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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성에 무임승차한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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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성에 무임승차한 스릴러

[최광희의 휘뚜루마뚜루 리뷰] <트럭>

어느 성실하고 소심한 트럭 운전사가 있다. 그는 엄마 없는 어린 딸을 애지중지하는 좋은 아빠다. 헌데 어느날 딸이 중환자실에 입원한다. 돈이 필요하다. 절박한 마음에 도박장에 갔다가 그나마 가진 돈을 다 날린다. 하필 바로 근처에서 우연찮게 무자비한 조폭 보스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 살아 남기 위해서, 그리고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선 그가 죽이지도 않은 시체들을 자신의 트럭에 옮겨 유기해야 한다. 그러다 또 한번 우연찮게 호송 중 탈출한 희대의 연쇄 살인마를 태우게 된다. 설상가상이다. 과연 이 순박한 트럭 운전사는 살 떨리는 운명의 장난에서 벗어나 마침내 딸과 행복한 조우를 하게 될 것인가. 숨차게 써내려간 이 영화의 대강의 줄거리다. 재미 있으신가? 나는 재미 없다. 필연적 동기가 부른 우연의 연쇄극. 얘기가 너무 뻔하다. 하지만 이 뻔한 얘기도 연출자가 어떤 트릭으로 관객을 긴장감 속으로 몰아 붙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다. 우연찮게 살인 현장을 목격한 트럭 운전사가 그 시체들을 태우고 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하필 연쇄 살인마를 태우게 될 현실적 가능성이 0.00001%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일말의 기대감이 나를 이 영화의 시사회장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트럭
길게 말할 것 없다. 기대감은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물론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보도자료 베껴 쓰는 걸 업으로 삼는 게으른 언론들이 쏟아낼 그 노하우대로, 나 역시 코믹 연기의 달인 유해진이 처음으로 스릴러에 도전했네, 어쩌네. 연쇄살인마로 출연한 진구의 악역 카리스마가 볼만하네 불라불라 할 수 있다. 하다 못해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 지수원의 모처럼만의 스크린 컴백에 대해서도 대충 감격한 척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덕담은 영화가 마음에 와 닿은 뒤에야 할 수 있는 얘기다. <트럭>은 놀랍게도 시침 뚝 떼고 전형성에 편승한다. 유해진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에 스스로들 감복한 듯, 그거 하나로 뭔가가 나올 것이라는 착각 속에 허우적대다가 끝난다. 플롯은 한 없이 늘어지고 그나마 유해진이 얼마나 한 없이 가련한 남자인지를 무려 30분 가까이 구구절절 설명한 뒤에야 천천히 악셀을 밟는다. 상처 받은 악마와 가련한 운수 노동자의 동승이라는 설정을 애써 만들어 놓고, 악마는 연민이 끼어들 틈 없이 끝까지 악마로 남고, 절박한 아버지는 끝까지 절박하다. 두 사람이 대면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만으로 인물의 입체감을 확보하지 못하니, 시도 때도 없이 플래시백을 남발하며 그 공백을 메우려 한다. 설마, 아니 혹시라도 이 영화가 마이클 만의 <콜래트럴>을 참고했을까? 그렇다면 알맹이만 쏙 빼놓고 껍데기만 참고한 것 같다.
트럭
그렇다고 그 전형성 안에서 이 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묵직한 성찰이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한숨이 덜 깊어졌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야기가 허술한 장르 영화에 묵직한 성찰이 얹힐 리 만무일 터. 영화가 동원하는 폭력이 알량한 장르의 목적을 위해서만 소비되고 마는, 딱 그 수준에 머물고 있을 때, 시사회장의 객석은 불현듯 좌불안석이 된다. 내 앞의 앞줄에 앉아 같은 영화를 보고 있던 출연 배우들도 아마도 같은 심정이 아니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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