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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에 저항하는 '진짜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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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에 저항하는 '진짜 대중문화'

[대중음악의 오늘을 보는 시선 ⑪]

장면 1. 햇빛 좋은 오후, 홍대앞 거리를 산책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귀가 끌린다. 통기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이 뮤지션은 스스로 제작한 싱글음반을 소개하며 햇살만큼이나 아름다운 목소리로 공연을 이어간다.

장면 2. 촛불집회가 열린 시청 부근. 여러 어쿠스틱 악기를 둘러맨 밴드가 보도 한 편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든 집회 참가자들은 그들의 노래를 듣고, 어느덧 집회는 구호만이 아닌 함께 즐기는 문화로 변해간다.

장면 3. 인사동 거리에서 소규모 악단의 공연이 한창이다. 오랜만에 나들이한 가족, 관광 온 외국인들 모두 흥겹게 그들의 연주를 즐기고, 그들이 펼쳐놓은 악기 가방에 선뜻 팁을 지불한다.


위의 이야기들은 가상이 아닌 지금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장면들이다. 아직 일상의 문화로 온전하게 존재하고 있지 않지만 공연장이 아닌 거리, 공원 등지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뮤지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버스커스(Buskers)라고 부른다. 아마 작년 소규모로 개봉되어 1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던 영화 <원스>를 보신 분들은 주인공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첫 장면이 기억날 것이다.
▲ 두번째달 바드. ⓒ서정민갑

버스커스는 공적인 장소에서 공연을 하며 팁 또는 선물을 받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음악뿐만 아니라 서커스, 아크로바틱, 코미디, 댄스, 저글링 등 다양한 공연으로 거리의 문화를 꽃피우는 이들이다. 버스킹 문화가 일찍이 시작한 해외에서는 버스커스를 전업으로 하고 있는 아티스트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 아티스트 중 조운 바에즈, 밥 딜런, 사이먼 앤 가펑클, 자니 미첼 등 버스커스 출신으로 프로페셔널 아티스트가 된 경우가 꽤 있다.

국내에서도 그 수가 많지 않지만 거리에서 공연이 열리는 경우가 있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홍대앞 놀이터가 그렇다. 홍대 지하철 역 부근 서교지하보도에서는 뜻을 같이한 인디 밴드들의 공연이 열리곤 한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의 몇 개 노선에서도 지정된 장소에서 공연이 열린다. 아쉽게도 아직은 이 정도이다. 거리공연이 그 거리의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법적인 문제, 주변 주민의 인식 등 여러 장애물을 넘어서야 한다.

거리공연의 시도는 90년대 중반부터 있었다. 98년경 파티밴드를 꿈꾸었던 '오! 부라더스'는 홍대앞 거리에 악기를 싸 들고 나가 서프 뮤직과 로큰롤을 연주하곤 했다. 주변 상인들의 민원으로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 말이다. 99년에는 서울 지하철 일부 노선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지정된 장소에서 지정된 시간에 해야 하는 제한된 형식의 공연이었다. 2002년 홍대앞 놀이터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프리마켓에서 일군의 뮤지션이 공연을 시작했다. 작가들이 창작품을 만들어서 팔듯이 우리는 공연을 하고 팁을 받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한 프리마켓 공연은 이제 주말 홍대앞 놀이터의 명물이 되었다.

거리공연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아티스트도 등장했다. 'Think About' Chu'로 유명한 아소토 유니온은 앨범 발매 이전 홍대와 이태원 부근에서 기습적으로 거리공연을 하곤 했다. 버스커스를 꿈꾸는 캐비닛 싱얼롱즈는 거리를 다니다 맘에 드는 곳에서 공연을 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로 알려진 하림이 다양한 해외의 민속악기를 들고 거리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던 것도 이 시기이다.
▲ 소규모로 개봉되어 1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던 영화 <원스>의 첫 장면은 주인공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풍경이었다.

2007년 펜타포트 페스티벌의 숨겨진 승자였던 어 베러 투모로우는 거리, 강의실, 클럽 등 장소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끼를 맘껏 발휘한다. 월드뮤직을 연주하는 악단 오르겔탄츠는 인사동, 대학로, 삼청동 등지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곤 한다. 두 번째 달 프로젝트 그룹 바드의 경우 버스커스로 자유롭게 연주하고 활동하는 멋쟁이 뮤지션이다. '진식의 1020 서교지하보도'는 공연장이 아닌 자신의 공간을 모색하는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한 경우이다. 포크 뮤지션 시와는 망원동의 공공미술프로젝트의 일환인 마리아 프로젝트에 참여해 지난 8월 25일 해질녘 마리아수도회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노래를 들려줬다.

MP3로 음악을 듣고, 블로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올리는 디지털의 시대에 거리공연은 무슨 의미일까? 그건 아마도 일상 속에 존재하는 즐기는 문화의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대량으로 소비되는 대중문화는 일방향의 성향이 강하다. 그럼으로써 문화는 즐기는 무엇이 아닌 소비하는 무엇에 가까워진다. 버스커스는 이에 반하는 문화 생산자이다. 이들은 매체를 통해서 전달하기 보다는 관객이 존재하는 거리로 나가 얼굴을 맞대고 자신의 창작물을 전달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아티스트와 관객과 거리가 모두 모여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가 되는 순간을 창출한다는 점이다. 내 안에서 추상적으로 상상하던 악상이 노래가 되고, 그 노래가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순간에서 문화는 발생하고 우리 일상에 존재하게 된다. 두 번째 달 바드가 아일랜드에 갔을 때 거리의 모든 사람이 음악인이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는 건 과장된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포크(folk)가 단어가 가진 원래 의미처럼 존재하는 나라의 문화는 몇몇의 유명 아티스트가 아닌 모든 대중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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