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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역사뒤집기'에 대한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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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역사뒤집기'에 대한 대처법

[김종배의 it] '냉정'과 '열전'이 필요한 때

이건 '도발'이다. 국방부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전달한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개정 의견은 역사적 평가와 국가의 결정을 뿌리째 부정하는 명백한 '도발'이다.

제주 4.3사건을 '좌익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국회의 '4.3사건 특별법'과 정부의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승만 정부가 '남북분단 상황을 이용해 독재정권을 유지했다'는 기술을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데 최선을 다 했다'고 변경하자는 주장은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4.19 혁명정신을 외면하는 것이다. 전두환 정부의 '권력을 동원한 강압정치'를 '민주와 민족을 내세운 일부 친북적 좌파의 활동을 차단하는 조치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6월 항쟁을 사실상 부정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단언한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일을 괜스레 되돌리려 한다고 힐난한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주장한다. 제주 4.3사건이 발발하는 과정에서 남로당의 건국 방해활동이 있었던 게 사실 아니냐고, 이승만 대통령이 공산주의 확산을 막으면서 자유민주체제를 세운 건 사실 아니냐고, 전두환 정부 하에서 일부 친북좌파가 민주세력을 가장해 활동한 건 사실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게 어제의 현실이고 오늘의 상황이다. 달라진 건 없다. 평가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 '4.19혁명동지회' 회원들이 2006년 교과서포럼 6차 심포지움에서 '4.19정신을 모독하지 말라'며 발제자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에 격렬히 항의하는 장면 ⓒ연합

달라진 게 하나 있긴 하다. 정권이 바뀌었다. 더불어 힘의 축이 바뀌었고 주장의 전파력이 달라졌다. 어두운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던 국방부가 돌연 복고적 입장을 밝히고 나서는 것도 이런 현실에 기인한다.

새삼스러울 게 없다. 역사가 그랬다. 한 때의 역적이 충신으로 숭상되고, 공신이 역신으로 규탄되는 장면을 역사책에서 수도 없이 접했다.

과도할 것도 없다. 정파와 이념을 떠나 국민적·민족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믿었던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해서마저 행위의 경중과 공과를 가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판이다.

국방부의 교과서 개정 의견은 새로울 것도, 과도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단지 뒤틀린 우리 현실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편린에 지나지 않는다.

시선이 너무 냉소적인가? 태도가 너무 방관자적인가? 인정한다. 인정하면서도 거듭 말한다. 그게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사실(史實)보다는 사관을 앞세운다. 당대의 실정보다는 현대의 상황을 우선한다. 귀납적 방법이 아니라 연역적 방법을 선호하고 객관보다는 주관을 중시한다.

역사 논쟁을 관통하는 저류가 이렇다. 지극히 정치적이고 너무나 이념적이다. 아와 피아의 구분법에 기초해 유·불리를 잰다. 그리곤 주장한다. 근거를 대는 게 아니라 결론을 앞세운다. 논쟁하려 하지 않고 공격에 나선다.

너무 많이 연루돼 있다. 당대의 당사자가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있고, 그 후손이 정치와 사회 요직에 포진해 있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역사적 평가는 자신의 현재 처지를 뒤흔들 수 있는 이해싸움이다.

필연이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논쟁은 정치 지형을 규정하는 중대한 변수로 작용한다. 역사 평가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중대한 매개로 기능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타협적인 자세와 결사적 대응은 무조건 반사에 버금가는 정치적 생리현상이다.

정리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역사적 평가를 확정할 수 없고, 설령 확정한다 해도 굳힐 수 없다. 역사는 힘 센 자의 기록이고, 기술된 역사는 제한된 시기에서만 통용되는 기록이다.

냉소적 시각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냉정한 대응을 주문하기 위해서다. 왜 이미 평가가 끝난 역사를 뒤집으려 하느냐고 분노하는 건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

차라리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탈냉전 시대에 이념갈등을 벌이는 건 국력을 갉아먹는 소모적 행위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이념공세에 나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극 대처하는 게 낫다. 권력의 힘으로 평가를 강제하려는 데 대해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게 낫다. 공세를 피하는 게 아니라 그 공세를 논쟁으로 유도하는 게 낫다.

우리 사회가 냉전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런 현실에서 강구할 수 있는 가장 냉정한 방법은 바로 열전이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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