진행한 후 자정 께 모든 단식농성을 중단했다. 이들이 31일날 발표한 마지막 성명에는 "12월31일 오늘을 기억하자. 야합과 배신으로 점철된 역사의 배신자들을 기억하자. 우리는 국가보안법이 마침내 폐지되는 그날까지 우리의 뇌리에서 그들을 지울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이들은 또 "오늘 비통한 심정으로 올해의 투쟁을 접는다. 하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투쟁의 기억은 국민 모두에게 선연하게 남아 승리의 밑거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보안법 폐지의 불길을 전국으로 확산 시켜 수구세력과 그 부역자들을 응징하고, 기필코 인권과 민주의 역사, 통일의 역사를 새로 쓰고야 말 것이다"며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졌다.

2004년 보안법 폐지는 관철되지 못했지만, 1천여명의 단식투쟁, 광범위하게 펼쳐진 대중 투쟁은 이들의 말대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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