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단체에 연락해서 상담하겠다는 이들은 외국인만이 아니다. 간간이 한국인이 전화하거나 찾아와서 '자기가 아는 외국인이 이런 일이 있는데…' 등으로 시작해서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브로커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 이상 가급적 친절하게 여러 가지 정보와 노하우들을 알려주면서 그 한국인이 자기의 선의를 잘 발휘할 수 있게끔 협조한다. 그런데 가끔 우리를 아주 기분 나쁘게 하는 한국인의 상담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웬 아가씨가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말투가 어딘지 어색해서 확인해보았는데 한국인이었다. 그렇지만 문장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버벅대는 외국어를 듣는 느낌이어서 아마도 외국에서 살다가 온 사람인가보다 싶었다. 모 종교기관에서 한국어교사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상담하러 우리 단체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고 물어보았더니 대답이 영 시원찮았다. 자기는 도와주는 사람이고 옆에 카자흐스탄 사람이 있는데 산재를 당했고 우리 단체에 가고 싶다고 한다는 것이다. 산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지금 거주지와 회사 소재지가 어딘지를 물었다. 수도권 지역이었다.
그 지역에는 성공회 신부가 운영하는 이주노동자 지원단체가 있었다. 그래서 산재상담을 진행하려면 장기간 복잡하게 일이 진행될 수 있으니 가까운 상담소를 알려주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친절을 보인답시고 그 단체에 일부러 연락해서 미리 '이러저러한 사람이 이러저러한 일로 그 단체를 찾아갈 것이다'라고 알려주었다. '염려 말고 보내라, 기다리고 있겠다'는 그 단체 스태프의 답을 듣고 전화한 한국아가씨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웬걸! 한 10분 있다가 한국 아가씨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이 아가씨, 아까 했던 말을 똑같이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닌가. '아까 다 알려주었다. 그쪽 지역 상담소에 미리 얘기 해 놓았다, 그러니 그쪽으로 가시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라고 다시 되풀이했는데도 이 아가씨는 거긴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대지 않고. 그래서 당사자를 바꿔달라고 했더니 '당사자와 의사소통이 안될 것이다'라는 말만 하는 것이다.
'전화한 사람은 어떻게 의사소통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영어로 하는데 자기도 잘 안된다'는 것이다. '영어 잘하는 스태프를 연결해 줄 테니 걱정 말고 바꿔 달라. 우리는 이런 일에 익숙하다. 그러니 우리가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겠다'며 당사자를 바꿔달라고 했지만 이 아가씨 계속 딴 얘기만 하는 것이다. 몇 번의 채근 끝에 당사자와 통화하여 확인한 상황은 아가씨의 말과는 다른 것이었다. 가까운 데에 있는 병원을 소개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또 어떤 한국인 아가씨가 전화를 해서 찾아올 테니 어떻게 가면 되느냐고 물어왔다. 음색이며 말투가 그 아가씨인 것 같았다. 그래서 '지난 번에 통화한 사람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지만 미심쩍었다. 이번에는 중동 지역의 어떤 국가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번은 당사자 거주지와 사업장 소재지가 서울 남부지역이어서 가까운 다른 상담소를 알려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상담소 이름과 위치를 듣더니 '아, 거기는.....'이라면서 말을 흐리길래 '그 상담소를 아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니요. 다시 연락할 게요' 하더니 전화를 뚝 끊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묘한 끝말을 남겨놓고선. 그런데 내가 안내한 상담소 역시 개신교 목사가 운영하는 단체였다.
언젠가는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목소리의 한국인 여성이 전화를 했다. 자기가 아는 파키스탄 사람이 임금이 체불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것이다. 본인의 얘기를 직접 들어야겠다고 하자, 곤란해하는 것이 역력한 말투로 대답을 확실히 하질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늘 물어보듯이 당사자 거주지와 업체 소재지를 물었다. 그런데 답변이 묘했다. '경기도예요'라고만 하고 영 지역을 얘기하질 않는 것이다.
두세 번 물어도 답변이 이상하길래 이번에는 전화 상담하듯이 본격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여성은 자꾸만 말을 이상하게 돌리곤 하였다. 예를 들면 '어디신데요?'(누구냐는 뜻) 물으면 '경기도예요' 라고 답하고, '회사는 어디에 있나요?'라고 물으면 이 근처예요' 라고 답하고 '전화하신 분은 누구신가요?' 라고 물으면 '아는 사람이에요'라고 하고 '당사자와 직접 상담을 해야 하는데요' 라고 하면 '직접이요?'라고 답을 하는 식이다. 불쾌하기도 하거니와 경험에서 우러난 짐작으로 내가 선수를 쳐서 물어보았다.
'거기 교회죠?'
그랬더니 머뭇거리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어느 지역이냐'고 재차 묻는 내 질문에 또다시 하나마나한 대답만 하는 것이었다. 점점 기분이 나빠졌지만 몇 차례 더 물어본 끝에 겨우 지역을 알아내었다. 그런데 그 지역에는 내가 아는 상담소만 해도 2개가 있었다. 하나는 개신교 목사가, 하나는 성공회 신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 경우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훨씬 충실하게 지원해줄 수 있는 그 지역 상담소를 소개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나는 두 군데 모두 안내해주었다.
그랬지만 그 여성은 '거기 찾아가기가 좀 그래서…'라더니 이번에는 최소한 2~3시간은 걸리는 우리 단체로 오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여성에게 기본적인 임금체불의 진행방법과 노동부 관할 지방사무소 민원실에 찾아가 상담하고 직접 진행하면서 배워보시라는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 상담을 끝냈다. 진행해보다가 잘 안될 때면 다시 연락하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직접 우리가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이 중간에 있을 경우 상담이 책임있게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와 종교인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종파는 별론으로 하고 왜 같은 종교인이 운영하는 상담소를 찾아가려 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왜 기본적인 사항들을 수십 번이나 물어야 양파 까듯이 한 가지 한 가지 어렵게 알려주어 전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게 만드는지, 왜 우리가 당사자와 직접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꺼리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지도 모르겠다.
내막은 모르지만 우리를 유쾌하게 만들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비슷한 전화를 몇 번 받다 보니까 이제는 조금 가늠이 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익숙해지지는 않고 매번 기분이 나빠지면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의식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가끔 선의로 이주노동자를 도와주려고 하는데 내가 오히려 저쪽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기분은 개운치 않는 전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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