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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시대…다 우리가 잘못한 탓입니다"

[현장] 두 성직자 "우리 고통으로 세상이 변한다면…"

지난 5일,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五體投地) 순례' 이틀째. 지리산 속 고요한 등산로에 죽비가 울린다.

"딱!"

순례단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땅에 몸을 던진다. 땅과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땅에 엎드려진 몸에서는 고통이 그대로 묻어난다. 거칠게 숨을 고르는 소리. 등은 크게 들썩이고, 입에서는 알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베어 나온다.

마음 속으로 열을 세면 두 사람은 일어나기 위해 기척을 낸다. 그 순간, 몸을 일으키려는 두 성직자가 힘겨워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천천히 일어서는 순간 약간의 망설임이 느껴진다. 이들은 발걸음을 떼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살짝 들어올린 얼굴엔 모래가 붙어 있고 인상은 일그러져 있다. 누가 봐도 이들은 극한의 고통 속에 자신을 이기며 일어서고 있었다.

"딱!"

불교환경연대 지관 스님이 다시 죽비를 친다. 잡념은 다시 흩어진다. 수경 스님과 문 신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뒤따라오는 순례단원들은 고개를 든다. 다시 묵묵히 세 걸음. 두 성직자는 땅에 몸을 던지고 순례단원들은 고개를 숙인다.

불교의 전통 타악기 죽비는 무명의 소리를 일깨우는 악기다. 죽비 소리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허물을 돌아보게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힘겨운 순례 길에서 이들이 돌아보려 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이들은 고통을 자처하며 고통 속에서 평화를 찾아나선다고 하는 것일까.
▲순례 2일째. 왼쪽 지관 스님이 들고 있는 것이 죽비다. ⓒ오체투지 순례단

▲오체투지는 어깨로 온 몸의 힘을 싣는 절이다. 수경 스님은 "어깨가 결려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체투지 순례단

"한국 사회의 혼란은 우리 삶이 표출된 것…평화가 없는 삶, 나 먼저 성찰해야"

이번 오체투지가 무엇을 위해서인지 언뜻 보기엔 분명치 않다. 이명박 정부의 강압적 국가 운영에 대한 반발일까. 두 성직자가 고개를 내젓는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2003년,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했던 그 당시에는 '생명'이란 단일 메시지가 있었다. 그럼 이번엔 무엇이 그들을 이 길을 나서게 한 걸까.

"한국 사회는 지금 위기이다. 돈이면 다 되는 사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다. 정부의 혼란은 결국 우리의 책임이다."

2008년 한국 사회는 진통의 연속이다. 촛불 집회, 방송 장악, 감세 정책…. 열거하기 힘든 다양한 사건 속에서 분명한 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이명박 한 개인의 잘못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그를 당선시킨 우리 시대의 문제는 아닐까. 두 성직자가 고통을 자처하며 길에 나선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한국 사회의 허물을 대신 속죄하기 위해.

수경 스님은 "절을 하는 동안 '어렵다, 아프다', 이 한 생각에 집중한다"며 "오체투지가 어렵다는 생각 하나만 직시하면 밖으로 흩어지는 마음이 모아지고 사물의 본질이 보인다"고 말했다. 수경 스님은 "그러면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가 찾아온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세상 사람들은 생각이 흩어지면 희노애락에 휘말려 본질은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에 자꾸 괴로워하게 된다"며 "오체투지를 통해 '어렵다, 아프다'는 한 생각을 유지하면 우주의 원리와 생각이 합일되고, 그러면 모든 세상 사람들은 소통 가능해 대립과 갈등은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의 혼란은 이명박 대통령이 만든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삶이 표출된 결과"라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면의 자신의 문제를 성찰하지 않으면 현재 한국의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순례단원 중 한 명도 "이번 순례는 단순히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 아니다"라며 "국민들이 왜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는 지가 중요한 화두"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이 이 대통령을 뽑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돈 좀 잘 벌어보자고 뽑아준 것 아닌가. 한국 사회의 혼란은 우리 내면에 있는 물질 만능주의 등을 무조건 추종했던 마음가짐 때문이니, 그런 마음가짐부터 돌아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순례에 동참한 버마 민주화 운동가 마웅저(39) 씨도 "현대인은 돈을 벌어서 소비를 하면 평화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일순간"이라며 "그 평화는 곧 깨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계만을 위해 살면 평화롭지 못하다"며 "결국 평화는 마음 속에 있다"고 말했다. 순례단이 말하는 평화에 관한 설명이었다.

