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교육과학기술부가 확정·발표한 '대학 자율화 2단계 1차 추진계획'이 발표됨에 따라 대학이 정말 자유롭게 됐다. 하지만 이 자유는 대학에만 주어지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은 더 종속적 지위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교과부가 발표한 대학 자율화 계획에 따르면 대학에서 경쟁이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학과 통폐합도 수월해져 비인기학과의 퇴출도 용이해지고 대학 교수의 정년을 보장하던 관행은 사라져 능력에 따라 초고속 승진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교육 전문가들은 이 정책을 통해 경쟁에 의한 효율성 제고가 어렵다고 진단한다. 오히려 대학 교육의 공공성이 무너지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고 말한다.
또 이 계획을 확정·발표하기까지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학과 통폐합 용이해져…"비인기 학과, 기초 학문 퇴출 용이"
먼저, 대학 자율화 추진 계획으로 비인기학과의 퇴출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동안 총 입학정원 범위 내에서 학과 정원을 자체 조정하려면 4대 요건인 교원·교사(건물)·교지(땅)·수익용 기본 재산의 확보율이 전년도 이상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교원 확보율만 전년도 이상이면 학과 정원을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됐다. 학과 정원이 늘어나 강의할 수 있는 공간이 모자라도 교수 수만 확보된다면 학과 증원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취업이 유리하지 않지만 학문에 꼭 필요한 기초 과목들은 대학 마음대로 정원을 줄일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취업에 유리한 학과는 정원을 늘리기가 훨씬 용이해진다. 따라서 학문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박정원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학문 구성 개편이 일어나면 비인기 학문이더라도 국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기초 학문들이 다 밀려날 것"이라며 "학교에만 맡겨두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시간 강사는 더 늘어날 것
더욱이 교원 수만 확보되면 학과 정원을 자유롭게 늘릴 수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성이 확보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홍성학 전국교수노동조합 교권쟁의실장은 "'교원 수만 확보되면 인기 학과의 학생 수를 늘릴 수 있다'는 말은 대학이 교원 확보율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며 "대학이 전임 교수를 늘릴 생각은 안 하고 시간 강사만 늘려도 된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구도 하고 학생도 지도하는 전임 교수를 늘리지 않으면서 시간 강사에게 강의를 맡기면, 교원 확보율은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만 유지하기 때문에 교과부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켜 문제될 게 없다. 그러면 학습 여건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교원 임용 시스템의 변화로 비정규 교원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는 전임강사 2년, 조교수 4년, 부교수 5년을 거쳐 최소한 11년이 걸려야 정교수가 될 수 있는 현 시스템에 대폭 수정을 가했다. 정교수가 되기까지 전임강사 단계가 폐지됨으로써 기한이 단축되는 것은 물론 조교수, 부교수로 임용됐을 때 채워야 할 임기를 채우지 않고도 정교수로 고속 승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반대로 교수의 정년이 보장되지 않아 고용이 불안해질 수도 있단 뜻이기도 하다.
홍성학 실장은 "2002년 교수 사회에 계약제를 처음 도입할 때도 능력에 따라 계약 기간을 길게 채용할 것이라며 경쟁을 유도했지만, 결국 대부분의 교수들은 단기 채용됐었다"고 말했다. 그는 "임용 주기가 일정치 않아 재임용 얘기가 나올 때마다 성과를 내야 하는 단기 실적주의가 횡행할 수 있다"며 "단기간에 실적을 평가하기 어려운 장기 연구 프로젝트 등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부연했다.
한편, 전임강사를 폐지해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3단계로 임용 절차를 줄이는 것에 대해서 홍 실장은 "자율화와 상관없는 생색내기 용"이라고 꼬집었다.
계약학과 범위 광역화, 복수 학위 협정…"대학 서열화는 더욱 조장될 것"
또 계약학과를 설치, 운영할 수 있는 범위도 기존의 20km 이내라는 제한을 폐지하고, 광역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계약학과란 대학에서 사회인을 대상으로 직업 재교육을 실시하는 학과로서 회사와 대학이 협약을 맺으면 회사는 인근 대학에 직원들을 보내 교육시킬 수 있다. 이럴 경우 지방대학이 특정 분야에 대한 계약학과를 수도권에서 개설할 수도 있고, 지방 업체가 타 지역의 유명 대학에 직원들을 보낼 수 있게 돼 유명 대학 편중 현상이 심화될 수도 있다.
