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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67>


칸나꽃 빛깔 같던 여름의 열정이 아직도 화단 구석엔 짙기만 한데 벌써 가을바람이 잎새들을 흔듭니다. 세월은 바람처럼 아무것에도 막힘이 없이 흘러갑니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 흐르는 것이 이처럼 살갗에 와 닿을 때면 까닭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이 솟곤 합니다.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 피어서 시들지 않는 꽃은 없고 지금 살아 있는 모습으로 영원히 죽지 않거나 변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무 살 무렵에는 서른 살이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는데, 어느새 사십대에 들어서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예순 살이 되어서 인생의 큰 고비를 넘는구나 생각하며 되돌아보는 나이 오십은 안타깝게 보낸 후회의 나날이었는데, 젊어서 생각하는 나이 오십은 아득한 불안으로 바라보게 되는 나이입니다. 그렇게 살아 보지 않은 나이에 대한 두려움과 살아 온 나날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지는 게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늙음과 죽음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공연한 불안함을 갖게 하는 것이 앞날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럴 때면 오늘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불경에서는 가르칩니다. 오늘 나의 삶이 미래의 나의 삶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하루를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땀 흘리며 살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를 부끄러움 없이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내가 곧 미래의 나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어떤 벗과 함께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내 마음에 맞는 벗, 그도 나와 함께 떨어질 수 없는 벗의 모습은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의 반영이요 그를 보면 나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삶이 의롭고 삿되지 않으며 자신감을 가질 만하면 나 또한 내 삶에 믿음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지금 그런 벗들과 함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불경에서는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께 굳건히 갈 수 있는 벗이 아니라면, 이 가을 지금의 삶을 떠나 그런 진정한 벗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나 또한 그런 벗을 만나기 위해 나 자신을 벼리고 다듬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리석은 벗과 함께 가고 있다면 당장 혼자서 가기를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아타의 비유처럼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혼자 가야 합니다. 그러면 내 외로움 내 당당함에 맞는 새로운 벗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용기가 있다면 오늘 하루의 삶이 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가올 하루하루의 삶 역시 불안해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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