'사람'을 찾아 나선 순례 길,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다

수경 스님은 "오체투지는 삼보일배보다 온 몸이 세 배는 더 힘들다"며 "(예전 수술로) 무릎을 못 꿇고 어깨를 쓰니까 (어깨가 아파서) 밤에 잠을 못 잔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삼보일배에서 입은 부상으로 무릎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했던 그였다.

건장한 젊은이도 감당하기 힘든 오체투지인데도 이들은 강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 오체투지를 시작해 150m 정도 전진한 후 쉬기를 반복했다. 등산객이 무거운 배낭을 지고 30초면 내려가는 길을 이들은 10~15분에 걸쳐 내려갔다. 두 순례자의 어깨와 팔은 전날 노고단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 내려오는 길에 근육이 뭉칠 대로 뭉친 상태였다. 장갑 안으로 파고드는 뾰족뾰족한 돌멩이 탓에 수경 스님과 문 신부의 손바닥과 무릎은 이미 멍들대로 멍들어 있었다.

간밤에 순례단원들이 가슴받이와 바지 안쪽, 장갑 안쪽에 쿠션을 덧댄 덕에 훨씬 수월해지긴 했지만, 쿠션에 스며든 땀은 쉬이 마르지 않는다. 이럴 경우 살이 짓물르기 십상이다. 그래서 순례단원들은 두 성직자의 가슴받이, 장갑 등을 휴식 중간 중간 햇볕에 말려주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순례는 이뤄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휴식 때마다 두 성직자의 손발을 안마하고, 흘린 땀을 닦아주는 단원들. 사람의 길을 찾아 나선 순례길 자체가 사람을 만나는 길이었다.
▲순례단은 약 150m에 한 번씩 휴식을 취했다. 수경 스님은 "오체투지가 삼보일배 보다 세 배는 더 힘들다"고 말했다. 함께한 순례단원들이 두 성직자의 팔 다리를 주무르며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있다. ⓒ프레시안

"촛불을 위해, 경쟁보다 연대를 위해, 의료 민영화를 막으려…"

순례단원이 순례길에서 하는 기도는 제각기 달랐다. 공통점이 있다면, 현 정부의 정책을 잘못됐다고 판단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는 점이었다.

두 성직자의 뒤에서 현수막을 든 20대 단원 네 명은 촛불 집회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매일 현장에서 마주치면서 친구된 이들은 오체투지 소식에 다니던 회사에 휴가를 내고 다 같이 합류했다고 했다. 이들은 두 성직자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맨발로 순례를 따라갔다.

그 중 한 명인 엄기웅(26) 씨는 순례단에 참여하게 된 동기가 이명박 대통령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는 가짜 보수들이 보수를 지칭하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며 "촛불 집회에 나선 사람을 빨갱이라고 하는 등 소통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고집으로 무리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라도 나서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 변화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체투지 순례에 참여함으로써 촛불 시위로 연행된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다"며 "꺼져가는 촛불이 오체투지 순례로 다시 한 번 피어오르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리산에 사는 한 부부는 삼보일배를 하며 순례단을 따랐다. '어떻게 동참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이들 부부는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되려 묻는다. "이유를 꼭 말로 해야 알겠나, 너무나 당연하지 않나."

이들은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어떤 이상한 사람 때문에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사리사욕에 물든 집단들이 귀를 막고,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미국에서 자꾸 들여와서 먹이려 하지 않나"라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국민을 경쟁의 나락에 떨어뜨리려고 하는 현실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웅저 씨도 "절과 성당에 있어야 하는 스님과 신부님이 왜 이곳에 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며 "이런 오체투지 같은 건 독재가 통제하는 국가에서나 하는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에서도 하는 것은 이 사회가 고민해야 될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성직자로서 동료 성직자들을 격려하러 온 전주 아름다운 교회 양용석(52) 목사는 "현재 호스피스로서 암기 말 환자를 돌보는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 정부가 시행하려고 하는 의료 민영화는 목숨을 걸고 막으려고 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저질러 놓은 잘못에 엉뚱한 사람이 십자가를 지는 것 같아 너무 창피하다"고 덧붙였다.