하재근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은 "기업들은 일류대학만 계약하려 할 것"이라며 "이 경우 유명 대학만 이익을 독점하게 되고, 학교는 친자본적이 될 것이며 학문의 상업화를 낳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국내 대학 간에도 교육 과정을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일부 대학에서 학점 교류제 등을 통해 공동 교육 과정이 이뤄지긴 했었다. 이번 자율화 조치로 국내 두 대학이 복수 학위 협정을 체결하면 학생들은 두 대학의 학위를 각각 취득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학생들은 이력서에 두 대학의 학위를 모두 기재할 수 있다. 단, 정부가 입학정원을 관리하는 의료인·약사·한약사·수의사·교원 등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분야는 공동 명의로 학위를 수여할 수 없도록 제한해 부작용을 최소화 했다.
이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하지만, 역시 역기능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박정원 교수는 "교수진과 연구 시설이 상대적으로 덜 갖춰진 대학이 더 좋은 대학과 연계해 연구의 질을 높이는 것은 좋지만, 이름 없는 대학이 소위 명문대의 명의만 빌려와 학위만 줄 수도 있다"며 "명문대는 수익만 챙기고 교육 서비스는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등 대학 간 서열화는 더욱 조장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 교육 기관 과실송금 가능…"한국 대학도 영리 대학으로 가도록 길을 터줬다"
대학 자율화 추진 계획에 따르면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국제자유도시 등에 설립되는 외국교육기관이 본국 법인의 회계 기준을 따를 수 있도록 해 외국교육기관의 투자를 용이하게 했다. 교과부는 투명한 회계운영을 위해 재무제표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했다.
이에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한국 교육 제도의 공공성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성학 실장은 "재무제표를 통한 투명성 확보는 둘째 문제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과실송금이다"라며 "재무제표를 공시한다는 것은 별 필요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장부를 외국 대학이 기재하는데 정확하게 알 방법이 없어 제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도 과실송금 문제가 한국에도 영리 대학을 세울 수 있는 단초가 돼 교육의 공공성이 무너질 것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박정원 교수는 "외국 교육 기관이 자국의 회계 규정을 따르게 되면 국내에서 이윤을 남기고 그것을 본국에 송금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교육 기관이 비영리 법인인데, 외국 교육 기관만 이윤 송금을 허용해 주면 국내 사립대학도 같은 것을 요구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나라도 영리 대학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에도 미국의 영리 대학은 질이 떨어진단 비판을 받고 있다"며 "대학 사업은 수익이 높은 사업인데, 만약 공공성 보다 수익을 더 챙기는 영리 학교들이 많이 생기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은 뻔하다"라고 말했다.
교과부 "대학 하기 나름"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교과부는 모두 대학들이 하기 나름이라고 말할 뿐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외국 대학과 국내 대학에서 교수직을 겸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아예 그 가능성을 막아두는 것과 열어두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결국, 대학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학 자율화 조치로 비인기 학문이지만, 국가 발전에 필요한 기초 학문 영역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동안에도 비인기학과에 대해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는 근거는 없었다"며 "학내 비인기학과 퇴출 문제는 대학 내부 의사 결정 과정이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결국,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로 두고, 대부분의 영역을 대학의 자율에 맡기겠단 말이다. 이를 통해 대학은 자율을 누릴 수 있지만, 결국 대학의 자율이 교수 사회와 학생 사회의 자율을 뺏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교과부의 인식은 지극히 안이했다.
교과부, 공론화 과정에서 비판적 목소리 아예 배제
한편, 교과부는 그동안 대학자율화 2단계 추진 계획을 세우면서 대학 관계자 간담회, 홈페이지 참여 마당 정책 토론과 대학협의체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교원 단체는 한국교총 정도와 의견을 교환했다. 하지만, 시민 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는 열지 않아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정원 교수는 "교과부는 대학 자율화 정책을 마련하는데 자신들에게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들만 상대하고, 비판적인 단체 의견은 배제했다"며 "대학 의견을 들었다고 하는데 대학의 기획처의 의견을 들은 건 들은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기획처는 대학 내에서 교과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것을 담당하는 부서여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더군다나 교육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아예 고려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교과부는 "관련 대통령령과 행정지침을 올해 12월 말에 변경해 시행하고, 고등교육법 등 법령개정 사항은 국회 논의를 거쳐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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