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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가 아니라 MB 리더십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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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가 아니라 MB 리더십이 문제다

[고성국의 정치분석] 무미건조한 '대화'와 예결위 '돌발사고'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감응은 없었다. 대통령은 시간이 갈수록 활력이 넘쳤으나 국민패널들은 위축되었다. 전문가 패널들이 간간히 끼어들기는 했으나 대통령의 페이스에 제동을 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고 했으나 <대화>는 국민패널의 질문이 아니라 대통령의 답변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듣는 <대화>가 아니라 말하는 <대화>였고 패널들의 질문은 대통령의 <말씀>을 위한 소품으로 배치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럴 것을 기자회견이나 대국민담화가 아니라 굳이 <국민과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밀어붙인 청와대의 대담함이 부러울 정도였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국민과의 대화>를 기획배치한 청와대의 의도를 짐작 못할 바는 아니다. 20%대에서 30%대 사이를 오르내리며 일종의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충격 효과가 큰 이벤트가 필요했고, 국정운영에 자신감이 붙은 대통령을 주연으로 하는 <국민과의 대화>만큼 이런 필요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이벤트도 달리 없겠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만약 그랬다면 이번 <대화>의 승패는 처음부터 <대화>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적 감응 여부에 달려 있었다. <대화>의 목표가 특정 현안과 정책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통한 합리적 선택 유도가 아니라 대통령의 진정성을 임팩트 있게 소구함으로써 지지율을 상승시키고 그 상승세를 국민적으로 확산시키는데 있었으므로.
▲ ⓒ청와대

이번 <대화>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사무적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다. 정서적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구어체 화법과는 달리 사무적 화법은 아무리 개인적 경험을 애기하고, 반어적 유머를 구사해도 감성적 감응보다는 논리적 시시비비를 가리는 쪽으로 경사되기 쉽다. 이번 <대화>를 재미없고 지루하고 따분하고 딱딱한 정책설명회로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대통령 어법의 이와같은 특성일지 모르겠다.

<대화>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인간적 진면목을 새로 발견한 사람, 대통령의 고민과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게 된 사람, 대통령이 제시한 미래에 희망을 갖게 된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는 대통령의 현실인식에서 거리감을 느낀 사람, 대통령의 비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을 듯하다. KTX, 이랜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치솟는 사교육비를 간신히 감당하고 있는 학부모들, 정부의 감세정책이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정부의 산업정책이 대기업 중심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번 <대화>를 통해 생각을 바꾸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대화>에 대해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실은 크게 만족한 듯하다. <대화> 후 예정에 없던 호프집 뒤풀이까지 했다하니 <대화>를 "자신있게" 주도한 대통령과 이를 실무적으로 보좌한 비서실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겠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를 외면한 대화, 비전과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대화"였다는 야당의 야멸찬 평가를 마냥 정략적 논평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대통령과 국민, 청와대와 국민 사이의 거리가 <대화>이후 더 멀어질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은 과연 괜한 기우일까?

어제밤의 추경처리 무산 사태는 추경 문제가 172석, 절대 과반의 집권당이 처음 맞는 정기국회에서 다룬 첫 번째 쟁점사안이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국민과의 대화>에서 탄력을 받고 국민체감 정책과 국민체감추경으로 추석민심을 확실하게 주도하려는 대통령의 정국구상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점에서 "있을 수 없는" 충격적인 돌발 사고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홍준표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가 발빠르게 전원 사의 표명을 함으로써 사퇴수습에 나섰고 범여권의 전열 붕괴는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사의표명 → 한시적 재신임 → 정기국회 올인'의 수순으로 모아질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요인에 대한 엄격한 진단이 없다면 더욱 악화된 형태로 유사사태가 재발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통령제 권력구조에서 대통령의 말과 행동, 대통령의 기분과 분위기는 무엇보다 강력한 메시지다. 정부·여당에 대한 대통령 메시지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아무리 레임덕 심한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퇴임 전날까지 대통령은 의연히 압도적으로 중요한 상수인 법인데 취임 초 대통령의 영향력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번 사태의 밑바닥에 <대화>에서 잘 표현된 것과 같이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 기조에 부응하려는 원내지도부와 당 지도부의 조급함과 서두름이 있었고, 그 때문에 예결위 운영의 기술적 미숙함이 발생했다는 해석도 가능하겠다는 뜻이다. 홍준표의 리더십이 아니라 대통령의 리더십이 더 중요한 변수이고 한나라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의 국정운영 기획력이 더 핵심적인 요소라는 뜻이다.

경제위기설에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지금. 어처구니없는 대형 사고를 낸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이 대형사고를 내도록 몰아세우고 있는 청와대의 공격적인 국정운영리더십을 걱정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국민의 답답함은 과연 누가 풀어줄 것인가. 중추가절, 청명한 가을 하늘이 더욱 보고싶은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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