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새벽 한진중 비정규노동자 김춘봉씨가 비정규직의 폐해를 고발하며 유명을 달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1월 민주노총이 시한부 총파업까지 감행할 정도로 비정규직 문제로 사회적 갈등 양상이 있은 지 불과 1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김춘봉씨가 죽기 하루전에 작성한 편지지 5장 분량의 유서에는 김씨가 어떻게 비정규노동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로 인해 어떤 차별대우를 받았는지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비정규직 차별철폐 운동의 불씨를 재점화했다.
<프레시안>은 29일 오전 김씨의 시신이 안치된 마산 삼성병원을 찾아 유족을 위로하고 사측과 노조의 의견을 청취한 뒤 돌아온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을 만나 김춘봉씨 죽음의 의미와 현지 상황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단 의원과 인터뷰 전문이다.
***단병호 의원 인터뷰**
프레시안 : 어제(28일) 오후 김춘봉씨 빈소가 마련된 마산 삼성병원과 김씨가 일했던 한진중공업 마산공장을 방문한 것으로 안다. 과거 오랜 기간 노동자로서 노동운동가로서 김씨와 같은 죽음을 많이 보고 고민한 바가 많았을 줄로 안다. 조문과 현장조사를 위해 마산에 내려가면서 들었던 생각들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단병호 의원 : 정기국회에 처리하지 못한 안건을 임시국회까지 열어 지연시키고 있다. 임시국회마저도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다. 정작 다뤄야할 민생법안, 개혁법안은 다뤄지지 않고,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거대 여야 정당간 정쟁만으로 소중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소외받고 있는 계층, 더 고통을 겪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방치되고 있다. 김춘봉 노동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삶의 무게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죽음을 선택했다. 얼마전에는 대구에서 4살배기 아동이 굶어죽는 비극이 있지 않았나. 민생을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공전하는 동안 소외계층이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 들어온 한 사람으로서 착잡하기 그지없다. 김춘봉 노동자는 국가적·사회적 문제로 인식되는 비정규직의 고통을 호소하며,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을 선택했다.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요구했지만 조금도 바뀌거나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는 이른바 비정규보호법안이란 미명아래 비정규양산법을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제도 개선을 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된 사람으로서 더욱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 가득하다.
프레시안 : 비록 짧은 시간 방문이었지만, 김춘봉씨 죽음의 본질이 무엇이란 보나.
단병호 : 빈소를 방문해 조문하고, 노조-사측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춘봉 노동자 죽음을 다룬 언론보도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김춘봉 노동자의 죽음의 기저에는 기업이 비용절감만 생각하고 노동자의 생존권, 기본권에 대해 고려없이 명예퇴직,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김춘봉 노동자도 유서에서 밝혔듯이 사측의 회유로 명예퇴직을 당했고, 계속 근무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고 촉탁직으로 계약했다. 하지만 사측은 계속 근무 보장을 뒤집어 촉탁직도 못쓰겠다며 용역업체로 갈 것을 통보했다. 김춘봉 노동자의 죽음에서 전형적인 기업 구조조정 과정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이번 죽음의 직접적 원인으로 사측이 노조와 맺은 단협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3년 노조와 맺은 단협사항을 보면 3개월 이상 사용한 촉탁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노조는 올해 단협을 지키지 않은 사측에 공문을 보내 단협사항 이행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측은 이를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단협사항을 무시한 것이 한 노동자를 죽음으로 몬 것이다. 이는 사실관계를 더 밝힐 것도 없이 명명백백한 진실이다. 사측도 잘못을 시인했다.
유족으로 김춘봉 노동자의 슬하에 20대 초반의 아들과 딸이 있었다. 졸지에 아버지가 운명해서 경황이 없어 보였다. 하루 아침에 아버지를 잃었는데 충격과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유족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아버지의 죽음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잘 읽고 다시는 아버지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없길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이를 위해 노조가 좀더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말하더라.
***"정부는 비정규노동자의 죽음의 의미를 축소-은폐하려 할 뿐이다"**
프레시안 : 비정규직 문제는 접근방법과 해결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정부, 여야 정당 할 것 없이 해결해야 할 주요한 사회적 문제라는 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컬하게도 비정규직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한 명의 노동자가 생명을 잃어도 정부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은데.
단병호 : 과거에도 그렇고,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사회적·국가적 문제로 쟁점화 되는 것을 원하기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책임이라고 시인하기는 커녕, 개인의 문제·노사간의 문제로 축소·은폐하는 것이 정부의 오래된 태도이다. 비도덕적인 행태다.
이런 죽음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적 문제로 발생하는데, 정부는 이를 전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정부는 경제활성화·외자유치를 위해 노동유연성 강화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고, 나아가 노동유연화가 실업을 해결한다는 해괴한 논리마저 갖고 있지 않는가. 이런 시각을 가진 정부가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끼겠는가.
프레시안 : 혹시 김대환 노동부 장관에게 조문을 권유할 생각은 없나.
단병호 : 그럴 의사 없다.
***"죽음이 내포한 사회적 의미 제대로 구현해야"**
프레시안 : 일단 김춘봉씨가 유서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상세히 적어놓았기 때문에 사인에 대한 논란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 '한진중공업 고 김춘봉노동자 대책위원회'에서 향후 대응방안을 마련하겠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바람직한 대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단병호 : 유서를 보면 김춘봉 노동자가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고통을 절절하게 적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구조가 불가피하게 가지는 각종 폐해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한 생명의 죽음의 의미를 유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의미 모두 잘 살려야 한다.
비정규직의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법·제도 마련을 위한 활동도 매우 중요하지만, 유족의 바람과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번 사안을 끌어가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김춘봉 노동자의 정신을 구현해야 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역효과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김춘봉 노동자의 죽음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의미대로 구현해 쟁점화해내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한진중공업 내에 존재하는 김춘봉 노동자와 같은 처지인 40여명의 촉탁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는 사측이 책임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 신분으로서 국회 내에서 김춘봉 노동자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른 의원들에게 알려내고 제도·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활동에 더욱 주력할 생각이다. 내년 2월 비정규 관련 법안이 올바르게 처리될 수 있도록, 민주노동당에서 발의한 법안이 제도화되도록 더욱 분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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