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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금융위기, 실물경제 휩쓰는 태풍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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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금융위기, 실물경제 휩쓰는 태풍 되나

중소기업 자금조달 어려워져…"유동성 공급해야"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한국 실물경제에도 태풍처럼 날아올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아직 구체적 징후는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경제를 움직이는 '혈맥'인 돈이 제대로 돌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에 돈을 묻어뒀던 외국인이 대거 돈을 빼내면서 환율이 폭등해 환헤지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빼든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조치는 전혀 약발이 듣지 않는 가운데 중소 건설업체는 점차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업 자금조달 혈맥 경색조짐

은행이 돈줄을 조이면서 중소기업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 절대 다수가 은행 대출로 기업 운용 자금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엄격해진 대출심사는 곧 운용자금 경색 심화로 이어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여신 건전성 관리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가야 될 대출이 나가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심사가 좀 더 엄격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많은 중소기업이 환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무턱대고 대출을 해주는 것은 은행 자산건전성에 치명타"라고 말했다.

대출 길이 막힌 데다 주식시장 침체로 기업이 주식을 매각해 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이미 몇몇 중소기업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 수출 중소기업 임원은 "지금이 투자해야 할 시기인데 은행 문턱을 넘기도 어렵다. 소문에는 직원 월급을 줄 돈도 남아있지 않은 기업이 태반이라고 한다"며 "그나마 우리는 지난해 은행에서 키코(통화옵션상품) 가입 권유가 들어왔지만 계약하지 않아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난해 환헤지수단으로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의 피해는 환율 급등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매달 엄청난 돈을 은행 시세보다 훨씬 싼 계약환율로 시장에 내다팔아야 해 이를 감당 못하는 상황에서 은행 대출마저 안 되니 수출 중기로서는 이중고에 처한 셈이다.
▲중소기업은 이미 심각한 자금난에 직면했다. 지난 8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키코 피해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키코아웃'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대책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뉴시스

당장 한해 매출 6000억 원을 올리던 우량중소기업 태산엘시디가 키코 피해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회생절차 신청을 했다. 태산엘시디가 키코로 입은 손실은 올해 상반기에만 거래손실 270억5700만 원, 평가손실 535억8300만 원 등 총 806억4000만원에 이른다.

태산엘시디는 올해 상반기에도 매출 3441억 원, 영업이익 114억 원을 기록한 우량 백라이트유닛(BLU) 제조업체였으나 키코로 인해 자금회전이 제 때 이뤄지지 않아 흑자도산하고 말았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겉으로 보기에 별 탈 없이 사회생활을 하다 동맥경화로 쓰러진 셈이다.

이런 피해는 갈수록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키코에 가입한 기업이 입은 평가손실액은 약 1조6000억 원에 이른다. 이 중 중소기업의 평가손이 1조2000억 원이다. 지난해 키코 가입 붐이 일 당시 기업들 대부분은 900원 대로 적정 환율을 설정해 이 상품에 가입했으나 올해 들어 환율이 1100원 선을 훌쩍 넘어서 피해는 점차 늘어날 게 뻔하다. 금융권에 따르면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평가손은 1000억 원씩 늘어난다. (☞ 관련 기사 : 수출기업 목 죄는 키코)

자금 돌지 않는 건설경기

꽁꽁 얼어붙은 건설경기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건설업체에도 자금 공급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금융권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자금조달이 이뤄지는 개발사업의 특성상 흔들리는 금융부문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택구입 수요는 실종돼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고 있어 중소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경영난이 악화되고 있다.

GS건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경기 안산시에 추진하던 개발사업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제동이 걸렸다. 당초 리먼브러더스는 이 개발 사업에 3000억 원 가량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이런 추세는 외국인 투자자금을 끌어 개발에 나선 인천 경제자유구역 등 국내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주택 구입수요가 실종됐다는 점 역시 건설업체를 짓누르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지방을 중심으로 속출한 미분양 사태는 최근 들어 수도권으로까지 도미노처럼 번지는 양상이다. 7월 말 경기도내 미분양 아파트는 2만710세대로 한 달 전에 비해 3977세대가 늘어났다.

매수세 실종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대한주택보증에 따르면 8월 말 현재 전국의 분양보증 실적은 12조 원으로 지난해 70조 원의 1/7 수준에 불과하다.

주택 경매시장 역시 침체다. 집을 가진 사람들이 경매시장에 매물을 내놓고 전세로 들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이마저 추가로 낮춰야만 거래가 들어올 정도다. 부동산 경매전문회사 지지옥션에 따르면 추석 직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낙찰가율은 감정가의 72.9%로 법원 경매 집계 이래 최저치였다.

다급해진 정부가 '안정세를 찾아가는 시장에 불을 지른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건설경기 부양책을 내놨지만 약발이 듣지 않는다. 정부 정책이 수도권 공급확대 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져 미분양 문제에는 효과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시장의 잠재적 뇌관이 미분양 아파트 수가 지나치게 늘어난다는 것"이라며 "미분양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면서 공급강화책을 내야 한다. 아직은 심리 문제가 크지만 미분양으로 고통 받는 중소 건설업체에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건설부문 악화가 현실화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유동성 공급이 해법…중소기업 정책적 지원 필요
▲유동성 부족은 금융권을 휩쓴 데 이어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뉴시스

아직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전반에 직접 타격을 미친다는 뚜렷한 징후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금융권과 실물경제 부문이 상호 악영향을 미치면서 사태가 점차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된다. 금융권 긴축이 실물경제에 타격을 입히고 실물경제 타격이 다시 소비 침체와 함께 실물경제 추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다.

당장 건설산업에서는 이런 우려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6월 말 현재 금융회사의 부동산PF 대출잔액은 80조 원에 달한다. 문제는 이들 자금이 제대로 회수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저축은행의 대출금 연체율은 14.3%로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중소형 건설사의 대대적 부도사태가 일어난다면 그로 인해 금융회사마저 동반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서민가계 심리에 극도로 부정적 영향을 미쳐 금융권은 물론 경제 전반에 심각한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

금융권 위축과 부동산 침체로 가계 심리 역시 위축되면서 소비마저 부진하다. 이는 다시 실물경제에 더 큰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더군다나 동반 침체에 들어가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 때문에 세계 경제가 둔화된다면 수출전선에도 먹구름이 짙어져 다시 내수 부진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련의 추세의 근본원인은 시장에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외화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이 대폭 자산건전성 확보에 돌입했다. 이는 중소기업에 대출금 롤오버(만기연장) 실패, 단기운용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기업마저 긴축에 들어가면서 당연히 가계 유동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는 주택시장 침체와 함께 내수침체를 불러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순환고리를 만들 수 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까지 미치게 된다면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결국 신용경색으로 가계와 중소기업 등 경제약자부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는 대출 부실화를 불러와 자칫 실물경제에까지 파급효과를 미칠 악순환을 이끌 가능성이 있다"며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해야 일단 경제에 자금 순환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전 교수는 "자금이 필요한 곳에 돈을 풀어 긴급유동성을 지원해야 한다. 당장은 돈을 돌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금리인하로 눈먼 돈을 허공에 뿌리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고 전 교수는 지적했다. 긴급 자금이 필요한 곳에만 정책적으로 돈을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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