오체투지 순례의 총괄을 맡고 있는 생태지평 명호 연구원은 "현재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사회적 위기에 봉착했다"며 "이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대처하는 우리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갈 것인지를 성찰하는 것이 이 순례의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참여하는 각각의 순례단원들이 각자의 순례 상을 찾아갈 것이고, 그 다양한 상이 이 순례를 완성시킬 것"이라며 "정답이 있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길 속에서 그것들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가 대신 기도하는 순례단

둘째 날의 목표는 노고단 대피소에서 성삼재 주차장까지 3.3㎞. 그러나 결국 목표 지점을 바로 앞에 두고 순례를 마쳐야만 했다. 명호 연구원은 "이틀을 해보니 하루 3㎞도 힘들어 계획대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셋째 날에는 성삼재 구례쪽 도로를 따라 순례 길이 이어진다. 그는 "내일은 본격적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기 때문에 차가 많아 위험하다"며 "뱀사골 쪽으로 내려가는 도로보다 경사도가 낮아 구례 쪽으로 우회하는 것이지만, 그곳의 경사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천은사 구간은 20도가 넘는 경사도라 걱정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순례는 지리산을 거쳐 계룡산, 묘향산을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이 산들이 조선 시대 하학단, 중학단, 상학단이라고 해서 산신제나 천고제를 드리는 정부의 3대 기도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난을 당했을 때 정부 주도로 기도 드리던 이곳에서 정부가 아닌 순례단이 현재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기도 드리며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 생명, 평화를 희구하는 길. 문규현 신부는 오체투지의 고행이 평화롭다고 한다. "낮아지면 평화롭다. 다 버리면 평화롭다. 산을 넘어 가야지, 밀어내면 어떻게 하나. 바람이 못 넘을 산이 없다."

어쩌면 이 말 속에 대립과 갈등 속 한국 사회가 찾는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현안마다 답을 찾아가기에는 이미 질적으로 변해 버린 한국 사회, 그리고 그 결과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다.

두 성직자의 오체투지는 한국 사회의 질적 변화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는 어떤 등산객이 말했듯 시간이 지나고, 도착지에 도달할 때쯤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새겨지지 않을까.

5일, 오전 8시에 시작한 순례 길은 이렇게 오후 5시에 막을 내렸다. 내일을 기약하며.
"영혼을 맑은 물에 헹구는 기분"

한편, 등산객은 신기한 듯 발걸음을 멈추고 순례 행렬을 바라봤다. 이들은 대체로 두 성직자의 오체투지가 "숭고하다", "숙연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에서 온 최영순(50) 씨는 "저런 분들을 보니 영혼을 맑은 물에 헹구는 기분"이라며 "우리는 만물척도가 다 돈인 탁한 삶을 살고 있는데, 이분들의 오체투지를 보면서 경각심을 갖게 되고, 작은 일부터 자기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분들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안쓰러워 보인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온 나충오(41) 씨는 "놀랐다"며 "세상에 이분들의 진심이 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도 대구에서 학교 평준화를 위해 자전거 투어 등을 했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기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런 정성은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전주 한 교회의 장로라는 최주환(68) 씨는 "정말 훌륭한 일"이라며 "나도 장로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라는 게 너무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장로라면 부자보다 소외되고, 고통 받는 어려운 사람 편이어야 하지 않나"라며 "예수님은 어려운 사람의 편이었는데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기독교 오해가 생기고 불교계와 사이만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반면, 어떤 이는 오체투지가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수원에서 온 이명자(52) 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큰 잘못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까지 절을 하고 다녀야 하는가" 반문하며 "이런 방식으로 국민들 마음이 움직일지 미지수"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휴식 시간에도 명상에 잠긴 수경 스님. ⓒ프레시안

▲고행으로 몸이 힘들어도 평화롭다는 문규현 신부. 그는 "모든 것을 버리면 평화롭다"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순례 3일째. 이날은 비가 왔다. ⓒ오체투지순례단

▲순례 3일째. ⓒ오체투지순례단

▲순례 3일째. 이날은 비가 와서 땀이 금방 식어 더욱 추운 날씨였다. 악조건에도 이날 순례는 멈춰지지 않았다. ⓒ오체투지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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